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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회복적 정의 영국연수] 벨린다 홉킨스 박사의 ‘갈등 전환 : 학교, 사법, 지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 실천’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회복적 정의 영국연수] 벨린다 홉킨스 박사의 ‘갈등 전환 : 학교, 사법, 지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 실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2. 10. 00:39

벨린다 홉킨스 박사의 갈등 전환 : 학교, 사법, 지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회복적 정의 실천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오랫 동안 특정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직업적 성격을 자기 몸에 새기게 된다. 그래서 처음 본 사람임에도 대략 어떤 일을 해왔는지 알아맞출 수 있다. 운동선수, 경찰, 교사, 간호사, 선원, 영업사원 등 직업마다 어떤 전형성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벨린다 박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이 분은 평생 아이들을 가르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밝고 희망찬 기운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분의 표정과 몸짓, 발성의 톤과 빠르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르치는 일과 함께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벨린다 박사님이 제시한 회복적 접근의 5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2.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3. 우리가 무엇을 행하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4.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전에 그 사람의 니즈(필요,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5.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는 박사님의 제안에 따라 대화를 시작했다. 첫 번째 주제는 영국에 오기까지의 여정이었다. 듣는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언어적 경청 기술을 사용해야 했다. 영국에 오기 전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영국행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으며, 노팅엄에 도착할 때까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뻔한 이야기가 될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 주제는 이 여정 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들었고, 그때마다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였다. 브리스톨을 거쳐 코벤트리와 노팅엄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체를 방문했고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사회의 평화를 위해 수십 년 간 조직적인 실천활동을 해온 활동가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묵직해지곤 했다. 단순히 감동이라고 하기보다는 두려움도 섞인 경외감이 컸다. 이 감정이 어떤 행동을 낳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생각과 감정이 행동과 연결된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많이 공감되었다.

 

세 번째 주제는 ‘2주 동안 영국에 와 있는 동안 한국에서 누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였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내와 아이였고,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얼굴이 이어서 떠올랐다. 나의 행위와 발언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농담, 별 뜻 없이 한 행동에 누군가는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책임의 문제를 되새기게 한다.

 

네 번째 주제는 이 여정에서 내가 채우고 싶은 필요가 무엇인지였다. 다시 말해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였다. 박사님의 조언은 너무 구체적인 것 말고 추상적인 것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배려나 평화 같은 것. 갈등분석을 다룰 때 배웠던 욕구의 세 위계 중 가장 심층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내 근본 욕구는 확신이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이 여정이 잘 되려면 내가 무얼 할 수 있는가였다. 우리는 누구나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이다. 스스로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은 우리를 능동적이게 만든다. 능동적인 태도에서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나온다.

 

5가지 주요 법칙은 회복적 질문과도 연결된다. 1. 무슨 일이 있었나요? 2.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 동안 어떤 생각을 했나요?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그 일에 대해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3. 그 일로 인해 누가 영향을 받았을까요?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받았을까요? 4. 영향을 받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건 뭘까요? 피해를 바로잡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5.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이러한 원칙과 질문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를 나는 사람그리고 사랑이라고 보았다. 회복적 정의는 갈등에 접근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중 하나이고, 그 근본에는 사랑이 놓여 있다고 믿는다. 한 명 한 명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환대하며, 인간 내면의 마음을 정성껏 헤아리고자 하는 회복적 접근은 그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체화하여 몸으로 보여 주시는 벨린다 박사님을 만나고 함께 경험했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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