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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세까지 움직임교육에서 바라보는 발달과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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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세까지 움직임교육에서 바라보는 발달과정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7. 23. 09:23

9-18세까지 움직임교육에서 바라보는 발달과정 

 

9세와 18세 사이

 

 

따뜻함의 경험(9세-3학년)

 

 

9세가 되면서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처음으로 낯선(이질적인) 어떤 대상으로 경험한다. 처음에는 단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였다면, 이 그림자는 점차 더 분명해지고 견고해지며 형태를 가지게 된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신체와 영혼, 정신은 아직 떨어질 수 없는 일원성인 것이다. 이 일원성은 무엇을 통해서 무너지게 되는가? 그것은 반감과 교감, 따뜻함과 차가움의 출현으로 일어나게 된다. 아이들은 살아 있는 질서를 가진 세상의 인상에 대하여 교감을 느끼고, 혼돈과 추상적인 도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인상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낀다.

 

만약 아이들이 조화롭고 질서 있는 주위 환경을 찾아낸다면, 아이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따뜻함으로 답을 하며, 아이들은 성장하고 꽃 피울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들은 시들어 버리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성장과 쇠퇴와 관계된) 힘의 원칙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외부 세상은 이러한 힘의 원칙이 성장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아니면 쇠퇴의 방향으로 향하게 될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는 바깥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열거나, 또는 닫아버리는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도움은 사랑의 따뜻한 힘밖에 없다. 이 사랑의 힘은 아름다움과 조화, 그리고 균형의 관점을 통해 깨워지는 것이다. 오직 사랑만이 아이들 내면에서부터 이제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낮선 그림자를 관통할 수 있다.

 

 

호흡(10세-4학년)

 

 

10세 때부터 이제 (바깥세상의 영향에서) 개별화의 과정으로 중심이 옮겨지게 된다. 아이들은 외부의 따뜻함이 아니라, 이제 호흡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게 된다. 끝없는 행동충동은 아이들의 신체에 흘러넘치게 된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성실하고 열심히 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신체를 지금까지도 외적인 어떤 대상으로 경험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자신을 신체적인 것 안에서 특히 호흡의 흐름’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만약 자신의 성실함과 열렬함이 인정받게 되면, 아이들은 내적으로 깊은 만족감으로 깊게 호흡할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만약 자신이 하고자 했던 것이 실패하게 되면 분노로 짧고 거친 호흡을 하게 된다. 그리고 특히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고자하는 의지가 없다면(무기력함) 아이들의 영혼에는 공명하는 울림이 없게 되며 아이들은 전혀 어떤 경험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된다.

 

만약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호흡과 관련해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즉, 날숨을 통해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세상 밖으로 잃어버리고, 들숨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서 인간의 한 부분이 되는 모습에서 이 시기 아이들의 특성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관계를 통해서 아이들의 존재본성의 특징이 드러나게 된다.

 

이제 ‘호흡의 조율’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호흡조율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아이들이 리듬적으로 말하는 단어나 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배우면서 (예를 들어 놀이, 원무 같은 활동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조화로움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예전의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음유시인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 음유시인들은 그 시대 인간의 조율되지 못한 힘들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향을 주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피의 힘(혈액, 11세-5학년)

 

 

만약 아이들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따라가 본다면, 나이에 따라 신체를 조금씩 정복해 가는 과정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그리고 11살 시기 아이들의 경우 피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마치 혈관을 통해 돌아다니는 피의 흐름처럼 그렇게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지 않게, 너무 단순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역동적이지 않게 그렇게 움직이고자 한다.

 

아이들은 이전보다 더 고요해지고 사려 깊어진다. 순환적인 움직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되며, 흐름꼴이 변화하는 형태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나에게 보여 달라’고 어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앞으로 가야 할 땅에서의 ‘삶의 여정’을 원형적인 형태로 (아무런 의도나 목적 없이 순수하게 깊은 힘으로부터) 경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종종 아주 먼 여행을 하기도 하고, 집을 몰래 떠나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직까지 피의 힘과 정신적인 연결로 아이들이 살아가고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해할 수 있다.

 

아이들은 심장으로부터 나오는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이미지(상)를 이용해 심장의 힘에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스, 오디세우스 같은 온갖 시험을 통과해야 했던 영웅들이 아이들 영혼 바로 옆에 있는 이유이다.

 

11세경의 아이들은 자신의 정신적 고향을 내적으로도 잃어버리는 관념 안에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대용물이 필요하게 된다. 만약 아이들이 이 대용물을 가정이나 학교에서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다른 어딘가에서 찾게 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그러한 대용물로서 공간적 세상은 아직 아이를 위해 존재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적 세상(가정이나 학교)은 아이들에게 힘을 발달시키고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위를 이제 단어나 언어보다는 음악과 더 연결 맺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근육(12세-6학년)

 

 

신체와의 진정한 만남은 아이들 근육의 성장이 이루어질 때 일어난다. 인간과 땅은 근육에 속한다. 인간은 ‘저항’ 없이 땅 위에서 근육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 근육은 공간을 세계로 만드는 데 필요하다. 근육의 힘 없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단지 ‘쓸모없는 물질 덩어리’밖에 되지 않는다. 12세의 아이들은 근육의 힘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체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외부 세상에 적응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된다. 공간 안에서 올바르게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의 과제이다. 이제 신체적으로 모든 것을 체험하고자 노력하며, 비밀스런 법칙성이 신체적 움직임 안에서 조화의 법칙성을 실현하도록 한다. 움직임 각각은 전체 인간이 함께 행해야 하며, 모든 것이 함께 조율되고 조합되어야 한다. 이제 ‘힘의 균형’이 아이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되며, 아이들은 균형을 잡는 것에 지치지 않는다.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민첩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조화와 균형을 신체적인 것에서, 특히 움직임과 근육을 통해 찾고자 한다. 만약 이것을 찾는다면 아이들은 ‘나는 이제 인간이다’라고 스스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모든 건강한 아이들은 신체적 활동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나의 힘을 (내 신체를 창조한) 세상의 힘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용하기 위한 시간이 이제 왔다”고 느낀다.

 

그래서 신체연습은 쓸모 있는 활동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체연습은 인류에 대한 하나의 봉사여야 하고, 그런 인간의 원형적 상은 외적 세상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힘줄(건, 13세-7학년)

 

 

13세경의 아이들은 힘줄(건) 안으로 성장해 간다. 움직임은 이전보다 더 유연하고 탄력 있게 되고 개별적인 특징을 띄게 된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외부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아이들은 내적으로 존재가 처음에 요구하는 것을 향해 긴장된 상태여야 한다. 이렇게 긴장된 상태는 영혼적 충동, 즉 기쁨, 열정, 자신감 등을 통해서만 풀려나게 된다. 아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외부를 향해 보여 주기 위해 스스로 내적인 특질을 향해 동경한다.

 

여기서 다른 시기와 대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 힘줄을 체험하면서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활기가 없는 것과 연결되게 된다. 힘줄은 한편으로 근육으로, 다른 한편으로 뼈 안으로 연결된다. 힘줄은 활기 있는 것과 활기가 없는 것 사이, 정신적-신체적인 것과 물질-물체적인 것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자’이다. 힘줄은 정신적-도덕적인 충동을 순수한 물질적인 것에 전달한다. 이미 힘줄(건)‘Sehne’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Sehnig’은 어떤 것이 ‘당겨진, 긴장된’ 상태를 의미하고, ‘sich sehnen’은 이와는 달리 내면적인 활동으로 내적으로 펼쳐진 상태, 즉 ‘동경, 갈망’을 의미한다. 이 나이 때의 학생들은 Sehne의 두 가지 의미, 즉 자기-확장과 외부로 향하기라는 한 가지 의미와 자기 안을 향하기, 내적인 추구와 찾음이라는 다른 의미를 경험하게 된다. 이 두 가지가 긴장된 상태의 힘줄 안으로 성장함을 통해서 그러한 (이미 개별적인 색채를 지녔지만 아직 살아 있는 것과 가깝게 접하고 있는) 충동이 풀려나게 된다.

 

이제 아이들은 어떻게 사람들이 처신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나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문제를 어떻게 가져와 풀어가는지, 다른 사람과의 교류에서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자연스럽고 기민한 방식으로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가장 큰 예술이다. 재치 있고 형태적으로 아름다운 움직임에 대한 기쁨이 표현되어지도록 최고의 의미에서 ‘곡예(曲藝, Artistik)’가 연습되어야 한다.

 

 

뼈(14세-8학년)

 

 

뼈를 체험한다는 의미는 자연적인 성장과 발달이 이제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청소년 시기인 아이들은 개별적 존재이자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체험하고자 한다.

 

13세 때에 아이들은 자연적인 성장의 완성도에 도달하게 되지만, 근본적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14세 시기에 이르면 아이들은 완전히 새롭게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새로운 어떤 것을 알아가야 한다. 중력(무거움), 즉 딱딱한 고체 또는 생명 없는 물질이 바로 그것이다.

 

중력은 인간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인간을 땅과 관계 맺도록 만든다. 14세 시기의 아이들은 바로 이러한 중력과의 관련성을 찾는다. 아이들은 정신적-영혼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영혼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확립하기 위해 이것을 찾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러한 중력과의 씨름은 바로 새로운 힘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제 신체연습들은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준다. 14세 이전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안내되고 나아갈 방향을 따라간다. ‘세상의 충만함’ 속에서 살아가고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마치 ‘자기 안에서 나온 것처럼’ 그렇게 찾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14세 시기가 되면서 아이들은 갑자기 한 번에 모든 것이 달라진 상황에 맞부딪히게 되고, 이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고 획득해야 한다. 이제 아무것도 그냥 선물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력과 자신의 힘으로 해내어야 한다.

 

이것은 신체적 연습에서 작업(Work)이 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고유한 개성의 의식을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깊은 아픔을 준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싶어 한다. 지상적인, 딱딱한 고체적인 것과 씨름하는 과정은 청소년들에게 힘겨운 것이다. 일반적인 삶의 리듬에 계속 유영하면서 지내고 싶어 하지, 그 리듬에 저항하며 스스로 강해지고 독립적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살아 있지 않은, 추상적인 움직임이 이 시기에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다. 움직임의 충동은 더 임의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외적인 신체 자세와 태도, 그리고 엄격하고 딱딱한 사지활동을 위한 연습들이 (아직 자기 스스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청소년들의 ‘개성’을 위해 첫 번째 안정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의지(행하기, 15세-9학년)

 

 

인간이 9세에서 14세까지의 변형되어 가는 과정을 개관한다면, 인간이 좀 더 독립적이 되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성은 (온기, 호흡, 피, 근육, 힘줄에서 찾을 수 있었던) 정신성의 상실과 함께 나타나게 된다. 그 정신성의 자리에 이제 다른 어떤 것, 즉 개인적 의지가 깨어나게 된다. 개인적 의지는 첫 번째, 두 번째 7년 주기에서는 아직 연결되어 있던 상태였지만, 이제 개인적 의지는 자유롭게 되며 막힘없이 펼쳐지게 된다. 왜냐하면 뼈에 대한 체험은 개인적 의지를 깨우기 위한 신체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14세까지의 생리학적 변화를 통해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그 안의 의지적 요소는 개인적 의지로서 깨어나게 될 수 있게 된다. 이제 계속적으로 변형되어 가는 모든 발달과정 안에 자유로워진 의지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의지의 힘이 삶과 관련하여 어떻게 통합되어질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자유로워진 의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인간을 위해 쓰일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능력원칙, 두 번째는 형태원칙을 통해서 능력과 형태는 서로 양극을 이루는 것으로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이 양극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남학생들의 경우 능력원칙의 측면을 향하는 경향을 보이고, 여학생들은 형태원칙의 경향을 더 많이 가진다. 이 두 원칙은 처음에는 아직 적대적인 위치에 있다. 하지만 나중에 이 두 원칙은 하나의 공동의 정점을 향해 올라가야 한다. 바로 그 하나의 공동의 정점은 예술이다. 이것은 능력원칙에도 해당하며 형태원칙에도 해당하는 것이다. 예술적인 능력은 형태원칙을 고려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15세 시기의 남학생들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여학생들은 ‘포즈(자세의 표현)’에 대한 경향을 보인다. 이 두 경향은 서로 간에 변형될 수 있고, 변형되어져 한다. 힘의 증명이 단순히 강함의 표현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을 얻기 위해 가야하는 길을 ‘포즈’가 제시할 수 있고, 자세의 표현(포즈)이 자만심과 허영심에서 자유로워져 ‘인간적인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힘의 증명’에서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남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아름다운 형태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고, 여학생들은 능력에 대한 높은 가치를 둔다. 이것은 앞으로의 발달과정을 위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느낌(느끼기, 16세-10학년)

 

 

16세 시기의 아이들에게 의지는 이제 가장 원초적인 힘의 어떤 속성을 잃게 되고, 더 유연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여학생들의 경우 다른 어떤 모습이 나타난다. 이전의 자기 자신을 강하게 표현하고자(인정받고자) 하던 의지는 점차 사라지고 ‘헌신’이라는 새로운 능력의 싹이 나타난다.

 

이 두 경우 내면화의 방향으로 가는 변화를 주목할 수 있다. 능력에 대한 의지와 함께 영혼적인 체험이 일어난다. 이것은 무엇을 하느냐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라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 여학생의 경우 현실성의 방향으로 변화를 보인다. 여학생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소위 실제성과의 만남을 찾는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이제 특정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

 

남학생들이 능력(성과)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안에 어떤 형태표현적 경향이 들어있을 때, 여학생들은 그것을 내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하는 것에 어떤 객관적이고 목표성이 들어 있다고 여길 때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새로운 공통성(공통 관심사)의 토대에 들어 설 수 있게 된다. 강하게 양극성을 이루던 남여의 경향성은 이전과 같이 큰 간격을 더 이상 이루지 않는다.

 

감정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은 항상 어떤 위험과 연결된다. 즉, ‘자기를 잃음(자아상실)’이라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특히 16세경에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감정의 날뜀은 청소년들을 스스로 휩쓸리게 만든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무모한 능력테스트를 하기도 하는데, 왜냐하면 자기를 과시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의 경우 이러한 허상적인 능력(성과)에 쉽게 눈이 멀게 되고, 따라서 어떤 것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서 너무 강한 자기-체험(자기애)를 초래하는 착각(환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힘을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사고에 기반을 둔 판단력이다.

 

 

사고(생각하기, 17세-11학년)

 

 

17세 시기의 청소년들은 능력을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체험하게 된다. 또한 능력은 숙고되어지고 분석되어지며 삶의 다른 영역과 관련되어진다. 이를 통해서 능력은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며 강요적 힘을 잃게 된다. 청소년들은 이제 무의식적으로 ‘능력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더 높은 어떤 것은 ‘능력의 힘들을 모으기’ 위한 동인으로 제공된다. 또한 형태표현의 힘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계속적인 변형을 위한 출발점이다. 여학생들도 이제 의식적인 관련성 안에서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전에 본능적으로 했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 오성(지성)을 이용하고, 어떤 것이 왜 아름다운지에 대한 이유를 세우고자 한다.

 

능력 없는 형태표현은 없고 형태표현 없는 능력도 없다. 그리고 내재된 활동 원칙 없이는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17세 시기의 청소년들은 껍질과 알맹이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이전에 껍질에 의해 더 강하게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또는 순수한 힘에 의해 가치가 더 많이 드러났을지라도, 이제는 이 둘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관련성 안에서만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사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돕는다. 사고를 통해서 인간은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고, 자신의 힘을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한 가능성을 준다. 순수한 의지는 맹목적이고, 감정은 이기적이며, 사고는 자유를 향한다. 하지만 이 자유는 의지, 감정, 사고가 일치된 삶의 표현으로서 열정의 형상으로서 나타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의식화(18세-12학년)

 

 

인간은 18세가 되었을 때에야 (자연의 힘처럼 열정의 힘을 체험하는) 예술작업을 마무리 짓게 된다. 하지만 불을 지필 수 있는 인간을 위해서는 올바른 환경과 사고의 불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갖추었다면 인간은 불이 지펴졌을 때, 즉 열광의 불꽃이 타올랐을 때 어떠한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과 힘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에서 삶에 요구하는 사회적·도덕적 양식에 대한 의식적인 관계를 세울 수 있게 된다.



[발도르프학교 움직임 교육 자료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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