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8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유튜브에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했다가 너무 놀라서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인지학을 진지한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풍토 탓인지 슈타이너를 신비주의자, 예언가로 보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는 슈타이너를 괴테에 비견할 만한(또는 더 훌륭한) 사상가로 생각하지만 현대학문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인지학은 정신과 영혼의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현대의 유물론적 시각으로는 온전히 검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학문적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다면, 인지학이나 발도르프교육은 유사과학, 신비주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특히 발도르프교육의 위상이 땅에 떨어질까봐 걱정이 됩니다. 슈타이너가 줄기차게 강조했던 것은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지..
한국사회와 회복적 정의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올해 우리는 광복 76주년을 맞는다. 치욕적인 일제 식민지가 끝나고 빛을 회복했다는 광복절은, 그러나 독립기념일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는 연합군에 의해 패망했고, 우리는 도둑처럼 해방을 맞았다. (물론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아쉽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온전한 독립국가로 회복되지 못했다. 해방 이후 한국은 하나의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데 실패했고, 국제적인 냉전 질서 속에서 분단과 내전을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중은 일제 때 못지않은 수많은 국가폭력을 경험하게 되었다. 해방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일제 잔재는 많이 극복했다 하더라도, 같은 인간을 노예로 여..
말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대화가 되는 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실제로 대화를 나누어 보면 의사소통이 잘 되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인데 왜 대화가 안 되는 걸까? 왜 사이가 더 좋아지려고 했던 대화 때문에 종종 사이가 더 나빠지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우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면서 정작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지 못한다는 건, 솔직히 어처구니 없는 역설이다. 물론 기성세대 역시 그런 것을 윗세대에게 배운 적은 없다. 아니, 무조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연결된다면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행복에 대한 담론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항상 인기 주제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싶다. 저마다 행복의 빛깔이 다를지언정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만약 스스로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아닐 것이다. 누구도 불행해지고 싶지 않다. 이것은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그렇다. 행복이라는 개념의 핵심에는 욕구(needs)가 있다. 바라는 게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그럴 때 만족과 기쁨이 차오른다. 그런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욕구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어 복잡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욕구를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바라는 게..
회복적 삶(Restorative Life)에 대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코로나 19로 인해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3차세계대전 대신 팬데믹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는 이로써 끝나는 것일까? 공장이 멈추고 비행기가 공항에 머물러 있다. 덕분에 푸르른 하늘이 돌아왔다. 사람이 무서워 얼씬도 못하던 동물들이 한가롭게 도시의 거리를 거니는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할 수도 없고, 경제적인 풍요도 만끽하지 못할 것이다. 익숙했던 삶과 작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대체 무엇이 가장 소중한 걸까, 우리 삶에서? 안전한 공간 우리는 ‘안전’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음모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기본적으로 음모론은 단순한 논리이다. 믿기 힘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싶고 설명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독특한 특징으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때 불안과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종의 방어기제에서 음모론은 출발하는 셈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인간은 세상을 온전하게 바라보고 싶어한다. 이야기를 지어내서라도 말이다. 자기완결성에 대한 욕구가 충분히 과학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할 때 우리는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고대인들이 삶의 모든 상황에 신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은 그래서이다. 벼락이 떨어지고 천둥이 치는 기상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을 떠올렸다. 자기 내면의 공포를 외부 자연에 ..
인지학과 음모론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모로 우리 시대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 며칠 전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시위대들은 집기를 부수고 약탈을 자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인데, 이들이 단지 백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은 강경진압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해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며 비폭력시위를 하던 흑인들에게 미경찰이 했던 짓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극심한지, 또 트럼프와 그의 추종자들이 믿는다는 큐아넌(QAnon) 같은 음모론이 사람들의 정신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의 오염과 타락은 세계적인 일입니다. 세계 곳곳에 음모론을 주장하는 시위대들이 나타났..
대림절/성탄절을 맞이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감옥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잠을 자고 나면, 침낭 아래가 습기로 흥건히 젖어 있곤 했다. 바닥이 차가우니 체온에 의해 물방울이 맺히는 것이다. 그래서 바닥에 종이 박스를 깔아 두어야 했다. 누우면 입김이 나왔다. 난방이 없는 겨울은 냉방이 없는 여름만큼 길었다. 감옥은 수감자의 자해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24시간 불을 끄지 않는다. 따라서 잠을 잘 때도 창백한 형광등이 켜 있다. 이불을 이마까지 뒤집어쓰고 바닥과 벽에서 밀려오는 냉기를 이기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쫓겨났다는 실감이 들곤 했다. 창문 밖 세상은 어둡고 이따금 눈이 내렸다.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적막했다. 흔한 라디오 소리조차 없다. 연말이..
삼성 재판과 회복적 사법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회복적 사법'이라는 말이 갑작스레 이슈가 되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정준영 판사가 맡으면서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의 부장판사인 그는 이재용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부친 이건희 회장을 거론하며 특이한 발언을 했다(2019. 10. 25).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야 하는지 (고민해달라)." 만 52세인 정준영 판사의 이 훈계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 상황을 이유로 봐주..
마스크도 쓰지 말고 백신도 맞지 말라는 분들에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젊은 시절 명석한 두뇌로, 논리적 사고를 탁월하게 전개하던 이들이 나이가 들수록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앞장서서 진보적 아젠다를 제시하고 기득권을 비판하던 몇몇 인사가 극우정당에 동조하고 음모론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짜증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드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됐을까? 개인적으로 확증편향과 억울함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근간에는 우월감 같은 게 있지 않을까싶다. 뛰어난 사람에게서도 '내 말이 맞다. 어쨌든 맞다.'식의 사고를 종종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중심주의로 귀결되는 듯하다. 어떤 인간도 자기중심성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