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8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마다 아기를 안고 강아지와 산책을 간다. 큰아이 등교를 바래다주고 난 뒤 근처 공원을 거쳐 산에 가는데 요근래 봄꽃이 한창이다. 산수유와 매화로 시작해 개나리꽃이 만개했고 목련과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오늘 보니 벚꽃이 곧 활짝 필 것 같다. 아기는 금세 잠들어 조용하고 강아지는 여기저기 냄새를 맡느라 분주하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걸으며 봄이 주는 위로에 감사를 표한다. 대선 이후 벌어지는 일들에 구토감이 들곤 한다. 4.3이 지났고 4.16이 다가온다. 그해 태어난 아이가 벌써 아홉 살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그날의 참사를 겪은 부모들 마음이 남 같지 않다.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 삶의 시계는 2014년이다. 그러나 세계..
투표가 촛불이다 우리가 정말 희망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안전한 사회, 차별이나 혐오 없이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 경제적인 불안과 두려움 없이도 열심히 일할 수 있고 누구든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런 사회라야 젊은 세대도 아이를 낳아 키우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얕잡아 보고 미워하는 문화가 아닌, 한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고려하여 존중하는 인간적인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세상에서 마음껏 자기 꿈을 실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으면 그런 사회는 불가능하다. 검찰이나 언론, 사법부나 재계 역시 사회의 한 일원이지, 특권층일 수 없다. 사회 공..
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발도르프교육의 철학인 인지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지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주류학문이 아닌 까닭에 기존 상식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비주류학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오늘날 통상 '학문'이라고 하면 물질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인지학은 물질세계만큼이나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다루며 정신세계가 실재함을 강조한다. 주류든 비주류든 현대 학문세계에서 이렇게 정신의 실재를 주장하는 학문은 극소수이고, 대개는 학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인지학이 신비주의로 오인받는 이유이다. 인지학은 물질주의에 경도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과학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
틱낫한 스님의 입적을 기리며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존경하는 틱낫한 스님께서 1월 22일 고국인 베트남에서 열반에 드셨다. 스님의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그중 한 권을 직접 번역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스님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왔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신 스님은 평화운동을 절박하게 했지만 평정심을 잃지는 않으셨다. 나는 그것이 늘 놀라웠다. 젊은 시절 이라크 전쟁이나 미군기지이전 문제 때문에 이따금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는데 스님의 법문을 곱씹으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무엇보다 스님의 말씀은 쉬웠고 깊이 있었다. 연기법과 불이의 가르침을 '더불어 있음(inter-being)'으로 표현하신 스님 덕분에 세계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화살을 맞았다면 그것을..
한 해를 돌아보며, 또 한 해를 내다보며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올해에는 끝나겠지, 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기어코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변이 바이러스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3차 접종과 먹는 치료제 덕분에 2022년에는 종결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많은 과학자의 전망처럼 코로나19가 독감 수준으로 떨어지고 사람들이 매년 백신을 맞는다면 앞으로는 크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마스크를 잘 쓰고 위생을 철저히 관리한다면 다른 질병의 위협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팬데믹과 균형 지금 시대에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 같은 분이 계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요? 인지학을 실천하는 분들 중 일부는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큰 것 같습니다. 심지어 현 정부와 과학자들에..
백신거부와 인종주의, 어떻게 봐야 할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발도르프 교육, 나아가 인지학은 종교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종교는 믿음의 영역으로 숭배의 대상이 있고 일정한 교리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맹목적인 믿음의 영역으로 가거나 루돌프 슈타이너를 숭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회의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으며, 실제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정말로 그러한지 직접 문헌을 뒤져보고 자기 삶에서 실천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주관적인 느낌으로 판단하거나 검증을 남에게 의탁할 수는 없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말한 것처럼 인지학이 자연과학과 다르지 않은 과학이고 자연세계뿐 아니라 정신세계를 아울러..
불교공동체와 회복적 정의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불자는 절에 갔을 때 불상 앞에서 3배를 드린다. 절을 할 때 차례대로 이렇게 읊조린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 법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제도종교로서 불교는 교조인 부처, 교리인 불법, 교단인 승가, 이렇게 3요소를 갖는데 불자는 절을 하며 자신의 믿음과 의지처를 확인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갈등과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까? 부처 또는 붓다(Buddha)는 고대 인도에서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널리 쓰이다가 훗날 불교의 교조인 고타마 싯다르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싯다르타는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삶의 근본 문제인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출가를 하고 6년간의 수행 끝에 ..
존재의 존엄과 존중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세상에 존엄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존엄하지 않은 사람, 또는 덜 존엄한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면 자신의 인권 의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차별은 평등해야 할 인간의 존엄에 위계를 둘 때 발생한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성별, 나이, 국적, 피부색, 성적 지향, 재산 유무 등을 떠나 인간은 똑같이 존엄하다. 심지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역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빼앗길 수 없다. 형사사법은 가해자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전근대 또는 근대 초기에 피의자는 별다른 제재 없이 고문을 당했고 대중 앞에서 사형이 자행되곤 했다. 근대사법이 놓쳐온 것은 오히려 피해자의 존엄이었다. 가해자 중심의 법정은 피해자를 소외시켜 왔다. 회복적 사..
영화 와 한글 창제의 과학성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백성들이 쉽게 배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 싶다... 영화는 묵직했고, 아름다웠다. 말년의 세종은 한글 창제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다음은 1443년 12월 30일의 기록 전문이다. "이 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이 무궁하니, 이를 훈민정음이라 일렀다." 그러나 이날 이전의 에는 한글과 관련해 단서가 될 만한 그 어떤 기록도 없다. 영화는 이 역사의 공백을 상상으로 채운다. (가 그랬듯이.) 그동안 한글은 세종의 명을 받고 ..
혐오문화에 정의가 있을 수 있을까?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혐오라는 유령이...” 우리는 불의한 일을 볼 때 분노를 느낀다. 대기업 총수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가석방될 때, 말과 행동이 다른 비리 정치인이 열변을 토할 때, 남성에 의해 여성이 계속해서 살해당하는데 뚜렷한 대책이 없을 때 우리는 화가 난다. 개인의 분노는 별다른 힘이 없지만 조직된 분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물론 이 분노는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치에 맞지 않거나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집단적 분노는 여론의 외면을 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분노가 언어적이든 물리적이든 폭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의 분노는 정의라는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