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8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정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바라보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교육이란 무엇일까? 정부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보며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학교폭력에 대해 논하기 이전에,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교육이 맞을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폭력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아이들을 감옥과 비슷한 건물에 가둬놓고 서로를 경쟁시키며 시험만 보게 하는 게 무슨 교육일까? 이런 환경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한다면 그 원인은 가해학생의 공격성에 있는 게 아니라 ‘교육이 실종된 학교 현실에 있다’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어떤 사건/사고든 그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서둘러 대책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음을 드러낼 뿐이다. 국무총리는 기자회견 서두에 이렇게..
기저귀 떼기와 한글 떼기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아이가 태어난 가정에 방문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한글 벽보입니다. 한글 자음과 모음뿐 아니라 알파벳과 숫자가 큰 글씨로 쓰여진 포스터가 아이방에 있는 풍경은 당연히 그러해야 하는 것처럼 흔합니다. 그런데 이런 풍습(?)은 어린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비실제적(unpractical)입니다. 그렇게 포스터를 붙여놓는다고 해서 아이가 글자에 흥미를 가질리도 만무하지만, 문자를 일찍 가르쳐주는 것이 아이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쟁사회에서 글자를 빨리 가르쳐줄수록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아이의 발달에 조기 문자교육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몰라서 벌어지는 착각입니다. 그것은 스마트폰의 해악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로서 성장하는 회복적 훈육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1974년 캐나다 엘마이라 사건에서 시작된 회복적 정의 운동은 오늘날 사법 분야를 넘어 학교와 회사, 도시 운영 등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회복적 정의는 단지 갈등이나 폭력에 대한 해결책에 그치지 않고, 인간적인 관계 형성과 창조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회복적 정의 운동을 관통하는 철학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회복적 정의는 전통적인 응보적 형사사법이 갖고 있던 가해자-처벌 중심주의에 대한 초점을 전복시킨다. ‘누가 잘못했고 어떤 잘못을 했으며 어떻게 처벌할지’에 대한 질문은 ‘누가 피해를 입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으며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바뀐다. 처벌 중심에서 회복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의 질문들은 ..
인지학자 트라우테 라프렌츠의 부고를 전하며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미국인지학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트라우테 라프렌츠 여사가 지난 3월 6일, 10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젊은 시절 백장미단에 참여하여 나치에 저항한 바 있다. 그녀는 이 조직의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졌다. 잉게 숄이 쓴 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독재를 타파하려는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단’의 활약상과 희생을 그린 실화소설이다. 소설가 잉게 숄은 백장미단의 리더인 한스 숄의 누나이자 백장미단의 일원인 소피 숄의 언니이다. 백장미단은 뮌헨대학교 학생들과 철학과 교수 쿠르트 후버가 주축을 이루는 저항 단체로, 나치의 독재와 유대인 학살,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는 전단을 6차례 배포했다.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가 세워지던 1919년..
정순신 사태와 교육부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에 대하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지난 2월 우리 사회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사안으로 혼란을 겪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의 아들이 같은 반 친구에게 모욕적인 말과 괴롭힘을 일상적으로 행하여 전학조치를 받았음에도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 대학입시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해 정순신은 사의를 밝혔고, 교육부는 3월 말까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겠다고 입장을 냈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대입 정시모집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는데, 상당히 우려되는 접근이 아닐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의 대책은 이미 여러 차례 실패를 경험했고,..
를 보았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극장을 나서면서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훔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긴 갈증은 물을 마시는 걸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해결... 특성화고등학교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일터에서 노동을 착취 당하고 견디다 못해 자살하거나 사고사를 겪고 있는데, 해결은 요원하다. 영화는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술은 마시지 않았다. 그저 참담함을 견디기로 했다. 계속 뉴스로 보아온 일들, 대체로 당시에는 분노했다가 금세 잊혀졌던 일들이 눈앞에 놓였다. 생각해보니 이건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었다. 이 나라의 노동자, 이주민, 여성, 청년, 노인 등 약자들에게 계속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는 사과법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아내에게 그런 말을 많이 했는데, 속 깊은 아내는 참고 참다가 어느 날 정색을 하고 말했다. "미안해라는 말 그만해.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는지 몰라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잖아." 듣고 보니 그랬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잦아 그때마다 사과했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미안해"라는 말이 아니라 변화였다. 잘못을 할 때 관성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말의 무게만 낮추는 일이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크든 작든 피해가 발생했다면 내 입장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이의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 사과는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직면이자, 그..
발도르프학교를 졸업한 12학년 학생들에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1월 둘째주 토요일이 예전에 가르쳤던 아이들의 12학년 졸업식이었다. 나에게는 발도르프학교에서 두 번째 담임으로 만난 아이들이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아이들을 만났고, 이듬해부터 서산에 내려와 연구소를 열었다. 8학년까지 아이들과 함께 갈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는데, 운명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후에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보았던 것 같다. 학교 사정상 8학년 담임을 마치고 이듬해 바로 1학년 담임이 되었다. 8학년에서 1학년이라는 낙차는 한 학기 정도의 적응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모님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아이들의 맑은 사랑이 용기를 주었다. 그 아이들..
발도르프 교육의 원칙과 실천에 대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우연히 발도르프학교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로 발도르프 교육학과 인지학 공부를 시작한지 15년이 넘어간다. 공교육에 있던 나로서는 처음 수업참관을 했을 때 노래로 시작하는 아침열기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래로 시작해 다양한 리듬활동과 리코더 연주가 이어지는 것을 감탄하며 보았다. 교실에는 TV와 컴퓨터가 없고 교과서도 없었다. 교장 같은 관리자도 없고 공화정의 형태로 학교가 운영된다는 게 놀라웠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발도르프 교육 자체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라주어페인팅으로 꾸며진 예쁜 색감의 교실 벽, 아기자기한 계절탁자, 아이들이 그린 습식수채화가 벽에 걸려 있었고, 선생님이 그린 칠판그림은 정감 있었다. 선생님이..
참사공화국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국가 폭력으로서 참사는 학살과 다르면서도 같다. 학살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라면, 참사는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둔 행위이다. 뒤집어 보면 참사는 수동적인 학살이다. 국가를 이루어 살아가는 국민에게 학살이나 참사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헌법을 위시한 법체계를 만들었고, 군과 경찰 등을 두어 안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근현대사는 학살과 참사로 점철되어 있다. 4.3과 5.18이 국가가 벌인 학살이라면 4.16(세월호)과 10.29(이태원)는 국가에 의한 참사이다. 이밖에도 노근리나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