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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청산과 국가폭력에 대한 전환적 정의 연구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과거사 청산과 국가폭력에 대한 전환적 정의 연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7. 21. 11:26

과거사 청산과 국가폭력에 대한 전환적 정의 연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1. 들어가며
2. 근대국가와 국가폭력
3. 한국의 국가폭력과 과거사 청산
4. 이행기 정의에 대한 다양한 시각
5. 이행기 정의와 전환적 정의
6. 마치며

1. 들어가며

인간은 본래 잔인한 존재일까?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는 학자에 따라 분분하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잔인성을 고발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학계의 의견은 대체로 탄생 이후 양육의 과정에서, 그리고 사회화의 과정에서 폭력성이 학습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평화감수성 역시 학습된다고 볼 수 있겠다. 어떤 문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인간은 폭력성이 강해질 수도, 평화감수성이 강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문제이다. 아무리 과거의 선조들이 잔혹하고 난폭한 존재들이었다고 해도 교육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지금 당장의 평화 구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참고.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최신 연구는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 카인드』를 참고하라.


서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몇 백 년 사이에 대단히 역동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과학혁명에 이어 산업혁명을 경험하고, 개인주의 문화와 시민사회를 발전시킨 서구인들은 수많은 전쟁과 혁명을 통해 민족국가를 세워나갔다. 유럽 열강들은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식민지 개척에 나섰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를 침략했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큰 체제 변화가 없던 비서구 지역에서는 갑작스러운 근대화의 물결에 노출되었으며, 식민지국가들은 저항적 민족주의를 통해 독립을 이루기 위해 고투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을 연이어 겪은 뒤 인류는 침략과 식민의 역사를 반성하기 시작했다.

20세기를 “야만의 시대”*라고 불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인류는 과학기술과 정치적 진보가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순진한 계몽주의가 서구인들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1세기에 이르러 우리는 야만의 역사를 청산하고 실패한 프로젝트인 근대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뿐 아니라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도 이행기(transition period)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전히 수많은 나라에서는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바로 잡지 못해 구성원들 간에 심각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규모 학살과 폭력행위는 트라우마로 남아 세대를 거쳐 전승되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환부를 열어 썩은 살을 도려내고 고름을 짜낼 필요가 있다.

* 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한길사, 1998: 135


이 글을 통해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전환적 정의가 무엇인지, 이와 관련해 회복적 정의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국가폭력과 과거사 청산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한국의 상황을 간단히 고찰해 보려 한다. 그리고 이행기 정의와 전환적 정의 개념을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 근대국가와 국가폭력

범죄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가는 조정자가 될 수 있을까? 보통 우리는 범죄 피해를 겪었을 때 경찰과 검찰, 법원 같은 국가기관에 도움을 청한다. 우리의 억울함을 국가가 나서서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법체계에서 국가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가 바로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법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은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다. 그의 잘못은 법을 어기고 국가의 사법체계를 흔든 것이므로 국가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순스러운 시스템 아래에서 진짜 피해자는 필연적으로 소외되고 만다. 회복적 정의는 이 지점에서 정의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 하워드 제어•바브 토우즈, 『회복적 정의의 비판적 쟁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4: 107


그런데 국가가 가해자가 될 때 우리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 근현대사를 거치며 수많은 나라에서 발생한 국가폭력은 전세계 민중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해 행위가 국가에 의해 벌어질 때 폭력은 집단폭력이 되며 광범위한 피해자를 낳는다. 그런데 어떻게 국가가 국민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국가, 정확히 말해 근대국가는 태생부터 폭력적이다. 정치체로서 국가는 근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학적 접근에서 국가폭력은 국가의 탄생으로부터 기원한다.*

* 김혜경, “국가폭력범죄의 개념과 국가 책임구조”, 『형사법의 신동향 제58호』, 2018: 178


“근대국가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국제관계의 형성과 동시에 발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는 시장경제를 관장하고 거래를 뒷받침하며, 국민에 대한 최고의 보호자가 되면서 동시에 거래의 약속을 어기는 집단과 개인을 통제하기 위하여 감시조직과 폭력조직을 독점한다. 주민 중 반국가 사범에 대한 통제와 폭력의 행사를 위한 군대, 경찰 등 감시기구의 조직화는 대외적인 전쟁의 필요성에 의해 동시에 마련된 것이다.”*

* 김동춘, “국가폭력과 사회계약 - 분단의 정치사회학”, 『경제와사회 36』, 1997: 105


자유로운 개인들의 집합체라는 근대국가의 이념은 사실상 개인 간, 집단 간에 벌어질 수 있는 폭력의 개연성을 국가라는 최고의 폭력조직을 통해 억제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법에 의한 지배’라는 이념이 포함된다. 따라서 국가폭력이란 “국가공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에서 공권력의 행사가 불법적으로 국민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지적 근대를 경험한 나라의 경우는 어떠할까?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일본의 식민지 통치체제를 경험했고, 이후 오랜 시간 일제 식민잔재는 청산되지 못했다.

* 김성돈, “형법의 과제, 형법의 한계 그리고 리바이어던 형법 - 국가폭력의 경우, 형법과 국가 및 개인의 관계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 『형사법연구 제28권 제4호』, 2016: 20


“식민지 지배질서는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국가보안 입법(치안유지법)을 제정하였고, 식민지에 대해서는 그것과 동시에 저항을 제압하기 위한 직접적인 무력사용과 살해, 인력의 강제징발, 성 노예화(종군위안부) 작업을 병행하였다. 파시즘과 식민지 지배체제는 국가폭력의 기원을 이룬다. 그러나 사회통제의 한 과정, 정치질서의 일부로서의 국가폭력은 냉전체제와 더불어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김동춘, 앞의 글: 107



3. 한국의 국가폭력과 과거사 청산

우리나라는 식민지시대와 함께 냉전체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폭력들, 특히 6.25라는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2005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편찬한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은 해방 직후 좌우의 이념 갈등 속에서 희생된 민간인 집단학살 문제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문제, 그리고 이승만 정부를 비롯한 역대 독재정치 아래서 일어난 각종 인권탄압 사례들을 다룬다. 여기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여러 비중 있는 사건이 제외되어 있는데, 돌아보면 한국은 “국가범죄의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국가폭력 범죄 목록을 보유하고 있다.

* 이재승, <국가범죄>. 도서출판 엘피, 2010: 36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분단체제가 존속되어 왔다. 분단국가로서 한국은 아직까지 민족국가, 즉 근대국가로서도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사회란 곧 정치적 단위인 국가와 동일하다고 본다면 근대적 국가의 부재는 곧 ‘사회’의 부재를 말해 준다. 사회의 부재란 곧 법의 제정과 적용 과정에서의 지배집단의 자의성의 개입, 사회의 기본규범의 부재, 즉 근대국가의 자유주의적인 ‘계약’의 원리가 온전하게 존재하지 않음을 말해 준다.”* 우리에게는 근대국가의 모순을 넘어서는 것 이전에 근대국가를 완성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응보적 정의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회복적 정의가 해야 할 일은 더욱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 김동춘, 앞의 글: 125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분단체제는 극복되어가는 듯했다. 이 시기에는 본격적인 과거사 청산 작업도 벌어졌다. 이는 “과거사 청산이 민주화를 위한 실천적 과제이자 이른바 ‘이행기 정의의 실현’에 필요한 조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의 지배 세력은 그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으며, 보수정당, 검찰, 언론, 대기업 등 기득권 카르텔이 총동원되어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과거사 청산 작업은 지지부진해졌고, 기존의 성과마저 훼손하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일어났다.

* 홍순권,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 푸른역사, 2019: 7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위기에 처한’ 지배계급이 실제로는 법의 지배라는 근대국가의 원칙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토록 목소리를 높이던 준법정신은 허울뿐이었고, “끊임없이 돈의 논리와 폭력의 논리, 즉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해 압도당해” 왔다. 그들은 국정원과 기무사 등의 정보기관을 이용해 국민을 사찰했고 언론을 장악했다. 지배 세력은 경찰과 검찰 등 권력기관의 비호를 받으며 노골적으로 사적 이익을 편취했다. 결국 세월호 참사라는 끔찍한 국가폭력이 다시 벌어졌고,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 정부는 탄핵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도 거의 ‘내전’에 가까울 정도로 지배 세력은 체제전환에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 내 최고의 권력기관인 검찰과 감사원의 수장들이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오려 한다는 것이 그런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대가를 오늘도 우리는 치르고 있다.

“과거사(過去事)란 지배 권력이 행한 억압과 폭력, 왜곡하고 은폐시킨 진실들에 관한 것이다. 청산이란 잘못된 것들을 교정하고 정화한다는 뜻이다.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사실 가운데 은폐되고 왜곡된 부분의 진실을 밝히고, 과거 잘못을 역사적으로 확인하고, 이러한 점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하는 일이다.”*

* 안병욱, “해제”, 프리실라 B. 헤이너, 주혜경 옮김, 『국가폭력과 세계의 진실위원회』, 역사비평사, 2008: 9


회복적 경찰활동의 대화모임을 진행하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은 특히 피해자의 입장에서 피해 회복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사실왜곡과 부인, 거짓말에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마찬가지로 주변사람들이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피해사실을 온전히 인정해주지 않을 때 극심한 괴로움을 느낀다. ‘이게 진실인데, 왜 받아들여지지 않지?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아니면 내가 미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비록 대화모임에서 조정자가 사실관계를 명백하게 밝혀내지는 못한다 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자기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는 단순히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을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난다.*

* Andrieu Kora, 『TRANSITIONAL JUSTICE: A NEW DISCIPLINE IN HUMAN RIGHTS』 참고.



4. 이행기 정의에 대한 다양한 시각

우리나라는 식민지체제와 냉전체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분단체제를 거치면서 희생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 1960년 4월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조사하려고 했던 작업은 이듬해 일어난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해 중단되었다. 오히려 진상조사를 요구한 피해자 유족단체들이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히고 해체되었다. 과거사 청산 작업은 김대중 정부에 들어와서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하면서(2000년) 비로소 물꼬가 트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미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체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와 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치유하고 새로운 체제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 정의가 필요하다.

* 홍순권, 앞의 글, 5-6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기 위한 사회 정의를 우리는 이행기 정의라고 부른다. 이행기 정의는 다양한 맥락에서 그 개념이 활용되고 있는데, ‘과거청산의 대체 개념’ 또는 ‘민주화 이행의 경로’, ‘과거청산의 정당화 맥락’으로 사용되거나, ‘청산적 차원’, 또는 ‘구성적 차원’의 의미가 강조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는 애당초 이행기 정의가 전후 국제법 차원의 역사적 정의 맥락에서 제기되었고, 냉전 해체 후 지구적 차원의 민주화 흐름 속에서 민주화 이행론과 결부되면서 개념적 확대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이행기정의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Transitional Justice)는 이행기 정의를 “광범위한 인권 탄압의 잔재를 처리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들에서 도입된 사법적 혹은 비사법적 조치들”로 정의한다.** 이에 대해 회복적정의연구소의 객원연구원인 강혁민 박사는 이행기 정의가 책임추궁과 진실규명을 중심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응보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 이영재, “이행기 정의의 본질과 형태에 관한 연구”, 『민주주의와 인권, 12(1)』, 2012: 123
** www.ictj.org
*** 강혁민, “국가폭력, 회복의 세례를 기다리다”, 『RJ저널, 주제글1』, 2021: 4)


“주목할 만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응보와 보상 중심의 이행기 정의는 크나큰 도전을 받아왔다. 먼저, 국가폭력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회가 폭력의 직접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세우지 못했다. 일반 범죄 가해자들과 달리 국가폭력은 그 처벌의 대상과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법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휘명령체계의 상층부에 있는 소수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하더라도 폭력에 가담한 모든 개인을 가해자로 치부하고 처벌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역사적으로 오래된 폭력 사건의 경우 사법적 판단을 위한 객관적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 기준의 설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증언자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는데다 기억마저 왜곡이 된다면 과거의 진실을 담보할 수 있는 객관성이 미약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의 사법적 처벌은 그 정당성에 있어서 큰 도전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응보적 정의는 폭력의 피해자들이 가진 심리적 트라우마와 시민들이 공통으로 공유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 사법적 절차는 사건과 가해자 처리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사람들의 감정을 어루만지기에는 부족하다. 요컨대, 응보적 관점의 과거청산은 그것이 목적한 바와는 매우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행기 정의가 기존의 사법적 정의, 즉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단정내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가 했던 작업은 이행기 정의의 대표적 사례이지만 응보적 관점만을 고수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이 도입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대부분 국가들에서는 이행기 정의를 주로 응보적 관점으로 이해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출범하였지만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응보적 접근이 무조건 비난받을 일일까? 독일의 경우 전쟁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있는 90세 이상 고령자를 최근까지 여러 차례 재판에 세운 바 있고, 프랑스의 경우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나치협력자들을 숙청했다.** 이러한 응보적 정의 방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나라와 도리어 메이지유신 시대로 퇴행하려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를 대립관계로 보지 않는 새로운 정의관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 한국에서 회복적 정의 접근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이재영 이사장의 『RJ저널, 주제글2』, “과거사에 대한 회복적 정의 접근의 도전과 과제”를 참고하라.
**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프랑스보다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나라의 청산이 더 가혹하다는 평가도 있다.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009)



5. 이행기 정의와 전환적 정의

그렇다면 근래들어 회자되는 전환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응보적 정의, 회복적 정의, 이행기 정의, 전환적 정의의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어서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행기 정의를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고, 과거의 범죄문제는 응보적 정의로 다루되 미래를 향한 화해를 위해 회복적 정의도 병행시키는 것을 이행기 정의로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설명으로는 이행기 정의를 전환적 정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전통적인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 전환적 정의를 간략히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 김혜경, “공동체적 관점으로서의 전환적 사법에 관한 연구”, 『한국피해자학회 피해자학연구 제28권 제2호』, 2020: 59

응보적 정의 회복적 정의 전환적 정의
1. 어떤 법률을 위반하였는가? (죄형법정주의) 1.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피해자중심주의) 1. 어떠한 사회적 결함이 그러한 행위를 야기하였는가? (사회적 문제 중심)
2. 누가 행하였는가? (책임주의) 2.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회복주의) 2.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 (사회적 해결 중심)
3. 어떠한 처벌이 범죄에 상응하는가? (비례성의 원칙) 3. 회복은 누구의 의무인가? (배상중심주의) 3.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의 안전과 해방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사회적 정의 회복)


대표적으로 이행기 정의가 적용된 사례인 아파르트헤이트 청산과정을 보면, 1995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 기간 동안 발생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궁극적으로 화해에 목적을 두었다. 즉, 1948년부터 1993년까지 지속된 백인정권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의 가해자를 무차별적으로 처벌을 하기보다는 인종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방편을 최우선으로 하였는데, 그 방법 중에서 비처벌적이면서 화해를 목적하였다는 면에서는 회복적 정의 이념이 적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회복적 정의가 전통적인 인종 및 특정 지역의 민족성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남아프리카 지역의 원주민이 가지고 있었던 화해와 화합의 전통과 이념이 만델라 대통령에게는 청산의 동기이자 궁극적인 목표가 된 것이다. 실제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해 고백할 경우 사면한다는 정책을 실시하였고, 이로 인하여 많은 부분이 화해를 통해 해소되었다. 그러나 반대로 이를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는 처벌이 불가피하며 그것을 통해 응보적 정의가 정의실현의 도구가 되었다. 이 과정 전부를, 특정사회에서 과거청산의 성패가 반드시 사법적 처벌이나 회복적 정의로서 화해의 문제가 아니라 고유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접근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이행기 정의에 의한 과거청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로써 이행기 정의를 통하여 과거의 범죄 및 불의가 정리되어간다면 그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전환적 정의로서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재건인 것이다.* 구조분석을 통해 이행기 정의와 전환적 정의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 김혜경, 앞의 글: 62
** Paul Greedy/Simon Robins, “From Transitional to Transformative Justice: A New Agenda for Practise” Briefing Note TFJ-01, University of York, June 2014, 1-2면. (김혜경, 앞의 글: 64에서 재인용)

이행기 정의 전환적 정의
법적 접근이 지배적 다면적 접근: 지배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측면 강조
국제법, 인권과 규범에 근거함 실증적이고 증거에 기초하고 상황에 근거하는 개념.
시민적・정치적 권리의 우선시 불가분적 관계와 상호의존적인 권리를 고려하고,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동등하게 우선시함.
개인에 대한 정치적 폭력에 대한 대응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에 대한 집단적 경험에 초점
국가중심적인 제도에 의하여 주도되는 변화 메커니즘 다층적 과정에 의해서 주도되는 변화이자, 동시에 지역차원의 공동체 내에서 생성되는 메커니즘
법원판결이나 진실위원회보고서 등 그 산출물에 의하여 정의되고 구현되는 개념(결과적 개념) 과정과 절차-결과사이의 연결에 의해서 정의되고 구현되는 개념(동적 개념)
피해자와 사회구성원이 범죄의
증인이나 목격자로서 참여
피해자의 개념을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개시부터 사후평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공유하는,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참여적 접근
정의와 인권개념의 추구 방향:
법적이고 결과중심적인 시민적・정치적 권리
정의와 인권개념의 추구 방향:
지역적이고 절차적으로 주도되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동시에 경제적・사회적 권리


전환적 정의는 전통적인 형사사법적 해결을 지양한다는 점에서 회복적 정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회복적 정의가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 및 이해관계인의 참여를 통한 치유와 화합 그리고 배상을 강조하는 반면, 전환적 정의는 우선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개념 및 그 역할을 부정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범죄행위의 결과로서 발생한 피해를 중심으로 접근하지 않고, 범죄의 원인 및 사회의 구조적 결함, 범죄를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의 과잉 상태 등을 중심으로 하여 근원적인 해결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 물론 하워드 제어 교수 같은 경우는 전환적 사법이 회복적 사법과 구분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개념의 양산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김혜경, “통합적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본이념 정립과 개선방향 - 연대성의 원리와 전환적 사법이념을 중심으로”, 『피해자학연구 제25권 제3호』, 2017: 161)



6. 마치며

인류는 전세계적으로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인 동시에, 그 태생부터 폭력적인 근대 민족국가를 넘어 새로운 사회 체제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벌어졌던 국가폭력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과거사 청산을 통해 화해와 용서, 즉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이행기 정의로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는 단순히 대립관계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아직 그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잠정적으로 그것을 ‘전환적 정의’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이 전환적 정의는 ‘발전된 회복적 정의’라고 생각한다.

국가폭력 범죄로 인해 신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 존재하는 사회에서 오로지 범죄의 원인과 사회 구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비인간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출발은 실존하는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이들을 향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허락될 수 있지만 단호한 처벌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회복적 접근과 함께 응보적 접근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단지 정의가 범죄문제의 해결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이 발생하는 근원적 원인을 다층적으로 파악하고 그 대안을 내놓음으로써 체제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갈등 해결의 패러다임에서 갈등 전환의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아직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상 근대국가의 완성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이것을 전환적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새로운 해법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남북한이 함께 전환적 문화를 추구한다면 어떨까? 과거사 청산과 분단체제 극복, 근대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체제로의 전환을 통합적으로 모색하는 작업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후기*

평화
어딘가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죽은 건 아이일까, 아이의 엄마일까?

정의
섣불리 그들을 용서하지 말라
거짓된 자들에게 함부로 면죄부를 주지 말라

진실
꽃이 피었다
파괴된 건물의 잔해 옆,
흩어진 피처럼 붉은 꽃

사랑
당신이 떠난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금세 깨달았죠, 당신은 영원히 나였음을

자유
춤을 추었지
그날 춤추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회복
이빨 나간 우동 그릇,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수를 천천히 먹었다

화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깔
저 빛이 없었더라면!

* 이 시는 진은영 시인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 영감을 받아 지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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