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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인류① 알파세대가 잃은 것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1. 13. 01:21

“선생님, 비교가 뭐예요?”…스마트폰 쥔 ‘도파민 인류’ 어휘를 잃다

도파민 인류① 알파세대가 잃은 것, 문해력

글을 스크롤 넘기듯이 키워드만 대충 보고 넘겨
한국 학생 ‘읽기’ 기초학력 미달률 13년새 3배↑

 

“가정? 과정? 선생님 그게 뭐예요?”

지난달 21일 서울 광진구의 한 문해력 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초등학교 4학년 지우(가명)가 “가정해 보자”는 선생님 말에 뭘 하라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10줄 남짓의 짧은 글을 읽고 내용을 요약하는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90분 수업 내내 단어 뜻을 묻고 답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선생님 개최는 뭐예요?” 선생님은 문장 안에서 ‘개최’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라고 조언했지만, 지우와 친구들은 끝까지 개최의 뜻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초등 고학년이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반환’이라는 단어를 모르더라고요. 아이들이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는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단어 뜻만 물어봅니다.” 학원 대표는 최근 학생들의 문맥 속 단어 유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알파(Alpha) 세대. 인류통계학자들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인 2010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알파 세대라고 분류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옆에 스마트폰이 있었고, 영유아 때부터 직관적이고 단순한 영상 등 스마트폰이 만들어낸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자랐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11월 말부터 한달 동안 ‘한겨레’가 만난 초등학교 교사 등 20여명의 교육전문가들은 알파 세대를 향해 “인류가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책과 함께 사라진 문해력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뇌가 일찌감치 유튜브 등 짧은 영상 ‘쇼트폼’(Short-form)에 노출되면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정적인 활동에 흥미를 잃게 됐다고 지적한다. “짧은 유튜브 영상은 서사가 없어요. 그저 게임처럼 자극으로 들어오는 거죠. 가만히 책 읽는 행위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하지 못해요.”(14년차 교사 김병섭) 스마트폰에 흥미를 뺏긴 아이들은 글을 낯설어하고 있다.

 

문해력 지표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보다 악화됐다. 올해 발표된 국제학업성취도(PISA) 지표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분야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2009년 5.8%에서, 2022년 14.7%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원년으로 꼽히는 2010년 전후로 학생들의 문해력 차이가 눈에 띄게 벌어진 것이다.

 

“문제집을 푸는데 문제 자체를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고학년 문제도 아니고 자기 학년인) 4학년 문제집 푸는 데도 그런 문제가 생기니까… 말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겠다 싶더라고요.”

 

광진구의 문해력 학원에서 만난 지우 역시 유튜브에 노출되며 책과 멀어진 경우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을 찾은 지우는 4학년이지만 문해력 학원에서 3학년 수업을 듣는 중이다. “주로 (게임 유튜버인) 도티 영상이나 쇼츠를 봐요. 가끔은 수업을 하다가 유튜브 영상이 떠올라 집중이 안 되기도 해요.” 지우는 하루 두세 시간 스마트폰을 본다고 답했다.

 

단어 풀이 시간으로 전락한 수업

 

일선 초등학교 현장은 문해력 저하 영향권에 든 지 오래다. 교사들은 “‘비교해봅시다’란 교과서 지문을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비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교사 김병섭)거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발이 넓다’란 말을 몰라”(30년차 교사 이세경) 당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단어를 모르다 보니 계획대로 수업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18년차인 양해준 교사는 “매 순간 문장의 뜻이나 흐름을 짚어주면서 수업을 진행하니 목표한 진도의 3분의 1밖에 못 나간다”며 “자기 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알 만한 단어도 몰라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매일 있다”고 말했다.

 

일부 수학학원은 문제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독서 수업을 편성하기도 한다. 해당 수학학원 관계자는 “문제에 나온 대로 식을 쓰면 되는데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듣는 말이 너무 많아서 무슨 설명을 해줘도 머릿속으로 정보 처리를 못 하는 걸 보고 문해력 수업을 편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스마트폰 사용 시간과 문해력이 반비례하는 경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길수록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전국읽기따라잡기연구회 공동회장으로 문해력 교육을 연구하는 박지희 교사는 “문해력이 낮은 것을 스마트폰 때문만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대체로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초등문해력교사연구회에서 활동 중인 이인희 교사는 “상대적으로 집중력(문해력)이 떨어지는 학급의 스마트폰 이용 현황을 조사했더니 하루 평균 네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답한 아이들이 절반에 이르렀다”며 “반대로 차분한 분위기의 학급은 한두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쓰는 아이조차 2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뇌 발달 시기인 아동·청소년기의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이 언어능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있다고 지적한다. 김대진 가톨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의 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스마트폰 과다사용 증상이 심할수록 언어 처리에 관여하는 ‘두정엽내구’와 ‘내측전두엽’ 간에 기능적 연결성이 떨어지는 걸 관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 한 시간 이하로 디지털 기기 화면을 보는 어린이에 비해, 하루 두세 시간 이상 화면을 보는 어린이들이 어휘 습득 능력이 떨어진다는 외국 연구 결과도 있다.

 

문제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조절하기 어려워하는 주의사용자군,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위험사용자군 등을 포괄하는 과의존사용군은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학령 전환기(초등학교 4학년, 중고등학교 1학년) 학생 127만6789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13만1560명이 과의존사용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과 견줘 소폭 감소했지만 지난해까지 내리 4년 동안 증가세를 기록했다. 초등학생 중에선 과의존 위험군 학생 비율이 지난해(15.97%)보다 늘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지면서 학생들은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 자체에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탓도 있지만, 글을 읽는 방식이 바뀐 영향도 크다.

 

아이들의 짧아진 독서 호흡에 맞춰 출판계도 변하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읽는 도서들의 원고 분량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그림의 분량은 늘었다. 출판업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과거엔 3~4학년 대상 소설책이 250페이지 정도였다면 지금은 180페이지로 28%가량 줄었다. 초등문해력교사연구회 설립자인 김용세 교사는 “토지, 태백산맥 같은 책은 요즘 애들에겐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대표적인 아동 문학인) 해리 포터도 수준 있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됐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2살 전부터 폰…“눈알 젤리” 중얼중얼, 친구 감정은 못 읽는 교실

도파민 인류① 알파세대가 잃은 것, 사회성
타인 감정 읽는 데 서툴어 관계 주고받지 못해
‘폰 과의존→사회성 악화→과의존 심화’ 악순환

 

지난해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은(가명·8)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과 놀 줄 모르고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요구하지만, 선생님의 지시엔 무반응이다 보니 선생님과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리에 앉아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런 지은이를 신나게 하는 ‘친구’는 스마트폰이었다. 지은이는 유튜브가 좋았다. 자기 또래의 ‘키즈 유튜버’들이 과자를 먹고 리뷰를 올리는 먹방(음식 먹는 방송)이 지은이의 최애 영상이다. 하루 평균 3시간,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엔 8시간씩 유튜브와 함께했다.

 

‘눈알 젤리, 지구 젤리 먹으면 입속에 팍 터져요. 파란 지구 젤리 먹으면 화장실에서 파란 똥이….’ 지은이는 유튜브를 보지 않을 때도 영상 속 대사를 중얼거렸다. 키즈 유튜버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이를 촬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폭력적인 영상도 (나쁜 걸 모르니까)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못 하게 스마트폰을 뺏으면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때려요.” 부모가 유튜브를 못 보게 막자 지은이는 부모 휴대전화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불·옷장에 숨어 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만 쥐면 유폐된 듯 보이는 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는 “스마트폰이 아이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유아동 스마트폰 과의존 척도’로 점검한 결과, 16~28개월께 처음 유튜브를 접한 지은이는 잠재적 위험군에 해당했다. 엄마는 결국 선생님의 권유로 종합심리평가를 받아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소꿉놀이가 안 된다.” “아이들이 (서로의) 감정 파악을 어려워한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알파세대’가 읽기 어려워하는 건 문자의 맥락(문해력)뿐만이 아니었다. 11월 말부터 한달 동안 ‘한겨레’가 만난 보육·교육 현장 교사들과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교감의 시간을 스마트폰이 앗아가면서 ‘관계의 맥락’ ‘감정의 맥락’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영유아는 부모나 또래의 표정, 단어, 목소리 톤, 신체적 반응을 통해 단계적으로 성장하는데, 상호 작용이 불가능한 전자기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성 발달이 저하됐다는 설명이다.

 

일선 현장의 교사들은 사회성 저하로 아이들의 ‘새 학기 앓이’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치원 원장 최경희씨는 아이들이 갈등·관계 극복을 귀찮아한다고 말했다.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하고 배려를 나눠야 하는데 무기력한 아이들이 있어요. 영상에 재미 들린 아이들은 친구 사귈 때 겪는 과정과 시행착오·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안 하죠.”

 

30년 경력의 초등교사 이세경씨는 “마치 고립된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책을 안 가져왔으면 옆의 친구에게 같이 보자고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도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20년차 이인희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자기감정은 잘 말하면서 상대의 감정은 놓친다”며 “지금은 화해 과정에도 일일이 교사가 중간 다리를 놔줘야 한다”고 했다.

 

역할 분담이 서투르고, 같은 장소에 있어도 함께 어울리기보단 혼자서 노는 게 익숙하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생들에게 ‘소꿉놀이’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만만치 않은 놀이가 됐다. 홍순이 교사는 “놀이에도 수준이 있다. 초등학교에 오면 관계를 주고받는 수준의 놀이가 진행돼야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날 때까지 이런 부분이 안 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냥 ‘자기 세상’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외 여러 연구를 보면, 영유아 시기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은 사회성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2023년 발표한 ‘미디어 노출이 아동의 사회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2살 이전에 2시간 이상 부모의 통제 없이 단독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 사회성 발달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 9월 미국의학협회 소아과학지(JAMA Pediatric)에 발표된 연구 역시 일찌감치 디지털 기기 화면에 노출된 아이는 의사소통·문제해결 능력에서 발달 지연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한국교원대 산학협력단이 펴낸 ‘2022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자료 및 콘텐츠 개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유아 2명 중 1명은 생후 24개월 이전에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를 접한다. 10명 중 1명은 돌 이전에 디지털 기기를 처음 이용한다.

 

한번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은 ‘스마트폰 과의존→사회성 악화→과의존 심화’의 악순환에 갇히곤 한다.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사회성을 쌓을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현장학습 소풍을 간다 치면 예전엔 버스 안에서 과자 먹으며 친구들과 떠들고 그걸 선생님이 조용히 시키고 그런 풍경이 떠오르잖아요? 근데 요즘 아이들은 소풍 간다고 하면 ‘휴대전화 들고 와도 되냐’고 가장 먼저 물어봐요.” 현장체험 버스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아이들로 인해 적막만 감돈다고 최민지 교사는 전했다.

 

학교 안팎에서는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콘텐츠 탓에 아이들의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18년차 교사 양해준씨는 “아이들이 보는 영상은 자극적이고 그에 비해 교실 안은 평화로운 환경이라 자극이 덜하다. 서로 실수하거나 싸우면 상처를 받는데 ‘슬픈 감정’ ‘미안한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무뎌지는 것 같다. 기본적인 감정을 못 읽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일반화할 순 없지만 스마트폰 노출이 많거나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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