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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디테르 쿠스 선생님의 역사교육 강의 (4)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역사교육

디테르 쿠스 선생님의 역사교육 강의 (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9. 4. 00:37

네 번째 교사회 세미나 - 2011107일 금요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자리에 마지막날로 오셨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계속 얘기하였으니 오늘은 여러분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온 지역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사흘 동안 계속하였지요. 마지막 큰 테마는 오늘의 이야기인데요, 이것으로 여러분은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은연 중에 느낀 것은 한국에는 다른 문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로는 동질성을 찾을 수 있겠지요.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듯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다행스럽게 공통점을 많이 찾았으면 합니다. 또 다른 몇 가지를 찾았으면 합니다.

어제 우리는 별의 기운, 아스트랄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어제의 테마 속 마지막 정거장은 금성과 화성이었습니다. 여러분 중 한 분이 마지막에 던진 질문은 제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이 갖고 계신 것과 그렇게 상충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제 질문하신 분이 오늘 또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저 스스로도 흥미로운 것은 여러분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 갖고 있는 개념입니다.

지금의 일정 중에 가끔 조그맣게 느끼는 게 있습니다. 제가 일종의 전도사로서 여기 있는 걸까요? 생각이 좋다면 그것은 인지학에서 온 것일 텐데요. 하지만 선교사나 전도사로 온 것은 저의 바람도 아니고 좋은 느낌도 아닙니다. 저의 이모할머니를 아주 어렸을 때 만났는데요, 그때 이미 연세가 드신 할머니셨습니다. 기독교 계통의 양로원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예전에 50년 동안 중국의 선교사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두려움을 느꼈고 선뜻 다가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만나러 갈 때마다 너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있느냐?” 하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별로 그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도 여러분께 이모할머니처럼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웃음)

제 아버님도 개신교 계통의 설교자였습니다. 조금 다행스럽게 나중에는 이성적인 분이 되었는데요. (웃음) 일반적인 개신교회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버님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선교사로서의 역할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선교사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지 않나, 합니다. 유럽인들은 선교라는 명목으로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을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는데, 혹시나 제가 늙어서 선교사적인 성향을 갖다면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은 일방적인 전달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의 경험을 교환하고 나눌 때 오히려 우리는 여기에서 온전함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애에서도 많은 것이 서로 결합하고 융합하여 교류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계속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리스도와 붓다가 어떻게 결합될까, 많이 질문하였습니다. 슈타이너와 인지학을 통해서도 이러한 그리스도와 붓다의 관계에 대해서 집중하였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어쨌든 제가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만나는 것 자체가 이런 경험에서 또 한 발 나아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으로 제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역사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느냐, 할 수 있습니다. 2002년도에 미국의 한 도시를 제가 여행하였습니다. 그때는 9.11 테러 몇 달 후였는데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모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 속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근무하시는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역사 수업에서 어떤 것을 가르치십니까?” 담임선생님들께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또 다른 이야기가 미국의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역사수업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생겼습니다. 발도르프학교는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지만요, 물론 우리의 뿌리는 하늘에 있습니다. 각각의 지역이 다른 만큼 역사를 가르치는 내용은 완전히 달라야만 합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발도르프교육에서 제시되는 교과내용은 유럽 중심적인 사고가 아닐까? 좀더 긍정적인 차원에서 얘기해볼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우리 문화 속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정신적 뿌리가 같다면 여러분의 문화권에서 겪은 역사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절대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상급과정의 학생이라고 한다면 한 연극놀이를 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하는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또는 누가 이 앞에서 어떤 내용을 수업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만약 15초 정도 기다렸는데도 아무런 제안이 없다면 이 시간은 마무리를 해야겠지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에게 스트레스가 되겠지요. 그런 건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제안을 하나 함으로서 여러분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히 하려 합니다. 제가 궁금해 하는 것은 여러분의 전통과 문화 속에 금성과 화성에 관한 이야기처럼 그런 성격의 개념이 있습니까? 왜 이런 질문을 하냐면 여러분이 조용히 있기 때문입니다.

 

- 수성은 물의 성질과 같아서 물처럼 깊은 원천의 성질을 갖고 있다고 해요. 모든 색깔을 다 갖고 있는 검은색이지요. 우리는 여름과 가을 사이에 생명이 잉태된다고 합니다. 늦여름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준비, 겨울은 숙성되는 기간이고 봄은 그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름의 화성과 상반되는 힘이라고 해요. 그리고 수성은 지혜라는 미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 아주 작아서 해 주위를 춤추듯 돌고 있는 수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화성에 대해 궁금합니다. 화성에 대해 말하실 분? 붉은색을 상징합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화성은 빨강을 나타냅니다. 오행은 다섯 가지 기운을 말합니다. 기운은 항상 흐르지요.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요소로 말할 수 있지만 고착화되지 않고 항상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흐름은 조화로운 흐름이 있고 그 반대가 있습니다. 상생과 상극. 매 요소마다 서로 상충되는 게 있어서 별과 원으로 표현을 합니다. 방위를 얘기하면 동쪽에 목이 있고, 서쪽에 금이 있고, 북쪽에 수가 있고, 남쪽에 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 토가 있습니다. 토성의 기운이 여름과 가을, 추하에 새로운 것이 잉태된다고 합니다. 물은 나무를 도와주고, 나무는 불을 도와주고, 불은 흙을 도와주고, 흙은 쇠를 도와주고, 쇠는 물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목에 ㄱ, ㅋ 등 자음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모음과도 관련이 있지요. ... (1700년도 언어학자들은 정신세계를 연구하였고 인간의 발달을 1670년마다 각도가 변화해간다고 합니다. 동양에서. 인간의 진화에 따라서 각도가 변합니다.)

= 지금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 몰라요... (웃음)

 

- 다양한 설명과 해석이 있는데 이것은 유럽의 운행체계보다 훨씬 정교하고 깊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옳고 저건 틀리다라고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보지 않고 유럽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동양에서는 왜 이렇게 보는지, 또 유럽에서는 왜 다르게 보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질문을 또 하나 한다면, 한국이나 아시아에도 별들과 연관된 신화가 있지요? (.)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야 합니다. 지금 설명되어진 것의 느낌은 중세시대에 사람들이 연구한 것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 반면에 그리스나 바벨론 지역의 신화에 나오는 별들의 이야기는 훨씬 더 본질적인 요소와 가까운 형태로 전승됩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고 중요한 위상이 있으며 전해져야 한다는 정도에서 끝내지요. 또 다른 말씀을 해주시지요.

= 이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질문도 좋으니 질문해 주세요.

 

- 단순한 건데, 발도르프교사가 되셨는데 그 전과 그 후의 변화를 듣고 싶어요.

= 제가 슈투트가르트의 사범학교를 마치고 나서 느낀 점은 , 내가 예술가가 되어야겠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10년 동안 대학에서 아주 엄하고 긴장되는 지적인 훈련을 겪었습니다. 중간에 공부하다 포기하고 또 공부하다 포기하느라 10년이 걸렸는데요, 아주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음악도 했습니다. 또 스웨덴에 있는 수도원에도 갔구요. 다시 대학에 돌아왔지만 한 일 년 후에 육개월 동안 인도 여행을 했습니다. 불교 사원에도 있습니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나서 제가 공부하던 걸 마쳤지만 만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지도교수가 제가 발도르프교사를 권했습니다. 그렇게 발도르프 교사과정을 겪으면서 제 안의 예술적인 소질을 발견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그 당시 느꼈던 과제가 계속됩니다. 해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또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전문적인 예술가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림이나 연극 등에서 제가 그렇게 전문적이지 않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발도르프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계속 성장합니다.

 

- 독일에서도 동양역사를 다루는지요?

= 있기는 합니다. 아주 전통적인 발도르프 교육과정에서는 알렉산더가 인도로 여행한 만큼인데요, 동아시아는 아주 깜깜한,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것이 부족함을 이제 결핍으로 느낍니다.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것은 필요성을 느끼지만 어떻게 동양역사를 다루고 도입해야 할지 관점이 명확하지 않아 주저하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쪽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메리카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아시아도 마찬가지구요. 아시아는 아메리카보다 좀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다양하고 정신적으로 풍부하게 전해지고 느껴지는데요, 아시아의 역사를 유럽에 또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지가 중요한 질문이 됩니다. 제게는 12학년에서 아시아에 대해 모든 것을 열고 다루길 희망합니다. 제가 7학년 담임일 때 콜럼버스나 마르코 폴로에 대해 얘기하며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갔던 곳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에 대해 아메리카 인디언과 연관하여 그냥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방식 속에는 식민주의적 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저희는 유럽과 함께 동양의 역사를 모두 다루는데 그러한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제 생각에 그건 두 배로 힘든 작업 같습니다. 연대별로 나란히 놓았다면 여러분의 시대를 먼저 하고 유럽의 것을 조금 적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서로 연결된 점을 다루는 것도 좋지만 한국의 것을 먼저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슈타이너가 교사회의에서 이런 질의응답을 했습니다. “어떤 언어로 아이들과 소통해야 합니까?” 슈타이너는 재미있는 답을 합니다. 슈투트가르트는 심한 사투리를 갖고 있었는데요, 북부지방 사람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추측컨대, 당시 1학년 선생님이 남부 사투리가 아주 심했던 모양이에요. 1920년대는 지금보다 아주 심한 사투리였을 것이고, 당연히 아이들도 남부 사투리를 진하게 썼겠지요. 아마 질문의 요지는 정말 사투리로 가르쳐도 되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슈타이너는 오히려 그게 참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이어지는 얘기를 알 수는 없지만 여기에서의 관점은 영혼적으로 아이들을 안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아이들은 성장하였겠지요. 그렇게 시작해서 언젠가는 아이들과 같이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겠지요. 첫 번째로는 사투리가 좋은 것처럼 역사에서도 그 지역에 뿌리가 있는 역사를 다루는 게 좋겠지요.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럽중심적인 관점의 역사 이야기가 표준어처럼 적용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유럽의 역사는 또 하나의 사투리처럼 지역의 역사입니다. 공통의 표준어를 찾아야겠지요.

 

- 3학년 때 성서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한 번 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 슈타이너가 3학년 때 히브리의 이야기를 하도록 제안했던 동기를 안다면 다른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풀어야 할 관점으로 생각할 점은 3, 4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아이들과 어떤 체험을 하는지입니다. 중심된 경향, 테마로서 3학년에게 주어지는 것은 이 세상은 아버지의 세계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아주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에 대한 것입니다. 아주 강하고 긴장된 신적인 작용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요소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성향은 인간적으로 개별적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도 그런 고유한 아버지에게 응답하듯이 개인적인 고백을 하는 차원에서 다루는 것입니다. 아주 드물지만 시장에서 노래하듯이 하기도 하나 그건 아주 드문 경우이고, 개별적인 관계 속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3학년의 창세 이야기입니다. 엄격한 아버지에게는 원칙이 있습니다. 3학년 시기에 이러한 작업을 하는 것은 아이들이 루비콘 강을 건너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4학년에는 이미 강을 건너버렸지요. 북유럽의 신화는 정신의 세계, 신의 세계가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그건 양극을 이루는 성향입니다. 3학년과 4학년은요. 제가 경험하기에도 그렇고 지금은 더 그렇겠지만 4학년은 아주 혼란스러운 교실이 됩니다. 역사에서 다루는 것과 연결된 상황입니다. 만약 이런 동기에 의해서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을 한다면 여러분이 아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겠지요.

 

*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여러분의 질문을 더 받고 싶습니다.

 

- 만약 선생님이 한국에서 태어나 발도르프교사를 하신다면 역사 교육과정을 어떻게 하실 것 같은가요?

= 몇 학년, 어떤 아이들인가요?

 

- 5학년부터요. 그 이후부터는 상급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데, 선생님이 5학년 담임교사라면 어떻게 역사수업을 만들어 가실 건가요? 5학년은 그리스인과 같다고 하셨는데요.

= 옳고 그름을 떠나 적합한 것이냐를 보는데요, 여기의 역사를 먼저 하거나 한국의 것만을 갖고 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상급에 가서도 다시 그 역사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상급과정에서 많은 테마를 다루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 우리나라에서 없는 발달과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로마시대가 없습니다. 그러면 뛰어넘고 가야 하는 건지.

= 아까 예를 든 3학년의 이야기처럼 부성이 승리하는 그런 시기가 없습니까? 그것은 유럽사에서 기독교의 태동과 연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발견을 시도해 볼 것입니다. 추측건대, 유교 사상 쪽에 그런 게 있지 않을까요?

 

- 제가 보기에 아버지 성향 같은 건 종교를 떠나서 3학년은 세상에 정착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성은 세상에 내려오는 것이므로 종교는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로마시대와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는 없었다고 봅니다. 훌쩍 뛰어넘어 이 시대로 건너와서 새로운 의식세계로 진입하는 것 같습니다.

= 종교를 떠나서 부성의 논리성, 정당함은 세상에의 육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에 공감합니다. 어찌됐든 간에 그건 히브리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아메리카 인디언도 유럽인의 침입으로 큰 변화에 의해 커다란 아픔과 혼란을 겪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감각혼에서 오성혼 시대를 겪지 않고 갑자기 의식혼으로 큰 걸음을 떼어서 그 중간이 비어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위에서 신들이 예정했던 것이고 의미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혼란을 겪을 수 있지만 자국의 역사수업의 과제를 어떻게 시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어쨌든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고 발굴해야 할 일입니다.

 

- 그렇다면 미국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 거기서 선생님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들었고, 아침시를 낭송하는 것도 다른 느낌이 드는 걸 느꼈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그곳의 교사는 두 개의 문화에 한 발씩을 딛고 있습니다. 한쪽 다리는 인지학에 바탕을 둔 문화에 있구요, 또 한쪽 다리는 자신의 고유한 문화에 속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는 다른 것이 자기들 문화를 하루빨리 재발견해야 하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학교 세우기가 실패로 돌아갔는데요, 거의 모든 교사가 유럽인이었구요. 인디언 문화에 심취해 있었지만 두 번째로 발을 디딜 당장의 자기 문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학교를 세울 때 한 명은 백인이었고 또 한 명은 원주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지학의 관점을 번역하듯이 자기 문화에 도입하려고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인지학이 발현되지 않았고 아직 형성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자기 고유의 문화를 이해하고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영감과 상호교환이 필요하지만 모방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방하지 않고 서로의 영감을 통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린이는 모방해도 되지만 어른은 모방하면 안 되지요. (웃음) 이 정도까지가 우리의 마무리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오늘 마지막 모임에서 비로소 여러분과 질의응답을 하며 느끼고 싶었던 걸 느꼈고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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