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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디테르 쿠스 선생님의 역사교육 강의 (1)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역사교육

디테르 쿠스 선생님의 역사교육 강의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9. 4. 00:34

첫 번째 교사회 세미나 - 2011104일 화요일

 

 

여러분들 많이 오셔서 반갑습니다. 여기 오셔서 들은 것들은 곧바로 잊어버리시겠지요? 또한 잊어버려야하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우리가 작업할 이야기는, 지금까지 고민하고 해야 될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지, 멀리서 오는 낯선 것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상당한 영감으로 어떤 개념을 잡았고, 다른 이들은 슈타이너가 잡은 영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적인 것을 전달받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여러분들이 주신 계획표에 의하면, 역사나 국어에 대해서 전반적인 조망을 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조망하는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것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오늘은 첫날이어서 더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발도르프 학교에서 일어나는 역사 수업에 대한 하나의 생각으로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이 생각은 하나의 예술적인 형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보처럼 서랍 속에 넣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요. 슈타이너는 이것을 항상 말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그림으로 떠올려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역사를 역사학이라고 표현합니다. 역사학이라는 것은 하나의 진화적인 발달을 밟는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서 진화라는 것은 한 측면으로서만의 진화가 아니라, 최소한 두 가지 경로의 진화의 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의 경로(방향)를 의식으로 가져와야 할 것입니다. 한 측면에는 어두움, 권력의 측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기에 밝고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어두운 측면을 느끼기가 더 수월할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는 특정한 이유가 있는 전개 과정을 지닙니다. 이러한 발달 단계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채가 서로 섞이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발달의 단계는 세계 전체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다른 발달 단계가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함이 존재합니다. 이런 면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발달의 단계가 세계 모두에 적용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관점은 상당히 중요한데, 한국에서 여러분은 잘 이해를 하면서 견줘보아야 합니다. 한 미술가가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작업을 해 나가듯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작업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첫 번째 생각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것입니다. 어린이의 생애 또한 하나의 진화이듯이 역사 또한 그런 발달 단계를 겪습니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서로 맞아 떨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슈타이너도 어린이의 발달 단계와 역사의 발달 단계를 서로 비교해보고 견줘보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교과과정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교사가 수업을 하다보면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맞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요. 이럴 때에는 내가 잘못 이해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니면 요즘 아이들은 달라졌구나?” 하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진화의 경로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어보고, 이것을 아동발달과 연계해서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신화는 인간의 삶을 정착시키고 삶을 올바르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화는 인간에게 상당한 조화로움과 인간 삶에서 올바름을 느낌으로, 정서적으로 알려줍니다. 신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조화는, 옛 시기에 인간은 잠을 자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의식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의식이었습니다. 신화의 시대에서는 인간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기의 인간은 꿈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학에서는 이 단계의 역사적인 시대를 고대 인도의 시대였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인도의 사람에게만 이런 의식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지금도 고대 인도 시대의 의식성이 남아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만, 이것은 먼 과거의 의식성입니다. 그림을 통해서 여러분께 표시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림1]

, 생명(life) 과정의 법칙성에 사람이 통째로 안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안에 얽혀 있는 상황입니다. 인지학에서는 이렇게 생명의 과정이 안에 들어있는 상황을 놓고 이야기하기를, ‘에테르체라고 합니다. 인지학에서 이야기하는 역사적인 단계의 이야기가, 지금의 역사학자와 연계 맺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일종의 마법의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상황에서도 이런 시대가 나타나는데 샤머니즘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역사학자들도 이 마법의 시대, 샤머니즘 시대를 석기시대의 전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인류를 지배해왔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의식의 단계가 지금은 낯선 단계입니다. 인류의 생명과정에 함께 들어서서 움직이는 단계, 잠자는 의식 상태가 당시의 상황이었고, 그것은 그냥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림2]

전통적인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신석기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에 비로소 농경, 집짓기가 시작됩니다. 이 시대를 고대 페르시아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오면, 주변의 환경들을 자신에 맞게 적용시킵니다. 그 전에는 생명활동 과정 그 자체였고, 이제는 한 사람이 주변 환경을 서로 연결해서 적용시킵니다. 이제는 땅에서 일을 하면서 관계를 맺는데, 그 안에서는 이원적인 것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이원적인 모습은, 한 측면에서는 땅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힘, 다른 측면에서는 하늘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힘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아스트랄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스트랄체는 무엇입니까?

아스트랄은 별의 힘을 총칭하는데, 한 측면에서 별과의 관계성, 하늘과의 관계성의 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이 있지만 우주 운행에서 태양의 힘과 법칙이 연결되어 적용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의 감정, 욕구 등을 관장하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의 모습을 인간에서는 아스트랄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철학에서는 이것을 인간의 아우라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즉 여기에서는 많은 색깔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특징은 전투, 전쟁의 상황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땅의 힘과 하늘의 힘 사이에 전쟁의 상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우리의 관점에서 보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빛과 어둠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표시(삼각형에 점 두 개 있는 것)는 저에게도 의미 있는 표식인데, 물질적인 것은 땅의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류의 과정인데,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이 땅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림3]

다음 단계부터는 역사의 시대, 문명의 시대라고 불리는 것이 등장하게 됩니다. 중국에서 문명이 일어났고, 다른 여러 지역에서 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문명(고차의 시대)은 건축물에서도 나타납니다. 즉 하늘을 향해 서 있는 건축의 모습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문명은 이전의 시대보다 도덕적으로 앞섰다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과 더 단절되어서 명확한 테두리를 가지면서 고립되어 가는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 땅과도 분리되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위로는 하늘을 향해 서 있으면서, 땅으로는 성벽을 쌓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은 메소포타이마, 이집트, 중국 등에서 볼 수 있는 문명의 형태입니다.

건축물이 말하듯이 어떤 거리를 두고 밀어내는 형상은, 인류에게 도약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동그라미를 인간이라고 할 때,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당시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느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동그라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아의식은 아주 작습니다. 당시에 바깥에서부터 오는 어떤 감각적인 영향, 느낌은 어떤 식으로든 그것에 대해서 반응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문헌들을 본다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외부 반응에 관한 자료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 어려운 지점인데, 명확하게 그것을 밝혀낼 수 없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잤을 경우에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외부로부터 감각적인 인상과 자극이 들어오면, 사람은 내면에서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내면에서 느껴지는 자극은 개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극인 것입니다. 지금의 의식 속에서 문을 보고 있다면, ‘저것은 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위치 또한 불을 켜는 스위치라는 개념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만 당시의 이집트인과 수메르인은 개념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고 경험할 때마다 다시 경험하는 것과 같은, 늘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의 장점은 항상 살아있고 생동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문헌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책들을 보면 같은 이야기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이웃과 무언가에 대해 공감을 나누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어마어마한 문명을 이룬 이집트와 같은 나라를 그때의 개념이 없는 상황과 연결해 볼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당시에 동일한 하나의 영향력이 들어오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영향력이 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영향력(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안 보이는 세계, 즉 등 뒤에서 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집트에서는 마하트(정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세계의 법칙)’, 중국에서는 타오()’라고 불렀습니다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의, 법칙, 도를 누가 사람들에게 제안했을까요? 그것은 파라오와 같은 지도자들이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혼동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잘못된 권력 남용과 혼동할 수 있습니다. 다시 위에 질문했던 것 - “어마어마한 문명과 개념이 정립 안된 상황은 어떤 것일까요? 바로 어떤 잘못된 것,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아스트랄 영역에서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를 슈타이너는 감각혼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지금까지는 고대의 발달 단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와 조금 가까이 있는 시대입니다. 유럽 중심적으로 보았을 때 그 다음에 오는 시대는 그리스-로마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어떤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개념들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시계를 보고 시계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 컵을 보고 컵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아주 가끔은 처음 가는 나라에서 어떤 물건을 처음 봤을 때, 이집트 시대처럼 몇 번을 보아도 잘 알아차릴 수 없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오성혼의 시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의 말인데, ‘계산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직역하면 이 세상은 계산이 가능하다라는 표현의 말입니다. 마치 우리가 무엇인가를 세어보고 계산해보고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을 편안하게 알 수 있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를 그림으로 그려보기는 어려울 것인데 한번 시도를 해 보겠습니다.

 

[그림4]

이 그림은 조금 전보다 자아의식이 커졌고, 외부 자극이 들어오면서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시 자극이 됩니다. 그런데 좀 더 빠른 성질의 것이 작용합니다. 그것은 개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개념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어의 영역이면서 자아를 둘러싸고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요? 하늘에서 어떤 것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것을 로고스(logos)’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 로고스는 신적인 것, 하느님의 것입니다. 각각의 그리스인들은 자기 자신 안에 로고스로부터 받은 것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개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을 얻으면서 잃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 시대에 가졌던 감각입니다.

한국에 와서 저는 집마다 있는 개들을 보게 되었는데, 가끔은 크게 짖고 그랬습니다. 우리도 가끔은 개처럼 바깥에서 들어오는 자극에 바로 반응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셰퍼트라는 사나운 개가 주위의 사람들을 물리치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개념이 생겨서 주위의 감각을 바로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깥에서 일이 발생했을 때 바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여기에 있고 개를 보내서 쫓는 것처럼 바깥의 상황을 해결하게 하는 모습이 이 시대에서 개념의 의식성으로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내가 생각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것으로 인해 세상과의 단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로고스로부터 가지고 오게 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하나의 진리, 진실이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인들은 상당한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것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 자신 안에 이미 로고스로부터 받은 진리가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그리스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며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 후로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시스템으로 가져갔지만, 그 안에서 이러한 것의 근원지인 로고스를 점점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인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로마에서 태어났든 그렇지 않든, 로마 시민이라면 제국의 시민인 것이다라며 로마 중심의 사고관을 가지게 됩니다. 즉 로마 중심의 세계관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시민권이 나타납니다. 시민권은 로마인이 최초로 만든 것입니다.

이 다음 단계는 지금의 시대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근원에 대해서는 거의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개념이라는 것은 현대에 와서 오히려 상대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언어적으로 다를 경우에는 각각의 개념들이 똑같이 일치한다기보다는, 얼추 맞기는 하지만 완전히 일치한 개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는 다시금 진리, 진실에 대해서 의문 부호가 커다랗게 부각이 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개념이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항상 부딪히고 만나는 부분입니다. ‘상대주의라는 것은 요즘 시대에서의 개념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고, 저는 저의 생각대로 갈게요오히려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일해야 할 때 싸우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요즘의 학문적인 연구 관점에서는, ‘이것이 진리이고 옳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보다는, ‘이것은 틀렸다라며 가지를 쳐내는 작업이 주요합니다.

 

[그림5]

이 그림에서는 훨씬 자아의식이 커졌습니다. 개념이 자아를 보호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멍이 생기고 희미해집니다. 왜냐하면 로고스로부터 단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표현이 되면 여러분은 이것이 우리 시대의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슈타이너는 이런 시대를 좋은 모습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시대에 와서야 인간은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근원지인 로고스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 자유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가? 우리가 근원이라는 것과 단절이 되면서 어떻게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가? 슈타이너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인간 개개인이 근원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인지학에서 이야기하면서, 이것을 명상의 길, 수련의 길, 수도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수도의 길이 근원지까지 도달한다면, 정신세계에서 응답이 올 것입니다. 이러한 고단한 시도는 인간 스스로에게 새로운 의식성을 가져다 줍니다. 지금은 아주 조그마한 상태이지만 새로운 의식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것을 슈타이너는 고대 인도에서 표현된 마나스(정신자아)’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의식혼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을 상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식>

 

여기 계시는 분들과 한번만 만나는지, 또 만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조망에 대해 한번 언급을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상세하게 조망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에 한번 더 깊이있게 들어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전체적인 조망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반적인 역사 수업은 5학년 때 시작합니다. 사실 역사 수업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신화 또한 역사의 한 장르입니다. 모든 옛이야기나 동화도 역사 수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에서, 또는 역사 수업이라는 개념에서 시작하는 것은 5학년 때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교사가 되어서 일을 시작할 때,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5학년들은 마치 작은 그리스인과 같습니다.” 학급을 운영하면서도 이 말이 맞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5학년 아이들이 작은 그리스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5학년 시기는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조화를 이룬 시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인 현실에서는 많은 것을 강제하는 분위기여서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느끼기에는 작은 그리스인을 뛰어 넘어서, 로마 시대로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 로마 사람들이 근육질에, 강하고, 목소리가 커서 그렇게 느낀 것 같기도 합니다. 자신의 반 아이들을 보면서, 교사는 아이들이 어떠한 단계에 놓여져 있는지를 잘 견주어보고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뛰어넘었다고, 역사 수업을 그리스에서 로마로 뛰어 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잘 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유럽 상황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여러분 시각으로 바라봐야합니다. 로마는 여러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 온 시대이고, 독일은 또한 그 관계 안에 있습니다. 많은 독일인이 로마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그리스 또한 역시 많은 관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발도르프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일부까지 5학년에서 다룹니다. 그런데 5학년과 6학년 사이의 경계점은 교사라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그 다음의 단계는 사춘기의 발달 단계와 밀접합니다. 8학년 아이들의 내면의 요청은 현재의 시점까지 삶의 감정을 끌고 와야 합니다. 늦어도 9학년 때에는 2011년 오늘 이 현재까지 와야 합니다. 지금 시대인 포스트모던 시대까지 와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 시대를 1918년 정도부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포스트모던은 시대를 정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8, 9학년 아이들이 지금의 이 시점까지 역사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세계와 자기 세계와의 단절감은 이 시대 아이들의 특징이자,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이 시기 아이들의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기를 상세히 구분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7학년의 시기에서 본다면 새로운 시대를 이야기를 할 때, 세상에 대해서 탐험의 시대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항해의 시대, 신대륙 발견의 시대에 배가 대양을 운행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의 영혼 상태가 자신의 감정적인 상태와 연결이 되어서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당시의 경험은 감정적으로 밀려왔다가 흩어져서 사라집니다. 그때 새로운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는데, 맞이하는 상황이 이국적인 상황(마약 체험 등)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에서 발견하는 것이, 다른 한편에서는 보존하고 견지했던 문화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양면성을 가지게 됩니다. 식민지의 형태가 아주 오래된 문화와 풍습을 망가뜨리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콜롬버스나 마젤란처럼 항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도덕적인 부분 또한 사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도덕적인 부분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7학년 때 1500~ 1700년 시대를 다룬다면, 8학년 때는 발명의 시대를 다루게 됩니다. 발명은 발견의 시대와 같은 맥락이 있으면서도, 이는 기술적인 영역이 포함됩니다. 증기 기관에서 개인 컴퓨터까지의 발달 과정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8학년의 현대 시점까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슈타이너가 이야기하기를, 8학년 아이들은 전화기나 기차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기능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 물리나 화학교사의 도움을 받아서 기능적인 부분이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함께 협력해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전체적인 조망을 해 보았습니다. 질문을 받겠습니다.

 

 

Q) 동양에서는 조금 다른 흐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것에 대한 견해가 있으신가요?

-> 일단 오늘 그 주제를 다룰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과 함께 대화를 통해서 풀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세미나가 연속되면서 동양에 대해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제 의견은, 오늘 설명드린 전반적인 맥락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Q) 중세 시대를 6학년 로마 이후에 다루고 7학년에 넘어가야 되나요?

-> 6학년 때 로마와 중세시대를 다루는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중세시대와 로마를 하나의 시대로 묶었습니다. 로마가 상징하는 것, 로마인의 두꺼운 옷이 상징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일수록 인류의 과정에서 하나의 옷으로 설명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와 중세를 하나의 연결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Q) 6학년의 로마와 중세 둘 다 정말 많은 것들이 있는데, 어떤 것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하나요?

-> 여러 가지 많은 자료들과 상황들과 일들이 있었는데, 굳이 그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계산을 정확하게 하고 계획해서 도시를 건설하고, 다리를 만든 로마인들의 사고방식과 정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로마군인들의 훈련을 통해서 유지해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다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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