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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본문

책소개 및 서평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9. 3. 12:52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데이브 마고쉬(지은이), 김주연(옮긴이), 우석균(해제)

낮은산 2012-02-20

원제 : Tommy Douglas: Building the New Society (1999년)

 

책소개

 

캐나다 무상 의료의 아버지, 토미 더글라스의 한 위대한 정치인의 전기인 동시에, 캐나다 진보 정치의 역사를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 토미 더글러스와 CCF가 모두가 평등한 사회,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이야기하며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서스캐처원 주의 많은 사람들은 ‘그저 꿈꾸는 사람들의 몽상’이라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토미 더글러스가 하원의원으로 평등과 복지, 자유와 평화를 무시하는 게으르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실제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는 모습에 사람들은 점차 토미 더글러스의 진심을 이해하고 그의 정치를 믿기 시작했다.

토미 더글러스와 CCF는 말뿐인 정치, 정책 없는 정치, 실패한 뒤에는 변명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한마디로, 준비된 정치, 실현하는 정치, 장기 계획을 갖고 있는 정치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가 지금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는 요행을 바라거나 선동하기보다는 직접 실천하는 것을 중요하게 이야기했다. “어느 날 단추를 한번 누르면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낡은 사회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는 유기적으로 변해 갑니다. 낡은 것을 벗겨 내면 새로운 것이 그 자리에 생겨납니다. 당신이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변화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목차

 

1 두 나라를 오간 어린 시절
2 권투 경기장과 무대 위의 젊은 날
3 교회에의 헌신
4 황량한 건조 지대의 열정적 목사
5 목사에서 정치인으로
6 의회의원이 되다
7 서스캐처원에서의 승리
8 주지사 토미 더글러스
9 훌륭한 지도자
10 무상 의료를 위한 싸움
11 새로운 도전, 그리고 내려놓음

자료1 서스캐처원 주와 캐나다의 메디케어 도입 과정
자료2 토미 더글러스의 생애와 캐나다와 세계의 역사
해제 토미 더글러스와 캐나다 메디케어는 지금 한국 사회에 무엇을 말하는가

 

*

 

“의사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및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공동대표

 


모든 의료개혁은 의사들의 집단적 저항 (또는 의사파업)을 극복하면서 이루어졌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의료개혁에는 의사들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무상의료제도 도입시 의사들의 집단 저항부터 캐나다의 현재 의료제도의 도입과 이에 저항했던 의사파업, 칠레의 아옌데 정부의 의료개혁에 맞서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의사파업까지. 모든 의료개혁의 길목에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있었습니다.   


의료제도는 의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의지에 반대하는 의사파업은 기득권자들의 저항일 뿐, 의사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현 정부의 의료개혁은 매우 미흡한 개혁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미흡한 개혁에도, 코로나 19 대유행 시기에 극단적인 파업으로 저항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다시한번 의사집단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어떤 의료개혁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래 글은 2012년 출간된 토미 더글러스 평전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낮은산, 김주연 역, 우석균 해제)에 실린 제 졸문인 <해제 글>의 캐나다 의사파업에 대한 부분입니다. 


토미 더글러스는 <가장 위대한 캐나다인>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캐나다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캐나다인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민영화된 미국의 의료제도와는 전혀 다른 유럽형, 즉 무상의료에 가까운 보건의료개혁을 이루어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보건의료개혁에 중심에 사스캐처원 주에서의 의료개혁과 이에 저항한 23일간의 의사파업이 있었습니다. 캐나다 민주당 주 정부는 이 23일간의 파업을 극복하고 오늘날의 캐나다 의료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조금 긴 글이지만 현재 의사들의 집단거부 사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글이라서 옮깁니다.

 

*


새스캐처원 주의 의료개혁과 의사파업

1959년 CCF(현 캐나다 민주당의 전신)는 선거 공약으로 병원 서비스에만 적용되던 무상 의료 제도를 모든 의료 서비스로 확대하는 메디케어의 설립을 제시한다. 이것은 1944년 첫 집권 때부터 이미 입원 서비스에 적용하였던 무상 의료를 이제 전체 의료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무상 의료의 전면적 시행이 이루어지면, 이러한 “사회주의 의료”아래서는 “획일적인 진료”를 강요당하며 의사들은 “노예노동”을 하게되며 “의사-환자관계가 침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미 더글러스가 주지사 직을 후임 로이드에게 이양하고 신민당 당수직을 맡은 이후로 법 집행이 미루어지고 의사들의 파업 위협에 따른 협상을 벌이는 사이 새스캐처원 의사협회는 파업과 캠페인을 조직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 시간 동안 의사협회와 정부에 반대하는 자유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우리 의사를 지키자” 위원회를 새스캐처원 전지역과 캐나다 전지역에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의 지도자들은 주로 자유당 인사들과 그 지지자들로 이루어졌다. 새스캐처원 의사협회는 미국의사협회의 조직방식을 학습하여 주요 의사를 중심으로 소그룹으로 의사들을 조직하였다. 물론 새스캐처원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주정부는 영국에 특사를 파견하여 파업이 실행될 시 의료공백을 메꿀 의료진을 모집하였다. 이 의료진 중 일부는 파업 전에 새스캐처원에 도착하기도 하였다.  


이 파업은 새스캐처원 뿐만 아니라 캐나다를 넘어 미국 전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62년 5월은 미국의사협회가 케네디의 의료개혁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1960년 6월 30일 파업 하루전 캐나다와 미국의 모든 신문이 의사들 파업 전야라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의사들의 파업은 23일간 지속되었다. 이 파업은 “우리 의사를 지키자” 위원회의 지원과 특히 새스캐처원에서의 자유당 당수인 대처를 포함한 전폭적 공개적 지지, 자유당 당수의 캐나다 의사협회의 공개적인 재정지원, 보수언론의 공개적 지지 속에 준비되고 전개되었다. 행진, 청원 공개토론 및 광고가 동시에 전개되었다. 이들의 행진에서는 “유태인의 코, 중국인의 변발, 중세풍의 옷을 입은 의사”를 그린 “새스캐처원 정부 수입 의사”라는 전형적인 인종주의적 캐리커처가 등장했다. 


그러나 파업 첫날부터 9개월된 아기가 의사들을 찾아다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기사가 『뉴욕 타임즈』에 실렸다. 그들의 의사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던 주민들이 하루만에 의사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스스로가 조직하여 새로운 의사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의사협회와 자유당이 조직한 6월 11일의 행진이 애초 주최측이 기대한 10분의 1에 불과한 4,000명 밖에 모으지 못하자 - 그리고 여기에는 간호사와 약사, 의대생들과 같은 의사협회가 동원한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 파업은 계속 진행되었지만 의사들이 소리없이 복귀하기 시작하여 문을 여는 병원도 늘어났고 복귀하는 의사가 늘어나면서 응급실을 열고 있던 병원도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났다. 응급실을 지키던 의사들의 탈진에 대비한 응급의료 지원 의료지원팀이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조직되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새스캐처원의 주민들과 캐나다 주민들의 압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 무상의료제도 도입의 조력자였던 의사 테일러 경이 영국에서 날아와 의사협회와 새스캐처원 의사협회와 중재에 나서면서 23일간의 파업은 끝을 맺었다. 물론 이 파업으로 끝은 아니었다. 68년 캐나다 전역에 무상의료제도가 도입될 때에도 캐나다 의사협회는 반대를 하고 반대캠페인을 전개했지만 다시 파업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새스캐처원의 CCF는 1964년 선거에서 자유당에 패배한다. 이 선거의 패배는 의사들의 파업이 하나의 원인이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선거의 패배조차 CCF가 이루어낸 무상의료제도의 지속을 막지 못했고 파업지지에 앞장섰던 자유당조차 1964년 집권후에 이 무상의료제도를 다시 되돌리지 못했다. 


모든 개혁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침해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 개혁은 어느 사회에서나 그 기득권층의 저항을 넘어설 때에만 진정으로 사회적 개혁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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