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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알아차리기 : "내가 옳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6. 29. 10:31

마음 알아차리기 : "내가 옳다"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우주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우주 내 모든 존재는 우주의 섭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섭리에 따르기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의식적으로 깨어나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자 하며, 동시에 섭리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서 고통을 겪습니다. 이 모순 속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집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의식이 깨어난 존재로서 인간은 유일하게 자의식을 갖습니다. 동물 역시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낮은 수준의 언어생활을 하지만 자기 사고를 반성적으로 돌아보지는 못합니다. 인간은 반성적 사고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된 기억으로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여기에 고통의 씨앗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성, 즉 이기심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정신적인 우주 공간에서 인간이 이 지상의 세계로 올 수 있는 것은 반감(Antipathy)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밀어내어 분리하려는 힘인 반감이 우주와 인간 존재 사이에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와 인간이 동시에 서로를 밀어내면서 하나였던 둘이 분리가 되고, 고유한 과제를 가진 인간이 지상에 태어납니다. 이 반감은 계속해서 인간 내면에 작용하여 의식을 깨웁니다. 반감이 강하지 않다면 인간은 표상과 기억, 개념적 사고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반감에 의해 사고를 할 수 있고, '나'라는 정체성이 확립되어 갑니다.

 

반감은 반사회적 힘을 가져옵니다. '나'를 드러내고 내 뜻을 주장하면서 다른 '나'들, 다른 주장들과 대립하게 됩니다. 이것은 호감(Sympathy), 즉 사회적 힘으로서 '나'를 내려놓고 타인의 뜻을 받아들이며 융합하는 흐름과는 반대입니다. 그러나 반감과 반사회적 힘이 비도덕적인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힘이지만 균형을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반사회적 힘이 갈등을 야기한다고 해서 없어져야 할 것은 아닌 것처럼 지나친 사회적 힘도 한 사람의 주체성을 약화시킵니다. 지나치게 호감이 강한 사람은 오히려 반감을 키워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자의식을 갖는 인간으로서 자기중심성은 필연적일 수 있지만 그러한 상태로는 세상을 왜곡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의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렌즈입니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우리의 보편적 과제는 왜곡되지 않은 렌즈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자기 인식과 자기 죽음이 뒤따릅니다.

 

객관성은 자기 인식 없이는 확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다른 사람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고, 주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관성을 갖고 살되 메타인지를 통해 객관성이 확보될 때 성숙한 시선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정말 어려운 일은 인식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의 변화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아는 건 많지만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죽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한' 렌즈를 고집하며 고통 속에 사는 게 아닐까요. 상징적인 표현임에도 죽는 건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죽고 거듭나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여기에서 죽어야 할 것은 기존의 관점, 태도, 입장 등입니다.

 

우리가 무언가 의지를 낼 때 거기에 '내가 옳다'는 생각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입니다. 의지가 온전히 호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 반감의 발로일 때, 거기에는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위가 주변 상황의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적 욕구일 때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제가 많이 읊조리는 말은 '내가 뭐라고...'입니다. 정말 내가 뭐라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현실과 싸우는 것일까요? 정의를 세우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강한 상태에서 접근하는 것과 '이 상황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일까?'라고 질문하며 접근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내(내 감정? 내 생각? 내 욕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이 우주에서 올 때는 반감으로 왔을지 모르지만, 다시 우주로 돌아갈 때는 반감이 없는 상태로 가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반감과 호감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성숙한 마음의 상태를 공감(Empathy)이라고 할 때, 우리의 과제 중 하나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반감을 알아차리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자기 인식이라면, 강해진 반감을 내려놓는 게('내가 뭐라고...') 자기 죽음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럴 때 미워하는 마음 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고, 진정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은 '너(희)는 틀렸지'를 깔고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신념처럼 유지된다면 갈등을 부르는 렌즈의 왜곡을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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