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 깊이 읽기 –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1) 본문

인지학/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인지학 깊이 읽기 –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 3. 05:43

인지학 깊이 읽기 –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1)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주교재는 이정희 박사님이 번역한 <발도르프 아동교육>입니다. 이 책의 1장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이라는 소책자가 나온 것은 1907년이니 10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21세기 우리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새롭고 시의적절합니다. 이 책에서 슈타이너가 제기하는 질문들은 우리 사회의 본질적 문제들을 건드립니다.

 

첫 번째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날의 삶은 우리가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것들에 다양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 20세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유럽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슈타이너는 186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납니다. 그가 주로 활동한 무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 등으로 모두 독일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입니다. 이듬해 1862년은 프로이센, 즉 당시의 독일 연방에 비스마르크가 수상으로 등장하던 때입니다. 그는 ‘철의 수상’이라고 불렸지요.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산업화가 늦었던 독일은 국가주도의 산업발전이 왕성하게 일어납니다. 우리로 치면 박정희 독재정권 때의 급격한 산업발전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압축 성장이 독일에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수많은 혁명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하고,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당시 유럽인들은 전근대적 유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당시의 질문들은 바로 “사회 문제, 여성 문제, 교육 및 학교 문제, 법적 문제, 건강 문제 등”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정부 이후 보수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가 다시 퇴행했고 국가권력은 시민들의 삶을 짓밟았습니다. 이때의 두 전직 대통령은 국가권력을 편취해 사적 이익을 추구한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지요. 촛불 혁명 이후 재벌 개혁, 검찰 개혁, 언론 개혁 등의 요구가 드높지만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여전히 공고합니다. 이밖에도 미투 운동이 촉발한 여성 문제, 얼마 전에는 n번방 사건이 큰 이슈였고, 최근에는 낙태죄 폐지가 중요한 성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혁신학교 운동이나 코로나 사태에서의 비대면 교육 문제, 회복적 사법 운동, 그리고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촉구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촉구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이런 저런 처방을 제기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지적하며, 그래서 급진파, 온건파, 보수파 등등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말하지요. 2문단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많은 이가 삶을 개혁하고 싶어 하지만, 삶의 진정한 토대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삶(Leben)은 세상 또는 사회, 실생활 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미래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안하려는 사람은 삶을 단지 표면적으로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을 깊숙이 탐구해야 한다.”

 

삶 또는 실생활에 세 가지 층위가 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우선 눈에 보이는 표면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행위, 합의된 약속 같은 것입니다. 그 안에는 내면이 있겠지요. 저는 감정과 욕구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위는 감정과 욕구의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근본 또는 근원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소질, 소명, 과제, 카르마 등입니다.

 

삶의 세 층위

 

표면 – 언어와 행위

내면 – 감정과 욕구

근원 – 본성, 소질, 소명, 과제, 카르마 등

 

3문단에서 슈타이너는 인간의 삶 전체를 식물에 비유합니다. “식물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미래 상태를 자기 안에 깊이 감추고 있다.” 작은 씨앗 안에 식물의 한 생애, 아니 무성한 숲 전체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식물의 비유는 괴테의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젊은 시절 괴테 전집 발행 사업에서 괴테의 자연학 분야를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괴테(1749-1832)는 보통 소설가나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주로 바이마르에서 공무원(나중에는 재상직에 오르기도 하죠)으로 일했고, 스스로는 사람들이 자신을 자연학자, 즉 과학자로 봐주길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라이벌을 뉴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뉴턴의 기계론적인 역학을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유기체적 과학 연구를 펼쳐 갑니다. 색채론,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등 많은 자연과학 연구서가 있습니다.

 

괴테의 식물학에 따르면 꽃은 잎의 변형입니다. “줄기에서 잎으로 확장해 매우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된 바로 이 기관이 꽃받침에서 수축했다가 꽃잎에서 다시 확장한다. 마지막으로 열매로 확장하기 위해 생식기관(수술과 암술)에서 다시 수축한다.” <식물 변형론>에서 괴테는 정원의 장미를 관찰하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꽃 구조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밝혀지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이러한 관점을 인간의 삶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4문단에 “우리 시대는 표면에 나타나는 것에만 집착한다. 외형적 관찰로는 알 수 없는 것을 파고들면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든다고 믿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이것은 경험주의 과학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읽힙니다. 현대과학에서 경험주의 또는 실증주의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이미 폐기되었지만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영향력이 큽니다. 지금 당장 눈으로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이 전부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경험주의가 여전히 강력한 분야가 바로 주류 경제학입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 현상의 표면에 머무르며, 현상적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실상은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에 감춰진 천성을 뚫고 들어가 그 본질까지 도달한다면 삶의 미래에 관하여 무엇인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문단의 이 문장에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그럼에도 미래는 결정론에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파악했다고 해서 미래를 단정지어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데카르트나 뉴턴식의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달리 현대과학은 우연이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양자역학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확률론입니다. 원자 속의 전자의 위치는 확률로 파악할 수 있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결정론이 지배하는 폐쇄 체계가 아니라 우연과 확률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개방 체계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 즉 구조와 체계, 기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지 않고 표면의 현상만 보면서 아무말이나 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6문단에서 슈타이너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과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슈타이너는 인지학을 ‘정신과학’이라고 명명합니다. 여기서의 정신과학은 딜타이를 비롯한 철학자들의 작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슈타이너는 자신의 작업을 자연과학과 동일한 과학으로 보았고, 엄밀한 과학의 방식으로 정신세계를 탐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존의 자연과학이 물질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 때, 인지학, 즉 정신과학은 정신과 영혼, 물질적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는 점에서 좀 더 포괄적이고 총체적입니다.

 

 

 

(이어서)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