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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깊이 읽기 –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2) 본문

인지학/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인지학 깊이 읽기 –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 10. 17:45

인지학 깊이 읽기 –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 (2)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삶의 본질을 담고 있는 쓸모 있는 세계관을 제공한다는 과제는 그 성질상 정신과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6문단에서 슈타이너가 힘주어 말하는 요지는, 정신과학이 단지 지적 유희를 위한 이론이나 개인의 영적 성장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리적 현상, 즉 물체의 운동이나 빛과 소리 등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필요하고, 물질의 조성과 성질 및 이들 간의 상호 작용을 알기 위해서는 화학이 필요하며, 생물의 생명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삶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정신과학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삶의 크고 작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에 정신과학인 인지학은 큰 도움이 됩니다. 아직 우리는 정신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슈타이너는 8문단의 첫 문장에서 정신과학의 전제들이 전적으로 삶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 또는 인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은 관념에 따른 철학이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바로 '전제'라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당히 많은 전제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옛 사람들은 지구가 가만히 있고 태양과 하늘이 돌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건 신이 머물고 있을 거라고 가정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다, 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생각입니다. 천동설을 믿고 있는 사람이 이제는 없겠지요? 물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극소수 존재하긴 합니다. 물론 그들의 전제는 우리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과학은 이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전제합니다. 좀 이상한 말입니다. 세상이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대철학자들은 과연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회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철학자들의 그런 태도를 웅변합니다. 철학자들은 우리 세계관의 모든 전제를 전부 의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비해 과학자들은 "세상은 존재해! 그런데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이런 확신을 갖고 자연을 탐구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철학자들보다 더 훌륭한 연구 성과를 우리에게 제공했고, 우리는 철학자의 말보다 과학자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은 물질세계뿐 아니라 정신세계와 영혼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전제합니다. 인간에게도 신체뿐 아니라 영혼과 정신이 있다고 말하지요. 그렇다면 영혼과 정신이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영혼, 즉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겠는데, 정신 또는 영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현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에게 영혼이 실재하느냐, 의식이란 무엇이냐가 여전히 논쟁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이 문제가 전제, 즉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논쟁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 영역에서 검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싸운다고 해서 유의미한 결론이 나올까요? 결국 어떤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사느냐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신 연구는 어떤 프로그램을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프로그램을 읽어 낸다." 33쪽의 마지막 문장인데요, 이건 우리 교육자들에게도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학교 현장에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이 그저 프로그램을 나열하는 일에서 끝난다면 그건 진정한 교육이 아닐 것입니다. 교육은 삶이 되어야 하고,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유용한 프로그램을 읽어 내어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들은 전체 수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통합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물론 아이들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발도르프 교육은 정신과학의 방법을 교육 문제에 적용한 것입니다. 10문단을 보면 "어떤 주장을 펼치거나 프로그램을 내놓기보다는 아동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 볼 것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교육이란 오로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올바른 교육관이 저절로 형성될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되어 가는 인간, 성장하는 인간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네 가지 층위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물질체, 에테르체(생명체), 아스트랄체(영혼체), 자아체가 그것들입니다.

 

"감각적 관찰로 사람에 대해 알아낸 것, 그리고 삶에 관한 물질주의적 견해가 사람의 본성에서 유일한 요소로 간주하려 드는 것은 바로 물질체der physische Leib이다." 12문단부터 4구성체에 대한 설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물질체를 영어로 한다면 'physical body'입니다. 국내에서는 번역자에 따라서 이 용어가 육체, 물질 육체, 신체, 물질적 몸 등으로 혼재되어 사용되는 실정입니다. 개인 번역자들이 각자 판단에 따라 번역을 해왔기 때문인데, 용어 통일에 관한 작업은 앞으로 계속 필요한 일입니다.

 

35쪽 맨 위에 "이 물질체는 물질적인 생명과 동일한 법칙을 따르며, 소위 무생물계 전체와 동일한 물질적 소재들과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나옵니다. 여기에서 '물질적인 생명'이라는 말이 다소 의아하긴 한데요, '물질적 존재'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물질체는 우리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따라서 광물계 전체와 우리는 물질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식물계, 동물계도 물질체를 갖고 있으므로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광물계에서 온 물질체를 기본으로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물질체는 "무기질계에 작용하는 동일한 법칙에 따라, 그리고 무기질계와 동일한 성분으로 혼합, 결합, 형성, 분해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확인할 점은 '물질계 = 무생물계 = 광물계 = 무기질계'입니다.

 

우리의 물질체가 광물계의 구성요소들과 동일한 법칙을 따르며 동일한 성분으로서, 물리적-화학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연과학이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지요. 그런데 자연과학에서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슈타이너는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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