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비국가 사회와 국가의 분쟁 해결 방법 비교 (1) 본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비국가 사회와 국가의 분쟁 해결 방법 비교
어제까지의 세계 - 전통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강주헌 옮김, 김영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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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해결에서 국가와 비국가 사회는 공통적으로 두 가지 방법을 택한다. 하나는 분쟁 당사자들이 상호합의에 도달하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전자의 방법이 시도되지만 실패하는 경우) 다툼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법이다. 비국가 사회에서는 상호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보상 협상이 실패하면 폭력으로 치닫기 일쑤이다. 비국가 사회에는 불만을 가진 당사자가 폭력적인 수단으로 목적을 이루려는 행위를 억제할 만한 중앙 국가기구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기 때문에 폭력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상습적으로 비국가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국가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시민들이 서로 폭력을 행사하는 걸 차단함으로써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고 개선하는 것이다. 내적인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의 중앙 정치권력이 보복을 행사할 권리를 거의 독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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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유지는 국가가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이다. 약 5,400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최초의 국가 정부가 탄생한 이후로, 사람들이 압력만이 아니라 다소 자발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포기하고 국가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며, 세금을 납부하고, 국가 지도자와 관리들에게 개인적으로 안락한 삶을 보장했던 이유, 얼핏 생각하면 모순된 행위가 국가의 그런 역할에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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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법체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개인적인 정의 행사를 강제로 대신하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국가 사법체제의 다른 모든 목적들은 이 목적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특히 국가는 소규모 비국가 사회의 사법체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비국가 사회의 사법체제는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감정을 교감함으로써 과거의 관계 혹은 무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주된 목표이다. 그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미 아는 사이였고, 앞으로도 계속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국가 사회의 분쟁 해결은 국가의 사법체제, 즉 국법에 따라 잘잘못을 결정하는 체제와 현격하게 다르다.
먼저, 국가 사법체제는 둘로 구분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다양한 등급의 법원에서 판사와 변호사가 두툼한 법전을 들고 일하는 건 똑같지만, 형사사법과 민사사법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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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은 국법을 위반해서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 범죄를 다룬다. 민사사법은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게 가한 비형사적 피해를 다루며, 행동의 유형에 따라 다시 둘로 나뉜다. 하나는 계약 위반에서 비롯되는 계약 사건으로, 거의 언제나 돈이 개입된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가해진 피해와 관련된 불법행위 사건이다. 국가에서는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구분하지만 비국가 사회에서는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하다. 개인들 간에 지켜야 할 사회적 행동규범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규정된 제도적 기관, 즉 국가에 대한 범죄를 규정한 성문화된 법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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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소송 천국으로 악명이 높지만, 미국에서도 대다수의 민사 분쟁은 법정 밖에서 해결되며 법정까지 가지 않는다. ... 제3자를 통한 협상을 통해 분쟁 당사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합의를 끌어내지 못할 때, 분쟁 당사자들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방법에 호소한다. 비국가 사회는 폭력이나 전쟁이며, 국가 사회에서는 재판과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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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거래 분쟁을 변호사들에 맡기면, 당사자들이 분노한 개인적인 맞대응을 변호사들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논의로 대체함으로써 분쟁을 가라앉히고, 대립된 양측의 입장이 굳어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 ... 상거래 분쟁에서 뉴기니 식의 진정한 사과에 따른 감정적인 앙금까지 해소되기는 무척 힘들며, 분쟁 해결의 전술로 마지막 단계에서 사과 편지를 받아내는 것이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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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사법이 협상에서 재판으로 넘어가면, 재판의 관심사는 분쟁 당사자 간의 악감정을 해소해서 좋은 관계를 회복시키거나 서로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게 아니다. ... 그들은 재판에 관련된 사건 때문에 소비자와 상인, 교통사고에 관련된 운전자, 범인과 피해자의 입장에서 일회성으로 법정에 함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근원적인 사건과 그로 인한 소송 과정은 양쪽 모두에게 감정의 앙금을 남기지만, 국가는 그런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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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국가의 최우선 관심사는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다. 계약이 관련된 사건에서는 피고가 계약을 위반했느냐 않았느냐, 불법행위가 관련된 사건에서는 피고가 부주의했느냐 않았느냐 혹은 피고가 해를 끼쳤느냐 않았느냐를 판가름한다.
양측의 목적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이 경우에는 과거의 ‘무관계’). 이런 뉴기니 화해 과정의 특징은 다른 많은 전통 사회에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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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식 재판은 어떤 일이 일어났고 누가 그 행위를 했느냐를 따지지만, 나바호의 화해 과정은 그 사건의 결과를 따진다. 누가 상처를 받았느냐? 피해자는 그 사건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가는 민사 분쟁에서 피고가 법적으로 책임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첫 단계를 먼저 해결한 후, 피고가 계약을 위반했다거나 부주의해서 법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확인되면 피고에 의한 피해를 계산하는 두 번째 단계를 시작한다. 계산의 목적은 “원고의 원상 회복”이다. 다시 말하면, 계약 위반이나 부주의가 없었다면 피고가 처했을 상황까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피고를 회복시켜준다는 뜻이다. ... 불법행위의 경우도 비슷하다. 물적 손해보다 신체적 상처나 감정적 상처의 손해액을 계산하기가 훨씬 어렵지만, 법정은 어떤 식으로든 배상금을 계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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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민사사법은 피해를 다루는 데 집중하며, 악감정의 해소와 화해는 부차적 문제 혹은 소송의 쟁점과 무관한 문제로 여긴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결함이다. 과거에도 관계가 없었고 앞으로도 서로 만나지 않을 두 사람(예: 자동차 접촉사고의 당사자들)이 맞붙은 민사 분쟁의 경우, 양측의 동의 하에 각자 상대에게 불만을 쏟아내고 상대의 진의와 고통을 인간적으로 인식할 기회를 분쟁 당사자들에게 제공하는 데 불과하더라도 감정의 골을 해소하고 평생 동안 남을 앙금을 씻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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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당사자들이 재판 이후에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할 경우에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런데 서구 세계의 민사 분쟁에도 이런 경우가 무수히 많다. 예컨대 자신을 두고 이혼하려는 부부, 유산으로 다투는 형제자매, 동업자,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분쟁에 휘말린 경우이다. 법정 소송으로 악감정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감정 상태가 재판 전보다 더 악화되기 일쑤이다.
미국 민사사법의 이런 근본적인 결함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주로 제기되는 해결책은 중재 프로그램을 좀 더 활성화하는 것이다. 중재 프로그램은 지금도 존재하고 분쟁 당사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재자와 가정법원 판사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중재자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들이고, 가정법원은 인력도 부족하고 자금 지원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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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당사자들이 향후에 어떤 관계도 갖지 않더라도 중재가 성공하면 사법체제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예컨대 분쟁 당사자들이 재판에 쏟는 비용의 부담, 판결에 불복하며 상급법원에 항소하는 부담, 돈이 많이 드는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야 해결되는 부담이 줄어든다.
국가 사회들이 중재와 가정법원 판사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면, 많은 이혼 사건과 유산 사건이 지금보다 비용을 덜 들이면서 더 신속하게 해결되고, 분쟁 당사자들의 심적 상처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중재에 추가로 투자되는 돈과 감정적 에너지와 시간이, 모진 법정 소송에 추가로 소요되는 돈과 감정적 에너지와 시간보다는 훨씬 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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