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정원 (치유이야기) - 폴라 볼스 본문
정원
폴라 볼스 지음
김훈태 옮김
소중한 아이나 사랑하는 친척 또는 친구,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을 잃은 가족들을 위해 쓴 치유이야기.
폴라는 다음과 같은 진심 어린 반응을 보고했다. “상실의 고통과 비통함을 겪은 저에게 이 이야기는 언젠가 삶을 새롭게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은 유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올바른 시기에 말이죠) 성장하는 삶입니다. 소중한 추억에 대한 지지, 사랑과 헌신으로 만드는 삶입니다.”
*
옛날 옛날에 아름답고 커다란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곳의 꽃들은 늘 화사하게 빛나서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꽃향기는 강렬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정원은 정원사에 의해 세심하게 관리되었습니다. 정원사는 그곳을 완벽한 상태로 유지했습니다. 새들은 정원 주위의 나무에 둥지를 틀고 온종일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저녁마다 꽃과 나무는 석양에 물들었습니다.
봄날에 피는 꽃들은 그 나라에서도 가장 훌륭했습니다
몹시 아름다운 이 정원에는 그저 산책을 하기 위해 멀리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해마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정원사는 정원 바로 맞은 편에 살았습니다. 아침에는 누구보다 먼저 정원을 찾았고 밤에는 마지막으로 정원을 찾았습니다. 모두가 그곳을 좋아했지만 정원사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바다에서 폭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폭풍이 육지를 향해 나아가면서 점점 그 힘이 강해졌습니다. 폭풍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안전하려면 모두들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폭풍이 육지를 강타했습니다. 건물 잔해가 사방으로 날아갔고, 나무가 쓰러져 도로를 막는 등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폭풍이 정원을 덮쳤습니다. 나무들이 부러져 꽃들 위로 쓰러졌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이 넘쳤고, 새와 동물들은 피할 곳을 찾아 도망쳤습니다. 폭풍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고, 가는 곳마다 황폐해졌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물이 빠진 뒤, 정원사는 완벽했던 정원에 무엇이 남았는지 보러 갔습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정원사는 크나큰 슬픔에 잠겼습니다. 모든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자신이 기울였던 모든 관심과 사랑이 헛수고 같았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것이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고 모든 것이 헛수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은 옮길 수 없었습니다. 홍수로 풀과 흙이 씻겨나가 자갈투성이 땅만 남았습니다. 정원사는 정원의 나무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다시는 그곳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슬펐습니다. 그리고 정원사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쓰러진 나무를 옮기자고 했지만 정원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땅이 황무지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겨울날, 정원사는 먹을 걸 사러 나갔다가 동물들이 풀을 뜯고 있는 작은 밭을 발견했습니다. 관리가 되지 않아 풀이 제멋대로 자라는 밭이었습니다. 정원사는 울타리까지 걸어가 땅을 보았습니다.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정원사는 그 밭에 대해, 그리고 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밭의 주인은 이사를 갔다고 들었습니다.
정원사는 며칠 후에 다시 가서 밭의 커다란 잡초들을 베어내고 구근 몇 개를 심었습니다.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한두 달이 지난 뒤 정원사는 그 밭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구근은 아름다운 봄꽃으로 변했습니다. 꽃들은 잡초 사이에서 무척 예뻐 보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정원사는 밭의 주인에게 연락을 취했고, 놀랍게도 밭의 주인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밭을 내놓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정원사는 꽃을 몇 송이 더 심었고 허브도 심었습니다. 꽃과 허브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관리에 신경을 덜 써도 되었습니다. 허브의 향기가 꽃을 먹는 곤충을 쫓아주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정원사를 도우러 왔습니다. 그들은 정원사가 한 모든 일을 감사해했습니다. 그 땅이 친절하게도 기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졌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정원을 갖지 못했기에 그곳에서 먹을거리를 키울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뻤습니다.
사람들이 힘을 합쳐 농작물과 화초를 가꾸는 걸 보고 정원사는 행복했습니다.
일 년 뒤 다시 봄이 되었을 때, 정원사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몇이 울타리를 넘어 오랫동안 황량했던 정원에 들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그 모습은 긴 세월 동안 잊었던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은 울타리를 다시 넘어와 행복하게 가던 길을 갔습니다.
정원사는 길을 건너와 오래된 나무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갈과 잔해들 사이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화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출처 : 수잔 페로우, 김훈태 옮김, <아픔과 상실의 밤을 밝히는 치유 이야기>, 푸른씨앗,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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