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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처벌이냐 회복이냐 - 회복적 사법에 대하여 (조균석)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처벌이냐 회복이냐 - 회복적 사법에 대하여 (조균석)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10. 1. 11:41

처벌이냐 회복이냐

- 회복적 사법에 대하여

 


조균석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 교수, 회복적 사법센터 소장
취재 글 강화영 / 사진 김승범
참고도서 『회복적 정의 실현을 위한 사법의 이념과 실천』(조균석 외 역)

 

 

 

대개 범죄자에게 온당한 처벌을 내리는 ‘응보’를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응보로 해결하는 사법적 정의는 피해자와 공동체의 필요가 온전히 충족되지 않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 인식해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를 회복하는 ‘회복적 사법’이 등장했는데 사법 현장뿐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에 적용되면서 ‘회복적 정의’로 확장하고 있다. 회복적 사법센터 조균석 소장은 회복적 사법이 평화를 회복하는 사법의 새로운 접근이라 말한다.

 

1974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마을 엘마이라에서 심야에 십 대 소년 두 명이 술을 먹고 창문을 깨고 자동차 타이어를 찢는 등 난동을 부려 스물두 집이 피해를 입었다. 이들은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당시 이 지역의 보호관찰관이었던 마크 얀치가 “가해 소년들이 피해자를 직접 만나는 것이 치유적 효과가 있다”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고 보호관찰관과 가해 소년들은 피해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다. 피해자들은 소년들의 방문과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이고 더는 불안에 떨지 않았다. 법적 처벌 이후 소년들도 안정적으로 다시 지역사회에 편입했고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다. 회복적 사법의 특징은 이러한 구체적인 사례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회복적 사법이란 무엇인가


범죄가 발생하면 대개 국가가 나서서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이러한 ‘응보적 사법’은 처벌에 중점을 둔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손해를 입은 피해자의 욕구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교정, 교화하는 사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간혹 참고인이나 증인으로 참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범인 체포 여부를 통지받는 경우도 드물다. 이런 응보적 사법절차는 진행 과정에서 피해자를 방치해 상처를 악화시키고 두려움, 의심, 분노를 불러와 피해자가 공동체를 불신하게 만드는 폐단을 드러낸다. 이런 응보적 사법의 한계를 감지한 학계와 현장에서 ‘회복적 사법’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회복적 사법은 ‘가능한 한 잘못을 바로잡고 치유하기 위하여, 특정한 가해행위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관여시켜, 피해와 필요, 의무를 함께 확인하고 다루는 과정’이다. 이는 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는데 응보적 사법에서는 범죄를 실정법 위반, 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보지만, 회복적 사법에서는 범죄를 ‘관계의 침해’로 정의하고, 가해자, 피해자, 공동체의 훼손된 관계 회복을 궁극적 목표로 한다.

 


진정한 회복을 이루는 만남과 대화


회복적 사법이 이뤄지려면 우선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진정한 책임은 자신의 행동과 대면해 자신이 가한 해악의 결과를 이해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며 같은 죄를 범하지 않을 내면적 동기를 세우는 것이다. 피해자는 가해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며 삶의 질서와 의미를 회복한다.


또한 “어떻게 가해자의 재범을 멈추게 할까? 어떻게 같은 공동체 안에서 더불어 살 것인가? 어떻게 인생을 미래지향적으로 이끌 것인가?”처럼 장래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다루면서 피해자, 가해자의 원상회복과 통합, 나아가 공동체의 신뢰와 질서 회복에 관심을 기울인다.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은 여러 형태가 있지만 중요한 공통점은 피해자와 가해자, 그 밖의 공동체 구성원이나 사법관계자가 함께 만나 대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조정자가 진행하는 피해자-가해자 회합, 가족이나 당사자와 직접 관련된 인사까지 포함하는 가족집단회합, 참가자의 범위를 공동체 구성원까지 확장하는 서클 방식이 활용되며 사건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한다.


만남이 불가능하거나 부적절한 경우 대리인이나 대변인, 편지, 영상 등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만남이 전제된 직접 대면을 선호한다. 만남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불법 행위를 분명하게 말하고, 가해자가 이를 인정하는 기회로, ‘조정자’인전문 진행자가 관찰하고 안내한다. 적절한 사전검토와 준비, 안전장치를 갖추고 진행되며 조정자는 가해자가 만남을 이중처벌로 느끼지 않도록, 피해자가 용서와 대화를 강요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비판적 쟁점


회복적 사법은 범죄의 개인적, 관계적 측면에 주목하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쟁점이 떠오르고 있다. 하나는 피해자·가해자의 관계회복이 우선이냐, 피해자 회복이 우선이냐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 회복적 사법은 피해자가 범죄에서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했지만, 오히려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회복적 사법이 응보적 사법보다 용서와 화해가 훨씬 더 많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당사자 간의 선택일뿐 어떠한 압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가해자 회복에 대한 논의도 많다. 많은 가해자가 범죄행위를 일으키지만, 동시에 불합리한 혹은 불의한 사회구조의 피해자로 볼 수 있는데, 과연 이들의 회복을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가의 문제다. 이외에도 회복적 사법에 형사절차를 어느 정도 결합해야 하는지, 성폭력 같은 예민한 범죄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마을의 화합을 이끌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있는 ‘형사조정제도’는 회복적 사법 이념이 가장 활발하게 적용되는 제도다. 신뢰할 수 있는 형사조정위원이 형사사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를 중재하고 양쪽 주장을 절충하여 화해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2015년 3월, 전남 영광군 백수읍 천기마을에서 형사조정제도를 통해 갈등을 회복한 사건이 있었다. 천기마을 주민 최 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주민 전 씨가 길가에 쌓은 비료 포대를 들이받고 숨졌다. 전 씨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받았고,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전 씨는 수년 전부터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라며 억울해했고, 유족은 충분한 사과를 받지 못하자 격분했다.


마을 주민까지 싸움에 휘말리며 마을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 광주지검에서 읍사무소를 방문해 형사조정위원회를 열고 전 씨와 숨진 최 씨의 아들이 만나도록 했다. 2시간이 넘는 마라톤 중재 끝에 전 씨는 자신의 행동이 범죄에 해당하여 처벌받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유족에게 사과했다. 전 씨는 합의금으로 900만 원을 주기로 했는데 사흘 뒤에 유족은 ‘사과로 만족한다’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검찰이 전 씨를 기소유예하면서 사건은 종결됐고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다.


형사조정 없이 처벌만 했다면 마을 주민끼리 신뢰가 파괴되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회복적 사법에 기초한 형사조정은 공동체 분쟁 해결과 범죄 피해 회복에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삶 속의 회복적 사법


회복적 사법 이념은 과거부터 존재했고, 개인을 넘어 가정, 학교, 사회, 국가로 확장해왔다. 전통적으로는 조선 시대 향약을 들 수 있는데, 향약은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마을 자치 규약으로 마을에서 절도, 상해, 폭행 등이 일어나면 사건 당사자와 마을 어른들이 모여 잘못은 야단치고, 사과와 배상을 통해 해결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도 범죄가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두고 지역 부락민 모두 둘러앉아 한마디씩 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았다.


회복적 사법이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된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한 국가의 체제를 전환하는 시기에 흑백인종 갈등 같은 오랜 사회악을 청산하는 데 회복적 사법이 효과적임을 보여주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감옥에서 풀려나 대통령이 된 후 백인에게 보복하는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면 사면받도록 했다. 희생자와 유족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고, 피해자의 요구와 가해자의 책임, 의무를 명확히 해 평화로운 방식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끌어냈다. 이는 훼손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선행돼야 하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관계를 회복하는 회복적 사법 실현이 꼭 필요하다. 회복적 사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 피해자와 가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돕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해결을 이루고자 한다. 회복적 사법은 사회 구성원 모두 피해자와 가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돕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해결을 이루고자 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정신·심리 회복, 범죄 트라우마의 치유 비용까지 생각해야 한다. 또 가해자를 범죄자, 전과자로만 보는 태도를 지양하고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한다.


회복적 사법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하려면 회복을 끌어낼 수 있다는 의지가 우리 안에 퍼지도록 노력하고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회복적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출처 : <월간 아버지> 2017년 3월호 http://www.father.or.kr/board/read.action?id=zine&pageNum=2&sm=060300&p_del_chk=N&no=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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