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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몽클레르는 벗어도 사교육은 못 줄이는 이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 3. 7. 14:55

몽클레르는 벗어도 사교육은 못 줄이는 이유

 

황보연 기자
2025. 03. 06.
 

개그우먼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이 역대급 조회수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대치동 엄마들의 교복이라는 몽클레르 패딩과 영어를 섞은 교양미 넘치는 말투에 ‘현실 고증’이 놀랍다는 반응이 적잖았다. 어디선가 한번쯤 본 것 같다는 간증이 쏟아졌다. 차림새만큼이나 주목받은 것은 4살 아들에 대한 사교육 밀착 지원이다. 이소담씨는 아들 제이미를 수학학원에 ‘라이드’한 뒤 차에서 내릴 새도 없이 영어학원 선생님과 통화를 한다.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고 제기차기 과외 선생 면접을 보러 가는 그는 제이미의 ‘영재적 모멘트’를 찾느라 분주하다.
 
‘극성맘’이라는 공격이 가해지며 어느새 풍자는 조롱이 됐다. 명품으로 치장한 차림새가 집중포화를 받는 것 같지만, 실은 엄마가 온종일 아이의 사교육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 그것이 자녀의 입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모가 더 많은 탓이다.

 

엄마의 ‘라이드’는 셔틀버스를 잘 운영하지 않는 대치동 학원가의 상징이고, 제이미의 배변훈련 과외는 사교육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인프라 수준을 보여준다. 제이미맘이 걸친 명품은 사교육비를 아낄 필요가 없다는 경제적 여유의 방증이다. 틈틈이 깐깐한 면접을 봐가며 과외 선생을 고르는 것도 축적된 인맥과 정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20여년간 입시 전문가로 일한 조장훈은 대치동을 ‘욕망의 최전선’이자,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하는 곳’이라고 했다.(2021, ‘대치동’) 대치동의 대입 성공담과 부동산 신화는 ‘교육을 통한 계급 상승’에 몰두하는 이들을 광범위하게 불러 모았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대치동 학부모는 4개 그룹으로 나뉜다. 1970년대 아파트를 분양받은 대치동 원주민(대원족), 2000년대 재건축 붐과 함께 재입성한 대원족의 자녀들(연어족),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전세를 얻어온 사람들(대전족), 대치동 학원에 자녀를 ‘라이드’하는 비강남권 거주자(원정족) 등이다.

 
대치동 학원가의 중심은 은마 사거리 인근에서 한티역까지의 구간이다. 실거주자가 되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원정족은 교통수단의 발달과 함께 한없이 유입된다. 가까이는 서울 강북권, 멀리는 경기 동남부까지.
 
학령인구 급감에도 대치동 학원가는 굳건하다. 노골적인 경쟁사회에서 우리 아이만 도태되어선 안 된다는 불안의 크기는 전혀 줄지 않은 탓이다. 학원들은 더 어린 연령대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자녀가 초등학생 때 ‘입시 트랙’을 태워야 한다는 ‘초등 사교육 로드맵’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영어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4세 고시’→유명 영어학원 입학을 위한 ‘7세 고시’→선행·심화 학습 전문 수학학원에 보내기 위한 ‘황소 고시’ 등이다. 고시라는 말이 붙은 건 입학시험 통과에 대비하는 학원 수강이 필요할 정도로 준비 과정이 고되기 때문이다. 15분 만에 영어 에세이를 작성하게 하고 고등 수학인 미적분을 풀게 하는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대치동 패러디도 현실을 다 담기엔 역부족이다.
 

유아기의 과도한 사교육엔 우려가 크다. 어린 시절의 학업 스트레스는 뇌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4~7살은 전두엽 특정 부위들과의 연결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이 시기에 연결망이 과다하게 자극받게 되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김붕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 ‘추적 60분―7세 고시’) 입시 성공담은 크게 회자되지만 더 많은 실패담과 후유증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영유아 사교육에 대해선 그 실태조차 모른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23년 사교육비 27조원에 영유아와 엔(n)수생은 빠져 있다. 온 가족이 자녀의 사교육에 매달리는 기간은 초중고 12년이 아니라 유치원과 엔수생 기간을 합쳐 최소 16년 이상으로 길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행 총재가 강남 출신 학생에 대한 대입 상한선을 두자고 했을까 싶다. 하지만 대입제도를 고치고 교육열을 누른다고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다. 초등학교 일제고사가 폐지되고 석차를 매기지 않았더니, 전국적으로 수십개 지점을 가진 학원이 입학시험으로 아이들을 줄세우기 하고 있다. ‘내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을 공략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꾸니, 유아기에 영어 공부를 끝내고 이후로는 수학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는 공식이 나왔다.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의 힘이 빠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사회에 균열을 내지 않으면 그 양태만 달라질 뿐 문제는 반복된다. 사교육비가 가계 소비를 짓누르고 저출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급여 진료의 팽창과 함께 수직 상승하는 의사 소득과 그에 따른 의대 열풍, 갈수록 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 그냥 쉬는 청년들의 한숨이 모두를 더 격한 경쟁으로 내몬다. ‘대치맘 조롱’에 몽클레르를 벗어 던졌다는 말은 나와도 사교육을 줄였다는 말은 잘 안 나오는 이유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5620.html

몽클레르는 벗어도 사교육은 못 줄이는 이유

황보연|논설위원 개그우먼 이수지의 대치맘 패러디 영상이 역대급 조회수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대치동 엄마들의 교복이라는 몽클레르 패딩과 영어를 섞은 교양미 넘치는 말투에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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