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오늘의교육 84호[특집] 정치적 위기를 넘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채효정 본문
정치적 위기를 넘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12.3 내란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25. 02. 19.
채효정
measophia@naver.com
본지 편집위원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 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먼지의 말》 저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는 ‘군부 독재, 군사 파쇼’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진 못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누구나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금지된 행위를 하면 잡혀가고, 허용된 것 외에는 해선 안 되는 것, 그게 독재고 파쇼였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우리 스스로는 결정할 수 없고 오직 한 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독재자고 파쇼였다. 그 시절 남학생들은 군인처럼 제식 훈련을 하고 총검술을 익혔다. 여학생들은 하얀 간호복 같은 교련복을 입고 붕대 감기, 부목 대기 등 부상자를 치료하는 응급 처치술을 배웠다. 어린이들은 학교에 입학하면 군인들처럼 차렷, 열중쉬어, 경례를 배우고, 포로들처럼 머리에 손을 얹고 이동하거나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군인이 대통령이 되어 군대를 통치하듯이 나라를 통치하는 것, 그래서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명령에 따르는 군인들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 그게 군부 독재였고, 병영 국가, 전시 국가 체제였다.
설마 그런 날이 다시 오랴 했는데, 정말 그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걸까.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0분, 대통령은 갑자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가짜 뉴스가 아닌가 의심했다. 나 역시 국회로 진입한 계엄군과 서울 시내에 등장한 헬기와 장갑차에 충격과 공포를 느끼면서도 영화나 소설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현실감과 비현실감이 뒤섞였다. 국회가 무사히 비상계엄령을 해제시켰을 때까지만 해도 쿠데타 시도는 뭔가 엉성해 보였고, 싱겁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자기 아내의 범죄 수사 특검을 막고자 수하에 부리는 골프 친구, 술 친구인 사적 친분 관계의 군 장성 몇몇을 데리고 저지른 망동이라고 말했다. ...... 방송으로 중계된 생생한 내란의 현장을 국민 모두가 보았고, 탄핵 절차가 시작되면 사태는 곧 마무리될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안이한 판단이었다. 사태는 종결되지 못했고, 대통령의 계엄과 내란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의 부상과 함께 더 거대한 정치적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고위공직자수사처 수사와 영장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와 불복종, 대통령 직무 대리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 대한 보류, 극우 대중운동의 확산과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폭동 사건, 국회 기자 회견장에 등장한 애국청년단과 백골단, ‘평화적 합법적 계엄’이라는 궤변, 극우·보수 유튜버를 통한 가짜 뉴스의 무분별한 확산, 형식적 법 논리에 갇힌 헌법재판소의 심판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진화되지 않은 화재 현장에서 예사롭지 않은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 것을 보는 것처럼 불길하고 불안하다. 그날 이후 내내 묻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여기에 제대로 대답할 때만, 우리는 다가오는 정치적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 대의 정치, 법치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질서의 총체적 붕괴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는 군인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당연히 믿어 왔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는 상황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왜 그걸 그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것일까?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안정되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타협적으로 만들어졌던 자유민주주의 질서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양당 체제의 안정성과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최소한 지배 블록 내에서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정치 세력이 그 룰을 깨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12.3 내란 사태는 그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신화를 박살냈다.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성에 대한 믿음이란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안정성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시민들이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에 맞서며 쿠데타를 저지하는 모습과 탄핵 심판을 촉구하는 광장 민주주의는 당장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 주는 모습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내란과 쿠데타를 지지하는 또 다른 시민들이 등장하고, 전에 볼 수 없던 양상으로 극우 대중운동이 부상하자 이는 다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허약함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민주주의 위기란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지배 체제로서 민주주의의 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에게 닥친 위기이다. 전자가 자유민주주의에 닥친 위기라면, 후자는 자유민주주의가 초래한 위기다. 그런데 지금 말해지는 민주주의 위기와 극복에 대한 담론은 주로 전자에 국한되며, 민중의 민주주의에 닥친 위기는 제대로 진단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두 위기를 분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이 현재 위기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민중의 민주주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불러 온 정치 체제는 정확히 말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였다.❶ 그것은 기본적으로 전후 자본주의 재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구축된 것으로, 산업자본주의에 조응하는 정치 체제다. 즉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선거 정치, 정당 정치, 의회 정치, 법치주의와 그에 기반하여 작동되는 부르주아 대의 민주주의다. 한국에서는 ‘87체제’가 이와 같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정치 질서를 대표한다. 서구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는 전후 고도성장기의 산업자본주의라는 자본의 축적 양식에 대응한다. 그러나 이 자유민주주의적 합의와 질서는,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에 의해 차례로 파괴되었다.
물론 이 자유민주주의 안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만이 아닌 노동자 민중의 다른 민주주의적 요구들도 분명 들어 있다. 동아시아 민중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민주주의 투쟁의 소중한 전범으로 참고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한정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제도화되고 권력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이는 점차 저항을 관리·통제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성격으로 변모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 ‘민중 없는 민주주의’로 차츰 귀결되었고,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미완의 민주주의를 더 허약하게 만들었다. 특히 1997년 IMF 구제 금융 사태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본 권력은 강화된 반면 주권은 자본에 예속되어 점점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믿어 왔던 것이다.
그 ‘공고화’는 대체 어떤 의미였을까. 2016년 촛불 시위는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 다른 지역에서 발발했던 혁명적 민중 봉기와 달리 한국의 촛불 시위는 평화로웠고, 법과 질서를 준수했다. 폴리스 라인을 지키는 집회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칭송되었다. 이런 경험은 저항이 체제를 위협하는 혁명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예방 혁명’의 방법과 자신감을 지배 계급에게 심어 주었다. 이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고조되고 있던 전 세계적 흐름과 상반되는 것으로 ‘관리된 위기’의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였으며, 정확히 그런 관점에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상을 받기도 했다.❷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 자유 시장과 민주 정부의 협치 관리를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여기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신자유주의적 공세 이후에도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노동권과 시민권을 박탈한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인 체제임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절대 상수가 되었고, 그 위에서 정치 체제는 정치적 문화적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권력의 토대를 바꾸지 않고, 상층부의 권력 구조를 바꾸는 것에만 집중하는 한, 어떤 민주화운동, 사회운동도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으며, 자본과 지배 계급은 그런 종류의 시민 민주주의 운동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에 대한 순응을 의미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정당 정치, 의회 정치로 축소된 대의 민주주의, 오인된 법치주의로서의 사법주의에 굴복하는 민주주의는 민중으로부터 민주적 역량을 지속적으로 박탈하고, 민중을 배반하는 ‘가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민주 정치 일반에 대한 근원적 불신을 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쿠데타에서 핵심 동기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부정 선거’에 대한 집착적 의혹은 ‘음모론’이라는 프레임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문제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적 정치 질서를 지탱시켰던 근본적 신뢰와 합의의 붕괴를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드러난 민주주의 정치의 위기는 오랜 위기가 하나의 사건으로 표출되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정권 교체나 제도 개혁 정도로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본주의 체제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그와 함께 흔들리는 정치 질서의 붕괴 속에서 보아야 한다.
돌발한 정치적 위기의 더 근본적인 원인- 사회적 신뢰 체계의 총체적 붕괴
사실 우리가 그동안 독재나 파쇼의 부활에 대해 까마득히 잊고 살 수 있었던 까닭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안정성에 대한 정치적 신뢰보다는 시장 안정성에 대한 확신이 더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❸ 그런데 성장의 맨 앞 줄에 서 있던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도 경제 지표들이 급속히 나빠지고 성장에 대한 전망과 분배를 약속할 수 없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유럽 주요 산업 국가들에서는 성장률이 저하되기 시작했고, 그러자 곧바로 분배 정치는 기각되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되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총체적 파탄을 맞이한 금융 ‘신용’의 파탄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금이 간 사회적 신뢰에 치명타를 가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인) 은행과 시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점은 은행 신용 체제의 와해와 정치적 신뢰 체제의 와해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주의 시장과 정치 제도들은 ‘계약’에 기반한다. ‘계약 사회’의 핵심은 그 계약이 반드시 지켜진다는 신용이다. 이 계약과 신용의 힘이 사라지는 순간, 계약 사회의 모든 기초적 기반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적 신용의 핵심에는 ‘은행’의 신용 화폐와 그 은행에 대한 국가의 보증이 자리한다. 신용이 깨어지고 약속이 불이행되면 시장 경제에 기반한 사회 질서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수립한 화폐에 대한 신뢰는 1971년 금본위제가 무너지면서 처음으로 무너졌다. 가상 화폐에 대한 교환 가치와 자산 가치 인정과 사회적 신용 부여는 화폐 체계 전체에 가한 심대하고도 충격적인 위협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도 시장도 믿을 수 없는 시대란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가만히 앉아서 외환 거래나 부동산 펀드로 하루아침에 수억 원을 벌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평생 모은 돈과 집을 전세 사기로 날리는 세상이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이제 국가는 나라 살림을 세금으로 충당할 수 없어 금융 자본으로부터 빌려야 하고, 그 대가로 주권을 저당 잡힌다. 한국에서는 국민들이 IMF 구제 금융 사태를 겪으며 국가도 부도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화폐 가치와 자산 가치가 하루아침에 재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국가도 하루아침에 도산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였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축도 연금도 미래의 지불 보증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으며, 신용에 기반한 가치의 붕괴와 파탄 목록은, 연금, 저축, 월급, 전세금, 보증금에서, 졸업장, 학위, 자격증은 물론이고, 뉴스의 공신력과 정치의 공약, 법정에서 증인의 선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끝없이 확장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발발한 대중 봉기에서는 공통적으로 파기된 약속과 사라진 보장, 증발하는 미래에 대한 근본적 불안과 분노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❹ ‘대안은 없다’는 신자유주의 선언은 이제 자본의 승리와 자신감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지옥이든 대안은 없으니 여기서 알아서 살든지 죽든지 하라고 하는 민중에 대한 선전 포고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신뢰 체계의 붕괴가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서구 사회에서 구축된 복지 국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연대 제도가 채 자리하기도 전에, 도래한 신자유주의가 공동체 내부에 작동하던 전통적 연대와 신뢰의 규범마저 박살내며 각자도생의 세계로 빠르게 휩쓸려 갔다.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민주당과 사회민주당 등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추동되었는데, 과거 평등과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노동 계급을 대변하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로 돌아섰던 이 시기의 ‘자유주의 반동’은 특히 노동 대중의 정치에 대한 공적 신뢰를 심각하게 붕괴시켰다. 이 때가 유럽에서 극우가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며 부상한 시기로,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입된 이후 약 30년 만의 일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난 극우 세력의 정치적 부상도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고 약 30년 만의 일이다.❺ 지금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극우 세력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극우 정당으로 발전해 가는 시간은 한국에서 훨씬 더 단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극우 정당들은 쿠데타가 아니라 민주적인 선거 제도에 의해 합법적으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은 민중의 정치 역량을 불신하고 민주주의 제도 일반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특히 자유주의 정치 세력은 자신들이 초래한 정치적 위기의 원인을 ‘무지몽매하고 한심한 민중들’에게 돌리며 오히려 폭민화한 민중이 자신들의 권력과 엘리트 정치를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내란 사태 이후 ‘극우 대중’을 바라보는 ‘민주 시민’의 관점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심심찮게 드러난다. 그래서 ‘그들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우 세력을 거대한 악의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어떻게 척결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알려고 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되었는가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치적 반동의 원인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가짜 뉴스 양산이나 유튜브, 알고리즘, 딥 페이크, 인공 지능 같은 기술적 문제에서만 찾아서는 안 될 일이다. 가짜 뉴스의 본질은 우량 채권과 불량 채권을 합성하는 금융 시장의 파생 상품과 유사한 방식으로 온라인에서 합성되는 진실과 비진실의 혼성적 파생 상품에 가깝다. 쿠데타의 동인이자 극우 결집의 핵인 ‘부정 선거론’의 근저에는 그와 같은 신용 체계의 총체적 붕괴라는 더 근본적인 사회 구조적 원인 배경이 자리한다. 지금 표출되고 있는 사건들 이면에서 작동하는 더 근본적인 위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질서와 정치 질서를 설명하고 지탱해 온 모든 합의, 계약, 신뢰, 규칙, 질서들이 파기되고 전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파괴한 것이 누구인지 물어야 하지 않는가. 2020년 트럼프 지지자들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폭동 사건과 2025년 한국에서 윤석열 지지자들이 법원의 구속 영장 발부 결정에 불복하며 벌인 법원 난입 폭력 사건은 그런 점에서 유사한 배경을 갖는다. 우리는 이것을 ‘극우 세력의 폭동’이라는 형식적 유사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신뢰와 규범의 체계들이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있는 장면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관통하는 시간은 그동안의 정치적 합의, 사회적 계약, 그것에 대한 신뢰, 그것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규범과 규칙, 그 위에서 수립된 민주적 자유주의 질서가 해체되면서 거대한 무질서의 시간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시간이다. 정치적 아노미 상태는 시장의 아노미 상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사회의 무질서는 금융 시장의 무질서를 정확히 반영한다. 이 무질서한 불확실성의 세계에서는 경제의 신용 부도 위험만 커지지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정치적 약속이 부도 어음으로 돌아온다.
흔들리는 세계로, 귀환하는 파시즘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면 취직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고 보금자리를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내팽개쳐진 지 오래다. 현재의 노동이 쌓여서 미래의 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현재를 약탈하는 부채 경제가 경제의 일반 양식이 되었다. 금융자본주의의 투자 시간성은 사회의 시간성에도 영향을 미쳐 시간을 점점 단기적인 것으로 변형시켰다. 시간이 점점 더 초단기적인 것으로 변형될 때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게(할 수 없게) 되고, 삶에 대한 예측과 계획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이것은 교육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의 지식들은 점점 더 빠르게 쓸모없는 것으로 변하고, 미래를 위한 지식 투자 또한 점점 더 불확실하게 된다. 먼 미래의 일도, 당장 며칠 후의 일도 예측할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삶을 꾸려 갈 수 없게 만드는 통제 불가능성은 개인을 무력감과 좌절감에 빠트린다. 이 유동하는 세계 속에서 불안이 커져 갈 때, 사람들은 단단하고 안전한 것을 희구한다. 흩어지는 삶을 결속시키는 그 단단한 것이 정치적으로 독재나 파시즘의 형태를 띨지라도, 유동하는 세계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리는 극우 정치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도래한 시간이 천동설의 체계가 무너지고 지동설의 세계가 수립되던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공통의 인식과 규범의 체계들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왔던 원리들이 현실에서 기각될 때, 진리와 비진리,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의 경계가 흔들리고 무너져 내릴 때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과 행위의 기준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이때 불안한 마음에 확신을 주는 주술과 미신, 종교적 광신과 사회적 광기가 출현한다. 미켈 볼트 라스무센은 《후기 자본주의 파시즘》에서 공동체가 와해되고 집단적 정체성이 사라질 때 그것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고 그를 중심으로 결속하려 하는데, 이것이 지금 서구에서 출현하는 파시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 나날이 악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회고적 반동’은 그 가상의 공동체를 옛날의 좋았던 시절에서 찾는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던 과거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노동자와 청년과 노인들이 지금처럼 잉여 인구로 셈해지지 않고 산업 전사로, 나라의 기둥으로, 사회의 어른으로 대접받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과거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현실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유사 공동체, 부족적 종교 집단, (부족화·종교화된) 정당이 과거의 ‘상상된 공동체’를 대체한다.
20세기에 소멸한 줄 알았던 파시즘이란 말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어쩌면 파시즘은 불평등을 심화시켜 온 자본주의 성장의 동체 안에 내재해 있었을 뿐 한 번도 소멸한 적이 없었다. 탄핵 찬반 집회가 대립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을 두고 내전 상태로 진입했다고 하지만 사실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내전 상태였다. ‘내전’의 다른 말이 ‘경쟁’일 것이다. ‘내전’은 무시무시하게 들리지만 ‘경쟁’은 내전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는 신자유주의 교육 체제를 지탱해 온 양대 이념 축이었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라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을 가르고, 무능한 자를 열등한 자로 규정하며, 무능한 자의 도태와 탈락을 마치 자연 도태설처럼 정당화하였다.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인종주의다. 경쟁의 원리는 경쟁에서 탈락한 수많은 사람들을 쓸모없는 잉여 인구로 재배치하고 있다. 인종주의는 열등한 인종, 계급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주입한다. 그 공포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계급과 인종이 자신을 추월하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도록 하고, 필사적으로 저지하도록 한다. ‘중국 혐오’와 ‘여성 혐오’, 계급 혐오‘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계급 투쟁을 개인들 간의 경쟁으로 변형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계급 투쟁의 양상이 계급 내부의 투쟁으로 변화하며, 이것은 피억압자가 억압자에 대항하는 투쟁이 아니라 억압자가 피억압자를 향해 피해의식을 가지고 대항하는 형태로 전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좌절시켰던 정규직의 반발, 돌봄 노동자와 선을 긋는 교사들, 강사의 임금과 처우 개선에 대한 대학 교수들의 반대는 모두 유사한 사례이다. 그것은 중간 계급의 하방에 대한 공포이다. ‘몫을 둘러싼 투쟁’이 더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뺏기지 않으려는 경쟁, 더 높이 올라가려는 것이 아니라 더 떨어지지 않으려는 지위 싸움으로 변한 것이다. 일자리를 줄이고, 권리와 몫을 빼앗아 간 것은 기업이지만 극우는 존엄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엉뚱한 곳에서 손실을 보상해 주겠다고 속삭인다. 여성, 소수자, 약자, 외국인, 가난한 사람과 낙오한 이들로부터 그 몫을 빼앗아 돌려주겠노라고 말이다. ‘중국보다 나은 한국’, ‘여자보다 나은 남자’ 같은 허구적 우월감을 심어 줌으로써 양극화, 위계화된 불평등한 계급 사회로부터 낙오의 공포와 열패감을 보상하려 하는 것이다.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적 국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이런 전체주의적 사고는 경제 영역에서는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선생님들은, 국가가 있어야 자유도 민주주의도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 ‘우리나라는 준 전시 상태의 국가이고 항시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다른 민주 국가의 시민들과 똑같은 권리를 요구할 수는 없다’고 했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말은 늘 전체를 살리기 위해 위험한 국민을 격리, 분리, 배제, 추방할 수 있다고 정당화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국가주의,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요즘은 어떤 교사도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사도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동일한 논리가 시장주의적으로 변형되면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이윤을 위해 생명이 짓밟히고, 돈 앞에서 존엄이 하찮은 것이 되는 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뿐이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도 있다는 말의 시장주의적 표현이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말이다. ‘구조 조정’의 논리는 전체를 살리기 위해 부분을 잘라 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IMF 구조 조정은 하나의 비상사태였으며, 시장 전체주의였고, 자본의 계엄령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동물 집단 감염병이 돌면 전체를 살리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대량 학살이 예방적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허용되었다.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생명 일부를 희생시키는 일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일어난다. 노동자들에게 정리 해고가 그런 것이고, 수업에 방해되는 학생을 교실에서 격리하는 조치가 그런 것이며, 팬데믹 당시 사회의 방역을 위해 감염병 질환자들을 격리하거나, 집단 면역이란 이름으로 질병에 취약한 약자를 먼저 죽게 만들면서 사회의 보호막처럼 활용한 것도 그런 것이다. 생산의 속도와 이동의 속도를 지체시킨다는 이유로 장애인의 이동권을 제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 만들어 낼 국가의 총 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에 비해 수익이 미미한 농업을 희생시킨 FTA도 똑같은 논리에 기반한다. 20세기 파시즘과 21세기 파시즘은 외형상 달리 보일지라도, 내적인 논리는 다르지 않았다. 국가주의적 전체주의가 시장주의적 전체주의로 변형되었을 뿐이다. 예방적 살처분, 예방적 구조 조정, 예방적 격리의 논리는 ‘예방적 비상계엄’의 논리와 동일하다. 위험이 더 커지기 전에 예방적으로 진압한다는 발상은 1970년대 영국의 신자유주의 통치에 도입되어 2000년대부터는 위기 관리 기술로 적극 활용되었다. 테러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빈민과의 전쟁 등은 국가 내부에서 인민을 대상으로 계속 반복되어 수행되었던 다양한 내전의 방식이었다. ‘내란을 방지하는 내란’이라는 이상한 궤변은 이러한 시대와 사회적 토양 속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발상이다. 윤석열은 이 땅에서 생겨났지, 다른 우주에서 온 것이 아니다. 혐오와 차별, 폭력의 시대를 끝내려면 그런 파시스트를 만드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만들 세계에 대한 약속과 우리에 대한 믿음
많은 사람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민주주의 위기’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태가 종식되고 조기 대선을 치르고 정부가 바뀌면 민주주의는 저절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유보된 민주주의, 거부되었던 민주주의, 아직 오지 않은 민주주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민주주의인 척했던 것과 새로운 세상과 함께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민주주의를 분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더 힘센 존재에게 의탁하면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소요를 일으키는 존재들을 ‘엄단’하고, ‘처벌’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화롭고 안전해질까. 폭력에 대한 강력 처벌 요구는 여타의 다른 시민들의 정당한 불복종 저항에 대해서도 강경 진압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법에 가둔 법치주의에 대한 반성 없이 법치주의 수호를 호소하는 것은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사법주의를 더 강화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약속과 신뢰를 다시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약속은 우리가 살고 싶고 만들어 내고 싶은 다른 세계에 대한 정치적 약속이다. 신뢰는 그 약속을 우리가 해낼 수 있고, 지켜 갈 것이라는 신뢰이다. 2025년의 광장에서도 그 신뢰를 다시 조금씩 맛보고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극우 세력에 휩쓸려 갔지만 또 다른 일부는 전혀 다른 장에서 민주주의와 연대의 감각을 발견하고 배워 나갔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중요한 교육학적 희망이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서 누군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배움의 계기를 통해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또한 그것은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사람들의 판단과 업적이 아니라 한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발휘하는 정치적 역량이자 집단 지성이다. 청년들이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광장에 나타나면 대견해하며 박수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손가락질하며 문제아 취급하는 태도는, 민중이 지배 계급의 마음을 불안하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저항하면 ‘성숙한 민주주의’라 칭송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폭민이라 비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에 보지 못했던 깃발이나 노래, 응원봉 같은 시위 양식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 재구축이다. 위태로운 당신들을 홀로 두지 않겠다는 약속은 남태령 이후 곳곳으로 확산되고 지켜지고 있다.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공동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그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광장에서 함께 부르는 〈다시 만난 세계〉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세계의 질서를 다른 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남태령 광장에서 조금 맛보았던 것이라면, 그 경험이 우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돌아온 일상의 정치로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더디더라도 그물을 엮어 가듯이 그 경험들을 조금씩 촘촘히 엮어 가며 우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것, 무너지는 세상에서 존엄을 잃고 불안해하며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극우의 덫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동료 시민의 연대의 안전망에 걸리도록 하는 것,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 경로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12.3 이후 이상하게 나는 예전에 본 영화가 많이 생각났다. 〈런던 프라이드〉는 1984년 대처 정부의 탈석탄과 노조 탄압 정책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반대 시위에 나선 광부들이 경찰에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본 퀴어들은 자신들이 경찰로부터 겪었던 모멸감을 떠올리며 즉각 광부 파업을 지지하는 모금과 활동을 시작한다. 마초적이고 성차별적이던 광부 노조의 일부 구성원들은 게이와 레즈비언의 도움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거부하고, 이로부터 비롯된 갈등은 퀴어 커뮤니티와 노조 내부에서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몰랐던 것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 된다. 언제나 소수였던 퀴어 행진을 많은 탄광 노동자들이 엄호하며 함께 행진하던 마지막 장면은 농민과 퀴어, 페미니스트, ‘빠순이’, ‘된장녀’라 모멸당하던 아이돌 팬클럽 멤버들이 함께 싸우던 남태령과 겹쳐졌다. 그로부터 40년 후, 2024년에 나온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노동조합도 없어진 몰락한 탄광 도시에서 패배자로 살아가는 노동 계급과 이들이 자신들이 누려야 할 복지의 몫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불편한 만남으로 나아간다.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이웃과 동료들을 보며 실망하고 좌절하면서도 그들을 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나는 좋았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인간 존재에 대한 환멸이 생겨나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믿음이 아닐까. 어떤 순간에 우리는 달라질 수 있는가. ‘한심하고 쩨쩨하고 비굴하게’ 살아가던 민중들은 무엇을 통해서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정치적 주체가 되고 도약을 감행해 내는가. 숱한 역사의 장면들 속에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나는 그것을 찾아내고 싶다.
❶ 한국에서는 반공자유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하고, 시장자유주의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자칭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개념 또한 어떤 맥락에서는 보수적 의미로 어떤 맥락에선 진보적 의미로 쓰이며 혼동을 초래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란 반공주의적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 시장과 민주 정부의 결합체’로서 전후 서구에서 자유주의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정치 경제적 질서와 이념을 뜻한다.
❷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독일 혁명을 좌절시키는 데 일조했던 사회민주당 대표이자 바이마르 정부의 초대 총리였다.
❸ 실제로 서구 민주주의는 고도성장기 분배 정치가 작동하는 동안 가장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했다. 일정 소득을 넘어서면 생활 수준과 함께 문화 수준과 시민 의식이 높아지고, 그런 나라에서는 독재 정치가 자리 잡기 힘들다는 민주화의 이행 논리, 즉 경제 발전이 정치 발전을 추동한다는 정치 근대화론은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했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면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져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환경 규제를 강화하게 될 거라는 생태적 근대화론도 이런 생각의 다른 버전이다.
❹ 2014년 그리스 민중 봉기의 도화선은 긴축 정책에 따른 연금 축소였고, 프랑스 혁명 이후 최대 규모라 할 정도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던 2023년 프랑스 전국 총파업 투쟁의 이슈도 연금 개혁 반대 시위였다. 2024년 유럽 전역을 뒤덮은 농민 시위는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하며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농업 보조금 삭감을 강제한 EU와 자국 정부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❺ 1990년대 후반 독일에서 거리에 네오 나치가 등장하는 모습을 충격 속에서 목격했는데, 극우 정당인 대안당(AfD)은 이제 독일 녹색당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는 2024년 조기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집권을 가까스로 막아 냈고, 덴마크는 지방선거에서 극우에 가까운 농민당이 가장 많은 곳에서 승리했다. 2011년 노르웨이에서는 사회민주당 수련회가 열리던 섬에서 총기 난사로 77명의 청년 정치인들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범인은 ‘극단주의 무슬림 테러리스트’도, ‘배반당한 하층 계급 청년’도 아닌, 중산층 출신이자 백인 극우 단체 소속 인물이었다.
[특집] 정치적 위기를 넘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채효정 : 교육공동체 벗
내란, 광장, 그리고 학교정치적 위기를 넘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12.3 내란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채효정 measophia@naver.com본지 편집위원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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