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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질론에 따른 발도르프교육 본문

인지학/발달론과 기질론

4기질론에 따른 발도르프교육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1. 26. 13:10

4기질론에 따른 발도르프교육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격월간 잡지 민들레 138권(2021 11-12)에 실린 글입니다.

 

발도르프교육에서 활용하는 4기질론은 히포크라테스의 기질론을 계승한 것이다.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우주 4원소론에 대응하여 인간의 몸속에 흐르는 네 가지 체액, 즉 흑담즙, 점액, 혈액, 황담즙 가운데 지배적인 체액에 의해 우울질, 점액질, 경혈질(다혈질), 담즙질로 나뉜다고 보았다.

 

우울질은 땅의 요소로 무거움과 차가움의 특성이 있고, 점액질은 물의 요소로 습함, 경혈질은 공기의 요소로 가벼움과 건조함, 담즙질은 불의 요소로 뜨거움을 그 특성으로 한다. 개략적으로 본다면 담즙질은 급하고 화를 잘 내며 적극적이고 의지가 강하다. 우울질은 신중하고 소극적이며 말이 없고 상처받기 쉬운 기질이다. 경혈질은 쾌활하고 밝으며 타협적이고 기분이 변하기 쉽다. 또 점액질은 근면하고 감정의 동요와 변화가 적으며 무표정하고 끈기가 있다. 발도르프학교를 만든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4기질론을 자신의 인지학 사상과 관련지어 설명하는데, 여기에서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네 가지 기질의 용어도 계절 이름으로 바꾸어 설명하고자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분위기가 기질적 특성과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계절에 비유한 4기질론

 

얼었던 냇물이 졸졸졸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새싹이 돋아나고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봄은 경혈질이다. 나비가 팔랑이며 날고 아지랑이도 피어오른다. 이처럼 봄의 기질은 공기처럼 가볍고 빛처럼 반짝이는 특성을 갖는다. 이들은 외부의 일에 관심이 많고 인간관계를 잘 맺는다. 늘 새로운 것들에 흥미를 갖는다. 반면에 하던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너무 많은 일에 관심을 갖다 보니 산만해지기 일쑤다.

 

나뭇잎이 무성해져 마치 불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여름은 담즙질을 상징한다. 강렬한 태양이 세상을 지배하며 만물은 활발하게 움직인다. 때로 햇볕이 너무 뜨거운 날에는 동물도 식물도 축 늘어진다. 여름 기질은 이처럼 강한 성격을 지닌다. 자기주장이 분명할 뿐 아니라 강하게 밀어붙이고 비판을 용납하지 못한다. 어느 자리든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며,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실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심약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잘못하면 폭군이 되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한 여름 기질은 멋진 보스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뒷배가 되어준다. 봄 기질이 호리호리한 몸집이라면 여름 기질은 다부지고 목이 짧은 편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날씨가 점점 스산해지는 가을은 우울질이다. 가을 기질은 행동보다 생각이 많은 유형이다. 생각이 많은 만큼 부정적인 경향을 띠고 과거의 일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생각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부분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있지만, 성숙한 가을 기질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놀라운 통찰력과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겨울 기질은 점액질로서, 이런 그림을 떠올리면 정확할 것이다. 한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고 눈이 펑펑 내린다. 집안은 따뜻하고 난로에는 장작이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창밖 풍경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도 만족감이 차오른다. 겨울 기질은 대체로 이런 마음의 상태이다. 바깥일에는 냉담해 보일 정도로 관심이 없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익히려면 특별한 계기가 필요할 정도이다. 이런 겨울 기질은 먹는 것을 좋아하고 쉬는 것과 자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동글동글 통통한 체형이 많다. 마르고 키가 껑충하게 큰 가을 기질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4기질론의 현장 적용

 

발도르프학교에서 기질론은 생활지도뿐 아니라 수업 전반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아이들의 자아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개별화 교육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사는 아이들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늘 관찰을 한다. 한 아이가 온갖 것에 아주 잠시만 흥미를 보이고 금세 흥미를 잃는다면 봄 기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아이가 속으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항상 뭔가를 마음에 품고 있는 성향이 있다면 가을 기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아이가 내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면 그 아이는 겨울 기질이 강한 것이다. 가을 기질 아이가 내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듯한 데 비해 겨울 기질 아이는 혼자 골몰하기는 하지만 외부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의지가 강해서 마음먹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렇지 못할 때는 난폭한 행동이 나온다면 여름 기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슈타이너는 기질의 네 가지 기본 유형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교사로서 갖게 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교사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한두 달 안에 아이들의 기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섣불리 단정을 내릴 수는 없는 게, 내 경우 1학년 담임을 할 때 한 남자아이를 가을 기질이 강하다고 보았는데 2학기가 되면서 그 판단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본래 봄 기질이 무척 강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1학기 내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다가 서서히 마음이 풀리면서 본래 모습이 나왔던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므로 늘 열어 놓고 관찰할 필요가 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자리 배치도 기질을 고려한다. 겨울 기질 아이들을 한 모둠에 앉혔다면 여름 기질 아이들을 대극점으로 삼고, 그 사이에 가을과 봄 기질 아이들을 앉힌다. 기질별로 나누는 것은 특정한 의도가 있다. 일단 아이들은 같은 모둠에 앉은 같은 기질의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구나’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된다. 훈계조로 설명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인식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기질적 성향을 서로 강화하지 않고 오히려 지양하게 된다. 슈타이너는 아이들이 수다를 떠는 것도 기질적 특성이 서로 닳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기질들이 서로 마모되어 10세 정도에 이르면 기질적 차이가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 물론 늘 같은 기질의 아이들끼리만 앉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자리 배치를 하면 교사가 아이들의 기질을 고려해 이야기하는 것이 좀 더 쉬워진다.

 

슈타이너는 가을 기질 아이들에게는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봄 기질 아이들에게는 관찰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면 그 두 모둠의 아이들은 서로를 보면서 배우고 상호 간에 흥미를 조정하면서 보충할 것이라고 말이다. 여름 기질 아이들에게는 다른 아이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행동을 하라고 하면 무척 좋아하고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나 이것은 겨울 기질 아이들에게는 끔찍한 ‘명령’처럼 들릴 수 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자리 배치의 원리에 대해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리 배치는 교사의 권위에 따른 일이다.

 

아이를 직접 만나는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기질을 억누르려 해서는 안 된다. 아이의 기질에 반대되는 성향을 강요하여 본래의 기질을 극복하려는 태도야말로 기질에 접근하는 가장 나쁜 방법이다. 기질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은 각각의 기질에 긍정적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기질에 대해 인식해야 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기질적 장점을 통해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 기질을 다루어야 하는가?”

 

봄 기질의 아이에게는 수업과 관련한 가능한 많은 것을 그 아이의 주의력 범위 내에 가져다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좀 더 섬세하게 학습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를 강하게 구속하던 기질적 성향은 점차 약화되어 다른 기질들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교사는 가을 기질 아이를 위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 가능한 많은 흥미를 발달시켜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봄 기질처럼 행동해야 한다. 반대로 봄 기질 아이들을 위해 교사는 가을 기질이 되어야 한다. 내적으로 진지하고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는 모습을 봄 기질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여름 기질의 아이가 흥분하여 화를 낼 때 그 행동에 맞서서 똑같이 화를 내며 혼내려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그럴 때 더욱 차분해져야 한다. 냉정하게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지켜보다가 아이가 잠잠해졌을 때 다가가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교사는 감정이라는 게 없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아이의 행동을 바라본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에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한다. 벌어졌던 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한 행동에 깊이 동의를 하며 무슨 일을 벌였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아이가 직접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사실상 여름 기질에게는 이것 외에 별다른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겨울 기질 아이는 여름 기질 아이처럼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아주 드물다. 우선 겨울 기질 아이는 어떤 일에든 무관심하다. 내적으로 적극성이 엿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교사는 아이의 내면에 관심과 흥미를 일깨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교사가 봄 기질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외적으로는 무관심한 척하면서 아이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내적으로는 많은 관심을 갖지만, 외적으로는 그 아이가 교사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반영하는 그림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마치 녹색을 바라볼 때 내면에 빨강의 보색이 생기는 것처럼. 그리고 꿈꾸는 듯한 겨울 기질 아이를 위해 수업은 좀 더 역동적이고 움직임이 풍부할수록 좋다. 그럴 때 이 기질의 아이들이 깨어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춘기가 지나면서 기질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어릴 때 겨울 기질이 너무 강해 가르치는 데 애를 먹었던 여자아이가 상급반이 되어서 찾아온 적이 있다. “선생님, 저 때문에 많이 답답하셨죠? 저도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웃으며 사과했지만 미안한 건 나였다. 좀 더 활동적으로 수업을 구성하지 못했던 나에게 책임이 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음영과 색깔을 조화시키는 교육

 

네 가지 기질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그다음으로 모든 교과에서 개별화 수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음악수업을 할 때 봄 기질 아이일수록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것이 좋고, 여름 기질의 경우에는 독주를, 겨울 기질은 합창, 가을 기질은 독창을 더 많이 시키는 것이 좋다. 개별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아이들이 연주하고 싶어 하는 악기가 기질마다 다르다. 여름 기질은 북을, 봄 기질은 바이올린과 오보에를, 가을 기질은 바순과 첼로를 좋아한다. 겨울 기질은 조율할 필요 없이 언제든 연주할 수 있는 리코더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질에 너무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 가을 기질 아이에게는 세부 묘사를 인상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감명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한 편안하고 느긋한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이에 비해 봄 기질 아이를 위해서는 긴 이야기를 들려줄 때 중간에 잠깐 쉬어줌으로써 흐트러졌던 주의를 다시 집중시킬 수 있다. 이 아이들의 경우에는 가급적 똑바로 앉게 하고 계속해서 교사의 시선 안에 두는 것이 좋다. 겨울 기질 아이에게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좋다. 예상할 수 있는 쉬운 내용을 질문으로 던지고 대답을 들으면서 아이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문장을 말하면서 자주 멈추고 아이를 바라봐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름 기질 아이의 경우에는 위태로운 상황이나 모험이 필요한 지점에서 아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한다. 그러면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그 과정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조금은 부끄러워지는데 그때 아이는 좀 더 겸손해질 수 있다. 이는 오직 여름 기질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모두 기본적으로 봄 기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봄 기질은 아동기의 기질이다. 모든 아이는 경이로움과 세상을 탐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여름 기질이 미래를 내다보고 가을 기질이 과거를 돌아보는 경향이 있듯이, 봄 기질은 자기 밖의 현재를 즐기고 겨울 기질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현재를 응시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을 할 때 우리는 늘 이런 서로 다른 음영과 색깔들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4기질론을 연구하면서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나는 가을 기질이 아주 강한 아이였는데, 어른이 된 뒤로 성격이 변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슈타이너는 가을 기질 어린이는 여름 기질 어른이 되고, 겨울은 가을, 봄은 겨울, 여름은 봄 기질로 변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나는 대학생 때부터 여름 기질이 강해져 스스로 당황하곤 했다. 어릴 적부터 가장 싫어했던 성향이 여름 기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질론을 공부하면서 이런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지금은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겨울 기질을 계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기질론 덕분에 자기인식을 하고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받은 셈이다.

 

한 해가 4계절로 되어 있듯 사람은 네 가지 기질을 모두 갖고 있다. 따라서 주의해야 할 점은 한 사람을 한 가지 기질로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어느 기질이 우세하고 또 어느 기질이 약한지를 살피는 게 좋다. 네 가지 기질을 두고 각각 ‘아주 강한지, 강한지, 약한지, 아주 약한지’ 나누어 파악하는 것이 좀 더 정교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질 또는 두 가지 기질이 섞여서 우세하게 드러나는 경우 “저 아이는 봄 기질이다” 또는 “여름하고 가을이 섞여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아이들의 경우 간혹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과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 완전히 다를 때가 있는데, 환경에 따라 보여주는 기질적 성향이 다를 수 있으므로 교사와 부모는 긴밀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다.

 

 

참고도서

 

김훈태, <교사를 위한 인간학>,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 <부모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 <세미나 논의와 교과 과정 강의>

르네 퀘리도, <발도르프 공부법 강의>

베티 스텔리, <인생의 씨실과 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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