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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위한 두 이야기 본문

인지학/옛이야기와 동화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위한 두 이야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10. 31. 14:42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위한 두 이야기

 

디디 아난다 데바프리야 지음

김훈태 옮김

 

디디의 해설

 

뿌리가 뽑히다둥지 짓기’, 이 두 이야기는 모두 내전의 위험이 높아져 가족이 레바논으로 피신한 시리아 난민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다. 레바논에 도착한 가족들은 매우 혼잡하고 불편하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업체와 토지 등을 소유한 중산층이었다. 그래서 특히 자신들의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 충격을 받았다. 일부 아이들은 폭격과 군사적 공격의 와중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참상을 목격했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뿌리가 뽑혀) 자신과 보호자가 너무나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공포와 스트레스였다.

 

아무르트(AMURT)* 레바논은 이 아이들이 공립학교 체제에 편입될 수 있도록 교육의 길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는 레바논에 초청되어 이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스태프(일부는 난민 청소년과 그들의 어머니)를 훈련하는 일을 돕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난민 생활의 불안정 및 빈곤으로 인해 많은 난민 아이가 학교를 떠났거나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은 아동기를 되찾고 창의적 교육 환경에서 정상적인 일상과 제도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자기 경험을 통합하고 치유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요소로 치유이야기 들려주기를 강조했다.

 

은유는 낙관과 희망을 주고, (‘교육의 길프로그램이 하고자 했던 것과 같은) 지원을 통해 아이들이 어느 정도 정상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고안되었다. 실제로 이야기의 치유 효과 중 어떤 것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그들에게 아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이 생기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 아무르트(AMURT)는 재해 구호, 재활 및 개발 협력을 위한 국제 기구이다. (옮긴이)

 

 

뿌리가 뽑히다

 

디디 아난다 데바프리야 지음

 

디디의 서문

 

토마토 묘목을 옮겨심는 이 은유적 이야기는 새로운 나라뿐 아니라 새로운 교육체제에 옮겨심는 것을 상징한다. 훈련 중인 여성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눈이 반짝였다. 그것은 그들이 새로운 역할과 새로운 삶에 대한 관점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

 

 

조그마한 토마토 씨앗이 안전하고 따뜻한 온실 속 검은 흙에 심어졌습니다. 머지않아 조그마한 초록빛 새싹이 흙을 뚫고 햇빛을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새싹은 자라고 또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삽이 날아와 모종이 된 새싹 옆의 흙을 거칠게 파헤쳤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토마토 모종은 익숙했던 땅에서 어지럽게 뽑혀 나왔습니다. 작은 흙덩이가 모종의 조그마한 뿌리들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모종이 땅에서 뽑혔을 때 뿌리들이 잘려나가면서 따끔했습니다.

 

모종은 다른 많은 모종과 함께 작은 판자에 비좁게 담겼습니다.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자동차가 부웅하고 출발하자, 모종들 아래의 땅이 갑자기 우르르 흔들리고 덜컹이며 요동쳤습니다. 모종들은 서로를 향해 넘어졌고, 연약한 잎사귀들이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작은 모종들은 한데 모여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대체로 아침마다 잠깐씩 저 위에서 물이 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오랫동안 물이 뿌려지지 않았습니다. 모종들은 너무나 목이 말랐지요. 작은 모종들은 해를 향해 계속 자랄 수 없었습니다. 모종들은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잎사귀가 노랗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모종들은 물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다시 자라고 싶었으니까요.

 

마침내 모종들의 외침이 전해졌습니다.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습니다. “아니, 이 모종들은 당장 땅에 심어야 하겠는걸!!! 누가 여기에 두고 간 거야?”

 

작은 모종은 다시 허공을 가로질러 이미 물에 흠뻑 젖은 구덩이에 심어졌습니다. 구덩이는 정성스레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반쯤 덮인 뿌리는 흙으로 꼭꼭 덮어졌습니다. 작은 모종은 행복했지만 너무 지쳐서 땅에 푹 쓰러졌습니다. 똑바로 서 있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특히 해가 하늘 높이 떠올라 햇살이 내리쬘 때는 더욱 그랬습니다.

 

가까이에 튼튼하고 키가 큰 토마토 모종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종들은 슬프게 시들어 버린 새 모종을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그 모종들은 몇 주만 더 있으면 빨간 토마토로 익어갈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그 모종들의 가지에는 노란 꽃이 환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돌산 너머로 지던 그날 밤, 서늘한 달이 하늘에 떠올라 작은 토마토 모종 위로 부드럽게 치유의 빛을 비췄습니다. 달은 모종에게 말했습니다. “넌 이제 안전해. 다시 뿌리를 땅으로 뻗을 수 있단다. 네가 마시고 튼튼하게 자라도록 아침 이슬을 보내줄게. 그러면 너도 금세 다른 모종들처럼 아름다운 꽃과 사랑스럽고 과즙이 풍부한 토마토를 갖게 될 거란다!”

 

이튿날 아침,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몸부림을 쳐야 했지만 그래도 작은 모종은 좀 더 똑바로 설 수 있었습니다. 농부가 와서는 작은 모종 옆에 튼튼한 막대를 박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막대와 줄기를 부드럽게 끈으로 묶어주어 멋지게 잘 자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작은 모종은 비록 다른 모종들보다 키가 작고 열심히 자라야 했지만, 막대 덕분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습니다. 농부는 작은 모종이 다른 모종들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각별한 정성으로 꾸준히 물을 주었고 비옥한 거름을 좀 더 주었습니다. 머지않아 작은 모종의 잎사귀는 해를 향해 뻗어 나갔고, 키가 자라고 또 자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모종의 가지마다 노란 꽃봉오리들이 돋아났습니다. 몇 주가 지나고 꽃들이 다 말라버리자, 거기에는 날마다 점점 더 불룩해지기 시작한 작고 둥근 초록빛 열매가 매달렸습니다. 초록빛 토마토 열매는 여름 햇살 덕분에 따뜻해졌고,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모종은 다른 모종들처럼 키가 크고 튼튼한 토마토로 자라서 농부에게 과즙이 풍부하고 달콤한 토마토 열매를 선물했습니다.

 

 

 

둥지 짓기

 

디디 아난다 데바프리야 지음

 

디디의 서문

 

아래 이야기에 사용된 은유는 오래된 삼나무 숲이라는 시리아 난민들이 살았던 고국의 자연환경을 반영한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어린이에게 다정한 공간의 교사가 되기 위해 훈련 중이던 여성 집단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들 중 몇은 시리아 난민이었다. 작은 새의 가족이 어떻게 도시에 도착해 더럽고 좁은 벽 틈으로 몰려들었는지 말하고 있을 때, 흥분한 듯 숨을 헐떡이며 아랍어로 떠드는 소리가 났다. “우리 이야기와 똑같네요!” 그들 중 한 명이 통역을 해주었다. 그들은 이제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었다. 그러한 인식이 그들에게 매우 큰 힘이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내가 레바논에 갔을 때, 이 이야기가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매우 기뻤다.

 

*

 

 

옛날 옛날에 오래된 삼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숲이 있었습니다. 구부러진 가지들이 드넓게 펼쳐져, 바위투성이의 메마른 땅 위로 시원한 그늘 웅덩이가 만들어졌습니다. 나무에는 황금빛 배를 가진 새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새 두 마리가 울창한 숲에서 바쁘게 잔가지를 모았습니다. 둥지를 짓고 새 가족을 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엄마 새는 작고 파란 알 다섯 개를 낳았습니다. 머지않아 아기 새 다섯 마리가 태어났지요. 가족들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날마다 그들은 해가 뜨기 직전 새들의 전통 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날을 환영하고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습니다.

 

아침 해가 떴어요, 모든 새가 노래해요,

다 같이 노래하며 새롭게 태어난 해를 맞이해요,

하나되어 노래하며 새롭게 태어난 해를 맞이해요.

 

그런 뒤에 엄마 새와 아빠 새는 아기 새들에게 먹일 삼나무 열매와 둥지를 위한 잔가지를 모으러 숲으로 날아갔습니다.

 

어느 날 밤, 탁탁거리는 소리에 새들이 잠을 깼습니다. 공기는 연기로 자욱했고 사방이 불길이었습니다. 숲에 살던 새들은 모두 날아갔습니다. 엄마 새와 아빠 새도 아기 새들을 데리고 불길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아기 새들은 엄마와 아빠를 따라가는 게 힘에 부쳤습니다. 연기가 자욱해서 앞을 보기도 힘들었지요. 엄마와 아빠는 자주 멈추어 나뭇가지에 앉아 쉬었지만, 여전히 불길이 사방에 가득하고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잠시만 머물렀습니다. 마침내 가족들은 숲을 떠나 낯설고 새로운 땅에 들어섰습니다. 거기에는 나무도 없었고, 게다가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산불을 피하느라 힘든 여정을 보냈기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들은 나무를 찾지 못했지만 벽에 틈이 있는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 틈은 일곱 식구가 모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아주 비좁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을 잔뜩 움츠려야 했습니다. 불편하고 더러운 곳이었지만 안전했고, 모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뜨기 직전, 새 가족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침마다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밖에 나가 노래를 부르며 떠오르는 해를 맞이했습니다.

 

아침 해가 떴어요, 모든 새가 노래해요,

다 같이 노래하며 새롭게 태어난 해를 맞이해요,

하나되어 노래하며 새롭게 태어난 해를 맞이해요.

 

하늘의 천사들이 방긋 미소를 지었습니다. 해는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기뻐서 황금빛 햇살로 비에 젖은 새들의 깃털을 말리고 추운 밤을 보낸 그들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숲에서는 수천 마리의 새들이 합창을 하며 아침 해를 맞이했지만, 여기 도시에서는 함께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은 함께 용기를 내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날의 시작을 노래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는 자고 있던 도시의 아이들을 깨웠습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새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새들이 거기에 머물며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 새들에게 나누어줄 빵 조각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집으로 다시 달려갔습니다.

 

엄마 새와 아빠 새는 둥지를 짓기 위한 잔가지를 모으러 날아갔습니다. 도시에서 잔가지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숲과는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찾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가 잔가지와 나무 조각들을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곧이어 그들은 둥지를 지을 만큼 충분한 양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친구가 된 아이들의 집 지붕 꼭대기에 둥지를 지었습니다. 물론 숲속의 둥지와는 달랐습니다. 그늘진 나뭇잎과 아름다운 삼나무 향이 그리웠지요. 하지만 새로운 둥지는 깨끗하고 안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아침마다 그들은 해를 향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도시는 새들의 기쁜 노래로 가득 찼습니다.

 

 

[출처 : 수잔 페로우 짓고 엮음, 김훈태 옮김, <아픔과 상실의 밤을 밝히는 치유이야기>, 푸른씨앗,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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