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루돌프 슈타이너, 해방과 자유를 향한 발전으로서의 역사 - 클라우스 오토 샤머 본문
루돌프 슈타이너, 해방과 자유를 향한 발전으로서의 역사
클라우스 오토 샤머
1) 전기
슈타이너는 1861년 2월 27일 헝가리(현재는 전 유고슬라비아)의 크랄리에비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고, 그는 세 자녀 중 첫째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철도회사의 직원이었다. 슈타이너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몇몇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79년 우등으로 학교 졸업시험에 통과한 그는 빈 공과대학교에 들어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공부했다.
1883년에는 퀴르슈너(Kürschner) 교수의 「민족문학(Nationalliteratur)」 편찬을 도와 괴테(Goethe, 1749~1832)의 자연과학 분야 저서를 편집했으며, 1890년에는 바이마르의 괴테-실러 문서보관소(Goethe-Schiller-Archiv)에서 일했다. 이 시기에 그는 헤켈(Heackel, 1834~1919)과 니체를 알게 되었다. 1891년에는 독일 철학자 피히테의 저서를 참조하여 쓴 인식론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로스토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97년, 슈타이너는 바이마르를 떠나 베를린으로 갔다. 그는 빌헬름 리프크네히트(Wilhelm Liebknecht)가 설립한 노동자 학교에서 수사학과 역사를 가르치면서 《문학지(Magazin fur Literatur)》의 편집자로 일했다. 그 당시 슈타이너는 여러 지식인, 예술인들이 어울리는 사교모임에 참석했는데, 거기에는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엘제 라스커-쉴러(Ellse Lasker-Schuler),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등이 있었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여기서 자신의 저서와 사상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강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그의 연구의 기본이념은 「자유의 철학(Die Philosophie der Freiheit)」에 잘 설명되어 있다. 1894년 출간된 이 저서를 그는 늘 “중요한 작품”이라고 불렀다. 슈타이너의 접근법은 인식의 두 가지 기본 구성요소인 관찰과 사고 사이에 있는 인식론적 차이에 근거한다. 이러한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을 향한 최초의 발걸음은 자기 자신의 사고를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고에 대한 관찰과 다른 모든 지각작용에 대한 관찰 간의 근본적 차이는 이러하다. 보통의 지각작용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에 기초하는 반면, 자기 자신의 사고는 그 개인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외부 시점만이 가능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외부·내부 시점이 모두 가능하다. 우리의 사고는 관찰의 일부로서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슈타이너의 철학이 담고 있는 근본 원리는 다음과 같다. (과학적) 인식은 감각적 지각만을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서 사고의 관찰('생각을 생각하기')이라는 비감각적 지각도 기초로 한다.
물론, 이러한 유형의 정신과학은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감각 지각에 기초한 자료와 관련하여 연구 결과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에서 나온 결과의 진위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고의) 내적 계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는 슈타이너가 말하는 초감각적 지각능력을 개인이 가질 수 있게 한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이러한 계발방식은 필요한 사고훈련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다. 이 점을 고려하고, 여기에 슈타이너가 그 당시 모든 문화 분야의 기초학문(자연과학, 수학, 철학, 문학, 역사, 문화사)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더하면, 슈타이너가 자신의 접근법에 직면한 저항은 놀랄 일이 아니다.
1904년, 슈타이너는 학교에서 해직되었는데 많은 학생이 몹시 아쉬워했다. 해직 사유는 그의 역사 수업이 이 학교의 주류 사상인 마르크스주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많은 지식인 그룹에서도 반발을 사자, 슈타이너는 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그의 사상에 대해 더욱 열려 있는 새로운 청중을 찾아 나섰다. 1902년에 그는 블라바츠키(H. P. Blavatsky)가 1875년 설립한 신지학협회에 가입했고, 같은 해 독일 분과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지학협회의 국제 대표자들과의 의견차가 점점 커지자, 슈타이너는 두 번째 아내 마리 폰 지버스와 신지학협회를 떠나 1913년 인지학협회를 창립했다.
1902년, 슈타이너는 해마다 전 유럽을 순회하며 강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생 동안 6천 회에 달하는 강연을 했다.
1907년부터 1913년까지 인지학 연구의 성과로서 건축과 미술에서 새로운 접근법들을 만들어낸 슈타이너는 1917년과 1924년 사이에 경제·정치·문화 생활을 재구성하기 위한 수많은 운동을 벌였다. 정치학(사회적 유기체의 3원론, 1917), 교육(발도르프학교 창립 운동, 1919), 의학(확대의학 원리, 1920), 종교(크리스천 커뮤니티 설립 후원, 1922), 치료교육(새로운 치료교육 운동의 창설, 1924), 농업(생명역동농법 창설, 1924) 분야의 여러 운동은 우리 세계에 대한 각성 뒤의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더욱 인간에 기초한 개발 관점을 지향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새로운 노동·생활 문화를 발전시켜, 합리화의 증가라는 전반적 추세를 역전시키려는 시도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운동들은 다음과 같은 원리에 기초한다. 사회 각 분야의 적절한 행위는 정신적 실재의 조건뿐 아니라 감각적 실재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는 일상생활에 실제로 유용한 정신적 지식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이 운동들은 성공적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운동(사회적 유기체의 3원론)으로, 이 첫 번째 운동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운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사회삼원론만이 사회적 유기체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상 슈타이너가 벌인 다른 운동들은 첫 번째 운동의 실패에 따른 반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슈타이너는 사회삼원론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는 전쟁 중지를 제안했다. 그의 평화 제안서에는 기능적 분산의 방향으로 독일의 민족국가가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근대사회에는 부분적으로 자율적인 세 가지 하위체제가 있는데, 그것은 문화(과학, 예술, 종교 포함), 정치(국가, 법률 포함), 경제로, 각각의 하위체제는 그에 적합한 원리(문화는 자유, 정치는 평등과 민주주의, 경제는 연대와 형제애)에 따라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적 정치인들을 설득시키려는 시도가 두 차례 실패로 끝난 후, 슈타이너와 그의 지지자 집단은 사회 재구성을 위한 대규모 정치운동을 벌였으나 이 세 번째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슈타이너는 활동 방향을 바꾸어 교육, 의학, 치료교육, 예술, 농업 운동을 시작했다.
1923년 슈타이너는 스위스의 도르나흐에 괴테아눔을 설립했는데, 이는 다양한 분야의 인지학, 정신과학 연구와 교육을 위한 국제 중심지였다. 슈타이너는 1925년 3월 30일 도르나흐에서 사망했다.
2) 기본 원리로서의 세계 통합
슈타이너 철학의 주요 원리는 일원론적 세계관이다. 플라톤(실재와 관념, 육체와 정신) 이후의 서양철학에서 볼 수 있는, 감각세계와 정신세계의 독자적 존재를 주장하는 모든 이원론에 반해, 슈타이너는 세계를 하나의 단일체로 보았다. 이 안에서는 물질과 정신이 서로 연결된 존재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서로의 모습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슈타이너의 접근법에서 중요한 출발점은 서양에서 발견되는 근본적 인간 경험으로서의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분리 현상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이러한 개인과 세계 간의 소외를 근대 역사의 기본적 사실로 파악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라틴어 단어 'religare'는 '다시 연결하기'라는 의미가 있다)는 이러한 분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인지학은 종교와 동일한 밭을 갈고 있지만, 종교처럼 믿음과 신앙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과 사고 개발에 기초한다. 개인은 외부 관점(현실)과 내부 관점(관념)을 모두 완성하기 위해 주체에 바탕 을 둔 사고를 통해 세상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분리를 극복할 수 있다.
3) 거시진화의 단계
슈타이너는 우주, 인간, 자연의 진화를 네 개의 큰 시기로 나뉜 하나의 통합된 과정이라고 본다.
거시진화, 즉 지구진화의 제1단계에서는 오늘날 광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나뉜 모든 존재가 동일한 수준이었다. 이 첫 단계에서 어떤 존재들은 다른 존재와 분리되어 더 발달했다. 제4단계인 오늘날 우리가 (자연의) 물질세계라고 하는 것과 (인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이 이 시기의 결과다. 제1단계에서 분리되어 제4단계에는 지구상에 '물질체'라는 하나의 몸만을 지니고 있는 존재는 광물이다.
지구진화의 제2단계에서, 존재들은 전 단계에서 개발한 첫째 몸에 더해진 두 번째 몸을 개발했다. 이 단계에서도 어떤 존재들은 분리되었다. 이 시기의 결과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생물'과 인간의 '생명체' 이다. 이 시기에 분리되어 물질체와 생명체, 두 개의 몸만을 지닌 존재는 오늘날 식물이다.
지구진화의 제3단계에서, 존재들은 세 번째 몸을 개발했다. 또다시 어떤 존재들이 분리된 결과, 자연의 '영혼세계'와 인간의 '영혼적 몸'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분리된 존재는 오늘날 지상에 세 개의 몸을 지니고 있다. 물질체, 생명체, 영혼체를 가진 이들 존재는 동물이다.
지구진화의 제4단계에서, 인간은 네 번째 몸을 개발했다. 자아(나, Ich)가 그것이다. 이미 말한 대로, 인간 외에도 세 개의 몸, 두 개의 몸, 하나의 몸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자연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는 슈타이너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거시진화는 네 단계로 구성된다. 각 단계에서 존재들은 인간적 요소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형태를 개발했다. 이리하여, 오늘날의 인간은 네 개의 다르면서 통합된 요소를 가진 존재로 정의된다. 자연은 이전 단계에서는 오늘날 인간과 같은 발달 수준의 존재였다. 이들은 진화의 단계에서 스스로 분리시켰기 때문에(말하자면, 인간의 발전을 위한 희생), 오늘날 그들의 의식은 물질세계에 있지 않고 정신세계 어딘가에 있다.
미래를 위해 슈타이너는 진화의 세 단계를 더 고려한다. 이들 단계에서 인간들은 다섯 번째(manas, 정신자아), 여섯 번째(buddhi, 생명정신), 일곱 번째(atma, 정신인간)의 요소를 발전시킨다. 이들 요소는 인간의 처음 세 요소가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변모를 수행하는 행위자는 인간의 네 번째 요소인 '자아'이다.
이렇듯 슈타이너의 거시진화 개념의 전체 그림은 7단계의 발전, 7단계의 의식, 7개의 구성요소를 가진 인간이다. 이중 처음 셋은 과거에 개발되었고, 네 번째는 현재 개발 중이며, 나머지 셋은 미래에 개발될 것이다. 각각의 개발 단계에서, 인간은 일종의 공동 진화과정에서 자연이라고 일컬어지는 존재들과 협력하는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다.
4) 윤회와 카르마
진화와 역사에 대한 슈타이너의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개념은 '윤회'와 '카르마(karma)'다. 이 개념은 개인의 역사(전기)를 인류의 역사(거시사)와, 지구의 역사(거시진화)와 연결시켜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윤회는 재육화를 의미하며, 카르마는 (슈타이너의 개념으로) 고차적 자아에 의해 형성된 운명을 의미한다. 카르마는 이전의 행위와 미래의 운명에 기초하여,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방식이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마음대로 이들 가능성을 무시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이전의 행위가 현재의 삶을 결정한다는 동양의 카르마 개념과는 다소 다른 점이다. 흔히 사용되는 비유로, 삶의 나날들이 밤의 잠에 의해 연결되듯이, 윤회와 카르마는 한 인간의 다른 삶들을 연결한다. 이 개념의 분명한 결론은, 오늘날의 인류는 이전 시대의 인류와 부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누군가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역사, 이전의 우리 삶을 공부하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윤회 개념을 인간에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성 지구와 우리의 행성체제에도 사용한다. 그에 의하면, 현재 행성체제는 진화의 넷째 단계 이후로 존재했다. 각각의 전 단계에서, 이 체제는 완전히 다른 존재들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각 단계 사이에는 어떤 물리적 존재도 없는 시기가 있었다('영원'). 이렇듯 윤회 개념은 개인(역사)뿐 아니라 행성체제(거시진화 혹은 우주진화)에도 적용된다.
5) 거시사 단계
슈타이너의 진화 개념은 7개의 행성단계 혹은 의식단계를 기반으로 한다. 각 단계는 7개의 '원(圓)'으로 구성되며, 각 원은 7개의 구(球)로 구성되고, 각 구는 7개의 '시대'로 구성되고, 각 시대는 7개의 문화기로 구성된다. 즉, 인류의 진화는 7의 1승(=7) 행성단계, 7의 2승(=49) 원, 7의 3승(= 343) 구, 7의 4승(=2,401) 시대, 7의 5승(= 16,807) 문화기를 포함한다.
현재의 발달단계(지구)는 주로 이전의 단계를 반복하는 것이다. 제4단계(아틀란티스 시대)에 인간은 네 번째 몸(자아)을 개발했다. 제5단계(후기 아틀란티스 시대)가 현재의 시기이다. 다른 모든 시대처럼 이는 7개의 문화기로 나뉘는데, 고대 인도 시기(B.C.7000년경)에서 시작하여 고대 페르시아 시기(B.C.5000년경), 이집트-칼데아 시기(B.C.3000년경), 그리스-로마 시기(B.C.750년경)로 이어진다. 현재의 시기는 15세기에 시작되었다. 각각의 시기에서 인류의 발전은 정신에 초점을 맞추며, 각 시기마다 인류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하나의 문명이 존재한다.
전체 거시진화를 숫자로 나타낸다면, 첫 단계의 시작인 1.1.1.1.1에서 7단계의 끝인 7.7.7.7.7로 표현할 수 있다. 현재의 단계(지구)는 4.1.1.1.1에서 4.7.7.7.7이다. 이 체제 내에서 현재의 위치는 4.4.4.5.5이다.
* 지구의 육화 : 옛 토성 - 옛 태양 - 옛 달 - 지구 - 목성 - 금성 - 불칸
* 지구 육화의 일곱 시대 : 폴라리언 - 하이퍼보리언 - 레무리아 - 아틀란티스 - 후기 아틀란티스 - 6번째 후기 아틀란티스 - 7번째 후기 아틀란티스
* 후기 아틀란티스 일곱 시기 : 고대 인도 - 고대 페르시아 - 이집트/칼데아 - 그리스/로마 - 아리안 - 러시아 - 아메리카
6) 해방과 자유를 향한 발전으로서의 역사
슈타이너의 거시진화 체제는 마르크스의 것처럼 거대한 다른 체제를 작아 보이게 만든다. 예를 들어, 하나의 단계는 우주의 여러 정신적 존재들의 역할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 존재는 모든 진화과정에서 인간과 유사한 발전단계를 거치며, 이들의 발전은 인간의 발전과 매우 긴밀하게 서로 엮이어 있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문이 발생한다. '인류 계획'을 위한 원대한 목표는 무엇인가? 슈타이너는 말한다. “오늘날 정신적 존재들은 한때 인간이었다. 인간은 미래에 정신적 존재로 발전할 것이다. 인간은 미래의 정신적 존재이며, 정신적 존재는 완전성에 도달한 인간에 불과하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다른 정신적 단계와 인간존재의 주요 차이점은 인간의 경우 정신세계에서 해방되어 자신들이 발전하고 싶은 곳을 선택할 자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전체 진화과정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그려지는 인간의 미래 발전 전망은 인류를 위해 존재하는 단 하나의 가능한 길이다.
슈타이너는 초지일관 자신의 접근법을 적용시키고 있다. 인간 개개인은 우주의 중심이다.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작은 정신적 단위이면서 동시에 발전과 역사의 독립적 변수로서 최고의 존재가 될 잠재력을 부여받았다.
7) 발전 전망 : 내부로부터의 혁명
슈타이너가 제시하는 발전 전망은 정신적으로 능력 있는 개인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자아의 현실뿐 아니라 세상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자신에 대한 통제력(타인에 대한 통제력과 대립 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권력이론을 발전시킨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i, 1869~1948)처럼, 슈타이너는 새로운 문화 확립의 토대를 위한 출발점으로서의 내적 자아를 변화시키는 인간 발전의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베버가 말한 근대성의 '철장'을 극복하려고 애썼다.
오늘날 우리가 인지학 운동(발도르프학교, 생명역동농법 등등)을 보면, 이들은 '과정'과 미시적 차원(계획)에서는 능하지만, '구조'와 거시적 차원에서는 약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는 꽤 까다로운 문제지만 정치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했고 인지학자들의 도움을 조금밖에 받지 못했던 슈타이너는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다.
8) 징후학적 접근법
슈타이너는 역사 인식을 위한 그의 방법론을 '징후학적(symptomatologic)' 접근법이라고 불렀다. 역사적 사실들은 역사가 아니라 단지 역사의 죽은 시체이다. 징후학적 접근법은 세계 진화 역사의 밑에 흐르는 물결을 감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사실지향적 역사를 세계사에 대한 외부관점으로, 징후학적 방법을 세계사에 대한 내부관점으로 보았다. 징후학적 방법은 집단이나 개인의 사건과 행위를 보면서, 행위의 목소리와 함께 어떤 종류의 깊은 변화와 흐름이 들리는지 질문한다. 이때 행위자에 대한 사전 지식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징후학적 역사는 이상주의적 방법, 형태학적 방법과 비교될 수 있다. 이들 모두가 역사를 통한 영혼과 정신의 진화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두 방법는 달리, 징후학적 방법은 특정한 정신적 충동이나 내면의 흐름과 개인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므로 거시사 과정에 대한 슈타이너의 관점은 선형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비록 그의 전반적인 선형 관점 내에 수많은 순환적 요소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진보 개념과 최종 목표와 단계 개념이 모두 있음으로 해서, 근본적으로 선형 관점을 가진 거시사가에 대한 우리의 정의 기준이 모두 충족된다.
*
슈타이너도 마르크스처럼 선형이 지배하는 순환형이다. 그는 다른 이론가들의 수많은 메타포와 원형(archetype)들을 결합시킴으로써 동양(특히 인도)과 서양을 잇는 살아 있는 다리가 되었다.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사회를 세 부분(정신-문화적, 법-정치적, 경제적)으로 구분한 것과, 각 부분은 자율적이어야 하며, 자유, 평등, 형제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그의 기본 전제다. 각각의 권력 집단이 최고권력을 향해 경쟁하는 권력체계를 상정하지 않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는 어떤 의미에서 사르카르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이 집단들이 정말 자율적이면서 충분히 공생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집단도 다른 두 집단 없이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출처 : 요한 갈퉁·소하일 이나야틀라 편저, 노영숙 옮김, <미래를 보는 눈 거시사의 세계>, 우물이 있는 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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