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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의 리듬 있는 수업 (4) - 크리스토프 비히허트 본문

인지학/2013 AWTC 강연록

발도르프학교의 리듬 있는 수업 (4) - 크리스토프 비히허트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9. 3. 13:22

201351일 수요일 주강연 4

 

크리스토프 비히허트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저는 아이들이 커나가면서 자아가 몸에 정착하고 균형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균형감이 아이들의 실재적인 활동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나요? 목공예, 수공예, 그리기 등에서 균형감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어제 훌륭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는데요. 만약 그 활동에 정말로 전념했던 아이가 있다면 그때 그 아이는 균형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활동 속에서 늘 행복할 것입니다.

 

제가 어제 놓친 것이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진정한 예술적 활동은 아래로 향하는 흐름과 위로 향하는 흐름(하늘과 땅 사이)의 균형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악적인 활동이 자아가 몸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음악적인 활동은 균형을 이루는 활동입니다. 여러분이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라는데요. 아이들이 음악적인 활동을 할 때 아이들은 자기 내면에 완전히 빠져서 천사와 같은 얼굴, 빛나는 얼굴을 합니다. 사춘기를 거칠게 통과하는 아이들도 이러한 음악적인 활동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줍니다. 마술적인 일이지요.

 

어제 우리가 무엇을 했지요? 과거에서 미래, 하늘과 땅 사이, 그 사이에서의 균형에 대해 말했습니다. 영혼의 발달과 관계된 것에 대해서도 다뤘습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 어떻게 영혼발달의 역사를 다루는지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겁니다. 고대인도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합니다. 이것은 보통 서양에서 보는 의식성장의 흐름입니다. 아마 아프리카는 또다른 과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슈타이너는 오고가는 교류 속에서 문화의 변화가 왔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은 600년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였습니다. 15세기에 희망봉을 발견하고, 인도항로를 개척했습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문화에서도 역동성이 있습니다. 때가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지요. 또 다른 역동성이라 하면 현재 전지구적 관점에서 보는 역동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시민입니다. 지구라는 큰 마을 속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식혼은 하나의 문화만을 위한 특별한 게 아닙니다. 슈타이너는 의식혼이 인류 전체에게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하나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인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벌어진 일입니다. 이제 지구상에서 의식혼이 모두에게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제 했던 걸 보면 아주 정확한 충고가 담겨 있습니다. 모든 과목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교사의 명상과 관련이 있는데 하늘과 땅, 위와 아래 사이의 중간영역에 대한 의식입니다. 우리의 눈을 여는 것, 그리고 교차 속에서 균형을 갖는 것입니다.

 

이제 컨퍼런스의 중간에 왔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기본적인 주제로 가보겠습니다. 인지학을 통한 사회적 치유. 새로운 교육을 통한 사회적 치유. 사회적인 질문.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작업할 수 있을까요? 많은 이가 치유의 경험을 했다고 하면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회는 교육으로부터 바꿀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육의 책임감이 종교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비학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훨씬 뒤에 종교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교육은 오로지 국가가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교육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을 때는 엘리트를 위한 것이었지만, 국가의 교육은 국민 모두에게 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교육은 정부가 조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기도 지났습니다. 이제 교육은 또 다른 무언가의 책임입니다. 더 이상 종교의 것, 과거의 것, 국가에 의한 조직적인 힘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에 의한 책임, 시민사회에 의한 것입니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시민사회의 책임감과 부모들의 책임의식에 의한 교육은 아주 멋진 활동입니다.

 

만약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원한다면 스스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는 그것을 위한 도구입니다. 지구의 미래에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합니다. 슈타이너는 우리가 바라는 학교란 문화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생활은 삼중의 구조 중 자유정신의 영역입니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을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구조 속에서 학교를 국가의 통제 아래 두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학교의 경영은 아래에서부터 와야 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것은 학교경영에 대한 우리의 책임감을 뜻하며, 사회의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교육기관의 조직은 가르침과 동시에 문화적인 생산도 가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적이고 생산적인 활동과 가르침, 그리고 학교경영이 잘 분배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선입견이 없다면 학교경영을 위한 살아있는 에너지는 여러분의 교육에서 흘러옴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교사가 수업 없이 학교경영만 해야 한다면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수업을 하면서 재생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양한 수업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아이가 모든 과목에서 담임교사에게 다른 모습을 경험할 수 있다면 좋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런 과목에서는 이런 사람, 저런 과목에서는 저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과거에는 몇 십년 동안 한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해왔습니다. 25년동안 옥수수 농사만 짓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일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사들이 수업과 동시에 학교를 경영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너무 힘드니 학교경영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사회적인 문제가 치유되지 않는 것입니다.

 

학교의 경영과 관련해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교장이 지시를 내립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보여주고 일이 일어나도록 합니다. 하지만 교육의 새 패러다임은 한 사람이 그것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교사들(슈타이너의 일반인간학을 함께 읽은 사람들)이 함께 경영하는 것입니다. 나아갈 방향을 함께 본다면 더불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회에서 우리는 함께 일해야 합니다. 교사회는 학교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교사회는 학교의 심장과도 같지만 많은 학교에 심장병이 있고, 그걸 고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웃음) 학교가 제대로 심장박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를 원합니다.

 

교사회의는 그냥 , 모두 앉아서 얘기합시다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수업준비를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지요. 언제 집중하고 언제 이완할지 고려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 앞의 교사는 일종의 영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나서 깊이 잠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듣기 때문입니다.

 

교사회의를 위해 함께 앉아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고려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흥미로움입니다. 교사회의의 어려움 중 하나는 너무나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회의가 너무 재미없고 끔찍하다고 교사들이 느낍니다. 위원회마다 보고하고 토론하고,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업과 마찬가지로 교사회의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업무상 해야 하는 일이 꼭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번 주에는 뭘 해야 하고, 다음 주에는 뭘 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심장의 일과 같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되돌아보기, 내다보기, 배우기, 논의하기가 그것입니다.

 

네 가지 요소가 다 모인 게 바로 교사회의입니다. 만민회의와 같지만 질적인 수준이 있고 흥미가 있어야 합니다. 교사회의 시간에 공부를 하다보면 몇몇 교사는 완전히 잠들어버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책을 같이 읽을까요? 몇 군데만 뽑아서 볼까요?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겠습니다. 슈타이너의 책에서 정말 중요한 문단 두세 개를 뽑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다 읽으려고 하지 말고 두세 문단만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토론합니다. 그러면 아마도 박사급의 똑똑한 교사들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줄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교사회의에 두세 명의 교사에게 공부 파트를 책임지게 하세요. 어떤 교사들에게는 일주일 돌아보기 역할을 맡도록 정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만 흥미로운 일입니다. 발도르프교사들은 지난 한 주를 돌아볼 때 항상 좋은 일만 있었다고 합니다. (웃음) 저에겐 가장 치명적인 돌아보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새로운 여교사가 일어나서 월례 학예회 때 분수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얘기합니다. 누군가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아주 냉랭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조금씩 신체가 죽어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이 흐릅니다. 대체 무엇이 살아있는 것일까요? 그 교사가 아주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했는데 아무도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아마 그 사람은 죽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게 필요합니다. “아주 멋진 공연이었어요. 그런데 분수에 관해서는 좀더 수업이 필요할 것이에요.” 그러면 배움의 방식을 함께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게 예술적인 삶입니다.

 

슈타이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남에 대해 어떤 조건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업을 할 때 여러분의 동료 덕분에 수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만큼 동료가 잘했을 때 수업이 잘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여교사의 분수 수업은 명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여교사가 동료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어떠한 비판에도 열려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교사회는 함께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지만 의미있는 토론이 있습니다. 8년과정의 담임교사에게는 긴 그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피할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발도르프교육이 일어나는 학교의 담임교사에게는 긴 그늘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교사의 완벽주의로 인해 생기는 그늘입니다. 교사의 완벽주의로 인해 문이 닫혀 있다면 아이들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건 어렵습니다. 이것은 오래된 그림입니다. 의식혼의 시대에 우리는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통찰하는 것,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완벽함을 추구하더라도 대화에 대해 열려만 있다면 나아질 수 있습니다.

 

동료장학을 하고, 왜 그런 활동을 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내가 왜 했지? , 그냥 습관적이었나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왜 그걸 했는지 스스로 답이 있어야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한 교사는 수업참관을 위해 항상 수업에 문을 열어놨습니다. 물론 거기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보여주는 걸 좋아하니까요. 다른 사람이 관심 가져주는 걸 좋아합니다. 중요한 것은, 담임교사에게는 투명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열심히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닫혀 있고 신성한 존재로 자신이 보호받길 원해서는 안 됩니다.

 

담임교사에게는 또 다른 그늘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없고 세상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몇 주 전, 첫 번째 외국어교사 컨퍼런스가 있었습니다. 발도르프학교에는 담임교사만 있고 담임교사의 수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취급될 때가 있습니다. 담임교사의 그늘 속에서 외국어교사, 과목교사의 삶이라는 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중 담임교사가 아닌 과목교사이신 분은 스스로 보조기장, 부기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담임교사가 기장이고, 과목교사는 부기장으로서 담임교사를 돕는 것이지요.

 

담임교사의 책임이 크지만 그 책임도 과목교사와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함께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그 학급을 위해 과목교사가 함께 책임감을 나눠갖는 건 정말 중요하고 멋진 일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그늘은 거리감입니다. 담임교사와 과목교사 간의 거리감 말입니다. 담임이 왕처럼 있는 상황에서 그 거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우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투명하고 열려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그늘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뭘까? 5년 뒤에 아이들을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이대로는 학교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으니까 부모님들에게 건물을 하나 더 만들자고 할까?’ 오래된 발도르프학교의 교사회의에 참석해 5년 뒤 뭘 할 건지, 계획을 물어보면 다들 놀라게 됩니다.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학교에서 한 주 정도의 미래만 생각할 뿐 5년 뒤를 고민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교사 몇 명에게 책임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의에서 미래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줄 것입니다. 아마 매주 비슷한 얘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은 아주 멋진 일입니다. 물론 , 3년 전과 똑같은 주제가 나왔구나할 수도 있겠지요.

 

네 번째 그늘로 직업적인 결함을 들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학교의 교사들은 3년 이상 가르쳤다면 어떤 결함을 갖게 됩니다. 회의를 할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말하기 시작하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할지 알게 될 거라고 믿는 결함입니다. 이렇게 되면 회의가 늘어지고 지루해집니다. 초점이 없고 상투적인 얘기를 늘어놓게 됩니다. 그래서 교사회의는 수업만큼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도록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아주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역동적인 교류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존심이 서로 강해서 물어볼 수 없다면 용기를 내서 회의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다섯 번째 그늘은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정부를 상대해야 하지만 그 방면으로는 미숙한 편입니다. 정부와 관계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을 따로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교사회 안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교사 중에 한두 명이 책임을 갖고 정부와 지역의 관료들을 만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관료적인 제도 안에 인간적인 것을 넣고 싶어 합니다. 또한 여러분들 모두 알 것입니다. 정부와 관련된 일이 모두 인간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을요. 새로운 것이고 어려운 과제지만 인간의 친밀함과 다정함을 관료적인 행정영역에 밀어넣어야 합니다.

 

또 다른 관계를 보자면 그것은 교사와 부모의 관계입니다. 유치원, 담임과정, 상급과정 모두에서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20년 전에는 교사가 하는 말이 먹혔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기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매년 더 중요한 과제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부모와 더욱 협력해야 합니다. 전기작업을 함께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사로서의 경력은 부모와 협력이 잘 안 되면서 망가지게 됩니다. 학교의 일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가 있다면 학교에 좀더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부모가 보냈으니 학교에 오지만 부모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부분 잘 모릅니다. 그게 전통이었습니다. ‘부모가 왜 학교 일에 관심을 가져? 몰라도 돼?’ 교사들도 이런 생각이 강했지요. 하지만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앞서서 가르치려 들면 안 됩니다. 부모가 질문을 하면 그때 이야기를 해드리면 됩니다. 부모는 항상 느낍니다. 이 교사가 내 아이를 이해하는지, 진짜 사랑하는지를요. 부모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교사가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걸 느낀다면 부모는 아마 마음을 열고, 교사가 하려는 일에 관심을 갖고 들을 것입니다.

 

저 교사는 좋은 교사지만 우리와는 대화하려고 하지 않아. 마음을 열지 않아.’ 그러면 교육의 과정은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특히 엄마들. 엄마들은 선생님과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에 대한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대화를 원합니다. ‘내가 교사니까 그냥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 하세요의 태도로서는 안 됩니다. 발도르프교사는 의식혼을 깨우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이 삶에서 뭘 하는지, 나를 밀어내는 힘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의식혼의 작업입니다.

 

부모와의 살아있는 협력관계는 정말 미묘하고 힘들지만 동시에 아주 중요합니다. 아주 많은 실수를 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타고난 교사로서의 재능이 있음을 우리는 봅니다. 그분의 실수에 대해 말하기보다 아이들과 관계를 쌓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어떤 학부모와 대화할 때 그 선생님은 자신이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뭘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자기는 발도르프교육이 최고라는 걸 아는데 부모는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부모는 아이를 옮겨야 할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이건 속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스스로를 훈련하고 열려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마음을 열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교실에 왔을 때 부모는 어떻게 교사가 일을 하는지 봅니다. 라이프스타일(생활방식)에 대해 어제 이야기했습니다. 그건 지금 시대의 사회적 이슈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시아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부모들의 생활방식과 학교의 것이 많이 다를 것입니다. 집에는 만화책도 있고 컴퓨터도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교육을 많이 하지만 집과 학교는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건 아주 건강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에게 그저 올바른 것을 설교하는 게 아니라 교사로서 그것들을 얼마나 통합시키려 하는지 말하십시오. 가정과 학교가 같이 가야 하고 교사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개방성, 의지,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통해서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고 열어야 합니다.

 

예외적으로 제 얘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교사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1년에 3, 고정된 학부모의 밤이 있었습니다. 학부모 모두를 오게 합니다. 날짜는 미리 고정시켜놓습니다. 학부모들은 우리보다 바쁘실 테니 갑작스럽게 날짜를 알려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발도르프교사가 제일 바쁠 거라고 생각하지만 부모들도 똑같이 바쁩니다. 그래서 적어도 한 달 정도 전에 미리 알려드려야 합니다. 고정된 세 번 만남은 달력에 표시하시도록 합니다.

 

여러 가지 것을 교사가 보고합니다. 수업한 것, 활동한 것, 모든 아이들의 멋진, 살아있는 모습에 대해 묘사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듣기 좋아합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얘기합니다. 어떤 주요수업이 있을지, 바깥으로 나갈 것인지 등에 대해서요. 아주 흥미로워야 합니다. 확실히 말해야 하고요. 다양한 토픽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만남을 부모가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좀더 자유로운 만남도 있을 수 있지요. 예를 들어 가정방문을 가거나 학교에 오시고 싶은 분은 따로 초청할 수 있습니다. 한달 전쯤 초청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4학년은 몇시에 잠을 자야 할지, 용돈은 얼마나 가져야 할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런 만남이 얼마나 매혹적일지 아실 겁니다. 아주 멋진 일이지요.

 

또 다른 학부모의 밤에는 아이들이 교실에서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쟤가 입었으니 나도 그렇게 입을래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쟤가 나이키 농구화를 신었으니 나도 신을래요!”, “쟤가 비싼 점퍼를 입었으니 나도 그걸 입을래요!” 이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럴 때는 학교와 부모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도록 교사가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 나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토픽으로 음식과 관련된 것, 즉 뭘 먹어야 하고 뭘 먹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고, 미디어에 관한 것, 파괴적인 대중문화에 관한 것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담임교사라 할지라도 부모들 중 한 사람의 입장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부모들의 생활방식과 의식혼적인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사로서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러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빠져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한 여교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주 멋진, 젊은 아시아 출신의 교사입니다. 독일에서 코스를 했고 수공예교사가 되었습니다. 독일에는 매년 수공예교사 모임이 있는데, 슈투트가르트에서 그 교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우리 다시 만났네요. 저는 학교 일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두렵기도 합니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밤 교사들과 맥주를 마셔야 하니까요. 힘드네요.” 이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른 교사들과 똑같이 해야 하는 걸까요? 교사모임에 대해서도, 맥주 마시는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가 다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대화 속에서 오해와 잘못된 행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올바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선 최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난감한 상황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갖는 것입니다. 부모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끔씩 쉽지 않은 토픽이 있습니다. 저도 가끔씩 이런 문제에 대해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곤 합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 원하시면 다른 분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어도 좋겠습니다.” 친구나 남편, 아니면 친척을 두 사람 초대해 네 명이서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한다면 훨씬 더 좋은 환경이 될 것입니다. 8개의 귀를 갖고 이야기를 하면 아주 잘 진행될 수 있지요. 이런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때로 쉬울 수도 있지만 아주 어렵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덕적인 상상력 속에서 이런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부모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의견을 말하는 것에서 두려움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없다는 건 여러분 본성대로 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내적인 삶을 잘 맞이할 때만 가능합니다. 10분 정도, 저녁마다 속으로 생각해보세요. 10분은 매일 나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핸드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다 끄고 가족도 없이 혼자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는 사실상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소망이 생깁니다. 그날이 어떠했는지, 무얼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대화는 어땠는지, 수업은 어땠는지, 어떤 아이가 활동적이었는지, 등등에 대해 차분하게 돌아봅니다.

 

여러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늘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늘상 해야만 하는 일들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때 슈타이너가 했던 멋진 이야기를 두세 문단 정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영감적인 책도 좋습니다. 우리에겐 새로운 정신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감의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가끔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는 의식혼의 단계입니다. 예전에는 높은 정신세계에서 오는 힘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시대이고, 고차원적인 자신과 만나기 위해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단지 교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정말 다양한 방식의 명상과 수련이 필요합니다.

 

교사와 관련된 세 번째 위계질서에 대해 슈타이너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적인 기입니다. 이건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용기입니다. 상상해보세요. 우리 주위에는 똑같은 고생을 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서로 서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정신적인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한 그림을 하나 제시하겠습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하나의 빛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혜와 함께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적 차원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관계 속에서 뭔가를 추구한다면 좋은 질적 차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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