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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의 리듬 있는 수업 (6) - 크리스토프 비히허트 본문

인지학/2013 AWTC 강연록

발도르프학교의 리듬 있는 수업 (6) - 크리스토프 비히허트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9. 3. 13:26

201353일 금요일 주강연 6

 

크리스토프 비히허트

 

 

안녕하세요? 모두 건강이 괜찮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 이틀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9살에서 14살 사이가 아주 멋진 시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위험성도 있지요. 7살에서 9살 사이도 멋진 시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이들의 유치원 시기를 본다면 다음 생에는 유치원 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실 텐데요. 저는 다음 생에 발도르프학교의 수위가 되고 싶습니다. (웃음) 종종 아주 심술맞은 아이를 수위 아저씨에게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위 아저씨와 아이 간에 좋은 관계가 생기기도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모든 발달단계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시길 바라는데요. 물론 거기에는 도전도 있습니다. 생명력이 아이들 안에서 하는 작업이란 육체와 연결되는 것, 아이의 자아가 몸 안에 살 수 있도록 몸에 작업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유치원 시기의 분위기(mood)입니다. 이 성장의 분위기는 하나의 방향을 갖습니다. 그건 탈육화의 방향이 아니고 재육화의 방향입니다. 지구상에서 발을 딛고 살아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담임과정 저학년 시기의 발달은 깨어있음과 관련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벤트는 물론 멋지지만 이벤트로 가득한 게 발도르프학교는 아닙니다. 물론 인도 같은 나라는 아주 다양한 문화가 있는 곳이라 여러 가지 이벤트가 필요합니다. 깨어있음과 이벤트의 균형이 필요한 것이지요. 상급과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흔한 오해가 있는데요. 깨어있음이 곧 지성인 것은 아닙니다. 깨어있음은 지성적인 날카로운 칼날이 아닙니다. 깨어있음이란 지성이 예술적으로 발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술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그게 담임과정의 특성입니다.

 

6-9학년에서도 아주 창의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이때 역시 상상력이 풍부하게 수업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그 기술에 이르는 법입니다. 말하긴 쉽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기술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 교사는 아이들의 친구이자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자질입니다. 친구처럼 사랑을 받으면서 동시에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춘기에 대해 슈타이너가 만든 단어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리는 시기, 다시 말해 뭔가 가능성이 열리는 개화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약간 성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슈타이너가 말한 것은 우리에게 힌트를 줍니다.

 

사춘기 아이들과 작업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첫 번째 도구는 관심입니다. 또한 교사는 사춘기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갖는 관심을 조직화해줘야 합니다. 이는 6학년부터 상급과정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6학년 이상의 교육과정에는 과학적인 내용에 따른 경향성이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관심을 세상으로 내보내라는 것을 뜻합니다. 교육과정에서는 기술적인 것에 큰 관심을 가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과학적 기술은 경이로운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은 7학년에 이미 있습니다. 7학년 지리수업에서 아이들은 지리학적 탐험을 통해 마음으로, 다시 말해 영혼의 분위기로 그것을 배웁니다. 상급학년에서 기술을 다룰 때 우리는 인식적이고 지성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이것은 교육적인 면에서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모든 기술의 여러 면면이 기초하고 있는 건 인간의 지성이 하나의 물질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핸드폰도 인간의 지성이 물질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건 좋고 나쁜 걸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멋진 교통수단이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좋고 나쁜 걸 넘어선 지점에 기술이 있습니다.

 

상급에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까요? , 인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화학과 물리학에도 사랑과 관심이 녹아 있어야 합니다. 발도르프학교의 모든 학생은 이 경험을 해야 합니다. 화학과 물리학, 높은 단계의 지리수업에서도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것을 아이들의 영혼 속에 가져와야 합니다.

 

슈타이너는 사춘기 시절에 관심의 영역이 자기 자신 안에만 국한되면 문제가 된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춘기 아이들이 자기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다면 자기 안에 갇힌 사춘기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 과학이 할 수 있다면 문학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연극과 음악도 도움이 됩니다. 특히 소년들이 사춘기를 더욱 힘들게 보내는데요. 상급에는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교사시절 저는 공연 뒤에 스스로의 감동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주 멋진 경험이 아닌가요? 여기에는 어떤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본질적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창회에서 나는 문화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발도르프교육을 통해서 내 속에 열망을 갖게 되었어. 어른이 되면 내 영혼을 문화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열망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곤 합니다. 유럽에서는 부모님들이 사춘기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이제 사춘기가 시작됐네. 내가 뭘해야 하지?’ 이에 비해 아시아에서는 좀더 온화할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었지요. 거기에 지금 통역하시는 분의 아들이 있었는데, 앞머리를 야자수처럼 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마 저는 그렇게 하고 다니지 못할 거예요. (웃음) 사람들이 다 자기를 쳐다본다는 걸 그 아이는 알고 있지요. 그렇게 그 아이는 열려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가르쳤던 아이 중에 치과의사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주 힘든 사춘기를 겪었지요. 그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일은 자물쇠에 본드를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교사가 교실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말이죠. 그런데 자기 동생이 사춘기가 되어 똑같은 짓을 하는 걸 보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게 사춘기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시기지요. 예전에 한 교사가 10학년 문학 시간에 용기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3장 정도 쓰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종이에 이것이 용기다!”라고 쓰고는 5분만에 나가버렸습니다. 교사로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물론 아이의 행동은 아주 용기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30초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밖에 나가 아이를 데려와서 또 다른 종이를 주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설명해봐라고 하였습니다. 교사는 앉아서 손톱을 물어뜯고, 아이는 다시 작문을 했습니다. 그것이 사춘기입니다. 아주 재밌는 시기죠.

 

사춘기는 ‘if’의 시기, 만약의 시기입니다.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춘기 시절 가장 멋진 과목이 오이리트미인데요. 큰 키의 소년과 작은 키의 오이리트미 선생님 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러시아 출신에 담즙질인 여선생님은 아주 멋진 분이었는데, 9학년 수업에서 한 남자애의 매너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폭발을 했습니다. “너 같은 애랑 수업하는 게 나는 뭐 좋은 줄 아니?” “모르겠는데요...” “수업 반 남은 거 이제 네가 해봐. 피아노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야.” 그러자 조용해졌습니다. 소년은 피아노 선생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피아노 선생님은 이 음악이 있고 시가 있고 이아오를 해야 하고, 이렇게 말했고 소년은 해야 할 것을 종이에 적었습니다. 3일 뒤 실제로 수업을 했습니다. 오이리트미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이 와서 수업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 저를 따라오세요. 피아노 부탁해요.” 교사들도 학생들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웃음) 그래도 어쨌든 하기는 했습니다. 30분을 해냈습니다. 오이리트미 선생님은 네 미래의 직업이 보이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 아이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 영혼의 힘을 얻은 것입니다.

 

사춘기 시기 아이들이 어려움을 가질 때 학교를 제도, 시스템이라고 느끼게 되면 더 힘들어집니다. 아이들은 인간적인 관계, 만남을 필요로 합니다. 아마 여러분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보는데 유럽에서는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카탈로그가 있습니다. 학교생활 규정집이 있어서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면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학생은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학교는 절대로 시스템으로 아이를 만나서는 안 됩니다. 항상 올바른 이해 속에서 인간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10학년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렸습니다. 발도르프학교가 담배공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교사들은 생활안내서대로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웃음) 아이가 학교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토요일마다 4번 학교에 나와서 의자 밑의 껌을 벗겨야 하는 처벌을 내렸습니다. 아이는 껌 벗기는 것과 흡연의 관계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 생물을 가르치는 한 선생님이 깨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교육적이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에게 뭔가를 요청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교사가 규정대로 해야 한다고 말하자, “규정 따위 지옥에나 갖고 가버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종교적이지는 않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웃음) 생물교사는 그 아이에게 가서 멋진 일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담배를 피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건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는 일이지. 그러니 네가 담배에 관한 수업을 도와줬으면 한다. 20분도 좋고, 30분도 좋다. 칠판에 담뱃잎을 그리고, 담배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그 잎을 잘라 말리는지 그 과정에 대해 묘사를 해봐. 그리고 담배의 니코틴이 어떨 때는 약물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렴.” 그 아이는 준비를 잘해서 수업시간에 담배에 대해 아주 멋진 묘사를 했습니다. 모두가 만족했습니다.

 

이런 재밌는 예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런 일이 아이들의 영혼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요. 심각한 사건을 유머로 전환한 기억과 사춘기에 갖게 되는 인간적인 관계는 일생동안 생명체와 혼체에 힘이 되어줍니다. 슈타이너는 이것이 아주 매혹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상식과도 같은 일인데, 전쟁의 죄수들이 명확하게 보여줬습니다. 연구를 통해 전쟁 죄수들 중에도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비극적인 일을 훨씬 더 잘 견뎌낸다는 것입니다. 회복과 관련한 연구에서 심리학자들은 어린 시절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발도르프학교에 이 내용을 황금으로 써놔야 합니다. 학교에 대한 기억 중에 인간적으로 더 남는 게 있어야 합니다. 특히 상급에서는 좋은 인간적 추억이 중요합니다. 이게 비록 나쁜 일에 관한 것일지라도 관계성에서 나오는 추억이 필요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를 집으로 보내면 해결이 될까요? 아시아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는 심각하게 논의되는 사안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를 드렸습니다. 거기에는 도덕적인 차원도 있습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분명히 일어납니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상급학생이 있었습니다. 담임과정에서 그 아이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체조를 했는데 체조도 그냥 그랬습니다. 그런데 상급에 가서 교육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평가를 들었습니다. “얘는 다른 학교에 가는 게 좋겠어요.” 거의 모든 과목에서 성과가 없었습니다. 과제를 내도 해오지 않았습니다. 교사들은 부모를 만나 애가 잘 지내지 못한다고, 다른 학교로 전학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이 아이를 가르쳤던 물리교사가 아이를 남겨서 물었습니다. “너 알고 있니? 학교가 너를 지금 퇴학시키는 논의를 하고 있다는 거 말야.” “, 알아요.” 그래서 교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얘야, 넌 뭐가 문제니?” “모르겠는데요. 저도 정말 모르겠어요.” 사춘기 아이다운 대답이었습니다. “너 담배 피니?” “.” “디스코장 가니?” “, 물론이죠.” “너 마약하니?” “아니요.” “네 미래 계획은 뭐니?” “모르겠는데요.” “너 퇴학 당하면 어떻게 할 거니?”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너 학교에 남고 싶으면 내가 너랑 매일 작업을 해줄게. 하지만 나랑 잘 협력해야 해. 잘 생각하고 내일 다시 오렴.” 다음 날 아침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아주 힘든 일이겠죠, 선생님?” “그래, 그건 확실해.” “... 한번 해보죠.” 그날부터 그 아이는 물리실에 와서 밀린 숙제를 거기 책상에 앉아서 했습니다. 4주 뒤에 교사는 그 아이가 이제는 과제의 대부분을 혼자 할 수 있지만 교사가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반 년을 보냈습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다른 교사들이 대체 이 아이가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이 아이는 자기 모습을 찾아가고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시험을 잘 봐서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졸업식날 40명의 다른 학생들 앞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 선생님이 자기 삶의 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상급의 학생들은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성인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어린 아이 같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반복해서 말하기를 인간적인 관계 없이는 어떤 상급교육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춘기 아이들을 만날 때는 교사로서 창조성과 내적 유연함을 갖춰야 합니다. 아이들을 시스템이 아닌 진정한 나와 너로 만나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사는 이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이해 속에서 변형시켜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나이마다 천재성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첫 3년은 달에서 오는 힘이 있습니다. 하늘의 달이라기보다 달적인 힘이 아이들 안에서 생명의 과정이 진행되도록 도와줍니다. 유치원 과정과 담임과정에서는 이 성장의 힘이 자아와 육체가 결합하고 흡수되는 것을 도와줍니다. 마치 식물이 자라는 과정과 같습니다. 그리고 담임과정이 되면 단계별로 영혼의 일부로 자라납니다. 이제 그 힘은 영혼의 성장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슈타이너는 담임과정에 대해 분위기(mood), 분위기,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사춘기는 언제일까요? 우리는 사춘기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성숙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성장과정에서 천사, 대천사, 아르카이(시대의 영)라는 세 위계질서가 인간에게 작용하는데, 21살이 될 때까지 아직 일이 다 끝난 게 아닙니다. 첫 번째 천사의 일이 끝나기 전에 대천사가 들어옵니다. 여러분의 자아를 에테르체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게 하는 힘이 대천사에 의한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성적인 측면 이상의 일을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습니다. 동물은 이 지점이 퇴화되었습니다. 인간만이 자아와 아스트랄체가 물질세계 속으로 들어오며, 잠재능력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동물과 달리 인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화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그 힘을 다시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오는 엄청나게 강한 힘이며, 그것이 다른 인간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힘입니다. 그것을 위해 고차세계의 존재가 우리 속으로 옵니다. 물질체나 에테르체, 아스트랄체가 아니라 자아 속으로 들어옵니다.

 

사춘기 아이는 고차세계의 존재를 만나는 존재, 고차세계의 존재가 가까이 온 존재라고 무의식으로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천사와 대천사, 시대의 영이라는 세 위계질서가 인간 안으로 들어오고, 탄생 이전의 존재성을 지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21세 정도가 되었을 때입니다. 태어나기 이전에 가지고 온 결심을 자기 존재로 가져오도록 학교가 돕는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발도르프학교는 아이들의 그러한 발달을 학문적으로도 적절하게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교육에서 예술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주장이었습니다. 탄생 이전의 과제를 자기 존재를 통해서 이루기 위해서는 예술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략적으로 21세까지의 시기는 탄생 이전의 상태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탄생 이전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납니다. 달의 정령과 수성의 정령이 7년 주기로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 뒤 21세가 되면 태양의 정령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삶을 위한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21세가 되면 이제 비로소 완전히 삼중성이 자리잡습니다. 이것이 바로 태양의 영역입니다. 이때부터 우리의 자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체적인 능력과 영혼의 능력에서 이것들이 서로 나란히 놓이게 됩니다. 그로 인해 엄청난 힘이 생기게 되며 여기에서 우리 자유가 시작합니다. 이것이 교사가 해야 할 일의 영역이고, 교사로서 삶의 책임감입니다.

 

슈타이너가 말하길, 12세 이전에는 개인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이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2세 이후 지성이 깨어나면서부터 개인의 삶이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성이 성숙하면서 진정한 우정을 발견하고 직업을 찾고 배우자를 만나게 됩니다. 지성의 힘은 우리의 자유를 극대화시키다가 42세부터 영혼의 힘이 단계별로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영혼의 힘이 신체의 힘과 분리되면서 이제 우리는 삶의 마지막 단계(탈육화)에 이릅니다. 토성의 힘을 받는 단계로서 이제 우리는 가을걷이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을 열매 맺게 하는 일이 나머지 삶의 과정입니다.

 

아주 본질적인 얘기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어렸을 때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권위의 축복을 경험한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 다른 사람을 자기 언어로 축복해 줄 수 있습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말 뒤에 실재가 존재하는 어떤 충고를 줄 수 있는 어른이 됩니다. 이제 21세까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림을 그려 보실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세상의 구성원리이자, 인간의 구성원리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마음에 품길 바랍니다.

 

일반인간학에 나오는 아주 놀랍고 충격적인 인용문을 읽어드리고자 하는데요. 희망컨대 이 인용문이 여러분에게 잘 이해되길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읽어드리는 건 힌트를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과 여러분의 동료들은 잘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자신에게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발달된 지식이 있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 여러분의 감정과 의지에 잘 스며들어 있다면, 여러분은 아이들을 잘 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내면에서 여러분을 깨워줄 교육적 본능을 통해서 의지적인 지식을 적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식은 진실한 것입니다. 지식이란 세상의 실재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잘 발달된 지식이 있다면 여러분은 성장하는 아이들을 잘 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특별한 일입니다. 교육적인 본능이 여러분을 깨울 텐데, 그 의지적인 지식이 여러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교사명상을 잘 한다면 의지적인 지식의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 아주 멋진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의지적인 지식입니까? 그것은 진정한 지식,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저는 아주 잘 훈련된 철학자를 한 명 알고 있지만, 그는 슈타이너의 <자유의 철학>3,40페이지쯤 읽다가 포기하고 자기는 못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자유의 철학>이 치유의 책이 되기도 하지요. 끝없는 에너지를 주는 책입니다. 그것이 흥미로운 차이입니다. 여러분이 <자유의 철학>이나 <일반인간학>을 볼 때 그냥 지적으로 읽지 않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사고 속에서 여러분의 감정과 의지로 스며들게 한다면 인간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의지가 교육적 본능을 일깨우고 의지의 지식이 그걸 하는 것입니다. 슈타이너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경험하는데요. 그냥 읽었다거나 안다고 하면, 다시 말해 지식으로 갖고 있다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슈타이너의 참뜻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감정, 의지 속에서 잘 참여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들에 대해 사랑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생각을 사랑한다면 그건 여러분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날마다 슈타이너 글의 짧은 문단을 반복해서 읽고 3,4분 정도 명상을 하면 여러분의 내면에서 뭔가가 일어나는 걸 경험할 것입니다. 뭔가가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분 영혼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이걸 계속 한다면 이러한 순수사고가 여러분 의지의 일부분이 될 것입니다. 슈타이너가 말한 것처럼 여러분의 교육적인 본능이 발달될 것입니다. 여러분, 본능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육체적인 영역에서 본능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차원의 것입니다. 본능이란 직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슈타이너가 강조한 것입니다. 저절로 옳은 일을 하는 게 본능인데, 우리는 교육적 본능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신과학에서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주류학문의 접근과 다를 것입니다. 주류학문에서 말하는 이해의 방법은 하나씩 하나씩 이해해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직관적 본능이란 이렇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뭔가를 할 때 뭔가가 와서 도와줍니다. 사고만으로 무언가를 한다면 옳지 않은 결정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지와 감정, 사고가 함께 한다면 뭔가가 뒤에서 나와 ,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고 알게 됩니다.

 

뒤에서 온다는 건 뭘까요? 내 영역 바깥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슈타이너가 말한 여러분 속의 두 번째 인간입니다. 우리는 항상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개별적인, 정상적인 차원의 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두 번째 내가 있습니다. 그건 지식, 사고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하도록 온전한 존재로서의 자질이 거기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두 번째 인간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을 이끌어갈 일대기적인 존재이며,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아주 높은 차원의 자질입니다. . 이 자질을 우리 안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갑자기 적절하게 해결될 때가 있습니다. 교육적인 본능이란 아주 높은 차원의 것이 지상의 차원에서 현실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직관입니다. 어떻게 이것을 계발할 수 있나요? 그것은 여러분의 통찰을 통해 키울 수 있습니다. 온전한 존재로서 통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주 쉽습니다. 슈타이너가 제안한 것은 그 공부를 교사회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매주 30분 정도 교사회가 같이 공부하면 멋진 영감을 주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려운 상황도 적절한 기술과 함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생애 끝 무렵에 무언가를 썼습니다. 100여 개의 문장으로 된 글을 하나 썼습니다. 인지학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장들로 삶은 믿을 수 없는 고차원의 지식이 응축된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것은 우리가 인지학을 통해 다른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이 인지학입니까? 인지학은 앎의 어떤 과정입니다. 내 속에 있는 정신적인 것이 우주 속의 정신성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주적인 것과 내가 만나는 것이지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앎은 심장과 마음과 인간 속에서 나타납니다. 본질을 찾고자 하는, 열망하는 나의 감정에서 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건 지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그건 나의 심장, 마음의 열망입니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인지학은 우리 자신의 영양분으로, 추구와 열망으로 나타납니다. 인지학적 지식은 그렇게 우리 자신을 먹이는 것입니다. 인지학자는 이러한 추구와 열망의 감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것처럼 아주 강한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고 우리 스스로를 먹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고프고 목마른 것은 물질적인 게 아닙니다. 인지학은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슈타이너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생각은 놀랍게도 기술(테크놀로지)과 관련된 것입니다. 교육적인 본능과 관련해서 그건 뭔가를 이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세대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50년 전만 해도 아주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술을 통해 우리의 삶이 아주 빨리 변했습니다. 그래서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기술을 통해서 현실 속으로, 어둠의 현실 속으로 너무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본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슈타이너의 마지막 충고는 이것입니다. “그것을 정복하려 하지 말라. 위로 올라가라. 기술적으로 깊어지는 만큼(아래로 내려가는 만큼) 정신적으로 고양되어라. 교육적 본능에서 직관을 계발하라. 유치원, 담임, 상급 과정에서 올바른 일을 하라.”

 

, 이제 커피 마실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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