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 교육과 사회 정의 - 닐 볼란드 본문
발도르프 교육과 사회 정의
닐 볼란드, 2020년 4월 9일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번역
닐 볼란드(Neil Boland)는 사회 정의를 위한 교육으로서의 발도르프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루돌프 슈타이너가 한 세기 전에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조사하고, 21세기 맥락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따져 보고자 한다. 글쓴이가 여기에서 권하려는 것은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의 사회 정의에 대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없는지), 어떻게 해야 이상을 강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것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가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동료들과 더욱 폭넓게 협력할 수 있는지” 더 광범위한 대화, 더 광범위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회 정의란 여러 의미를 갖고 있지만, 저에게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등한 장점, 가치 및 중요성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 내의 어떤 집단도 성별, 계급, 부, 자원 소유권, 문화, 신념 또는 비신념, 민족성, 성별 또는 성적 지향, 교육, 신체적 또는 정신적 능력, 인식론적 관점 또는 다른 정체성에 따른 특성에 기초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특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구상했던 사회적 쇄신 운동인 사회삼원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제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이후 사회적으로 커다란 격변과 필요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지금의 세계 역시 아마도 커다란 사회적 필요의 또 다른 순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100년 동안 이 운동에서 가장 큰 성공과 인정을 받은 소산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회 통합 및 사회 정의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감탄할 만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교사들 개개인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감탄스러운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슈타이너가 파악한 사회적 쇄신 운동의 세 가지 독자적 영역 중에서 저는 법률 영역과 문화 영역 두 가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법률 및 문화 영역
법률 영역은 평등이 지배합니다. <사회적 쇄신을 향해(Towards Social Renewal)>로 번역된 <Die Kernpunkte der sozialen Frage in den Lebensnotwendigkeiten der Gegenwart und Zukunft>의 영어 번역판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국내에는 <사회 문제의 핵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음) “정치 및 법률 영역에서 각 개인은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동등한 목소리를 갖는다.”(1) 저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동등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이것이 행동에 대한 촉구라고 생각합니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문화 영역에서 우리는 자유롭고, 서로 다르며, 모두 고유합니다. 저는 블룸(Bloom)과 같은 의미에서 자유를 논하고자 합니다. “자유에 대해, 슈타이너는 정치적 의미보다 정신적 의미에서 자유를 의미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자유로워져야 한다.”(2)
이제 저는 여러분이 이 두 가지 생각에 동의한다고 봅니다. 모든 사람이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동등한 목소리를 가져야 하고, 각각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창조하기 위해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슈타이너가 <사회적 쇄신을 향해>에서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동기와 충동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1)라고 말했듯이,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있지 않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인종 차별과 공격, 종교적 편협함, 불평등 심화, 난민과 이민자의 곤경,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모두 뉴스에 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공포, 억압, 편협함, 그리고 의심에 대해 읽습니다. 성차별과 가부장제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며, 부유한 소수가 덜 부유한 다수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새롭지 않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더하거나 덜하게 동성애를 혐오하고, 백인이 지배적이며, 성별을 이분법적 개념으로 보는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원주민들이 자주 소외되고 잊혀져서 현재의 논쟁 일부로조차 여겨지지 않는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교육은 양면성이 있다
우리가 놓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체계적인 인종 차별, 성 차별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왔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무의식적인 편견을 형성하여 우리가 무심코 우리 일에 반영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존속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교육은 힘을 실어주고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교육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불의를 쉽게 복제하는 것처럼 작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선한 의도를 갖고 좋은 일을 하길 원하는 사람일 수 있지만, 과연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식별했을까요?
그러한 편견들에는 무엇이 또는 누가 포함될까요? 그것은 다른 것들, 사회의 지배층이 아닌 사람들과의 차이를 포함합니다(이 중 일부는 사회에 따라 변하고 일부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편견들에는 비지배적인 성별, 즉 여성을 포함할 수 있으며 다른 피부색, 다른 종교, 다른 세계관 및 다른 역사관, 다른 성적 정체성, 다른 성별 표현, 다른 언어 사용자, 다르게 옷을 입는 사람, 빈민, 난민, 노숙자 등등, 목록은 계속됩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등한 목소리를 갖는 것'이 슈타이너의 이상이라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그것은 얼마나 잘 실현되고 있나요? 학생들은 발도르프 교육 안에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무엇을 배우나요?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복잡함 속에서 섬세하면서도 풍부한가요?
사람들이 동등한 목소리를 갖기 위해서는 교사로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또 무심결에 차별한다거나, 자기도 모르게 또 의도치 않게 편향되진 않았는지를 식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3) 따라서 우리는 “지배적 문화가 우리에게 제2의 본성으로 강요하는 특정한 퇴행적 행동, 생각, 습관, 가치를 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4) 이러한 첫 걸음이 없다면, 우리가 사회 정의를 향해 실천하는 가치 있는 행동들은 성공적일 수 없습니다.
사회적 쇄신
발도르프 교육에서 사회 정의의 뿌리는 길고 깊습니다. 발도르프학교는 사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러한 충동은 학령기와 유아기의 환경에서 직면하는 무수한 우려와 도전에 의해 어느 정도 가려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이 초기 목표를 슈타이너가 말한 짧은 두 구절에 비추어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사회적 쇄신을 향해>에서 가져왔습니다. “사회구조는 지속적으로 반사회적 힘을 낳는다. 이것은 계속해서 극복되어야 한다.”(1) 비슷한 인용문이 <어둠의 영들의 몰락(The Fall of the Spirits of Darkness)>에도 나옵니다.
“우리는 ...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양식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 아무리 좋고 올바른 것을 실현하고자 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잘못된 것으로 바뀔 것이다.”(5)
이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발도르프 교육의 양식에 어느 정도까지 적용될까요? 발도르프 교육에서는 이전에 있었던 것을 그 방식 그대로, 인정된 무언가로서, 그리고 종종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문서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발도르프 교육에서 식별할 수 있고 검토해야 할 반사회적 힘은 무엇일까요? 발도르프 교육 안에는 새로운 양식을 계속해서 찾지 못하여, 동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흐름을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잘못된 것”으로 변질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슈타이너의 다음 인용문은 포용성의 개념에 주목합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가장 모호한 관념만을 가지고 있다. ... 그러한 관념은 ... 해로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여기에서 슈타이너가 노동 계급에 대해 말한 것을 어떤 집단으로든 확장한다면, 사회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 집단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 집단을 위해 일을 한다거나 그들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돕길 원하는 선의의 진보적(liberal) 교사가 ‘선행을 베푸는’ 식의 관념에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소외된 집단과 어떻게 함께 일하고 또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방문하고, 소수자의 관점을 수업으로 가져오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역사, 신념, 세계관에 대한 대안적 독서의 복잡성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만큼 간단할 수 있습니다.
사회 정의라는 관념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잊혀진 사람들을 인정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주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람 있을 뿐만 아니라 도전적이고 불편하며 복잡하고 빠른 개선도 없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정해진 답이 없는 과정이고, 일단 진입하고 나면 중단되지 않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향해 일하는 과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하지요.
끝으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교육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의식혼을 “공감혼(empathetic soul)”으로 간주하는 엘런 라이브너(Elan Leibner)의 정의(definition)에 따라, 의식혼의 측면을 구현하려는 노력과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즉 포용과 탈식민화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 단지 이해한다거나 아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거나 억압받거나 희화화되거나 보이지 않게 될 때 타인이 겪는 고통을 자기 안에서 느끼는 것은 변화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발도르프 교육 운동의 핵심인 사회적 쇄신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닐 볼란드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과대학 교육대학원의 부교수이다. 그의 연구 관심사는 슈타이너의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음악 지도법, 비유럽 문화 및 지리적 환경에서 슈타이너 교육의 맥락화, 평가와 관련된 이슈 등이 포함된다. 그의 작업은 슈타이너 교육 운동과 다른 교육철학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Steiner, R. (1919/1999). Towards social renewal: Rethinking the basis of society (M. Barton, Trans.). London, United Kingdom: Rudolf Steiner Press.
(2) Bloom, J. (2017). One hundred years: In recognition of Rudolf Steiner’s threefold commonwealth. Retrieved from https://www.anthroposophy.org.nz/2019/05/08/essay/
(3) Harvard University. (2019). Project implicit. Retrieved from https://implicit.harvard.edu/implicit/takeatest.html
(4) Giroux, H. (2019, August 15). Now is the time to break the spectacle of ignorance and violence. Retrieved from https://truthout.org/articles/henry-giroux-now-is-the-time-to-break-the-spectacle-of-ignorance-and-violence/
(5) Steiner, R. (1917/2008). The fall of the spirits of darkness (A. Meuss, Trans.). Bristol, United Kingdom: Rudolf Steiner Press.
(6) Leibner, E. (2017). Between our demons and our gods: Human encounter in the light of anthroposophy. Paper presented at the AWSNA Summer Conference, Portland,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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