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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치유의 길에 대한 소고 : 비폭력대화, 회복적 정의, 인지학 (2014. 6. 12)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사회적 치유의 길에 대한 소고 : 비폭력대화, 회복적 정의, 인지학 (2014. 6. 1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0. 31. 19:25

사회적 치유의 길에 대한 소고 : 비폭력대화, 회복적 정의, 인지학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1. 들어가며

세월이 흐른다. 지방선거를 치렀고, 월드컵 대회가 다가왔다. 선거 참패를 면한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강제연행하고 극우인사들을 정부요직에 앉히려 하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사과를 하던 날 오후 대통령은 원전수출 계약을 맺은 UAE에 다녀왔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송전탑 건설강행을 위해 밀양에 행정대집행을 지시했다. 밀양에 건설되는 송전탑이 UAE와의 원전계약에 따른 것임은 이미 밝혀진 바다. 평택 대추리와 용산 남일당, 제주 강정에 이어 밀양 역시 대규모 경찰력으로 강제철거가 집행된 것이다.

경찰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알몸으로 저항하는 노인들을 끌어내고 철거를 강행했다. 평생을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노인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쫓겨나게 되었다. 노인들은 말한다. “이것은 법도에 어긋난 일입니다. 물질에만 탐하지 말고 좋은 나라 만듭시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시민들의 구호도 “이윤보다 생명!”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에 저항해 외치는 그들의 구호에 본질이 담겨 있다. 물질적 이해보다 살아있음이 중요하다는 외침은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한국사회는 이미 기업국가에서 마피아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여당은 재벌을 위한 입법에 앞장서고, 검찰과 법원은 이들의 범죄를 눈감아주며, 세무당국은 탈세를 묵인하고, 정부는 재벌가문의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방조한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퇴직 관료는 기업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다가 다시 국가요직으로 복귀하는 일이 빈번하다.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의 관료들 역시 인양업체와 유착관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거대 범죄조직처럼 경찰, 검찰, 법원, 대통령, 그리고 언론을 자신의 이익보호를 위한 방패막으로 이용하며, 저항세력이나 약자에게는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생명의 가치는 별 의미가 없는 구조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윤과 이해득실이다.

권력자들이 바라는 것은 망각이다. 대중이 다시 잠들어버리길 바라고 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 여론이기 때문에 총력을 다해 비판 여론을 탄압하고 왜곡하려 든다. 보수정권이 언론부터 장악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리고 한 손에는 공포를, 다른 손에는 오락을 들고 대중을 회유하려 든다. 집회참가자들이 자진 해산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강제연행하는 것이나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밟으면 밟히는 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협박이다. 동시에 월드컵 같은 오락물을 제공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고 애쓴다. 그렇게 대중이 망각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2.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

1) 아직 배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선실에 갇혀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차량의 운전석에 갇힌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관심의 끈을 늦추면 정부는 구조를 멈출 것이다. 그들은 애당초 구조에 관심이 없었다. 대중의 눈초리를 의식해 마지못해 수색작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이 옅어지는 순간 수색작업은 중단될 것이다. 천안함 사건 당시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던 금양호가 침몰했을 때 끝내 수색작업도 인양작업도 없었다. 그 당시에도 해경은 구난업체 언딘과 계약했다.

2) 생존자와 유가족이 입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은 장기적인 과제이다.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진도 팽목항에서 생존자와 유가족의 수발을 들고, 배 안에서 시신을 인양하여 수습하는 일을 맡아 한 것처럼 이제 시민들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트라우마 센터를 건립하고 지속적인 상담과 치유, 그리고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 정부의 피해자 대책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며, 오랜 시간 전체 사회의 정성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다시 쌍용차 사태의 비극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3) 세월호 참사는 여러 모로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학교에서 더 빠르고 가격이 저렴한 비행기보다 선박을 수학여행의 이동수단으로 정한 것, 규제완화를 이유로 노후 선박을 일본에서 가져온 것부터 불법 증축공사를 한 것, 과도한 화물을 싣고도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않은 것, 안개가 짙은 밤에 단독으로 출항한 것, 전날 오하마나호에서 세월호로 배가 바뀌고 선장과 1등 항해사가 교체된 것, 폭발소리와 유황 냄새가 났다는 증언, 해경이 선원들을 먼저 구조한 것, 선장을 해경의 숙소에 데려가 재운 것, 국정원에 먼저 보고를 한 것,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것, 진도VTS와 세월호의 교신 내용이 사라진 것 등등이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그 대상이 대통령이든 청와대 비서실장이든 가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3개월의 국정조사는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 당시에는 1년이 넘는 진상조사를 벌인 바 있다. 진상조사 후에는 당연히 책임자 전원의 죄를 묻고 규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4) 세월호 안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침몰 사고는 청해진이 저질렀지만 살인은 해경과 정부가 저질렀다. 그것이 무능에 의한 것이든, 자본의 사주에 따른 것이든, 사고 발생 즉시 대피와 구조를 하지 않은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러나 집단 망각으로 사회적인 죽음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대중의 책임이다. 고인 한명 한명의 삶에 시선을 두고 그들이 좋아했던 것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꿈꾸었으나 끝내 살아내지 못한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들을 기억 속에서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이러한 작업은 살아남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을 것이므로 우리는 고인들을 기억해야 한다.

5)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인 가족 당사자가 아니어도 사고 과정을 온국민이 생생히 지켜보았기 때문에 국민 모두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앞서 말한 일들이 온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건을 보면서 겪게된 무력감, 분노, 비통함, 두려움, 증오, 아픔 등의 감정을 나누고, 우리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 이는 신뢰서클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야외 집회나 안전한 공간에서 갖는 추모 모임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사회 변화의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방식은 비폭력대화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비폭력대화에 따른 애도

* 한국NVC센터 <NVC 애도 프로세스> 참고. www.krnvc.org

애도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나 추구하던 일을 접어야 할 때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애도를 한다. 애도의 방식으로는 골방에 들어가 홀로 하는 것이 있을 테고, 신뢰하는 사람들과 함께 둥그렇게 앉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려움을 겪었을 때 타인을 만나지 않고 자기만의 골방으로 들어가버리곤 한다. 쉽고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나 홀로 하는 애도는 위태롭다. 지나치게 절망하거나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 무차별적으로 쏘아댈 수 있다. 이는 진실하지도, 평화롭지도 않은 방식이 되기 쉽다.

세월호 추모집회에서도 우리는 비폭력대화의 방식을 사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셜 로젠버그가 정립한 비폭력대화는 우리의 삶을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의 네 측면으로 살펴본다. 간혹 단계를 뛰어넘거나 통합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그 다음으로 벌어진 일에 대한 느낌을 살핀다. 그리고 느낌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되는 욕구를 찾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일의 근본 원인에 내적 욕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은 단지 자극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내적 욕구이며,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된다. 끝으로 바라는 것을 올바르게 표현해야 한다. 그것은 강요가 아닌 부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가 아닌 ‘나는 이것을 바란다’의 방식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간이 신체와 영혼, 정신의 삼지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간의 영혼(마음)은 생각, 느낌, 의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의지는 욕구의 상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비폭력대화를 심화하는 데에서 인지학적 인간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벌어진 일에 대한 관찰은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먼저 지각하고 인식한다. 관찰이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오성을 통해 종합하고 정리한 것이다. 최상의 관찰이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지만 주관적인 우리의 사고는 한계가 있다. 생각은 아직 의식의 표층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아래의 느낌을 살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적으로 어떤 느낌과 감정을 받는지 살펴본다면 표층의 사고가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느낌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아무리 생각을 다잡으려 해도 감정이 그것을 부인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분노를 참거나 슬픔을 외면하기 위해 도덕적인 당위를 내세운다 해도 감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부인된 감정은 더욱 강력하게 마음을 뒤흔든다. 우리가 감정에 휩쓸려버리면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감정을 심하게 억누르면 자아는 약화된다. 감정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인정할 때 비로소 마음은 진정이 된다. 느낌 역시 인식이 필요하다.

느낌보다 심층의 의식은 의지, 즉 욕구이다. 바라는 행위는 강력한 마음의 작용이다. 많은 경우 감정은 욕구로부터 태어난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슬픔과 분노를 가져오며, 충족되지 못할 욕구는 무력감과 두려움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내적 욕구는 대체로 무의식의 차원에 머물기 때문에 욕구를 인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누가 되었든 무엇을 바라는지 알아주기만 한다 해도 많은 갈등이 사라지게 됨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욕구가 꺾이거나 무시될 때 우리는 고통을 겪게 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거나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생각과 느낌, 욕구를 인식한 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이 바라는 바를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과 욕구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표현을 부탁의 형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책임의 소재를 자기 자신에게 두는 일이다. 바이런 케이티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일은 나의 일과 남의 일, 신의 일로 나누어진다. 신의 일이란 나와 너의 관계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일만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뒤섞으며 남의 일과 신의 일에 매달리느라 정작 나의 일을 도외시하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표현하는 욕구들은 강요의 형태가 될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질 확률도 줄어들게 된다.

1) 애도의 과정

* 세월호에 관해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진행하며 나온 기록

① 관찰
- 어떤 소식을 들었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② 느낌
-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가? 지금은 어떻게 느끼는가?
- 슬프다, 안타깝다, 절망스럽다, 허탈하다, 원망스럽다, 무기력하다. 화가 난다, 놀랐다, 암담하다, 먹먹하다, 우울하다, 숨이 막힌다. ...

③ 욕구
- 무엇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되었는가? (우리가 강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무언가가 우리에게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 모두가 안전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회를 갈망한다.
- 주관을 가지고 사는 힘이 중요하다.
-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나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깊이 의식하며 행동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맡고 있는 이들이 성실하고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는 사회, 꽃처럼 피어나는 젊은이들의 삶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회, 작은 규칙들이 지켜지는 것이 당연하게 존중되는 사회, 진실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 공동의 책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회를 이루고 싶다.
- 삶의 본질에 초점을 두는 교육, 영적인 각성이 있고 그 차원에서 연결하고 힘을 모으는 사회를 원한다.
- 아이들이 안전하고 사랑받으며 보호받는다는 것을 믿으면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사회, 모두가 연결되고 평화로운 사회, 각자가 자신의 성실과 정직, 근본을 당당하게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고 그것이 존중되는 사회,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투명하고 솔직하게 소통하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안전을 우선시하는 사회, 각자가 자기가 하는 일에 전문성과 확신을 갖고 일하는 사회,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존중받고 자기 책임을 갖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어른들이 실천하는 사회,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공동체 전체의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며 사는 사회, 공적인 보도가 투명해서 믿을 수 있는 사회, 평화롭게 태어나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사회, 성숙하고 자각이 있는 지도자가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 정직과 진실이 기본적인 토양인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 헛된 희생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배워서 변화하기를 바란다.
-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실무자들이 존중되고, 진실을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말을 했을 때 보호되는 사회를 원한다.

④ 부탁
- 이런 사회에서 사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다. 이런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우리 자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내 삶에서, 내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서 내 자신에게 하는 부탁은 구체적일수록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다.
- 나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안 하겠다.
- 자녀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도록 격려하겠다.
- 우리 아이가 자신의 내면의 진실에 따라 살 수 있도록 돕겠다.
- 아이와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즐거워하겠다.
- 2주 안에 아내와 자녀와 함께 캠핑을 가겠다.
- 다른 부모들이 아이들과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겠다.
- 학교에서 아이들과 연결하는 시간을 갖겠다.
- 자녀가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서 나는 자녀와 약속을 신중하게 하고 한 약속은 꼭 지키겠다.
-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약속을 남발하지 않겠다.
- 나의 가정, 직장과 공동체에서 내가 듣기 힘든 질문도 허용하고, 내 자신이 그런 질문에 열려있도록 노력하겠다.
- 다른 사람을 배려하겠다.
- 함께 사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먼저 인사를 하겠다.
- 교통 신호를 지키겠다, 다른 규칙들도 지키겠다.
-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소중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겠다.
- 세월호 사건의 진행을 지켜보고, 스크랩하고, 모니터링을 하겠다.
- 바로잡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집회와 서명 등에 참여하겠다.
- 이번 선거에 참여하겠다.
-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우리 동네 사거리에 버스가 위험하게 서는 것에 민원을 내겠다.
-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 해 보겠다.
- 내가 속한 모임에서 애도의 시간을 갖겠다.
- 일하는 동료들과 월 2회 친목모임을 가지겠다.
- 학생들이 자기표현 하는 것을 그대로 듣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수업을 하겠다.
- 학교 내에 회복적대화 모임 시스템을 만들겠다.

2)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을 도울 때

* 아주 천천히 진행한다.

① 슬픈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지원하기
- 언제 그 사람이 제일 그리운지? 언제 가슴이 많이 아픈지? 언제 제일 생각이 나는지?
-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 돕는다. 깊이 애도할 수 있게 한다.
- 슬퍼하지 않도록 떠난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애도가 필요한 사람을 더 힘들고 외롭게 할 수 있다. 아무도 자기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면서 더 외롭게 느낄 수 있다.

② 슬픔이 물러간 뒤에 떠오르는 추억 돌아보기
- 깊이 애도를 하고 나면(대개 한숨을 쉬거나 몸에서 긴장감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즐거운 추억에도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된다.
- 그 사람과 있었던 즐거운 추억을 말할 수 있게 돕는다.
- 떠난 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함께 즐거웠던 기억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

③ 감사하는 마음으로 안내하기
- 원하는 만큼 오래는 아니었어도 그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 그 사람이 주고 간 선물이 어떤 것인지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④ 감사에 보답하기
- 그 사람이 주고 간 선물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
- 감사하는 마음에서 더 나아가 그 사람의 뜻을 어떻게 기릴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도록 돕는다.

⑤ (선택) 역할극
- 이 부분은 시작하기 전에 애도하는 분에게 돌아가신 분과 이야기를 해 볼 의사가 있는지 동의를 구한다.
- 돌아가신 분을 상징하는 꽃, 인형, 사진 등을 이용하거나 이 애도의 과정을 진행하는 사람이 돌아가신 분의 역할을 한다.
- 상징물을 보면서(아니면 돌아가신 분 역할을 하는 진행자에게)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 이 과정을 진행하는 사람은 들으며 돌아가신 분의 역할로서 공감을 해준다. (천천히)
- 역할을 바꾸어 애도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신 분이 되어보겠느냐고 물어본다.
- 이 과정을 진행하는 사람은 애도하는 사람의 역할을 하며 들은 말을 되풀이 해준다.

(침묵으로 지금까지 한 프로세스를 돌아본다)

⑥ 마음 돌아보기
-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물어본다.


4. 회복적 사회의 비전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학원 수강을 끊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평균 서너 개 이상의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다. 청소년의 경우 아침 일찍 등교해 자율학습까지 마친 뒤에는 입시학원을 순례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자정에 가깝다. 참사 이후 사람들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아이들에게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수많은 청소년 역시 참사를 겪으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또래의 학생들이 말도 안 되는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이 사회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버려두고 가장 먼저 탈출하였다. 해경은 구조를 방기했을 뿐만 아니라 해군과 소방방재청, 민간잠수사들의 구조를 배제하고 방해했다. 청소년들은 거기에 돈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음을 인식했고, “이윤보다 생명”의 가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리에 나가 세상이 바뀌길 바란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6.4 지방선거의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았다. 정권은 제대로 심판받지 않았고, 대안세력은 이전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좀더 인간적이고 살 만한 세상에 대한 대안도 뚜렷하지 못하다. “대통령님의 눈물을 닦아주십시오”,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며 절을 하던 기득권은 선거 뒤 더욱 퇴행하고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 미온적일 뿐만 아니라 청해진해운의 소유주를 희생양 삼아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희생양을 처단하면 정의는 회복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법원의 상징물은 두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상이다. 여신은 저울과 칼을 들고 정의를 가린다. 가해자가 저지른 죄의 대가만큼 공정하게 처벌을 하는 것이 여신의 임무다. 처벌이란 죄를 저지른 자에게 피해자가 겪은 만큼의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정의의 여신은 응보적 정의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피해자는 어디 있을까? 가해자가 합당한 고통을 겪으면 피해자는 회복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리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처벌이란 현실적으로 정확히 계량할 수도 없는 것이다. 피해자는 재판의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속죄할 기회를 잃고 재판장 앞에서 자신의 죄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세월호 재판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모이는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사법 시스템은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고, 가해자가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화해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재판의 결과는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응보적 정의만을 당연시해왔기 때문이다. 감각혼과 지성혼에 따른 근대의 삶은 참됨을 찾기보다 기계적 매뉴얼만을 갖추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의식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의식혼의 삶이란 내면의 빛에 따라 질문을 새롭게 하고 참됨을 추구하는 삶이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로서 환부를 도려내는 것보다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임을 깨닫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법제도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법을 위반했는가? 2) 누가 위반했는가? 3) 어떤 형벌이 마땅한가?’ 이에 반해 회복적 정의에 따르면 가장 먼저 질문되어야 할 것은 “피해자가 누구이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가?”이다. 가해자를 찾고 형벌을 찾는 게 먼저가 아니다. 본질은 피해자가 입은 상처이며, 파괴된 관계이다. 다음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가해자는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가해자에게 기계적으로 떨어지는 형벌이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공동체의 만남을 통해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되며, 가해자의 변화 가능성도 존중된다. 가해자는 피해자와의 대면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어떤 피해를 불러왔는지 직시해야 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을 지역공동체와 함께 찾아내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의 방법론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2) 그들(피해자, 가해자, 지역공동체)의 요구는 무엇인가?
3) 이것은 누구의 의무이고 책임인가?
4) 무엇이 원인인가?
5) 이런 상황에 누가 관여해야 하는가?
6) 어떤 절차를 통해 해법을 찾을 수 있는가?

응보적 정의와 회복적 정의는 다른 패러다임에 기반한다. 응보적 정의가 가해자 처벌에 집중한다면, 회복적 정의는 피해 회복에 힘을 모은다. 전자가 강제적 책임 수행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자발적 책임에 방점이 찍힌다. 따라서 재판의 과정에서 중시되는 주최자도 다른데, 응보적 정의에서는 처벌하는 사람과 처벌 기관이, 회복적 정의에서는 당사자와 공동체가 중심이 된다. 이는 사실 교육현장에서 더욱 유용한 패러다임이다. 기존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 대한 입장은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음으로써 너의 죄를 씻으라!”였다. 징계위원회나 상벌위원회의 활동도 처벌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이제는 문제의 본질에 초점이 맞춰지고 생각이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회복적 생활교육에 따른 입장은 “피해를 회복하는 자발적 책임을 통해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여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권퇴진을 바라지 않는다. 이 참사가 단지 정권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다. 유가족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정확히 알고자 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가해자들을 잡아들여 재판을 통해 형벌을 내리고 단순히 죗값만 치르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잘못을 저지른 이들은 모두 비싼 변호사를 사서 자신의 잘못을 부인할 것이다. 간접적으로 잘못에 가담한 이들은 침묵할 것이며, 처벌을 받는 사람도 벌금이나 감옥살이 등을 통해 자신의 잘못에 대가를 치렀다고 여길 것이다. 그렇게 끝난다면 사회는 조금도 변화할 수 없다. 새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누구보다 피해자가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재판 자체가 애도의 과정이 되어야 하고, 재판의 결과는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비전이 되어야 한다.


5. 새로운 공동체

* 미하엘 데부스, <교사를 위한 네 번째 강연>, 2013.2.22.

Ⅰ.
지혜
자연

Ⅱ.
도덕적 법칙 - 야훼
사회

Ⅲ.
개별적 도덕성, 자유, 책임감
자유로운 존재
-------------
개인 존재, 독신성

Ⅳ.
새로운 그룹 정신
새로운 공동체
-------------
집단사회, 사회적 기계

Ⅴ.
새로운 예루살렘
새로운 자연
-------------
글로벌화된 기계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유의 철학>에서 인류의 발달사에 관해 말하면서 인간 사회의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온 생명이지만 자연 이상의 높은 수준이며, 만일 인간이 동물 이하로 떨어진다면 자연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서만 산다면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데, 그 이유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본능은 자연의 지혜이다. 지혜로운 본성이다. 숲 속의 다람쥐나 여우, 멧새는 지혜로운 본성에 따라 자연과 갈등 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과욕을 부리지 않고 고통에 빠지지 않는다.

자연에서 빠져나온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지혜로운 자연의 본성을 잃어버린 대신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를 의지하고 통제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공동체는 수많은 규범과 규율을 가지며, 공동의 도덕성을 천명한다. 그러나 도덕성이란 본래 개별적인 것이다. 자연에 도덕성이 없는 것처럼, 자연의 법칙과 같은 보편적 도덕성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할 수 없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도덕성은 다르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시 이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지만 오늘날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연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에게 도덕적 법칙이란 과도기적 의미에서 필요한 것이다. 자연의 본성에 따라 살 수 없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선 도덕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인간이 아직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시기를 제1단계라 한다면 공동체라는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시기를 제2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개별 인간의 발달단계로 본다면 제1단계는 첫 번째 7년주기로 이 시기에는 도덕적 법칙이 없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모방의 시기이고, 여기에는 선악이 있을 수 없다. 두 번째 7년주기에 도덕성이 오며,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아주 명확한 도덕적 법칙이 필요하다. 자연으로부터 해방됐고 사회라는 도덕적 법칙이 있는 곳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세 번째 7년주기에는 거기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이때부터 한 개인의 고유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1단계에서 제2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루시퍼에 의한 작용이라고 슈타이너는 설명한다. 루시퍼는 항상 분리를 시키는데, 구약성서에서는 그 사건을 ‘원죄’라고 부른다. 뱀으로 분한 루시퍼의 유혹에 의해 선악과를 따먹은 남녀는 결국 낙원에서 쫓겨난다.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제3단계로 넘어간 시점에 와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율적인 힘을 가졌고, 개인적 자유와 인간의 권리를 확장해 왔다. 세 번째 7년주기의 아이들처럼 인류는 개별적 도덕성을 갖추게 되었고, 외적 권위보다 내적 권위를 찾는다.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데, 제2단계에서 제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도 루시퍼가 작용한다.

제3단계에서는 나의 흥미가 사회적 흥미보다 앞선다. 기존의 공동체가 구성원에게 늘 개인적 관심사보다 사회적 관심사를 강조하고, 사회적인 것에 개인적인 것을 종속시키라고 말해왔다면, 이제는 모든 구성원이 개인적 관심사에 따라 살게 된다. 모두 다 자유로운 개인인 까닭이다. 이로 인해 세상에는 점점 공동체가 무너져가고 있다. 독신가구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고, 같은 마을(혹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교류가 전혀 없는 일이 흔하다. 개별적인 관심이 공동체의 관심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자기 관심사가 중요한 것이다. 개별적 도덕성은 개별적 책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도덕성은 상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무질서와 혼란, 고독이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루시퍼는 인간을 분리하고 또 분리하여 독신자로 만든다. 공간적으로 모여 있다고 해도 관계 맺지 못하게 서로를 분리시키며, 자만심에 빠지도록 한다. 다음으로 작용하는 힘은 아리만으로부터 온다. 아리만은 이제 독신자들을 분류하여 번호를 매기고, 그들 각자가 무엇을 하는지 감시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인간은 사회적 기계의 부품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컴퓨터와 TV, 스마트폰과 같은 거울을 통해서 세상을 보며, 이미 세상 모든 것은 상품이 되어버렸다. 제3단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세상은 거대한 기계가 되고 만다. 제4단계에서 인류는 전체주의적이고 기계주의적 사회가 되느냐, 새로운 공동체가 되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제5단계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 사회 역시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서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파시즘적이고 기계적인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우리가 만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더욱 타락하고 말 것이다. 슈타이너는 인간 한명 한명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만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각자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 수련은 누구도 강제할 수 없는 자발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의식혼의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은 정신적인 초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발도르프학교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발도르프학교 운동의 초석이 되는 유기적 사회삼원체 운동은 내적 수련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 운동이다. 지금 우리가 자각하고 만들어가는 모든 것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전범이 될 것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진리에 따른 길이다. 기성세대가 스스로 깨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의식혼의 삶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문헌

루돌프 슈타이너, 양억관․타카하시 이와오 옮김, <초감각적 세계인식>, 물병자리, 1999
_______________, 양억관․타카하시 이와오 옮김, <신지학>, 물병자리, 1999
_______________, 최혜경 옮김, <자유의 철학>, 밝은누리, 2007
_______________, 최혜경 옮김, <사회문제의 핵심>, 밝은누리, 2010
마셜 로젠버그, 캐서린 한 옮김, <비폭력대화>, 한국NVC센터, 2003
_____________, 캐서린 한 옮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 한국NVC센터, 2009
바이런 케이티, 스티븐 미첼, 김윤 옮김, <네 가지 질문>, 침묵의 향기, 2002
찰스 콜슨, 홍병룡 옮김, <사람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의>, IVP, 2002
하워드 제어, 손진 옮김,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KAP, 2010


2014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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