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백성욱 박사의 삼지(三枝)사회조직론 연구 - 정천구 (2)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백성욱 박사의 삼지(三枝)사회조직론 연구 - 정천구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4. 12. 21:30

백성욱 박사의 삼지(三枝)사회조직론 연구


정천구*

*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Ⅱ. 삼지사회조직론의 배경


1. 신지학의 정신세계

백성욱 박사가 유럽에 유학하던 20세기 초기는 경험과학의 전성시대이면서 또한 과학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였다. 경험과학이 물리학과 천문학 그리고 기술발전에서 성과를 가져오자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분석적으로 옳은 것이나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5) 이 말이 옳다면 종교나 윤리학이나 철학, 미학과 같은 것은 의미가 없게 된다. 여기서 경험을 넘어서는 종교적 문제에 대한 반격이 나오게 되었다. 신지학과 인지학이 유행하게 된 배경이라 본다. 백성욱 박사는 행성과 태양계, 은하계에 관한 천문학과 원자, 전자, 분자의 세계 등 미시세계에 관한 과학의 발견 결과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그의 “대입소의 일리”와 “대우의 생적 준칙과 인류의 생적 준칙”이라는 논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경험과학의 한계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신지학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5) Creath, Richard, “Logical Empiricism,”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ummer 2020 Edition), Edward N. Zalta (ed.), URL=<https://plato.stanford.edu/archIves/sum2020/entries/logical-empiricism/>.


그는 금강경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아, 인, 중생, 수자의 사상(四相) 중에서 수자상(壽者相)을 경험이 있어 뭔가 좀 알았다는 생각으로 해석한 바 있다. 그는 지혜는 경험만이 아니라 경험과 직관을 결합한 종합적 직관을 창조적 판단으로 보았다.6) 백성욱 박사 유럽 유학 당시까지는 베이컨의 관찰과 실험을 통한 귀납적 방법을 과학에서 중시했다. 그러나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단순한 관찰과 실험에 의한 경험에서만이 아니라 이성과 직관이 개입한다. 그래서 오늘날의 과학의 방법은 “창조와 직관을 포함한 귀납과 연역의 종합 이상이다.”7)

 

6) 白性郁,『白性郁博士解說金剛般若波羅密經』(서울: 百萬社, 1977), p.322.

7) James M. White, “Science and Its Critics,” Advancing Family Theories (Sage book, 2003), p.30.


백성욱 박사는 삼지사회조직론을 설명하면서 신지학(Theosophie)과 인지학(Anthroposophie)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운행하는 이 세 가지 궤도에 대해서 1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사회과학자가 연구했는데” 테오소피(Theosophie)로 유명한 러시아의 블라바츠키(Helena Petrovna Blavatsky) 여사와 독일의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등이 여기에 동조하였던 것이라고 했다.8) 그는 “近時佛敎運動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당시 불교의 상태를 분석하면서 기독교의 유일신관에 대한 반격이 Theosophie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러시아, 독일, 영국, 미국 등지에서 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설명하였다.9) 블라바츠키는 이 운동이 고대 문명에서 공통되었다고 하는 지식종교 운동의 연장이라고 주장하였는데 특히 인도 요가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8) 김동규 엮음,『活佛로 추앙받던 백성욱 박사님의 이야기』(부천: 사 단법인 금강경독송회, 2009), p.206.

9)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앞의 책, pp.341-352. ‘近時佛 敎運動에 對하여’ 중.


블라바츠키 여사는 1875년 신지학을 창설하고 다음 1877년에는 『Isis의 베일을 벗기다』라는 유명한 책을 썼다. 이시스는 이집트의 여신으로서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블리바츠키는 동양에서는 잘 알려진 지혜의 종교(wisdom religion)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서구에 소개한 사람이다. 그녀는 과거에 힌두교와 이집트의 종교, 피타고라스, 그리스의 플라톤 등 거의 모든 문화에서는 지혜의 종교를 공유했었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러한 지혜의 종교는 근대 과학의 유행으로 서구에서는 희미해지고 있으나 “근대 과학의 물질주의 철학과 물리학은 이제 “탐구의 한계에 도달하였다”고 말하고 그 대신에 고대의 종교들만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주장했다.10)

 

10) H.P. Blavatsky, Isis Unveiled Vol I & II(Start Publishing LLC, eBook October 2012), p.41.

 

그녀는 우주는 자연과 같이 보이는 것, 기력(energy force)과 같이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이런 두 가지의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변하지 않는 정신(spirit)의 세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도 육체, 혼(soul), 그리고 정신(spirit)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런데 동물은 2원으로 육체와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혼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근대 과학자들은 사람의 몸과 동물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를 구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11) 현대과학은 정신을 무시하여 동물과 인간의 차별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11) 위의 책, p.309.

 

백성욱 박사는 블라바츠키의 이러한 주장에서 유럽사람들이 이제야 동양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구나 하고 반가웠을 것 같다. 육체와 심리 위에 정신생활을 강조한 점도 그렇고 한국의 사상이 우주와 인간의 구성요소를 세 가지로 본 것이 한국 고유사상과의 유사성에 유의했을 것으로 본다. 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에는 "우주의 있는 것은 모두 셋으로 돈다"는 주제의 글이 있는데 인간 사회도 정신생활, 법률생활, 경제생활의 세 가지로 돌아간다고 하였다.12)


12) 김동규 엮음, 『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 pp.264-290. ‘우주에 있는 것은 모두 셋으로 돈다’ 중.


이 세 가지 생활궤도는 신지학자이면서 인지학을 만든 루돌프 슈타이너가 주장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철학자이고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지도적 정신사상가였던 그는 제1차 대전의 참화를 겪고 있던 1917년, 1784년 프랑스 혁명의 구호였던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적용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활력과 정의로운 생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문화를 포함한 정신생활에서는 자유가 핵심적 원칙이고, 법률생활에서는 평등, 경제생활에서는 우애가 핵심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13)


13) John Bloom, “One Hundred Years: In Recognition of Rudolf Steiner’s Threefold Commonwealth”, Pacific Jounal, No. 53, Vol.1 2018, p.1.


그러나 그는 이들 생활이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국가가 이들을 통합하는 과거대로 하면 안 되며 3개 부분이 자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생활은 국가의 구조 안에서 성숙한 자유를 발전시켰으나 완전한 자치를 이룩하지 못하면 그러한 자유를 제대로 향유하거나 행사할 수 없다고 하였다.”14)


14) Rudolf Steiner, Trans. by E. Bowen-Wedgwood, The Threefold Commonwealth(New York: The Threefold Commonwealth Publishing Association, 1922), p.xxi

 


2. 현대과학의 우주론과 하나의 이치

백성욱 박사의 삼지사회조직론은 위에서 본 20세기 초 과학발전의 성과와 한계 및 신지학의 이론들을 한민족 고유사상과 불교 철학 등을 종합하여 발전시킨 독창적 작품이다. 그의 이론은 1926년 1월 5일~2월 5일 동아일보에 연재한 “큰 것이 작은 것에 들어가는 이치(大入小의 一理)”라는 논문(논문1로 표시)에서 시작하여 문집에 실린 “대우(大宇)의 생적(生的) 준칙과 인류의 생적 준칙”(논문2로 표시)에 좀 더 보충되었다. 그러나 논문으로 완성은 못 보고 『인류 문화사 특강』과 금강경 강의 등에서 보완했다. 연구자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논문1은 우주가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결국 하나의 이치로 돌아간다는 이론이 인도의 니야야학파에서 시작되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니야야학파는 이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데 석가모니 붓다에 이르러 그것이 외적 존재나 신이 아니라 내적 의미인 인간적 영지(靈智)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았다.15) 우리 마음속에 신적 지혜에 해당하는 반야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15)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앞의 책, p.101. ‘大小入의 一理’ 중.


여기서 신지학과 영지주의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 백성욱 박사는 독일 유학 때 독일신화나 천주교 의식 등을 연구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영지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으셨을 것이고 현대판 영지주의라 할 수 있는 신지학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작품에 관심을 두셨을 것 같다.”16)


16) 헬렌 정, “내 마음이 부처요 내 집이 법당이다,” 임덕규‧정천구 외 지음,『백성욱 박사 탄신 123년 기념 문집-금강경 독송과 바치는 법』 (파주: 백성욱연구원, 2020), p.275.


백성욱 박사는 붓다의 대입소(大入小)의 일리(一理)는 마명(馬鳴, 아스바고사)에 의해 크게 선양되었으나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 국어의 불완전함으로 말미암아 빛을 발하지 못하였는데 한국에 와서 원효의 해설로 빛을 발하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원효의 금강 삼매경론을 당시 한국에서는 구하지 못하였는데 오히려 중국에서 원효의 저작을 해동소라 하여 존중하고 평가하고 있어 그곳에서 해동소를 보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만일 원효의 천재로 외국어인 중국문, 즉 한문을 말고 반도어인 모국어로 학술연구에 착수하였다면 얼마나 더 가치 있는 것을 남겨 주었을까?” 아쉬워하였다.17) 필자는 백성욱 박사와 원효 대사의 삶과 철학이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2012년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을 연구하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18) 2020년 가을에는 백성욱 박사의 삶과 수행 정신을 원 효 대사와 비교한 논문을 학회에 기고하였다.19)


17)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앞의 책, p.103. ‘大小入의 一理’ 중.

18) 정천구,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연구-반야공관을 중심으로,” 한국민족 사상학회, 『민족사상』, 제6권 제1호(한국민족사상학회, 2012), pp.9-47. 참조.

19) 정천구, “백성욱 박사의 삶과 수행정신-원효 대사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민족사상학회,『민족사상』제14권 제2호(한국민족사상학회, 2020), pp.135-179.


20세기 초기에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대입소의 일리를 선적(禪的) 문구 정도로 치부하고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백성욱 박사는 그동안 발전된 자연과학을 토대로 삼아 지구와 우주 그리고 원자, 전자의 소우주를 연구하며 우주가 공통적인 하나의 일리로 통한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불변의 정리인 대입소(大入小)의 일리라는 방식에 의하여 축조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주 만유를 건립한 일리(一理)를 연구하여 우리 생활의 실제에 적용한다면 우리 인류는 이 방식을 가지고 오탁 세계라는 현 세계를 변화시켜 연화세계로 향적(香積) 세계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20)


20)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앞의 책, pp.127-128. ‘大入小 의 一理’ 중.


이러한 판단을 기초로 하여 백성욱 박사는 삼지사회조직론을 전개하였다. 태양계를 포함한 대우주가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면서 진화해온 것은 각 부분이 중심점을 중심으로 일정한 괘도를 유지하여 움직이기 때문인데 우주의 한 물건인 인류도 이를 본받고 있다고 하였다.21)


21) 위의 책, pp.185-190. ‘大宇의 生的準則과 인류의 生的準則’ 중.


즉,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위성들이 궤도를 돌고 그런 태양계 같은 별의 무리가 하나의 중심점을 두고 궤도를 돌면서 은하계를 이루고 그런 은하계들이 어떤 중심점을 운행하여 항성계를 이룬다. 원자, 전자 등 미립자의 세계도 비슷한 원리로 궤도를 두고 돌아간다. 이런 관찰을 통하여 그는 소우주나 대우주나 “우주는 동(動)한다. 일정한 궤도에서 운행되므로 우주는 완전에서 완전으로 나아갈 뿐이다.”라고 썼다.22)


22) 위의 책, p.187. ‘大宇의 生的準則과 인류의 生的準則’ 중.


그는 우주가 소우주나 대우주나 하나의 이(理)로 통한다는 것을 여러 방면에서 증명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원은 우주의 어디서나 항성계나 은하계나 자연적인 원이나 인위적인 원이나 그 원주율을 구하는 공식은 똑같다고 지적한다.

우주의 이치가 인간 사회에 적용되는 경우로 백성욱 박사는 음양의 원리가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에 적용된다고 보았다.

가정은 가정의 본의인즉 친교(親交)에서 출원(出源)한 것이요. 친교라는 것은 개인의 느낌에서 출원되었나니라. 이유인즉 인류는 감정적 동물인 연고니라. 이 느낌은 자연과학들이 교수하여 주는 자연물 중에서 구할 수 있나니 그 단위는 양전(陽電)과 음전(陰電)이니라. 그래 이 양전과 음전이 합하면 완연히 중성(中性)을 발표하는 일물체, 즉 불상사리(不相捨離 서로 떨어질 수 없는 : 필자의 해석)할 체를 성(成)하나니, 예하면 원자가 양전자 및 음전자를 조직한 후에 외면으로는 중성(中性)을 발표하는 것과 상사(相似)하니라.23)


23) 위의 책, p.135. ‘大入小의 一理’ 중.


그런데 외적으로 중립이 되었더라도 양전자와 음전자가 합하여 조직되었음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왜냐면 원자의 조직이 부조화할 때 폭발하여 원자 전체가 모두 함께 무너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양전자와 음전자가 자유 한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이 인간의 가정도 남자는 남자의 한계, 여자는 여자의 한계를 엄수하고 또 서로 자유를 존경함으로써 서로 무너지고 망하는 참화가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백성욱 박사는 이러한 이치를 설명하면서 “일부다처주의는 인류의 도덕이 아직 불완전하고 유치하였을 때 임시적 요구에서 행해진 것이요 인류에게 가정은 남녀의 결합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일부일처제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요, 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24) 그는 당시 여성비하와 상층부에서 처첩을 거느리고 살던 시대에 남녀의 상호존중과 일부일처제를 이처럼 공공연히 주장했다.


24) 위의 책, p.138. ‘大入小의 一理’ 중.

 

 

Ⅲ. 3가지 궤도 : 경제생활, 법률생활, 정신생활


백성욱 박사는 인류도 우주의 한 물건임으로 우주의 일리에 의해 돌아가는데 우주의 일리와 인류 역사를 상고하면 인류는 정신생활, 법률생활, 경제생활의 세 가지 궤도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 정신생활이 가장 중요하여 그것은 법률생활과 경제생활에서 나타나는 불평과 불만을 보듬어 주고 탐진치로 얼룩진 인간 생활을 순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생활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생활임으로 경제생활을 먼저 설명하였다.


1. 경제생활의 궤도

백성욱 박사는 “경제생활은 온몸의 신경이나 핏줄과 같아서 온 몸에 피가 잘 돌게 하는 핵심은 정당한 분배”에 있다고 하였다. 경제생활의 기본 바탕은 ‘자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가지거나 필요치않은 물건을 쌓아 놓지 않고 남에게 줄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분배가 경제생활의 원칙이 되는 사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져 보편타당한 가치구현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25)


25) 김동규 엮음, 『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 p.82. ‘화폐론’ 중.


백성욱 박사는 경제생활을 사람의 몸에 비유할 때 혈액작용이라 한다. 사람은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한 것같이 사회는 경제가 골고루 잘 돌아가야 건강한 사회라 보았다. 이 피를 누군가 혼자 또는 일부가 많이 차지하여 어느 부분에서 정체하면 혈관이 터져 반신불수 되거나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경제생활에서 분배가 핵심임을 지적한 것이다.

백성욱 박사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물건에만 탐심을 냈지 분배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적었다고 한다. 공산당은 기업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에 의지한 운행은 망하리라 생각했을지 모르나 자본주의 운행이라 생각지 않고 자기들의 결함을 생각했으면 개선의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 하였다.26)


26) 김동규 역음, 『活佛로 추앙받던 白性郁박사님의 金剛經이야기』, p.210.

 

그래서 개인이나 사회나 그 몸체를 유지하려면 경제활동을 해야 하고 마음이 몸체에 대해서 미안함이 없을 만큼은 복을 지어야 하는데 이것을 잘못하면 탐심을 연습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제생활의 궤도를 잘 유지하려면 먼저 무어든지 자기에게 쌓아두는 그런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요량 없는 탐심을 내면 본인은 물론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까지 괴로움을 주어 자신의 생명력을 약화한다는 것이다.

당장 자기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쌓아둘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경제가 돌아가게 해서 좋고 자기의 탐심을 덜어주니 성리를 밝히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경제생활은 먹고 사는 일이니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가 경제에만 치중하고 정신생활과 법률생활을 함께 돌보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백성욱 박사는 분배를 원활히 하려면 정책을 공평하게 잘해야 하지만 어떤 정책적 개혁을 해도 “한순간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으나 얼마 못 가고 수많은 제도와 개혁이 있었으나 인간은 행복하지 못하다” 하면서 그 이유는 부처님이 설했듯이 모든 것이 고통인데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려면 도를 닦는 것인데 이는 마음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을 밝히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부처님처럼 도를 닦아 대자유에 이르는 것이 제도를 개혁하고 재물을 모으는 것보다 각자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 인류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뒤에서 말할 정신생활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2. 법률생활의 궤도

백성욱 박사는 “법률생활은 몸의 척추와 같아서 몸을 굳게 버티게 하는 규범이라 정의(正義)로 세상을 골고루 평탄케 해야” 하며 “법률생활을 보편타당하게 운용하자면 개인이나 집단이나 불평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27) 불평하는 마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법률생활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률생활은 원시시대 규칙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나라의 헌법과 국제법 등의 발전과정에 있으며 앞으로 인류에게 더 나은 법률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7) 김동규 엮음, 『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 p.210. ‘육바라밀 2’ 중.


법률생활에는 정치생활이 포함된다. 법은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들고(rule making), 행정부는 법을 집행하고(rule enforcement), 사법부는 법을 판정하기(rule adjudication) 때문에 정부의 활동은 모두 법과 관련되어 있다. 독일은 법과 정치를 함께 보는 전통이 있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유명한 『법철학 강요』는 정치철학과 도덕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나 한스 켈젠(Hans Kelsen, 1881~1973) 같은 독일의 유명한 정치학자는 동시에 법학자였다. 백성욱 박사의 법률생활이라는 말에는 이 같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정하는데 사람들이 불평을 갖지 않게 하려면 법률생활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생활에서 정의를 기본으로 설정한 건 역시 백성욱 박사의 시대를 앞서가는 탁견이라 본다.

과학의 시대라 할 수 있었던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정치학은 경험주의 행태과학(behavioral science)이 주도하면서 정의(正義)와 같은 전통정치학의 주제는 정치학 연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행태주의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 가치와 윤리 그리고 목적을 연구하는 정치철학이 부활하게 되었다. 존 롤즈(John Rawls)는 정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현대과학의 언어학적 논리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정치철학의 부활에 일조했으며 전통정치학의 주요 주제였던 정의가 정치철학 연구의 주요 주제의 하나로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28) 백성욱 박사는 1920년대 후반에 이미 법률생활에서 정의가 준칙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28)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오늘날 정의론은 공정성을 정의로 보는 롤즈의 이론에서부터 공동체를 중시해야 한다는 마이클 센델의 이론, 또 자유지상주의의 이론에까지 여러 이론이 있다.29) 그러나 백성욱 박사는 어떤 이론보다는 실제로 사람들이 법과 규칙에 승복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29) 정천구, “정의란 무엇인가,” 『정치철학의 이해-2017년 1학기 강의 교재』(서울: 서울디지털대학교, 2017), pp.197-255.


예를 들면, "한 가정에 호주가 있어서 그 호주의 명령에 복종을 하는가 아니하는가는 법률에 의한 것이든 호주의 어떤 작용에 의하는 것이든 간에 자기 가족에 대하여 생활 전반을 총책임질 때 비로소 거기에서 복종이 나올 것"이라 하였다.30)


30) 김동규 엮음,『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 p.211. ‘육바라밀 2’ 중.


만일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신발이 없어 맨발이 되었다면 그때 가장은 자기 신을 벗어주고 신을 신도록 하고 본인은 맨발로 걸을 수 있다면 가족은 호주에게 절대복종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것이 법률생활이 운용되는 한 단면일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는 범위가 가정을 넘어서 사회로 가게 되면 법률(정치)생활은 과거 프랑스의 루이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는 방식으로 개인이 맘대로 하는 게 아니고 사회적 합의로 정해짐으로 국민의 동의에 의한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백성욱 박사는 이승만 박사의 건국과정에 동참했고 6‧25 전쟁 초기 내무장관을 지내는 등 이승만 정부와 연관이 있었다. 총장이 되어 동국대학을 경영할 때도 이승만 대통령과의 친분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31) 그러나 그는 이승만 정부가 이기붕 부통령과 같은 권력 실세의 인(人)의 장막으로 정치가 잘못되는 것을 알고 정부 개혁을 위해 부통령 출마를 두 번(1952년 2대 대통령 선거 및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이나 무소속으로 했다.


31) 송재운, “시대의 활불 백성욱 박사,” 임덕규‧정천구 외 지음,『백성욱 박사 탄신 123주년 기념 문집-금강경 독송과 마음 바치는 법』(파 주: 백성욱연구원, 2020), pp.96-97.


4‧19 학생혁명 때는 데모하러 나가는 학생들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놔둬라. 불의를 보고도 항거할 줄 모른다면 어디 젊은 피가 살아있다 하겠는가”라고 했다고 한다.32) 그리고 또 4‧19가 성공한 이후 뒷수습과 처리가 안이해서 정치꾼들에게 놀아나기 쉽다는 점도 경계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예로 들면서 유럽사람들이 철저하게 원칙을 관철하는 것을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다.33) 그러나 법만 번듯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지키는 게 필요하다는 점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가장 민주주의에 가까운 헌법이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인데 그 좋은 헌법을 뮌헨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을 최고법원에 제소해서 공산당을 해산할 때 딱 한 번밖에 써먹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고 회고하였다.34)


32) 위의 글, p.85.

33) 김동규 엮음,『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 pp. 255-256.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 중.

34) 위의 책, pp.255-256.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 중.


법률생활에서 불평을 적게 하려면 민의를 잘 수렴해야 하는데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에서 민의를 잘 반영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의 의견도 잘 청취해야 한다. 백성욱 박사는 그래서 국민의 직접 의사 표시인 시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려면 데모의 장소와 시간을 미리 경찰에 신고하고 일정한 신고한 선을 벗어나면 법의 제재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35) 그때 벌써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의 시행을 주장했다.


35) 위의 책, pp.261-262.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 중.


법률생활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역시 다른 생활과 균형을 취해야 한다. 불평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 나타나기 쉽다. 위정자나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일들을 공동체가 무슨 원인을 지어 이런 결과를 받는지 성찰하고 마음을 부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이 백성욱 박사의 처방이라 볼 수 있다. 백성욱 박사는 우리나라가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것도 배우지 못하고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고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오랜 기간 깔보고 무시한 업보가 있다 보았다.

 


3. 정신생활

백성욱 박사는 세 가지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발전시켜야 할 것은 정신생활이라고 하였다. 정신생활은 종교, 학술, 예술, 교육 등을 포함한다. 경제생활이나 법률생활의 불만족을 정신생활로 보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족(自足)하고 물질보다 마음으로 행복을 찾는 것을 사회의 도덕 규범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36) 인체에 있어서 정신생활은 머리의 대뇌로서 조화롭게 몸을 다스려 편안하게 하며 그럴 때 지혜가 나오고 종합적 직관으로 우주의 실상을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36) 위의 책, p.80. ‘화폐론’ 중.


백성욱 박사는 정신생활 중에서 종교를 중시했으나 신 중심의 서양식 종교보다는 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기 마음을 닦아 안정을 이루는 불교적 종교 생활을 중심으로 종교 생활을 이야기했다. 그는 세 가지 생활 중에서 착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착함은 문화마다 기준이 달라서 자기 종교의 계율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며, 남의 여자 넘보지 말라는 게 공통인 것 같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가치체제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37)


37) 위의 책, p.351. ‘경제생활, 법률생활, 정신생활’ 중.


정신생활의 백미는 종합적 즉각(卽覺)을 얻어 지혜롭게 생활하는 것이다. 종합적 즉각은 백성욱 박사가 칸트를 인용하면서 강조한 말인데 백성욱 박사는 유학 전부터 칸트를 공부한 바 있으며 경험과 직관을 통합한 종합적 즉각을 도인의 판단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과학의 홍수 속에서 자기 생활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아프리오리(a priori 先驗的)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아포스테리오리(a posteriori 後驗的)는 경험에 의지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사색 방식이지만 아프리오리는 직관을 통한 즉각이며 이를 도통한 이의 정신이라고 하였다. 모든 세상이 옳게 돌아가는 성리(性理)에 밝은 사람들은 종합하지 않고도 즉각이 가능한데 이를 도통한 이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오리라는 단어는 칸트에서 왔으나 백성욱 박사는 그 내용에서 동아시아의 도통의 전통을 부활시킨 것이라 본다. 사실 칸트는 어떻게 선천적인 종합판단이 가능한가를 문제 삼았다. 수학에서 2+3=5라는 판단은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니라 선험적이기 때문에 선천적 종합판단의 예로서 인용되고 있다. 칸트는 선천적 종합판단의 예를 들었으나 그것을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38) 백성욱 박사는 선천적 종합판단을 정신이 육체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오는 즉각 판단, 즉 도통의 정신이라고 본 것이다. 아프리오리는 자기 육체 속에 있던 정신이 바깥으로 나올 때 정신이 번뜩 번갯불처럼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39)


38) 김윤구, “어떻게 선천적인 종합적 판단이 가능한가?,” 『人文科學硏 究論叢』, 第二十六호, pp.153-155.

39) 슈타이너는 신지학에서 인간은 육체, 혼, 그리고 정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부분은 특유의 감관을 가지고 인식한다고 한다. 육체적 감관과 혼의 감관 그리고 정신의 감관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나 다르다고 한다. Rudolf Steiner, Theosophy(MacNelly&Company, 1910). pp.15-45.


아프리오리는 자기가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한다. 종합적 즉각은 선입견이 있으면 일어날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 공부는 선입견을 없애고 자기를 비우는 공부에 집중하는데 특히 백성욱 박사의 공부 방법은 금강경을 아침저녁으로 읽고 미륵존여래불을 봉송하며 탐진치를 닦고 부처님께 바치는 공부이다. 그중에서 사회생활과 관련된 것은 탐진치, 즉 욕심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이다. 백성욱 박사는 이를 닦는 실효성 있는 방법을 질 설명하고 있다.40)


40) 정천구, “백성욱 선생님께 배운 금강경 공부,” 임덕규‧정천구 외 지음, 『백성욱 박사 탄신 123주년 기념 문집-금강경 독송과 마음 바치 는 법』(파주: 백성욱연구원, 2020), pp.41-42.


경제생활에서는 탐심을 닦는 마음공부가 중요하다. 옛날에는 탐심을 끊으라 했는데 생활을 하면서 탐심을 전부 끊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과도하게 취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것이 탐심이다. 점심을 들면서 한 그릇이면 족한데 2그릇 3그릇을 먹는다면 탈이 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자기의 알맞은 양을 취하는 것이 탐심을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집단에서도 과도한 탐심이 분배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다.

법률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진심, 즉 성내는 마음을 닦아야 한다. 성내는 마음을 과거에는 참으라 했는데 백성욱 박사는 참으면 병이 된다고 하였다. 억지로 참으면 속병이 들던가 꾹꾹 눌러 참다가 폭발하여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칠 수 있다 하였다. 그러니 성내는 마음은 밝은 이에게 마음을 바쳐야 된다고 하였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 자기 마음을 살펴보고 얼른 부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치심, 즉 어리석은 마음은 모든 일에 다 관계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나쁜 일들은 국민이 배우지 못해서 지혜가 없어서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실상을 잘 알고 지혜가 있어야 한다.

백성욱 박사는 배우는 것은 끝이 없으니 항상 남에게 배우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양에서 고대의 성군 중 하나로 치는 우(禹)임금은 물을 잘 다스려 제왕의 지위에까지 올랐는데 자기를 나무라는 사람에게 절을 했다는 유명한 고사를 소개했다. 지혜를 배우는 것은 불교를 포함한 고대 종교들의 공통된 목표임을 앞서 신지학에서 소개했다. 지식을 넘어서 최고의 지혜를 향한 노력이 종교였다는 것이다. 백성욱 박사는 최고의 지혜를 반야의 지혜로 보아 금강경 독송을 수행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백성욱 박사는 최고의 지혜의 원천인 정신이 번쩍하고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을 도인의 지혜, 종합적 즉각이라고 표현했다.


Ⅳ. 삼지사회의 균형과 조화


백성욱 박사는 위에 말한 정신생활, 법률(정치)생활, 그리고 경제생활의 세 가지 생활궤도가 균형 있게 발전하지 못하고 하나가 다른 두 가지를 억압하고 지배하면 인류가 불행했다고 보았다. 원시시대에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공포심을 기반으로 하여 신을 중심으로 한 정신생활이 모든 걸 지배하게 되자 인류가 불행하였다. 인간은 신의 노예로, 실제로는 신을 대행하는 자들의 뜻대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을 기쁘게 하려고 동물 공양, 심지어는 인신공양까지 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종교지배가 끝나고 그 자리를 왕이나 귀족계급들이 차지하여 인민을 억압하는 왕권 시대에는 법률(정치)생활이 정신생활과 경제생활도 지배하고 지배자들 간의 영토와 이익 다툼으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민중은 억압되고 살육되는 등 인류는 또한 불행하였다.

경제생활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는 백성욱 박사가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는 마르크스 사상 계통의 운동으로 경제생활이 독단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역시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르크스는 일부 사람들이 공장을 만들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돈을 버는 것에 불만을 느껴 자본가를 없애고 노동자가 모두 나누어 먹자고 주장했다. 법률생활에 대한 반항의 일환으로 경제생활로 전 세계를 지배하자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종합적 즉각으로 얻은 지혜가 아니라 경험적 판단에 불과했기 때문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 왔다고 한다.41) 70년 동안의 실험 끝에 멸망한 공산주의의 역사는 백성욱 박사의 예견이 적중했음을 보여준다.


41) 김동규 엮음, 『活佛로 추앙 받던 白性郁博士님의 金剛經이야기』, pp.208-210.


그는 개인 생활에서도 정신생활과 법률생활, 경제생활을 조화롭게 조율하는 것이 중요다고 보았다.

“정신생활 밑에 경제생활과 법률생활이 눌려 있으면 그 사람은 현실감이 떨어지고 주변을 돌보지 않고 환상 속에 살듯 형이상학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경제생활 밑에 정신생활과 법률생활이 눌려 있으면 그 사람은 돈을 벌고 먹고 사는데 모든 열정을 쏟아 탐욕스러워지고 베풀지 않으며 찰스 디킨스의 소설 주인공 수전노 스크루지 영감처럼 됩니다. 법률생활 밑에 경제생활과 정신생활이 눌려 있으면 성격은 냉정해지고 사사건건이 따지고 자기 기준에 안 맞으면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기에 아프리오리는 끊임없이 활동하며 인간이 자기를 알아차리길 바라고 있습니다.”42)


42) 김동규 엮음, 『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 pp.39-40. ‘모든 고생의 근본은 욕심이다’ 중.


삼지사회조직론(三技社會組織論)에서 정신생활은 인간의 성리(性理)와 가치를 밝히는 생활이요, 경제생활은 인간집단의 생존을 위한 것이며, 법률생활은 인간집단의 보존을 위한 것인데 이들은 전통사회에서 우주의 세 가지 요소, 즉 삼재(三才)라고 한 하늘(天-정신생활), 땅(地-경제생활), 인(人-법률생활)에 해당한다.

20세기 중반에 근대 사회학의 기초를 닦은 탈코트 파슨스(Talcott Parsons, 1902-1979)는 사회의 네 가지 요소를 적응 (Adaptation), 통합(Integration), 목표달성(Goal Attainment), 유형유지(Latency)로 나누고 적응의 기능은 경제가, 통합은 종교가, 목표달성은 정부가, 그리고 유형유지는 교육이 담당한다고 보았다.43)


43) 李興玉, “Talcott Parsons 社會學理論의 體系와 그 理解,”『曉星社會學』, 創刊號(효성여성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1985), pp.124-128.


그리고 이들 요소의 기능적 분리와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고 보았다. 사회를 기능적으로 나눈 점과 이들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본 점은 백성욱 박사의 안목과 유사하다. 그러나 백성욱 박사의 삼지사회조직론은 경제와 법률(정치) 뿐만 아니라 정신생활(종교, 교육, 학문, 예술 등)을 사회의 주요 요소로 보았다는 점에서 일반 사회학자들의 기능주의 이론과 구별된다.


Ⅳ. 결 론


지금까지 백성욱 박사가 발표한 삼지사회조직론의 배경과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는 소우주나 대우주나 모두 하나의 이치가 존재한다는 이론을 현대의 과학적 우주론으로 도출하고 이에 따라 인간 생활은 정신생활, 경제생활, 법률생활로 조직되어 있다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서론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삼지사회론에서 우리는 루돌프 슈타이너 등 신지학자들의 영향을 볼 수 있으나 큰 틀에서 동조한 것이고 구체적인 면에서는 독자적인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슈타이너는 정신생활, 법률생활, 경제생활에서 각각 자유, 평등, 우애를 기본으로 삼았으나 백성욱 박사는 각각 분배, 정의, 탐진치 마음 수행을 통한 정신의 대자유, 정의, 분배를 말한다. 불교철학과 함께 이 삼지사회조직론을 통해 우리는 백성욱 박사의 철학사상과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아직 충분하지 못한 시대에 백성욱 박사는 과학의 우주론을 불교 경전의 구절과 연관지어 우주의 일리를 인간 생활과 인간 사회에 적용하여 연구했다. 그가 불교를 “실제적 현실로부터 터득한 진리를 각개의 주관을 떠난 객관적 지위에서 연구하는 의식 철학”이라 한 바와 같이 그는 공리공론과 사변에서 얻은 지식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여 얻은 실제적 지식과 서구 유학에서 터득한 과학적 세계관을 접목시켜 삼지사회조직론을 창안한 것이다. 이는 그의 전 생애의 활동에서 나타나고 있다.

독일 유학 시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최고의 정신생활인 불교 공부를 쉬지 않았음을 그의 독일 유학 기록에서 볼 수 있다.44) 그가 유학의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공부를 계속한 것은 불경과 선문(禪門)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모교의 교수가 되고 나서도 아직 일제하에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일제의 압력으로 하산할 때까지 10년 동안 정신생활에 집중하여 해인삼매를 얻었다.45) 그는 거기서 함께 수행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수행공동체를 만들어 그들을 지도했다.


44)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앞의 책, p.378. ‘書翰(二)’ 중.

45) 金映遂, “華嚴思想의 硏究,”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白性郁 博士頌壽記念佛敎學論文集』(서울: 東國大學校, 1959), p.4.


금강산에서 회중 수도하실 때도 소사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그는 처음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본인이 스스로 하기까지 손수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등 솔선수범을 보였다. 나라가 해방되자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승만 박사를 도왔고 6.25사변 전후 내무장관을 맡은 적이 있다. 관직을 맡고도 그의 생활은 여전했다고 한다.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고 강직하고 솔선수범하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46) 서울이 적의 치하에 들어왔을 때도 끝까지 서울에 남아 민생을 살피고 나서 가장 늦게 대전에 내려가 정부에 합류하여 서울의 적정을 보고했다. 그는 어느 직에 있을 때나 끝날 때 자기가 쓰던 돈과 물품들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고 한다. 장관이나 총장 재직 때도 같았다 한다.


46) 김재웅,『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영일: 도서출판 용화, 1992), pp.257-267.


동국대학교 총장 시절 그는 정신생활의 주요 부분인 불교수행, 대학의 건설과 운영, 예술문화 창달에 집중했다. 불교발전을 위해서 그는 대학원에서 원효의 금강삼매경론, 승조의 조론(肇論), 보장론(寶藏論), 화엄경 등을 강의했다.

그는 정신세계 중에서 예술문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미감과 숭고의 감정을 잘 다루고 있 고 신지학에서도 감성과 이성으로 정신의 세계에 도달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신지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예술과 건축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걸작으로 알려진 괴테아눔을 건설했으며 극작에도 천재성을 보였다. 재직시 지은 동국대학의 건물과 디자인에서 백성욱 박사의 건물과 디자인에 관한 안목을 볼 수 있으며 연극 영화과를 창설하여 오늘날 한류의 기초를 닦은 것은 예술에 대한 백성욱 박사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47)


47) 장한기,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임덕규, 정천구 외, 『백성욱 박사 탄신 123주년 기념 문집-금강경 독송과 마음 바치는 법』(파주: 백성욱연구원), pp.188-203 참조.


백성욱 박사 자신이 독일 유학 이전에도 미에 대한 감수성과 관심이 많았음은 그가 무호산방(無號山房)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지에 기고한 많은 시와 수필에서 볼 수 있다. 일생을 백성욱 박사를 헤르만 헤세의 작중 인물 싯다르타의 화신으로 존경했던 정종 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인간 백성욱은 예술가적 미의식에도 남다른 측면을 지녔고 그래서 감상력과 창작력 그리고 젊어서부터 미적 대상에 몰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통하여 전인적인 조화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함으로써만 그동안의 오래고 깊은 또한 넓은 만남의 현장에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의외의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근거가 비로소 이해의 실마리를 찾게 해주는 것 같다. 비밀이 풀리는 열쇠가 주어진 셈이다. 그에게 간직된 풍성한 인간성의 조화상 다 같은 말이겠지만 진선미의 조화 또는 지정의(知情意)의 균형잡힌 통일 그리고 진리의식 종교의식 정치의식 미의식 등 이른바 인간의 식의 전체에 걸쳐 차원 높은 조화적 발달상을 이뤄내고 있음이다. 그이의 이에 관한 신념적인 발언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진과 선이 구비하더라도 미(美)의 방면이 결하면 완전한 인격이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 있어서 인격이라 말할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다.48)


48) 정종, “백성욱의 불교와 활동,” (사)한국불교학회 2008년 가을 제48회 전국불교학술대회,『근대 한국 불교 선각에 대한 회고』(한국불교학회,2008), pp.36-37.


5‧16 군사혁명으로 교수정년이 정해져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백성욱 박사는 소사(현 부천시 소재)로 은퇴하여 다른 사회적 활동은 접고 수행에 정진하면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수행에서 터득한 진리를 전수하였다. 말년에 제자들을 길러낸 성인(聖人)들의 길을 간 것이다. 삼지사회조직론의 큰 원칙이 큰 우주나 작은 우주나 인간이나 우주는 같은 이치로 운행한다는 것이고 그 이치에 맞추어 생활하면 충돌을 피하고 인류가 향상한다는 것이다. 백성욱 박사는 자신이 즉각적 판단을 통해 파악한 우주의 이법(理法)에 따라 일생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슬기로운 결단을 내려 저세상이 아닌 이 지상, 미래가 아닌 바로 내가 사는 이곳을 불국토로 만들겠다는 자기의 원(願)을 실현하면서도 세상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논문투고일 : 2020.12.14.
심사완료일 : 2020.12.24.
게재확정일 : 2020.12.2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