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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왜 근대인가 - 김만권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왜 근대인가 - 김만권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8. 30. 22:58

과연 근대(Modern)는 과거일 뿐일까? 민족국가와 민주주의, 자본주의와 관료주의까지. 16C 근대의 개념이 탄생한 뒤 5백여 년이 지나도록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서 우리 삶의 토대가 되어주고 있는 근대적 삶의 조건들. 근대(Modern)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21C에 만난 ‘근대의 질문’ 그 첫 번째 시간.

https://www.youtube.com/watch?v=_VUD-3i1Ctc&t=787s


근대성(modernity)이란 16세기 이후 시작된 새로운 방식의 인간 삶의 조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민족국가의 형성을 들 수 있고, 경제적으로는 화폐 교환을 통한 시장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민족국가와 시장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나아간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분업이 심화되었고, 노동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체제로써 관료주의가 발달했다. 관료주의는 기업에서 먼저 발달하여 국가로 이식되었다.

근대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은 문화적으로 가치 다원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신의 시대였던 중세와 달리 근대는 가치가 분열되고 다원화된 시대이다. 삶의 모든 질문을 신의 말씀으로 귀속시키면 되었던 중세는 종교전쟁 또는 종교개혁으로 저물어갔다. 종교개혁은 15세기부터 라틴어 성경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면서 시작되었다. 성경이 대중화되면서 로마 가톨릭의 권위는 약화되었다. 성경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이다. 종교전쟁은 사실 해석의 전쟁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15세기 이후 유럽에 수많은 전쟁이 벌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게 되자, 사람들은 종교적 해석의 다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은 각국에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기로 한 최초의 국제 조약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준 것으로 종교적 다원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다원주의가 가치 다원주의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근대 세계는 신으로부터 벗어난 세계이자, 분열된 세계이다. 이제는 누구의 가치가 더 옳고 더 나은지를 인간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오늘날에야 당연한 문화지만 중세를 벗어난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주제였다. 따라서 근대 철학은 이러한 가치의 분열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 매진했다. 가치의 분열은 근대 국가를 탄생시켰고, 국가에 절대적 주권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근대성이란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으로 가는 탈주술화의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는 민족국가와 민주주의가,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문화적으로는 가치 다원주의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실행하기 위해 사회윤리적으로 계몽주의가 나타났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이 세계를 합리성의 세계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견고한 것들은 공기 속으로 녹아들고, 모든 신성한 것들은 불경스럽게 되었다. 인간은 마침내 냉정한 사리분별, 자기 삶의 현실적 조건, 자신과 같은 인간과의 관계를 직면하도록 강요되었다.” 근대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이라는 가치의 단일성 속에서 공동체가 유지되던 시대가 끝나고 아주 현실적이고 냉정한 인간 관계를 마주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 125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 드리워져 있다. 모든 살인자들 중의 살인자들인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편히 할 수 있을까? 이 세계가 지녔던 것 중 가장 신성하고 강력한 것이 우리의 칼 아래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누가 이제 우리에게 묻은 이 피를 닦아줄 것인가? 그 어떤 물로 우리를 씻어낼 수 있단 말인가?”

니체에 따르면 신이 만들어놓은 단일한 가치체계가 사라지고 수많은 다른 가치, 즉 천 개의 고원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오를 수 없고 다 들여다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옳다는 것, 내가 옳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분열된 세계를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실제로 니체는 말년에 정신적으로 분열증을 앓았고 점점 쇠약해져 병상에서 숨을 거뒀다.

중세에서 근대로 바뀌어온 삶의 조건 자체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는 후기 근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근대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했고 새로운 질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근대화 이후 지구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현재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인류 대멸종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는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라는 두려운 미래를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통해 극복해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우리 삶의 조건들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재구성을 위해서는 우리 삶의 조건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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