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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욱 박사의 삼지(三枝)사회조직론 연구 - 정천구 (1) 본문
백성욱 박사의 삼지(三枝)사회조직론 연구
정천구*
*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국문요약]
백성욱 박사의 저작 중,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불교순전철학”이 그의 기본철학을 대표한다면 “삼지사회조직론”은 이를 현대 생활에 응용한 실천철학이라 할 수 있다. 백성욱 박사의 철학과 실천적 삶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글이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 철학,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 그리고 그가 독일에 유학할 때 유행하던 신지학 등의 영향을 볼 수 있다. 그는 이들을 동아시아의 불교철학과 한국의 전통민족사상과 종합 하여 자신의 독창적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현대과학의 우주론을 참고하여 태양계, 은하계 같은 대우주나 원자, 전자와 같은 미립자의 소우주나 인간에게도 하나의 일리(一理)가 적용된다는 점을 밝혀냈다. 우주가 어느 차원에서나 하나의 중심을 놓고 궤도를 운행하는데 어느 경우나 자기의 위치와 분수를 지키면 진화 향상하고 그렇지 않으면 원자나 별이나 폭발한다고 보았다. 인류의 역사를 상고하면 인류는 정신생활, 법률생활, 경제생활의 세 궤도로 운행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 어느 하나가 독주하면 인류는 불행했다고 하였다. 종교 생활이 독주하던 고대나 중세 암흑시대, 왕권의 전횡으로 법률생활이 지배하던 시대가 그러했고,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경제 제일주의의 지배도 결국은 인류를 불행하게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경제생활은 인체의 혈액순환과 같아서 분배를 잘해야 경제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데 이는 결국 사람들이 탐심을 내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게 취해야 한다고 하였다. 법률생활은 인체의 척추와 같아서 불평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불평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정신생활이 함께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정신생활은 생활의 중심을 잡고 명령을 내리는 대뇌에 해당하며 세 가지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종교, 학술, 예술 등이 이에 해당하며 각 분야에서 우주의 일리(一理)를 찾아 인류 생활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백성욱 박사의 철학과 일생은 삼지사회조직론을 통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주제어 : 백성욱, 불교순전철학, 삼지사회조직론, 칸트 철학, 신지학, 현대 자연과학의 우주론, 루돌프 슈타이너, 금강경, 탐진치, 정의, 균형
I. 서 론
이 글은 백성욱 박사의 사회론에 해당하는 삼지사회조직론을 연구한 것이다. 체용론(體用論)으로 보면 백성욱 박사의 작품 중에서 『불교순전철학』은 그의 기본 철학을 밝힌 체(體)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삼지사회조직론은 이 우주 안에서 인간과 인간사회가 충돌 없이 살아갈 구체적 지침을 밝힌 용(用)에 해당하는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삼지사회조직론은 백성욱 박사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구체적 행동을 이해하는데 불가결한 이론이라 본다.
이 이론은 그동안 과학에서 밝혀낸 우주관에서부터 출발한다. 백성욱 박사는 태양계와 은하계를 포함한 대우주와 원자와 전자를 포함한 소우주, 그리고 인간이 하나의 일리(一理)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치를 인간과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만든 것이 삼지사회조직론이다.
그는 ‘대입소(大入小)의 일리(一理)’라는 논문에서, “하나의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一毛端 現寶王刹 일모단 현보왕찰)”, “미진 속에 앉아서 대 법륜을 굴리나니(微塵裏 轉大法輪 미진리 전대법륜)”라는 능엄경의 경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였다. 불교도에게는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에 나오는 낱낱의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고(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전 체 우주에도 또한 그러하다(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라는 문구로 익숙한 불교의 우주관이라 할 수 있다.
백성욱 박사는 털끝 같은 작은 곳에 큰 세계를 나타낸다는 문구를 하나의 세계가 일개의 태양을 가졌다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는 경에서 무한 광대한 보신불의 법문을 실제로는 각 세계의 화신불이 행하는 것을 해설하여 “대소를 막론하고 우주의 만물은 하나의 일리(一理)의 방식으로 축조된 것”이라 보았다.1)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모든 우주 만물은 하나의 일리에 따라 축조되었다는 것이다.
1)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編), 『白性郁博士文集(第一輯)』(서울: 白性郁博士頌壽記念事業委員會, 1960), pp.122-127. ‘大入小의 一 理’ 중.
“미세한 우주나 거대한 우주나 이치는 하나라는 것을 백성욱 박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미세한 극인 원자나 거대의 극인 항성계가 각각 성질이 우주적이어서 조그마한 손색이 없는 동시에 각각 개개가 우주적이요, 전부를 통합한다 하여도 역시 우주 전(全)적이다. 그래서 나는 대우주와 소우주를 합한 것을, 즉 전적(全的)을 대우(大禹)라 한다.”2)
2) 위의 책, p.186. ‘大宇의 生的準則과 인류의 生的準則’ 중.
그러면 소우주와 대우주, 그리고 인간과 인간사회에 다 함께 적용되는 하나의 이치는 무엇일까? 태양계를 포함한 대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면서 진화해온 것은 각 부분이 중심점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여 움직이기 때문인데 우주의 한 물건인 인류도 이를 본받고 있다고 하였다.
백성욱 박사는 우주 전체를 하나로 보면서 성운의 세계에서부터 원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운행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이치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즉,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위성들이 궤도를 돌고 그런 태양계 같은 별의 무리가 하나의 중심점을 두고 궤도를 돌면서 은하계를 이루고 다시 그런 은하계들이 어떤 중심점을 운행하여 항성계를 이룬다. 원자, 전자 등 미립자의 세계도 비슷한 원리로 궤도를 두고 돌아간다.
각 요소가 궤도를 이탈하면 우주에서는 별이 폭발하고 원자의 세계에서는 원자가 폭발한다. 이런 관찰을 통하여 그는 소우주나 대우주나 “우주는 동(動)한다. 일정한 궤도에서 운영되므로 우주는 완전으로 나아갈 뿐이다.”고 하였다.3)
3) 위의 책, p.187. ‘大宇의 生的準則과 인류의 生的準則’ 중.
인간 개개인과 인류사회도 이 우주의 운행 법칙으로 생활하면 향상하고 그렇지 못하면 타락한다고 하였다. 그는 우주의 생활준칙을 참고하여 인류의 역사를 조사하여 상고(詳考)한 결과 인류의 생활준칙은 대략 정신생활, 법률(정치)생활, 그리고 경제생활의 세 가지였다고 한다.4) 그리고 그는 이를 삼지사회조직론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였다.
4) 김동규 엮음, 『백성욱 박사의 인류문화사 특강』(부천: 사단법인 금강경독송회 출판부, 2015), p.42. ‘대각국사의 팔만대장경’ 중.
그러면 백성욱 박사가 구상한 이러한 삼지사회조직론은 어떤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는 인류사회에서 정신생활과 법률생활, 그리고 경제생활이 어떤 준칙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본론은 백성욱 박사의 삼지사회조직론이 그의 과학적 세계에 대한 이해, 그가 유학할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신지학(Theosophie)과 인지학(Anthroposophie)의 힌트를 받고 이를 불교철학과 한국 고래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으로 재조직하여 자신의 철학으로 만들었다는 잠정적 가설을 세우고 이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먼저 이런 이론이 나온 배경으로서 경험과학의 한계와 신지학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삼지사회조직론의 구체적 내용과 의미를 분석해 볼 것이다.
백성욱 박사는 누구인가?
1897년 8월 19일(음력) 종로구 연건동에서 출생했다. 만 3세에 아버지를 여읜 데 이어, 9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정릉 봉국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 13세에 최하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전국 주요 사찰의 불교전문강원에서 8년에 걸쳐 공부하다, 1917년(20세)에 서울로 올라와 동국대학교 전신인 불교중앙학림에 입학했다. 1919년 3월 1일, 한용운 스님의 명을 받아 중앙학림 학생들을 인솔하여 탑골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했으며, 이후 남대문과 대한문에서 시위를 주도했다. 대대적인 검문과 체포가 시작되자 상해임시정부를 찾아가 독립운동을 했으며, 《독립신문》 제작에 참여했다.
1921년, 24세에 충정공 민영환의 아들 범식·장식 형제의 지원을 받아 그들과 함께 1년 동안 프랑스 북부 보베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이듬해,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의대에서 공부하던 이미륵을 만나 철학과 한스 마이어 교수를 소개받았다. 시험에 통과, 뷔르츠부르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입학하여 1923년 가을부터 마이어 교수를 지도교수로 <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 박사학위 논문 작성에 매진했고, 이듬해 5월에 초고 완성, 9월에 인준받았다.
1925년 9월, 28세에 귀국하여 신문과 잡지에 시와 논문, 에세이 등을 기고하고, 각종 토론회와 법회에 나서는 등 불교 혁신운동에 참여하다, 1929년(32세) 늦여름, 불교전수학교(구 불교중앙학림) 교수직 등 모든 걸 내려놓고 금강산에 입산, 장안사 보덕암에서 수행을 시작했다. 수행 중 혜정 손석재 선생의 권유로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 함께 가서 100일 기도 정진했으며, 1930년부터 장안사 안양암에서 1일 1식 하며 ‘대방광불화엄경’ 염송 수행을 시작했다. 안양암 3년 정진 중 얻은 바가 있어, 장안사 지장암에서 손혜정 선생과 함께 근대 최초의 수행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며 회중수도會衆修道를 시작했다. 조국 독립을 기도하고, ‘대방광불화엄경’을 염송하면서 7년여 동안 500여 명의 제자를 지도했다. 1938년(41세) 4월, 지장암 수도 중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지목되어 경남 의령경찰서로 연행, 50여 일간 취조받다가 석방되었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하산하게 되었다.
이후 서울 돈암동과 치악산 상원사 동굴에서 정진 수도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애국단체인 중앙공작대를 조직하고 민중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인연이 있던 이승만 박사를 중심으로 한 건국운동에 참여했으며, 1950년(53세) 제4대 내무부장관, 1951년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했다. 1953년 7월, 부산 피난 중 동국대학교 제2대 총장에 취임했으며, 이후 5·16 군사정변으로 동국대학교에서 물러나게 된 1961년 7월까지 중구 필동에 대학교 교사를 건립하고 시설·학사·교수 등 다방면에 걸쳐 동국대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 《금강삼매경론》 《화엄경》 ‘인류 문화사’ 등을 강의했으며, 《고려대장경》 영인 작업에 착수, 총 48권의 현대식 영인본을 출간하기도 했다.
1962년, 65세에 경기도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의 야트막한 산을 개간, ‘백성목장白性牧場’을 경영하면서 《금강경》을 쉽게 강의하고, 인연 있는 후학을 지도했다. 1981년 8월 19일(음력), 출생일과 같은 날, 84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후학들이 금강경독송회, 청우불교원 금강경독송회, 바른법연구원, 백성욱 박사 교육문화재단, 백성욱연구원, 여시관如是觀 등을 세워 가르침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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