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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발도르프 교육학 안에서의 교사의 위상 - 강상희 (7)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교육철학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발도르프 교육학 안에서의 교사의 위상 - 강상희 (7)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 22. 22:35

8. 발도르프 교육학 안에서의 교사의 위상



발도르프학교가 발산하는 긍정적 분위기에 가장 큰 몫을 하는 것은 발도르프학교의 교사들이다. 발도르프 교육학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발도르프 교사들이 구현하는 교육적 노력의 아우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발도르프 교육이 거두고 있는 성과가 발도르프 교육자들이 관념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학교 교육에 쏟아 붓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Oppolzer, 1962: 343; Salzmannn, 1987: 337). 인지학 진영 밖의 시각은, 발도르프 교육 실천상의 성공은 참여 정신, 즉 발도르프학교 교사들의 높은 정도의 개인적 헌신 및 직업 윤리의 문제이며 교육적 구상의 폐쇄성과 관계된 것이지 배후에 있는 이론의 정당성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는 게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도르프 교육 실천의 배후에 있는 인지학의 의미를 과소평가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지학이라는 세계관으로의 응집력은 외부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고유의 정신을 지키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교육 행위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틀로서의 몫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발도르프학교 교사들은 적어도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기초 개념들을 숙지해서 내변화해야 한다는 당위성 내지는 의무감을 안고 있을 것이다. 교사 교육을 통해 그런 시도가 이루어지는 한편 교사 교육을 통해 인지학적 세계관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를 설립할 즈음에 가진 세미나 발문에서 슈타이너는 현재도 여전히 의미 있는 교사의 자질로 네 가지를 제시한다.

“이것이 최우선이다. 교사는 크고 작은 전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 이것이 두 번째이다. 교사는 모든 세계 및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교사는 자신의 내면에서 허위 타협해서는 안될 사람이다. [...] 그리고 그 다음은 실현되는 것보다 쉽게 말해지는 바, 천직으로서의 교사를 위한 또 하나의 황금률인데 교사는 시들어서도 안 되고 시어져서도 안 된다"(EZ II, 193 f).

주도력, 개방성, 진실성, 그리고 신선함은 교사의 태도로서 오늘날 여전히 가치 있는 것들이다. 이 연속 강연에서 슈타이너는 상상의 능력, 진리, 그리고 책임감을 "교육의 핵심이 되는 세 가지 능력"(AM, 213)으로 요구한다. 이러한 자질이나 태도는 사실 누구나 긍정할 수 있는 교육적 가치이다. 옥스퍼드 강연에서 슈타이너는 교사의 사명과 관련 있는 이런 자세들에 덧붙여 어린이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로 감사, 경외, 사랑을 제시한다(GE, 67-70).

슈타이너가 강조하는 교사의 덕목들은 어린이와의 관계보다는 우주적 힘들과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감사는 어린이를 향한 감사가 아니라 어린이를 교육자에게 보낸 우주의 힘들에게 보내는 감사이다. "모든 철학의 마지막 장은 결국 우주의 힘들에 대한 이런 감사의 느낌으로 끝난다"(GE, 68). 감사의 느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외의 느낌도 당연히 우주의 힘들에 대한 경외이다(GE, 68). 사랑도 어린이를 향한 것이 아니라 고유의 교육적 작용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지속되어야 하는 어린이에 대한 종교적 기분에 우리의 교육 행위, 우리의 교육 활동에 대한 강렬한 사랑을 스며들게 하지 못한다면 어린이의 환경 속에서 작용해야 하는 일을 결코 해내지 못할 것이다"(GE, 69).

슈타이너의 교사상은 슈프랑거나 페스탈로찌의 교사상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스탈로찌는 우주적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랑은 인간 본성에 따른 도덕적 기초 도야가 논증하고 확정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심어주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오인탁 1984, 55). 슈타이너는 하나님을 다만 우주적 힘(또는 실체)이라는 단어로 바꾸고 있을 뿐이다. 결국 어린이가 아니라 우주의 힘들에 대한 봉사가 교육의 중심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사의 품성은 어린이와 교육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되어 있는 정신적 실체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발도르프 교사의 역할은 초감각적 실체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초감각적 실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발도르프 교사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된다. 슈타이너는 교육자에게 모든 교육 행위보다 선행해야 하는 인간 관련 지식을 요구한다. 이는 바로 초감각 세계, 실체들 및 초감각적인 것의 인간 본질과의 연관의 절대적 인식에의 요구이기도 하다(EE, 17).

"교육자는 삶을 보다 깊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성장하고 있는 인간을 목적에 맞게, 그리고 결실 맺도록 다룰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막 특성을 보인 것과 같은 그런 진리들을 벌써 자신 안에 흡수해야 한다. 삶은 어떤 점에서는 비밀 역시 간직하도록 요구한다"(EZ II, 88).

발도르프 교사의 교육적 행위는 성직자의 직무 수행에도 견주어 볼 수 있다. 슈타이너는 "성직자적 교육에의 헌신"(EG, 140)을 교육자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요청은 발도르프학교의 개교를 위한 회의에서도 발견된다.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에서의 수업 및 교육의 형성과 목적 설정의 방향을 슈투트가르트의 최초의 발도르프학교 설립에 즈음하여 행한 교사 교육을 위한 첫 강연에서 분명히 제시하였다. 그는 발도르프학교의 설립을 "세계질서의 축제의식"(AM, 17)이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준비된 우리 활동의 시작에서 정신적 힘들의 위탁과 위임을 받은 우리는 각자 모두 어느 정도까지 노력해야 할 것이며, 그런 중 정신적 힘들과 어떻게 결합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께 부탁드리는 것은 우리가 이 과제를 떠맡고 있는 동안, 이런 예비적인 말들을 상상, 영감, 직관의 힘으로 우리 배후에 있는 힘들에게 드리는 일종의 기도로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AM, 17).

여기서 교육적 행위의 기초는 분명히 “정신적 힘과의 결합”에 있다. 교사는 슈타이너가 “일종의 기도”로 간청한 배후의 고차원적 힘들의 위탁을 받고 전권에 기초하여 교육한다. 이런 교육 행위는 슈타이너가 고차원적, 비감각적인 것으로 생각한 인식방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발도르프 교육학에서 이해하는 교육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초감각에서 진행되었던 것의 속행 "(EZ II, 33)이다. 그리고 현생이 전생의 반영이거나 또는 재현이라면, 당연히 교육적 행위는 초감각적 실체의 작용을 돕는 것, 초감각적 실체가 인간에게 주기로 작정한 운명의 매개로 된다. 교육 실천의 주체로서 교육자는 초감각 세계 및 실체들의 연장된 팔이자 인간을 결정하는 우주 법칙, 즉 카르마의 연장된 팔(W. Schneider, 1992: 303)로서 인간에 대한 인지학적 지식과 성직자로서의 위탁에 기초해서 카르마의 법칙성의 매개자가 되어야 할 의무를 진다. “여기서 이러한 인간 존재[어린이] 안에 너는 너의 행위로 고차원적 존재가 탄생 전에 행했던 것을 속행해야 한다"(AM, 21)는 슈타이너의 말은 이런 생각을 확실히 뒷받침해준다. 교육자는 고차원적 세계의 인식을 통해 위탁받은 바를 이행하는 존재이다. 자연주의 교육의 이상적 교사가 자연의 조력자라면 인지학적 교육학의 이상적 교사는 우주적 힘의 조력자이다.

초감각적 세계 안에 정박하고 있는 카르마를 교육에서 전제할 경우 카르마는 의무와 존재 당위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그것을 교정하는 일은 교사의 주관할 바가 아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교사는 자기 전문 분야의 실질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우주의 비밀에 통달한 이로서 그 지식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이와 유사하다. 이미 알고 있는 자로서 교사는 물론 이러한 비밀을 직접 전달해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밀교(密敎)의 신비 교사의 역할을 맡는다. 이때 신비에 입문한 학생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서, 그리고 전혀 예감치 못한 채 자기 스숭과 마주 보고 서 있다. 발도르프학교의 교사는 인지학적 진리의 인식에 기초해서 인지학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다. 프랑에(K. Prange)가 말했듯이, 발도르프학교의 교육자를 인지학의 전수를 받은 사람으로 부를 수밖에 없을 터인데(Prange, 1985: 95), 그는 절대적 진리의 의식 속에서 간접적으로 어린이에게, 그리고 학부모에게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인지학을 흘려 넣는다.

형이상학적 사랑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자신의 신앙과 세계관을 정립하여, 그 위에 자신의 삶을 확고하게 세운 자로 있어야 하는(오인탁, 1984: 53) 교사상이 발도르프 학교의 교사상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사들이 성직자적 교사상을 갖고 있으며 공통의 세계관으로 결집된 동지애로 뭉쳐 있는 경우, 사명감이자 당위적 요청으로 어린이 각자에게 개별적 애정을 쏟고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 확실히 이는 학생들의 학습 성과와 학습 분위기에 긍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9. 맺는글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사상은 다윈과 핵켈로 이어지는 진화론과 칸트, 피히테, 셀링으로 이어지는 독일 관념론과 괴테, 실러, 노발리스, 슐레젤 등의 낭만주의 문학,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가회로 이어지는 영지주의 및 비학적 요소, 신지학회를 통한 힌두교의 범신론적 일원론과 같은 서로 다른 전통과 요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혼성, 모방되고 발달한 결과물이다. 이는 유기체적인 것, 비합리적, 무의식적인 것을 재발견한 20세기 초(Reble, 2002: 345)의 정신사적 상황과 일치한다. 창조적 직관이 이성적 사유를 능가한다는 신념이 철학과 문학과 예술에서 나타났다. 자연과 우주를 기계적으로 보던 시각에서 유기체적으로 보려는 시각이 대두되기 시작하였으며, 생명의 약동과 생명의 신비에 관심이 쏠리면서 자연철학과 인식론, 그리고 19세기의 실증적 과학이 꺼려하던 형이상학 및 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정신과학으로 번역된 슈타이너의 Geisteswissenschaft는 영의 세계를 과학적 개념을 사용해 설명하려는 학적 체계이다. 또한 Erziehung zur Freiheit에서 자유는 육신이 발달의 법칙을 통해 성장해가듯이, 관련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적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고의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영적 각성을 통한 자유함(해탈)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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