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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인지학적 세계관의 결정체로서의 발도르프학교 - 강상희 (6)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교육철학

발도르프 교육의 철학적 이해: 인지학적 세계관의 결정체로서의 발도르프학교 - 강상희 (6)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1. 18. 07:16

7. 인지학적 세계관의 결정체로서의 발도르프학교

 


인지학이 우주론-종교적 특성을 띤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슈타이너나 그를 추종하는 발도르프 교육학자들에게 세계관으로서의 인지학과 발도르프학교의 교육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발도르프학교에 세계관 학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싶어하지 않았던 슈타이너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 인지학 진영은 발도르프학교를 세계관 학교로 규정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슈타이너는 최초의 발도르프학교의 설립을 위한 안내 강연에서 세계관 학교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맹세코 편파적인 세계관 학교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인지학자 학교를 설립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또는 그렇게 유포하는 사람은 중상을 믿거나 퍼뜨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며 그것을 원하지 않음을 보여 줄 것이다"(WS, 34).

 

발도르프학교에서 세계관 학교라는 꼬리표를 떼는 동시에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학 간의 관련을 분명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가 방법 학교(Methodenschule)임을 표방하였다. 인지학은 다만 ‘교육예술’을 위한 배경을 이루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 학교를 위한 방법이 인지학을 통해 도출된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는 노력한다. 우리는 방법론, 수업 실천을 추구한다. 그것은 정신의 참된 인식의 결과 나온 것에 우리가 맞닿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본질에 적합하게 읽도록 가르칠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쓰도록 가르칠 것이다. [...] 우리는 인지학적 동력으로 체험한 것을 통해 잘 교육될 수 있도록 수업하려고 애쓸 뿐이다"(WS, 35).


세계관 학교와 세계관에 기초한 방법 학교를 분명히 가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답할 때 방법의 의미를 다시 고찰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본다. 방법(Methode)이라는 그리스어의 어원적 의미(meta + hodos)는 일정한 방향을 향한 길 또는 탐구의 과정과 통로라는 의미가 있다(오인탁, 1990: 40-41). 따라서 어원적 의미 안에 이미 다양한 방법 논리들이 있음이 전제되어 있다. 방법이라는 개념을 따라가면 모든 방법론은 특정한 인식관심이나 실천관심에 기초하여 한 사태 또는 한 사태연관을 서술하거나 이론의 정립을 시도한다. 그리고 모든 방법은 방법 자체를 포섭하는 체계 연관으로부터 도출된다. 발도르프학교의 경우 인식관심이나 체계 연관의 지평은 당연히 슈타이너의 인지학이다.


자연 개념 없는 인식의 자연과학적 방법은 있을 수 없듯, 인지학 없는 교육 실천의 인지학적 방법은 있을 수 없다. 역으로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결과로서 자연 인식의 의도된 특정 방식이, 즉 자연과학에서만 가능한 방식이 있듯, 교육에서의 인지학적 방법론의 결과로서 수업과 교육 및 따라서 인간의 도야와 관련하여 인지학에 의해 결정된 목적이 있을 뿐이다. 발도르프학교에서의 교육 실천을 인지학이 방법적 측면에서 주도한다면, 인지학이 명시적 수업 대상이 되지는 않더라도 인지학적 세계상이나 인간상은 발도르프학교 내에서의 수업 및 교육의 목적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인식과 인식 내용은 교육에 의존하며 교육도 인식과 인식 내용에 의존한다(Kant, 2001: 29)고 한 칸트의 말은 여기에 그대로 해당된다. 수업 내용에 인지학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인지학자들이 전개하는 교육은 그들의 인지학적 인식과 인식내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다. 발도르프학교의 수업내용은 인지학이라는 특정한 방법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인지학적 인식이론의 지평 안에 서 있다. 인식관심과 교육목적을 주도하고 결정하는 몫은 인지학에 었다. 그러므로 방법 학교라는 슈타이너나 발도르프 교육학자들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발도르프학교가 방법상의 학교이고자 해도 그 학교는 세계관 학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계관 학교와 방법상의 학교에 차이가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더라도 방법상의 학교도 세계관 학교이다. 그러므로 방법 학교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인지학적 세계관과 인지학적 교육 실천을 분리하려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슈타이너가 이미 1906년에 강연하였고 인지학적 인간 인식의 지평 안에서의 교육학이라 불렀던 것을 그는 1922년 옥스퍼드 강연(Oxforder Vorträge)의 시작에서도 역시 말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발도르프학교의 교육학 및 교수학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영적인 삶이다. 이 말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으로부터 교육 본질의 속행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GE, 10).


그리고 그의 연속 강연을 끝맺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분명히 강조한다.


“인간과 세계 사이의 신비로 가득 찬 관계는, 발도르프 교사라면 완전히 마음 안에 이식되어 있어야 하며, 즉 참된 세계관의 입장으로 작용할 것이다"(GE, 170).


그리고 그는 “실천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 안에 인류 이상을 실현시키는 것 "(GE, 174) 이외의 어떤 다른 것도 발도르프학교는 원치 않으며 그 목적에 일치하는 “마음가짐 분위기"(GE, 174)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언급으로 교육학에 관한 이 연속 강연을 끝맺는다. 영적 삶이 그의 교육학의 기초를 이루고 있거나 세계관의 입장에서 작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행하는 교육은 필연적으로 그런 세계관의 지평을 통해 형성된다.


발도르프학교에서 인지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세계관 학교가 아니라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잠재적 교육과정의 효과를 강조하는 논의를 끌어들여 말하면, 학습 내용의 전수라는 수업(넓은 의미로는 교육)의 공식적(혹은 명시적)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전달되는 사회적 규범, 관계구조, 행동 습관이 오히려 수업 내지 학교가 갖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발도르프학교 내의 모든 교육은 비밀의 원칙이라는 조건 아래서 행해진다. 슈타이너는 1913년 한 강연에서, “완전히 확정된 진리"(EE, 128)를 이를 감당할 만큼 아직 성숙되지 않은 비인지학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위험스러움을 경고하고 있는(EE, 127)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삶의 신비에 대한 지식을 교육을 위해 필요로 한다. 고대 신비 대가들은 그러한 삶의 비밀들을 밀교(密敎)로 보존하였다. 그 이유는 이 비밀들이 삶에 직접 전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모든 대가들은, 그가 직접 세상에 전할 수 없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EZ II, 88).

 

슈타이너의 이 말은 비밀 원칙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도 교육 방법의 근거로 자리잡고 있는 지평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막혀 있다. 교육해야 할 어린이에 대해서도 세계관적 배경을 함구하는 것이 또한 이런 비밀 원칙에 속한다. 슈투트가르트의 발도르프학교의 첫 교사 교육 동안, 기질에 따른 학급 내 자리 배치에 대해 어린이가 알고 있어야 하느냐는 세미나 참석자의 질문에 대해 슈타이너의 다음과 같은 답변은 실제의 세계관적인 배경이 실천 속에 은폐되어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 이는 슈타이너 후기의 비학적 인식론과 관련된다.


“그것은 우리가 무대 장치 뒤에서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요점은 교사가 무대 장치 뒤에서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지 철저히 아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협의하는 모든 것은 교사에게 권위를 부여하려는 그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이 간파되면 그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게 된다"(EZ III, 55).


인간, 세계 그리고 신에 대한 인지학적 이해는 교육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발도르프학교가 세계관에 있어서 중립지대에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 없는 말이다. 발도르프 교육학의 긍정적이고 혁신적인 교육적 측면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들에게 발도르프학교의 세계관적 배경을 숨기려는 전술상의 기만책이라는 비난(W. Schneider, 1992: 268)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세계관적 신념은 다른 신념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한편, 현실의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믿는 바를 현실화해내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발도르프학교가 슈타이너식 ‘개혁 교육학’ 운동의 정신을 지금까지 유지, 지속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인지학적 세계관이 있다. 인지학 진영을 결집시켜주고 지탱해준 힘도 인지학이라는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신념의 긍정적 기능을 언급하며 샤이베가 발도르프학교에 대해 논평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관적으로 결집된 발도르프학교와 슈타이너 학설로의 집중은 현실에 굴하지 않는 전통 속에서 발도르프학교의 개혁 교육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었던 원인이 된다"(샤이베, 1972: 1307; Lindenberg 1975 재인용).


기능주의화 되거나 도구화된 수업 및 교육 이해로부터 교육을 구하고자 하려면, 수업과 교육이 본연의 장소를 가질 수 있는 지평으로서 고유한 인간 이해, 세계 이해 및 신 이해를 기본적으로 의식해야 한다. 또한 지금은 교파나 종파를 떠나 영성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특히 과학적 가치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을 때 신적 존재나 정신에 대한 민감성을 키워 줄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인지학은 하나의 세계관이고 인지학 학교는 교과계획, 교수학 그리고 방법론에서뿐만 아니라 교육적 목적과 지도에 있어서도 인간, 세계 그리고 우주에 관한 특정한 이해에 의해 형성된다. 따라서 세계관 학교임을 인정하고 다른 교육학과 대결하는 것이 발도르프학교의 미래를 위해 더욱 값진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점을 인정하는 것이 상이한 세계관 학교에 관련하여 교육학적으로 객관적인 토론과 공정한 대결을 꾀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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