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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와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 - Nigel Hoffmann (3) 본문
그렇다면 삼지적 사회 유기체라는 개념은 어떻게 자본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진하는가? 분명해지는 것은 자본(capital)이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과정을 간략하게 추적해 보자. 경제는 내가 여기서 “지구(Earth)” 또는 “물질(matter)”이라고 부르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지구를 “토지(land)”라고 하지만 이는 부적절하다. 우선 지구의 물과 가스 형성물은 확실히 경제적 관심과 활동의 범위 내에 있다.
어떤 광물, 액체, 가스, 식물 또는 동물도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한 사람의 개인 활동에 의해서는 경제 생활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동의 분업과 교환의 형태가 있어야 한다. 간단하든 복잡하든 모든 경제적 사건은 자립적인 활동이 아니라 협력적 활동이다. 인간 본성의 박애적 측면은 우리가 지구와 집단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 지구가 변형되도록 허용하는 방식, 지구가 어떻게 사회적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가 하는 방식에서 깨어나고 이끌려진다.
사용 가치가 있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가공할 수 있는 것을 “원자재(raw materials)”라고 할 때, 자연이 경제적 범위 안에 들어왔고 인간의 특정한 잠재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에서 원자재로서의 자연(예를 들어, 벌목된 목재와 추출된 철광석)으로, 그리고 망치와 같은 상품으로 변형하는 과정이 일어난다. 마음(또는 여기서 비물질적인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적인 의도로서 자연에 작용하여 자연을 상품으로 변형시킨다. 목재와 철광석을 볼 때 여전히 상당 부분 자연이 “두드러진다(shines out).” 망치를 볼 때 우리는 자연이 물러나고 두드러지는 것은 “아이디어”, 즉 망치의 기능과 사용 가치에 대한 아이디어임을 인식한다. 식료품과 같은 상품이 소비되고 그 목적이 실현되면 그것의 가치는 감소하며, 그 물질은 빠르게 지구로 돌아간다. 그러나 식료품과 달리 망치는 다른 특정 형태의 활동, 예를 들어 건축에 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본재(capital good)”라고 부른다.
경제적 교환의 순간에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물물교환(재화와 재화의 교환)은 인간이 지구의 순환, 계절의 변화처럼 신정 또는 봉건 사회에서 공동으로 생활하고 일하던 시절 생산과 소비의 본능적 리듬에 속하는 가장 오래된 의식 형태의 한 측면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본이 이윤으로 발생하는 교환 형태의 출현은 인간 개성의 진화와 자연의 순환 속에서 본능적인 삶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이 있다. 자본재와 달리 일반적인 자본은 순수한 잠재력이다.
마치 영양가 있는 과일이 오로지 지구와 태양의 상호작용에서 자라는 것처럼, 태양의 에너지가 미네랄 물질을 에너지 물질(당)로 추출하는 것처럼, 자본은 정신과 물질의 상호작용으로, 지성에 의한 지구의 변형으로 발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순수한 실재(actuality), 즉 미네랄, 액체 및 기체, 그 자체로 완전하고 어떤 의미에서 “자연의 완성된 작품”인 식물과 동물이 잠재력 상태로 변형된다. 자본은 변형적 경제 과정의 꽃이며, 꽃과 마찬가지로 열매를 맺길 기다린다. 어떤 식으로든 자본을 열매 맺는 것은 인간의 창조성이다. 정신은 인간 정신의 실현을 위해 지구를 자본으로 변형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이 지구의 물질(substance)에서 점차 추출되면서 경제 생활을 넘어서 사회 생활의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식물의 성장을 다시 생각해 보라. 씨앗 단계에서 식물은 주로 지구와 그것을 둘러싼 어두운 공간에 속한다. 잎이 돋아나고 퍼지고 나선형으로 휘감기는 생장 단계에서는 주로 물, 공기, 빛의 영역에 속한다. 꽃이 피면 식물은 주로 태양의 빛과 온기에 의존한다. 이것은 꽃의 색과 향기, 화밀의 달콤함, 곤충이나 황금빛 꽃가루가 빛이 가득한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꽃의 컵과 같은 수용 공간 등에서 드러난다. 꽃은 주로 태양의 영역에 속한다.
경제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상품 단계에서는 여전히 주로 지구와 사회 유기체의 경제 영역에 속한다. 자본재로서는 여전히 경제적 산물이지만 문화-정신 영역에 대한 지향을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자본재(예를 들어 망치, 페인트브러시 또는 컴퓨터)의 잠재력은 창조적 충동(이 경우 건설, 페인팅 또는 주도적 계획에 대한 의지)에 의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 자본으로서 가장 정제된 형태로는 불확정적 잠재력을 표현한다. 이 상태에서는 주로 권리 영역에 속하며 문화-정신 영역을 지향한다. 이는 자본이 주로 인간의 창조적 정신, 즉 자본의 잠재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개인적 역량 및 창조적 의도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개별 인간은 자본에 대한 권리가 있다. 자본은 공동의 지구, 광물, 식물 및 동물에서 무수한 개별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추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은 공동 자산이다. 자본이 경제적 현상이라는 관념이 아무리 깊이 자리 잡았더라도, 자본은 경제 현상이 아니다. “보편적 기본 소득”에 대한 전 세계적인 화제의 토론과 관련하여, 아직은 미미하지만, 자본이 실제로 인간 권리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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