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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세계 경제와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 - Nigel Hoffmann (4)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세계 경제와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 - Nigel Hoffmann (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12. 27. 11:19

‘자본이 전체 공동체의 자산’이라는 말은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 전체가 이러한 자본을 소유한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따르면 사회주의와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의 목적은 자본, 즉 자본재(생산 수단), 토지, 금융 자본을 소수의 손에서 떼어내 다수의 손에 맡겨 그들이 상호 이익을 위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을 경제적으로만 생각하여, 소수나 다수가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자본은 결코 경제적 현상이 아니다. 자본은 경제 영역에서 발생하지만 문화-정신 영역에 적합한 권리 영역에 속하는 가장 고차적 형태로 존재한다. 역동적인 사회 전체에 대한 생생한 상상력만이, 자본이 그 자신의 발전을 통해 사회 전체와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이해를 가져올 것이다. 자본은 문화-정신 영역에서 열매를 맺으며, 이 결실이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는 것은 조정자, 즉 정치-권리 영역이다. 자본 전체가 사회의 정신-문화 생활에 활용되는 것은 올바르고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사회 생활에서 자본이 갖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본에 대한 좁고 제한적인 의미는 제한적이고 병든 사회적 조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공동의 지구에서 추출한 자본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단순히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여된다. 그리고 이 권리가 부여되도록 하는 것이 정치-권리 영역의 임무이다. 모든 인간은 자본에 접근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동일한 양의 자본을 받아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른 필요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본은 인간 정신의 실현을 위해 인간 정신에 의해 형성되며, 따라서 자본을 어떻게 분배하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과 방법은 문화-정신 영역에서, 실제로 그 영역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개인이 더 이상 [공동체를 위해] 자본을 사용할 의향이나 능력이 없을 때, 이 사용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양도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특권이나 경제적 힘에 의해 양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정신 생활에서 얻은 수련의 힘으로 사회적 관점에서 가장 적합한 후계자가 누구인지 알아냄으로써 양도될 것이다.”*
 

* Rudolf Steiner, The Renewal of the Social Organism(Aufsätze uber die Dreigliederung des sozialen Organismus) (Rudolf Steiner Press, 1985), 101.

 
사회 생활의 이러한 측면을 관리하는 것이 임무인 사람들은 분명히 인간의 자유와 자유로운 개성의 요구 사항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은행(진정한 공동체 은행)은 자본 분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은행은 경제 생활과 문화-정신 생활을 조정하는 “권리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만이 자본의 잠재력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결정하는 결정권자는 아니다. 적어도 은행은 자유로운 인간 개인의 필요와 창조적 역량에 직접 관여하는 문화-정신 영역의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서만 자본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슈타이너가 제시한 삼지적 사회 질서의 그림에서 경제 생활은 자본을 생성하고 활용하지만 분배하지는 않는다. 다른 두 영역과 마찬가지로 경제 영역은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 간의 긴밀한 연합(association)을 포함하는 전적으로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슈타이너가 “연합(associative) 경제”*라고 부르는 것은 후속 논문에서 다룰 주제이다.
 
* 다음을 참고하라. Rudolf Steiner, Steinerian Economics, edited by Gary Lamb and Sarah Hearn (Adonis Press, 2014); Gary Lamb, Associative Economics (Waldorf Publications, 2010); Christopher Houghton Budd, The Metamorphosis of Capitalism: Realising Associative Economics (Associative Economics Institute, 2003).
 
아래 도표에서 우리는 문화-정신 영역에서 자유롭게 탄생한 의도, 아이디어, 비전에 자신을 내어주는 자본의 순수한 잠재력이 권리 영역에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도표의 문제점은 자본이 공간적 의미에서 경제 영역을 피하고, 자본 및 노동과 관련된 권리와 정신적 일들(matters)이 경제 영역 너머의 관료적 영역에서 다루어진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그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 유기체라는 살아 있는 실재에서 세 영역은 독립적이지만 상호 침투되어 있다. 모든 직장에는 경제적 맥락과 함께 개인의 권리 및 자유가 행사되는 법률-행정 차원과 문화-정신 차원이 있다. 노동자, 중간 관리자, 상급 관리자 간의 자유롭고 비관료적인 협력과 협상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문제는 창조적으로 해결된다.
 

사회 유기체 내의 자본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원칙(자유)이 소위 “자유 기업”과 “자유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영역에 침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그림이 왜곡되어 있다. 그 결과 경제 영역의 본질적인 박애적 성격과 주로 문화-정신 영역에 속하는 자유의 이상이 모두 타락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기업가를 자본가, 즉 자본(자본재 또는 생산 수단을 포함하여)의 소유자로 바꾸어 이러한 왜곡을 야기한다. 세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기업가의 창조적 의도와 행동은 다른 모든 형태의 생산 및 창조적 비전과 함께 전적으로 문화-정신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기업가의 경제적 사업에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될 것인가도 문화-정신 영역의 결정에 달려 있다.
 
경제 영역이 정치 영역과 재통합되어야 한다는 바루파키스의 주장으로 돌아가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자본을 문화-정신 영역에 속하는 권리 현상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에만 가능하다. 사회를 삼지적 유기체로 이해해야만 우리는 다른 두 영역과 관련하여 문화-정신 영역의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진정한 보편적 박애의 이상에 자극을 받은 20세기 초 공산주의 봉기는 사회의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을 통합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의 지배자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이 혁명적 의제는 정치 영역의 강제력에 의존했다. 진정한 해방의 힘이 개인 그리고 개인의 개화(unfoldment)를 뒷받침하는 모든 것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없었다.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새로운 경제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옳았다. 옳았지만 일방적이었다. 그들은 경제 생활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경제 생활과 더불어 자유로운 권리 영역과 자유로운 정신의 수양이 생겨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 Rudolf Steiner, The Renewal of the Social Organism(Aufsätze uber die Dreigliederung des sozialen Organismus) (Rudolf Steiner Press, 1985), 68.

 
슈타이너는 독립적인 문화-정신 생활만이 “경제 생활에 인간의 정신적 충동을 불어넣어 그것을 계속해서 열매 맺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방적인 강조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대표하는 경제적 해방의 힘은 사회 유기체의 의식적인 삼지성을 향한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로 인해, 20세기 공산주의 혁명의 실패는 사회 유기체를 한층 더 건강하게 형성하는 방법을 명확히 하는 데 기여했다. 그들은 사회 생활의 세 영역이 모두 각자의 영역을 확보하고, 서로로부터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달성하여, 통합된 전체로서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나이젤 호프만 박사
나이젤은 지난 18년 동안 호주와 스위스에서 루돌프 슈타이너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에 대한 이해와 발전을 지원하는 “Education for Social Renewal Foundation”의 이사이다. 그는 2007년에 출판된 『Goethe’s Science of Living Form: The Artistic Stages』의 저자이기도 하다.
 
https://www.neweconomy.org.au/journal/issues/vol1/iss2/world-economy-and-rudolf-steiners-social-threefold/

 

World Economy and Rudolf Steiner’s Social Threefold - New Economy Network Australia

I recently watched a TED talk featuring Yanis Varoufakis, the former Greek finance minister and prominent commentator on economic and political affairs in Europe. He said that within the largely independent economic sphere, corporate power has become uncon

www.neweconomy.or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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