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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진보하는가? - 박지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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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진보하는가? - 박지용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 8. 05:43

역사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진보하는가?

 

박지용 교수

 

 

강의 소개:

칸트가 보편적인 인류역사에 관해 이성의 이념을 투영시켜 논의한 이후, 칸트 이후 철학에서 역사에 관한 논의는 본격적인 철학의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역사를 주제로 삼는 철학은 당연하게도 역사철학이라고 불린다. 역사철학에서 정점을 이루는 철학자는 헤겔이다. 헤겔은 기본적으로 역사가 우연한 과정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필연성에 의해서 전개된다고 보았고, 그 필연성은 역사에서 드러나는 이성의 필연성이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이성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개괄적으로 헤겔 철학의 윤곽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헤겔은 독일관념론의 완성자로서, 이성과 현실이 이성적으로 매개되어 있다고 주장함에도 이성에 좀더 강조점을 둔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주장의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본 후, 역사에서 이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또 역사에서 이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헤겔의 관념론적인 역사철학에 대한 반론은 청년헤겔파 포이에르바하를 통해서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으로 이어진다. 역사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사유한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을 대조해 봄으로써, 역사를 철학적으로 사고한다는 의미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은 오늘날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두 거장이라 할 수 있다.

 

 

1. 역사에 대한 철학적 사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대입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또 역사교과서를 채택함에 있어서 사관문제가 대두되면서, 진보적 역사관과 보수적인 역사관의 대립이 사회적인 갈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치나 윤리, 사회문화 등 다른 사탐과목에 비해 역사를 수능에 필수로 지정해야 할 정도로 비중 있게 고려되어야 할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결과라 하겠다.

 

역사 과목은 그 특성상, 진보적 관점을 취하느냐 혹은 보수적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역사서술이 달라지고 그 관점은 첨예한 대립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면, 광주항쟁이 민중혁명이었는가, 아니면 폭동이었는가 하는 판단은 시대의 변화와 민주화 정도에 따라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역사에 대한 관점이란 역사적인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관한 문제와 결부된다. 그런데 역사적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관점이 대립하고 이에 따라서 사회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관점을 배제하고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대립되는 역사서술의 관점이 극단적으로 논쟁적이니까 사관을 배제하자고 한다면, 역사는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들의 나열을 암기하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암기한다고 해서 역사인식이 바로 선다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역사 교육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을 다루는 대립된 사관이 갖는 관점들을 비교 검토할 수 있는 비판적인 사고가 결부되어야 단순 암기 과목이게 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역사를 공정한 관점에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얻게 되어 결과적으로 역사교육의 필요성에 부합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서양에서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랑케(1795-1886)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하는 실증주의 사관을 주장했다. 역사적인 사실(fact)이 역사학자에게는 마치 자연의 현상을 서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 있다는 태도가 실증주의적 입장이다. 역사학에서 다루는 역사적인 사실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한 인과관계(원인과 결과)를 설정하고, 사실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이론적인 추상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당시 국익에 반하는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국익을 지키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는가라는 물음은 역사교육에서 중요한 판단대상이 되어야 한다. 쇄국정책을 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알고 있다면,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역사인식이라는 가치가 상실되어 버린다. 역사인식이 중요한 이유는 잘못된 역사라 하더라도 잘못된 역사를 거울삼아,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다시는 그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과 가치관을 후세대에게 가르쳐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과 프랑스는 근현대사에 대한 공통 교과서를 채택하여, 전쟁과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과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역사 인식을 공유하고 있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과거의 잘못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육하고 있다. 이러한 모범적인 사례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이 상호 협력하여 역사인식을 공유하는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법하다. 각국이 역사교육의 목적을 주변 국가에 맞서서 자기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 것은 국제관계를 위험하게 만드는 발상이다. 독도의 영유권 문제나,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를 역사적인 문제로 다룰 때, 독일 프랑스 교과서가 채택한 접근 방식을 따를 경우 미래에 예견되는 분쟁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이다. 서로가 역사적인 근거를 들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영유권 분쟁이 나타나게 된 역사적인 갈등을 분석하여 공유될 수 있는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 역사교육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교육의 목표는 국가적인 자긍심을 갖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실수를 통해서 현명함을 갖추고, 인류공영과 공생이라는 도덕적 가치관을 모색해야 한다.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설정하게 된다면, 다른 민족과 국가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어 불필요한 대립 갈등이 조장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전체로 놓고 그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철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의 주제는 역사에 대한 철학적 사유, 역사 철학이다. 철학의 역사에서 역사란 무엇인가의 문제가 대두된 시기는 칸트 이후 전개된 독일관념론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을 통해서이다. 칸트가 몇 안 되는 짧은 논문들에서 전개한 역사철학의 단상들에서 역사를 다룬 이후, 역사라는 주제 영역은 본격적으로 철학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었고, 헤겔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헤겔의 관념론적인 역사관은 이후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에 의해 비판됨으로써, 헤겔과 마르크스는 역사에 대해 분명하게 대조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헤겔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역사발전의 주체가 된다는 관념론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마르크스는 역사 발전을 이루는 주체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기초한 사회 경제적인 토대라는 유물론적인 역사관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두 철학자는 역사적인 차원에서도 보편적인 발전 법칙이 있고, 역사전체를 관통하는 총체적인 인식이 가능하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이룬다.

 

 

2. 칸트철학 이후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

 

칸트의 철학 이후, 18세기말과 19세기 독일에서 철학의 주요한 흐름은 칸트를 계승하는 흐름과 칸트철학을 극복하려는 흐름으로 양분될 수 있다. 그 만큼 칸트철학의 영향력은 강력한 것이었다. 칸트 이후 칸트를 넘어서려는 철학의 노력은 헤겔에 이르러 그 정점에 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히테, 쉘링, 헤겔로 이어지는 흐름을 독일관념론(deutscher Idealismus)이라고 부른다. 헤겔(1770-1831) 이후 헤겔의 관념론적인 변증법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인 변증법으로 비판되고, 마르크스는 오늘날까지도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근대철학에서 칸트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은 헤겔과 마르크스로 이어진다. 물론 이러한 철학사의 주요 흐름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로는 헤겔 이후 헤겔철학에 대한 수용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라진 점을 들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철학의 전통에서는 헤겔 철학이 과소평가되고 있으며, 심지어 헤겔철학을 무의미한 명제들의 집합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러셀은 헤겔의 모든 학설이 거짓이다고 말한다. 헤겔 이후 영미 철학은 의미있는 명제들을 통해서 철학의 상식적인 건전함을 구제하려는 경향으로 흐른다. 언어분석을 통해 의미를 명확히 갖는 철학을 표방하는 분석철학의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하게 지속 발전하는 현대철학의 주요한 흐름이다. 이러한 러셀의 편견과 무관하게 헤겔은 철학사에 한 획을 긋는 거장이라는 점은 부정되기 힘들다. 왜냐하면 헤겔의 철학은 여러 방면에서 오늘날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으며 특히 헤겔과 대결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헤겔 철학은 필수적인 배경사상이기 때문이다.

 

독일관념론에서 대두된 중요한 문제는 칸트 이후 칸트철학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칸트철학에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된 것은 크게 보자면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의 구분이다. 칸트는 철학에서 자연과 자유가 성질이 전혀 다른 이론을 구성한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자연의 형이상학과 도덕의 형이상학이라는 두 체계가 독립되었다. 인식과 실천을 구분한 칸트의 의도는 철학의 전통을 수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칸트에 있어서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의 구분뿐만 아니라, 인식론에 있어서는 대상과 주체가 구분되는 구분되고, 또 대상에 있어서도 현상과 물자체가 구분된다. 철학에서의 구분은 다른 한 측면 근대사회의 분화원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은 인간 지식의 확실한 인식의 토대가 되고, 또 인간의 행위에 관한 도덕 원리는 독자적인 실천 영역을 구축한다. 과학과 실천규범의 구분을 통해 인간은 한 측면 세계를 이론적인 탐구의 대상으로서 간주하기도 하고, 다른 한 측면 법률과 사회규범을 구성하여 평화로운 세계가 지속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칸트 철학 내에서 설정된 이론과 실천의 이러한 엄격한 구분은 이후 철학자들에게 하나의 물음으로 남게 되었다. “왜 철학은 구분되어야 하는가?” 이 물음과 함께 철학의 근본적인 통일성이 추구되었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하나의 원리로써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전개되었다. 근대사회의 세속적인 자기 분화의 과정에서도 철학은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성의 원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 배경에 자리한다. 과학과 법률, 종교와 예술 등 근대사회의 제반 요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총괄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전체를 구성함으로써 근대사회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철학적인 노력이 독일관념론의 기본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독일관념론은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총체성의 원리를 향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피히테에 있어서는 주관과 객관의 주관적 통일성으로서 절대적인 자아가 설정되고, 쉘링에 있어서는 주관과 객관의 객관적 통일성으로서 자연의 원리가 설정된다. 헤겔은 주관과 객관의 절대적인 통일과 총체성의 원리로서 절대정신을 설명한다. 헤겔의 절대적인 주관성으로써 정신이라는 개념은 관념론 철학의 토대가 된다. 절대정신이라는 개념 이외에도 헤겔의 관념철학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개념으로 시대정신이 있다. 이 난해한 의미를 하나의 예로써 접근해보자.

인간은 세계에 직면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인간의 의도에 맞게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서는 설명될 수 없다. 한 개인은 세계 앞에서 그저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시대적으로 공유하는 인간 정신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객관적인 정신으로서 철학이다. 예술, 종교, 철학은 객관정신의 각 요소들이다. 당대의 철학은 곧 시대정신이다.

 

예를 들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로댕을 인류 전체로 상정한다면, 장차 조각될 돌은 자연이다. 돌조각은 인간 정신의 노동을 통해서 구체적인 형상을 띠게 된다. 정신의 노동으로 자연은 형상을 띠게 되고 예술작품이 된다. 나아가 이 작품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해해 보면, 사회제도, 문화, 종교가 정신의 산물이 된다. 이처럼 정신은 인간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파악되는 총체성이다.

 

사회 역사적인 차원에서 파악된 총체성은 고정된 형식으로서가 아니라 변화 발전하는 변증법의 원리를 보여준다. 헤겔은 칸트철학에서 제시된 형식적인 구분을 변증법적인 종합의 원리로 대체함으로써 칸트를 넘어서려 했던 것이다. 헤겔은 인식의 가능 조건을 제시하는 칸트를 수영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수영 하는 법을 배우려하는 것은 잘못이다고 비판한다. 세계에 대한 이론적인 인식은 이미 인간의 자기 이해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세계 이해와 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헤겔의 관점이다. 객관적인 인식을 제공한다고 사람들이 믿는 과학적인 세계는 그저 물질의 다발, 죽어 있는 기계적인 자연일 뿐이지만 실제 세계는 인간 실천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변증법의 철학은 형식 논리학과는 달리, 진리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서 이해하고, 세계와 인간의 관계를 상호 매개된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보자. 한 개인의 의식이 성장하는 과정은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될 수 있다. 유아의 눈으로 보는 세계에서 성숙한 노년기로 접어드는 동안 세계에 대한 이해는 점차적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정신의 관점에서 보자면 청년기를 넘어서 노년기로 가는 과정은 여전히 발전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삶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정신의 관점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죽음의 순간 삶이 완성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살아온 전 과정이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정신의 완성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개짓한다는 헤겔의 표현은 이에 해당한다. 삶의 한 가운데서 삶에 파뭍혀 있어서는 삶이 전체로 파악되지 못하며, 삶의 언저리에 비로소 삶은 전체의 형상을 띠게 된다는 말이다. 비록 젊은 사람이라도 삶을 하나의 전체로서 사유하고 통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삶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가 전개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한 개인의 삶에 대한 성찰을 역사의 차원으로 확대해 보면 시대정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철학은 사유로 파악된 그 시대이다이 말은 우리 시대는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시대에 대한 정의를 추구할 경우, 시대란 철학의 이성적인 통찰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법은 역사에도 역시 적용된다. 역사는 이성이 파악한 이성의 자기목적이 실현되는 과정이며, 이성과 정신의 진리가 드러나는 장이게 된다. 인간의 이성과 정신은 이질적인 모든 요소들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여 모든 요소들의 원리를 설명함으로써 절대적인 전체를 통합해낸다. 이처럼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또한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헤겔은 현실을 이성적인 현실로 그리고 있다.

 

 

3. 헤겔의 관념론적 역사관

 

앞에서 간략하게 헤겔의 변증법의 철학과 관념론을 살펴보았다. 이제 헤겔의 논의에 따라, 이 두 요소를 역사에 적용하여 세계역사의 철학적인 원리를 개괄해보자. 세계역사는 자연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이므로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행위가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지는 사실 자체를 통해서는 드러날 수 없다. 그런데 실증적 역사학자 랑케는 사실 자체만을 통해서 역사의 의미를 드러내려고 한 점에서 하등의 영향도 주지 못하는 사소한 일, 덧없는 관심사, 병사들의 뭇 행동, 또는 그밖의 사사로운 문제들에 관하여서술한 나머지 그러한 사실들이 갖는 전체적인 것, 혹은 보편적 목적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다.(역사 속의 이성, 32) 역사가 진행되는 일반적인 법칙이나 역사가 향해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들의 연관관계 속에서는 직접 드러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역사와 철학의 근본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역사에 접근한다. “철학이 동반하는 유일한 사상이란 이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 따라서 세계사에서도 역시 사태는 이성적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하는 이성에 관한, 이성이 지니는 단순한 사상이다. 이러한 확신이나 통찰은 역사 자체를 위한 하나의 전제이다.”(역사 속의 이성, 49)

 

헤겔은 세계사를 우연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해하지 않고, 일정한 필연성에 귀속된다고 믿는다. 역사에서 드러나는 필연성은 경험적인 요소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이성의 선이해라 할 수 있는 철학적인 사유에 속한다. 이성은 경험적으로는 증명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분명한 이념을 주장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이념은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이성이 분명하게 주장하는 이성 자체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에는 발전법칙과 궁극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헤겔의 독특한 철학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앞서 우리는 칸트의 <보편사의 이념>을 살펴보면서, 궁극적인 세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이성의 청사진이 세계시민사회라는 점을 다루었다. 인류역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지점이 세계시민사회라는 칸트의 주장에 대해 헤겔은 일단은 공감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헤겔은 칸트의 이념이 현실과는 단절된 이성의 요구라는 점에 있어서는 못마땅해 하며 칸트의 이념이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좀 더 강하게 주장하는 데로 나아간다. 역사 안에서 이성의 주장이 현실적으로도 분명하게 관철되고 있다고 헤겔은 말하는 것이다. “이성은 오직 자신이 그 자신의 전제이고 그 목적은 바로 절대적인 궁극목적이기 때문에, 결국 이성은 세계사 속에서 현상으로 드러나는 궁극목적의 활동이며 성취이다”(역사 속의 이성, 50)

 

그러나 이성이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헤겔의 확신은 많은 반론에 직면할 수 있다. 과연 이성은 역사 속에서 항상 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취했는가? 그렇다면 헤겔이 보인 이성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현대사에서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해 아마도 헤겔은 이성의 목적에 반하는 현실들(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이 오히려 더 크고 고차적인 목적들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조화될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역사가 지속적으로 이성적으로 발전한다거나 발전과 퇴보를 반복하며 순환할 뿐이다고 하는 두 가지 대립하는 관점은 헤겔에 있어서는 변증법적인 상승발전의 논법에서, 악은 선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거나 선은 악을 통해 더 강화된다는 주장으로 해결된다. 더 크고 고차적인 선을 위해 악이 필요하게 된다.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서 희생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희생당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폭력적인 힘의 논리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성의 상승적 발전 논리에는 이성의 타자에 대한 억압이 내재해 있으며, 이러한 논리는 현실의 국가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화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라는 데에는 헤겔의 역사철학이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헤겔은 세계사에서 전개되는 세계정신이 구체적인 전개과정에서는 세계사를 주도하는 특정한 민족에 의해 구현되어 가면서 발전한다고 본다. 고대에서는 그리스 민족, 로마 민족으로서 세계가 주도 되었고, 근대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해 왔지만, 궁극적인 역사의 목적은 게르만 민족에 의해 수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정당화한다. 해당 역사를 이끈 민족은 세계사적인 민족이었으며, 세계정신이 역사에서 드러나는 방식은 민족정신을 통한 것이라는 말이다. 헤겔이 파악한 보편사의 과정에서는 인도나 중국 등 동양에 대한 선입견과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이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동양적인 정신은 아직 자연성에서 정신으로 분화되지 못한 그저 역사의 유아기 상태라는 관점을 보인다.

 

헤겔의 보편은 유럽 중심의 역사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 비유럽 세계에 대한 편협한 관점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을 실질적 내용으로 하는 원리가 전개되어 가는 단계적 도정을 서술해 나간다.” 물론 자유의 의식이 단계적으로 상승적으로 확대된다는 것은 수긍할 수 있는 관점이지만, 자유의 상승 단계가 유럽의 지역에 한정된다면, 그것은 보편사가 아닌 유럽사라 해야 할 것이다. 헤겔에 있어서 동양은, 여전히 단 한명의 전제군주만이 자유로운 상태이며 수천년 동안 자유의 진일보도 보이지 못하는 열등한 상태로 묘사되고 있다. 유럽 중심의 보편사의 구성은 헤겔뿐만 아니라, 이후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에서도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나아가 헤겔은 역사 이성이 종교의 계시 내용과도 일치할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더욱 보수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기독교에서는 섭리가 세계를 지배하였고, 또 지금도 지배하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은 신적 지배 아래서 규정되고 또 이와 합치된다는 것이 중심이론이 되어 있다. (...) 이 보편적인 신앙이야말로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보다도 철학으로, 또 더 나아가서는 세계사의 철학으로 진전해야만 하는 것이다”(역사속의 이성, 73) 기독교 종교의 보편적인 계시 내용이 세계역사에서 작용하는 이성의 원리와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헤겔은 철학과 종교, 역사의 포괄적인 총체성을 기획하고 있다.

 

베를린 시대에 전개된 헤겔의 역사철학이 처음부터 프로이센의 국가주의에 경도된 것은 아니었다. 헤겔이 튜빙엔에서 보낸 청년시절, 헤겔은 현실의 변화를 열망했고 그런 이유로 나폴레옹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 기대에 찼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는 과정, 자유와 평등의 혁명정신이 현실에서는 공포정치로 퇴락해 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혁명을 통한 자유의 실현을 불신하게 된다. 헤겔은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현실적인 지반은 인륜적인 삶의 요소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믿음에서 또한 칸트의 도덕철학을 넘어서려 했다. 헤겔은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현실적인 근대적 삶의 토대로서 가족, 시민사회, 국가를 조망했다.

 

칸트에 있어서는 이성의 도덕적인 이념이 지상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은 윤리적인 요청이다. 그 실현이 지속적으로 연기되는 것은 악의 현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념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악이 지속되더라도 이념을 저버리지 않고 기억해야 하듯이, 지나간 죄를 기억함으로써 소극적으로나마 이념에 다가설 수 있다. 이념은 일종의 부정신학과 같은 처지에 있다.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에서처럼, 오지 않은 고도를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는 상황이 역사의 시간이다.

 

역사 이성에 대한 헤겔의 지나친 낙관은 칸트의 이념이 현실과 무관한 무력한 위치에 선 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헤겔은 이념과 현실을 무리하게 관련지음으로써 현실에서 성급하게 이념을 발견하려 한 나머지, 독일 민족과 국가의 역사적인 사명을 강조하고, 비이성적인 사회적인 부조리에 대한 통찰을 무시하게 된다. 그 결과란 전체주의적 국가를 옹호한다는 비판이다. 헤겔의 역사철학을 통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민족국가의 위상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보다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죄를 다시 짓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이념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역사에서 이성의 진보를 과도하게 신뢰하는 것보다는 역사적인 죄를 기억하면서 다시 죄를 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념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더 현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서 민족은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가 공통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역사인식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된 죄의 역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강조되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자칫 평화로운 세계질서에 반하는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위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이 점에서 보자면 역사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의 중요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역사란 무엇이며, 역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4. 마르크스(1818-1883)의 역사유물론

 

1831년 헤겔 사후, 독일에서 전개된 철학은 헤겔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를 견지한 흐름과 헤겔을 진보적으로 변형한 흐름으로 나뉘게 된다. 헤겔 우파(보수헤겔파, 노년헤겔파)는 세속적인 세계질서가 종교적인 세계질서에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 헤겔 좌파(진보헤겔파, 청년헤겔파)는 헤겔의 관념론적인 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변형하려고 시도했다. 대표적인 헤겔 좌파 철학자로는 포이에르바하를 들 수 있다. 칼 마르크스는 청년시기 헤겔 좌파의 영향을 받게 되었으나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의 철학을 다시 비판하여 역사 유물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은 헤겔에 대해, 그리고 포이에르바하에 대해 어떤 비판을 제기하였는가? 역사 유물론은 오늘날 세계에 대해 어떤 중요한 철학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가?

 

헤겔 철학의 관념론적인 성격을 비판한 포이에르바하는 기독교 종교의 본질이 인간의 종교적인 소외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았다. ‘친구로부터 소외되었다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철학적인 의미의 소외와도 관련된다. 친밀한 관계에 있다가 따로 떨어져서 멀어지게 되고 배척된다는 것이 소외된 관계이다. 인간의 종교적인 자기소외란 무엇인가? 신의 능력은 인류 전체의 능력이 투영된 것이고, 종교를 통해서 보게 되는 신적인 능력은 인간 자신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마치 거울 속에 투영된 인류 자신의 모습이 신의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종교적인 세계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소외는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역전현상을 통해 지배관계가 바뀌는 것으로 인해서 나타난다. 인간이 만든 신이 인간과의 관계에서 신이 주가 되고 인간이 종속적인 관계로 놓이게 된 결과 종교적 소외가 나타난다.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인 세계의 현실적인 토대가 세속적인 세계에 있음을 밝힌 뒤, 헤겔의 관념론의 철학이 전체적으로 유물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가 관념론의 토대를 종교적 소외를 통해 비판적으로 분석한 점에 있어서는 동의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인간의 소외를 분석하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종교적인 소외의 분석을 통해 얻어지는 결론은 개인이 종교를 신봉함으로써 개별적으로 위안 받기보다는 동료와 신뢰와 애정을 회복함으로써 인간적인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마르크스가 보기에 여전히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를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또한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적인 소외가 발생하는 원인을 분석하고만 있을 뿐 종교적 소외를 낳는 원인을 제거하려는 사회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구조적으로 소외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철저히 분석한 후, 그 원인을 실천을 통해 제거해야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종교적인 소외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실천을 통해서만이 종교적인 소외가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 현실이 비참해질수록 종교적인 위안이 필요하다. 종교적인 위안으로 현실을 부정하려는 사회병리현상은 오직 사회현실을 고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믿음으로써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게 된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이 뜻한 바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근대사회의 기본적인 이념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소외의 근본적인 원인이 종교에 있다기 보다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를 이루는데,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소외될 수밖에 없음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삶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자본주의의 모순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자본주의 세계에서 유통되는 모든 상품들은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 작업장은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작업 환경은 노동자들의 의도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채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미 갖추어져 있다.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채플린은 계속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노동속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자신이 기계에 종속되어 버리게 된다. 주체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노동은 객체적인 사물로 전도되고 사물적인 기계와 작업환경이 인간의 노동을 종속시킨다.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노동은 노동 생산품으로부터도 소외된다. 노동자가 만들어 낸 상품은 노동자의 것이어야 하지만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 사이의 동료적인 관계도 노동자들 간의 경쟁적인 관계 속에서 소외된 관계를 만들어 낸다.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노갈등은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지만, 실질적인 갈등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조장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노동의 소외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과 세계로부터 소외를 겪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삶은 인간적인 사회의 이상, 모든 사람들의 자기실현이라는 근대적인 이념과 점점 더 멀어져간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의 지점이 있다면, 그 모순으로부터 노동하는 사회계층의 모든 개인들이 소외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가 목도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이후 <자본론>을 통해 경제학의 이론 형식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생산에서는 사회적인 성격이 점점 더 강화되지만, 분배에 있어서는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마치 봉건사회의 신분제적인 질서가 근대시민혁명을 통해서 해소되었던 것과 같이, 자본주의의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불평등의 문제가 사회혁명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적극적인 실천은 혁명적인 방식으로만 해소될 수 있다는 태도는 당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시도한 체제 내 개혁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과 관련된다. 자본주의 사회를 아무리 개량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자본가과 노동자의 계급모순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사회구조를 혁명적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사회와 역사가 인간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도 인간의 실천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가 발전하는 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마르크스는 헤겔과는 달리, 정신이 아닌 경제적인 요인과 정치적인 요인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이를 토대와 상부구조로 부를 수 있는데, 마치 한옥의 대들보가 지붕을 지탱하는 형상과 같이, 특정한 경제적인 생산양식이 이에 조응하는 법률, 문화, 등을 이룬다. 마르크스의 역사 이해 방식을 역사 유물론 혹은 유물사관이라고 말한다. 역사 유물론에서 가장 기본적인 범주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생산력은 인간의 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부의 전체를 지칭한다.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싸고 맺어지는 사회계층의 관계를 말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특정 시대의 생산력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그 전까지는 조화로웠던 생산관계와 마찰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이 태어나면 신체적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완전히 성장한 신체를 갖기 전까지는 커가는 몸에 맞춰서 옷의 크기도 달라져야 한다. 유아기 때 입는 옷, 청소년기에 입는 옷, 성인이 되어서 입는 옷은 각각 그 크기가 달라진다. 이처럼 몸의 크기에 따라서 옷의 크기가 달라지듯이, 인류의 생산력이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이를 지탱해오던 생산관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다다른다. 이 시점은 새로운 생산관계로 대체되어야 하는 혁명적인 변화의 시점이다.

 

마르크스는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가는 역사발전 단계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조화와 대립으로 설명한다. 봉건제 사회에서 생산력은 토지와 농노의 노동에 의한 농업생산이 기본을 이룬다. 생산수단인 토지를 소유한 귀족과 토지를 갖지 못한 농노는 봉건적 생산의 기본적인 계급관계를 이룬다. 봉건제 사회 내부에서 전통적인 농업생산이 아닌 자본제적 생산으로 점차 이행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생산관계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발전한 산업은 농업을 대체하여 새로운 사회계층이 생겨났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왕당파와 의회파의 대립은 이러한 경제적인 사회변화가 정치적인 관계로 반영된 것이다. 봉건적인 생산관계는 이제 새로운 생산력에 조화되지 못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고 근대시민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 변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가진 자본가와 자본을 갖지 못한 노동자가 기본적인 생산관계를 이룬다. 자본주의가 봉건사회의 끝에서 역사적으로 출발했듯이, 자본주의도 역사적으로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탱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생산력이 증대됨으로써 생산수단 및 생산에서 있어서는 사회적인 성격이 점차적으로 확대되어가지만, 생산물의 취득이 사적 소유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전체가 참여하여 생산을 이루어내지만, 최종적인 생산물은 자본가가 전유한다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다. 대기업이 남긴 이익은 어마어마한 규모에 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빈곤이 확대되는 현상이 바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생산에 걸맞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변화되어야 하고, 이 변화가 곧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요약하자면, 마르크스는 역사의 발전법칙이 봉건제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로, 자본주의사회에서 공산주의사회로 이행할 수밖에 없고, 그 이행의 필연성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살펴본 바, 헤겔은 역사발전의 필연성이 역사이성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행하는 단계라는 관념론을 설정했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모두 공통적으로 역사발전의 필연법칙이 있으며, 특정한 목적을 향해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역사의 전체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총체성을 설정한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헤겔의 관념론과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역사에 관한 대립된 관점을 보이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는 인간의 이성에 의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에 의해 진보한다고 해야 한다.

 

 

참고문헌

G.W.F. 헤겔, <역사 속의 이성> (임석진 번역), 지식산업사, 1992.

K.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88.

L. 포이에르바하, <기독교의 본질> (강대석 옮김), 한길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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