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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의 중심지 - 루돌프 슈타이너의 괴테아눔 본문

인지학/인지학건축

인지학의 중심지 - 루돌프 슈타이너의 괴테아눔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12. 22. 20:58

인지학의 중심지

루돌프 슈타이너의 괴테아눔

스위스 도르나흐 I 1924~1928년 I 루돌프 슈타이너

 

"콘크리트로 만든 형태는 완전히 달라야 할 것이고, 인간 영혼의 눈이 그것을 예술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부서지기 쉬운 콘크리트 재료를 능숙하게 다루려면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화, 건축양식에 있어서 장식적인 요소를 창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콘크리트 재료 자체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콘크리트는 예술적 특성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를 괴테아눔이 토대로 해야 할 근본이념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 1923년 12월 31일에 루돌프 슈타이너가 인지학회 회원들에게 한 강의 중에서

 

 

1923년의 새해 첫날, 인지학人智學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신의 역작이 폐허가 되어 있는 장면과 마주했다. 그 전날 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방화범들이 바젤 근처의 도르나흐 언덕에 있는 괴테아눔Goetheanum에 불을 지른 것이다. 영성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체母體의 동굴' 이라고도 하는 인상적인 목조 건물인 원형적인 집은 사라져 버렸다. 슈타이너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그 건물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영혼의 윤회와 영적 우주론에 푹 빠져 기독교와 유럽의 신비적 지적 전통을 깊이 연구한 그는 자신의 학교인 괴테아눔을 세웠다. 사람들이 모여서 초자연적인 지식을 얻는 장소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슈타이너에게 인지학이란 지각을 훈련받은 개인이 인류의 영성과 세계의 본질을 점차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었다. 그는 이것이 '인간적 자유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으로서 여러 방법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과 모든 인간 활동에 대한 전인적 관점의 중요성을 확신한 슈타이너는 자신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 적용했다. 그는 발도르프 교육법과 유기농업을 창시하고, 의학 전문가들과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 그는 건축가이기도 했다. "인지학적인 경향의 인간은 이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활동적이며, 자신만의 건축양식을 개발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건축에서만큼은 괴테에게 순응했다. 1883년부터 1897년까지 바이마르에서 괴테 전집을 작업하면서 괴테의 자연과학 서적에 완전히 반해버린 슈타이너에게 건축이란 이성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묵상적인 깨달음의 투영이었다. 그래서 그는 괴테의 '식물변태變態'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그가 1922년에 불타버린 첫 괴테아눔으로 구체화하려 했던 이유는 바로 자연의 형태의 내적 창조 때문이었다.

 

역시 자신이 직접 설계한 두 번째 괴테아눔에서 슈타이너는 건축재료로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했지만, 괴테의 개념을 염두에 두었다. 그는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이곳에 세워질 것은 지금까지의 콘크리트 건물이 성취한 것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세공용 점토 모형을 사용하여 효과적인 형태를 찾았다. 또한 가능한 한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아틀리에, 강의실 그리고 연극과 음악회를 위한 강당도 물론 갖추어야 했다. 아쉽게도 슈타이너는 그 완성작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예술적 수준으로 보자면, 괴테아눔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그 건물은 20세기 건축 · 조각의 가장 장엄한 발명품으로 불려왔다. 현재 인지학회의 국제센터인 괴테아눔은 1924년에 설립된 정신과학 자유대학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출처 : 클라우스 라이홀트, 베른하르트 그라프 지음, 이영아 옮김, <세상을 바꾼 건축>, 예담, 2006, 150-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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