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본문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진실에 대한 느낌과 이해심이 들어 있다."
- 루돌프 슈타이너, <신지학>
발도르프 교육이나 다른 인지학적 실천이 어려운 것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사회 공동체보다 개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애쓰라고 말한다. 결코 손해를 봐서는 안 되고 어떻게든 최대치의 이익을 얻어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여긴다. 근대적 개인주의 사상이 극단에 치달았다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기보다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이익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풍조다.
개인들의 자아가 깨어나면서 자유를 추구하는 흐름은 자연스럽지만 현재는 그게 지나쳐 균형을 잃고 극단화되고 있다. 인간이 내적으로 갖고 있는 사회적 힘과 반사회적 힘은 변증법적으로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힘을 통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수용하며 화합한다. 그리고 반사회적 힘을 이용해 자기 주장을 말하고 타인을 비판하며 거리를 둔다. 근대 사회에서 인류는 점점 반사회적 힘이 강해졌다. 듣기보다 말하려 하고, 전체를 보기보다 자기 세계에 몰두한다. 공감능력을 잃어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러니 갈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사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지나쳐 이제는 사회 전체가 자폐적 성향을 띠는 것처럼 보인다. 소위 '인셀(incel : involuntary celibate)'이라 불리는 극단주의 집단은 구성원의 18-24%가 자폐 스펙트럼에 해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일반적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유병률은 0.62%). 비단 극우 커뮤니티의 문제만이 아니다. 얼마 전 의사나 의대생만 가입 가능한 커뮤니티에서는 "개XX들 하루 천명씩 죽어나갔으면", "응급실 돌다 더 죽어야" 같은 패륜적 발언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의료 대란의 상황에서 이러한 언행은 집단 이기주의와 함께 정신적으로 병든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의사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를 통해 우리는 검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와 광기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자화자찬식 시를 비석에 세워 전시하는 강남 아파트 주민들은 또 어떠한가.
폐쇄적인 집단 이기주의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계 맺기보다 자기 세계에 빠져 사는 모습도 일종의 자폐적 현상이다. 거리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걷는 사람들을 흔하게 본다. 친구나 가족이 모여도 저마다 개인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내적 특징의 외화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점점 공감능력이 약화되고 극도로 시야가 좁아져 쉽게 오해하고 판단내리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모습이기에 우리를 더욱 더 불행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신적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결될 때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다소 귀찮고 어색하더라도 말을 거는 수밖에 없다. 주변 사람에게, 그리고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소소한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갖는 행위는 우리 자신의 정신적 건강함을 키워준다. 그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건강한 자극을 준다. 좀 더 용기를 내어 대화모임(서클)을 자주 시도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힘을 강화할 수 있다. 부담 없이 각자의 일상을 나누고 품고 있는 고민에 대해 털어놓는 일은 우리 삶에 생기를 가져다준다.
나아가 우리는 삶의 이상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신적 건강함에 큰 차이가 생긴다. 큰 부침 없이 꾸준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사람은 의지가 강하다. 힘든 일을 겪어도 의지가 강한 사람은 결국 이겨내기 마련이다.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커다란 의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의지는 의미에서 나온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늘 고민하고 알아차리는 사람은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며 방향을 찾는 것과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의미를 잃은 사람은 의지도 꺾이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물어야 하고, 긍정적으로 사고해야 하며, 어떤 이상을 품어야 할지 성찰해야 한다.
인지학은 우리에게 올바르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세상이 물질로만 이루어진 무의미한 공간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세계 또한 존재하는, 살아 있는 세계임을 알려 준다. 모든 사물은 정신이 응축되어 형성된 것이므로 인식은 내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대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행위에 가깝다. 머리, 즉 두뇌는 정신적 메시지를 수신하는 장치로써 기능한다. 그러므로 머리를 써서 재빨리 판단하려 하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에는 자연법칙이 있는 것처럼 정신법칙이 있다. 세상의 진실 또는 진리에 대해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한 진실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세계는 늘 양극이 있고, 건강한 길은 양극의 균형에 놓여 있으며, 그 균형은 고정되어 멈춘 게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리듬이다."
건강한 사고는 한쪽 극단으로 기울어 경직되지 않고, 항상 다른 측면을 고려하며 균형에 대한 느낌을 가만히 느껴볼 때 가능하다. 양쪽 극을 상정하는 것은 사고로 하지만 그 균형점은 머리가 아닌 가슴 또는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균형감각은 '진실에 대한 감각'의 다른 말이다. 좋은 삶이란 그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유연함과 단호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하지 않으면 반드시 병이 온다. 그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재산과 학식도 소용이 없다. 언제든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하다면 돌아보아야 한다. 정신적이든, 신체적이든 병이 왔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의 진실하지 못했던 부분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진실이 곧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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