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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다시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2022. 2. 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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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2022. 2. 15)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3. 8. 09:07

다시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트라우마는 시간감각에 문제를 일으킨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한 고통이 지워지지 않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가장 큰 사회적 트라우마는 세월호 참사일 것이다. "잊지 않겠다"고 굳이 약속할 필요가 없을 만큼 그날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300명이 넘는 생명이 구조되지 않고 수장되는 것을 전국민이 생중계로 보고 말았는데...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비극을 맞이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우리의 자식이자 친구이며 제자이고, 국가폭력의 죄없는 희생자들이다. 한 사람의 기성세대로서 나는 그날부터 죄인이 되었다.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든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세월호 참사에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한 탄핵까지, 수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정권이 바뀌었고,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한다. 지지부진했지만 어느 정도 적폐 수사가 이뤄졌으며, 전직 대통령들과 사법부 수장, 재벌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세상은 바뀌었는가? 우리 사회는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상식에 따른 삶이 가능해졌을까? 비교적 코로나 팬데믹을 잘 막았다고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언론 신뢰도는 바닥이며, 검찰이나 사법부에 대한 반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탄핵 이후 대한민국은 격렬한 내전 상태였다고 본다.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은 총공세를 벌이며 저항했고, 바뀐 것은 청와대뿐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어떻게든 과거 체제로 회귀하려는 이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민주개혁세력은 그만큼 치열했는지 또는 지혜로웠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혐오정서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은 정부가 아니다. 여성혐오가 유행처럼 번지는데 우리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민주화 세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고 있지만 이 역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생겨난 기득권 체제에 대한 반성적 인식은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재벌, 언론, 검찰, 사법 등의 적폐는 제대로 개혁되지 못했다. 이들은 이기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주술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자기 안위, 집단적 특권의식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들에게 지금의 정권은 파렴치하고 무능할 뿐 아니라 악독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지겨운 레퍼토리로 치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보수 언론이나 극우 유튜브/커뮤니티에서 유통하는 이야기는 무엇보다 사실관계가 맞지 않다. 이들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한국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은 공고하다. '남들보다 빨리 출세해서 부패를 저지르자'가 우리 사회의 숨어 있는 지향 아니던가. 외형적으로는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 우리에겐 더욱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 이윤보다는 생명, 사법보다는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현재 정부의 실책이 없지는 않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보수정권 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문화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고 언론을 통제했으며, 이권 사업에 관여해 막대한 부를 빼돌렸다. 사냥개처럼 활용되었던 검찰이 작금에 와서는 전면에 나서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되고자 한다. 우리는 세월호 진상조사를 좌절시킨 주범이 검찰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기성세대라는 죄인으로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더 큰 죄를 짓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크다. 다시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시대의 퇴행을 거부한다. 퇴행한 뒤에 촛불을 들어서는 늦다. 우리에게는 더욱 더 간절한 마음과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촛불혁명은 완수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고, 우리의 트라우마 역시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병든 세상에서 아픔은 오히려 진실이다.

2022.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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