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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론적 연구 및 비판 (2) - 뒤르케임주의의 관점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론적 연구 및 비판 (2) - 뒤르케임주의의 관점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3. 9. 11:30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론적 연구 및 비판 (2)

A THEORETICAL STUDY AND CRITIQUE OF RESTORATIVE JUSTICE

케빈 I. 마이너 & J. T. 모리슨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옮김



뒤르케임주의의 관점

사회 질서(연대)와 처벌 사이의 상호작용은 뒤르케임(Durkheim, 1893, 1902)의 핵심 개념이다. 뒤르케임은 그가 집합의식(collective conscience)이라고 불렀던 특정한 도덕적 가치와 규범을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사회 질서의 기초를 대표하는 것으로 상상했다. 사회적 질서는 처벌로 이어진다. 처벌의 표현적이거나 응보적인 측면은 집합의식의 악화에서 나오는 공유된 분노로부터 스스로를 증명한다. 대조적으로, 처벌의 도구적 또는 공리주의적 기능은 집합의식을 강화하고 재확인한다. 엄격한 처벌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도움을 준다. 처벌은 범죄를 억제하고 집합의식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하다(Garland, 1990; Lynch et al., 1993). 따라서, 뒤르케임은 처벌이 집합의식의 침해에서 비롯되며, 집합의식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뒤르케임(Durkheim, 1902)은 사회가 단순한(기계적) 형태에서 복잡한(유기적) 형태로 발전함에 따라 처벌 방법이 일반적으로 덜 가혹하고 덜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합의식은 단순한 사회에서 강한 종교적 감정을 반영하기 쉽다. 도덕 규범과 기준은 신성한 특성을 지니며, 위반은 신성하고 초자연적인 실체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된다. 그 결과 처벌은 본질적으로 가혹하고 물리적인 경우가 많다(예: 태형). 더 복잡하고 분업화된 사회에서 집합의식은 본질적으로 더 세속적이다. 규범 위반은 개인 및 재산과 같은 실체에 대한 위반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처벌은 완화되고 구금을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뒤르케임(Durkheim, 1893)은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억압적인 법이 줄어들고 원상회복적인(restitutive)법이 더 널리 퍼질 것이라고 보았다. 억압적인 법은 형법에 해당하며 처벌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가 있는 사회적 관계를 문제가 없는 이전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고안된 원상회복적인 법은 비징벌적이며 민법 및 헌법으로 대표된다(Hunt, 1978; Milovanovic, 1994).

현대 사회에서 인기가 높아지는 회복적 정의는 부분적으로 뒤르케임의 생각과 일치한다. 억압적인 법이 실질적으로 감소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지만(Hunt, 1978), 회복적 정의 실천의 확산은 원상회복적인 법의 증가와 교정 방법의 완화 모두의 부분적 증거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뒤르케임은 원상회복적인 법이 억압적인 법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뒤르케임의 관점에서 볼 때 처벌에 대한 억압적인 법의 강조는 중요한 목적을 달성한다. 그것은 감정적 분노를 표현하고 집합의식을 보존하는 것이다.

뒤르케임주의의 방식에서 회복적 정의 실천이 이러한 목적을 적절하게 충족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일 수 있다. 공유된 공동체의 분노는 회복적 정의 실천을 통해 표현될 수 있지만, 그러한 표현은 가해자를 처벌함으로써 이뤄지는 표현과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회복적 정의는 범죄에 대한 복수심에 찬 대응이 아니며, 복수심에 불타는 대응은 아마도 감정적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노골적인 수단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복수심의 부재가 범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요구하는 유권자들에게 정치 관료들이 회복적 정의를 납득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상 사람들은 회복적 정의를 범죄에 대해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사실 회복적 정의를 범죄에 대해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라 보고 범죄행위에 대한 대응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또는 매우 제한된 범위의 경범죄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회복적 정의가 공동체가 경험한 분노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복수적이지 않다고 흔히 주장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잠재적인 영향은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의 광범위한 시행에 대한 공동체 및 정치적 지원을 약화시킬 수 있다.

공동체 지원의 부족은 범죄행위에 대한 강한 정열에서 비롯될 수 있는데, 강한 정열에 기반한 입장들은 흔히 변화가 매우 어렵다. 흥미롭게도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비판이 발생하는 동일한 뒤르케임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냄으로써 반박할 수 있다. 뒤르케임은 처벌이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만들 수 없다고 보았다. 처벌은 확립된 도덕성을 표현하고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도덕적 질서는 사회화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처벌은 교육 그 자체보다는 적대감, 공격성, 그리고 위해(Evarts, 1990; Mead, 1918; Pepinsky, 1991) 등을 수반한다. 반면 회복적 정의는 소통, 협상, 타협 및 관련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도덕적인 교육에 훨씬 더 적합해 보인다.

그렇다면 징벌적 정의에서 벗어나 회복적 정의로 나아가는 움직임은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복수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온) 분노에 의해 이뤄지는 동시에 복수는 처벌에 의해 강화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범죄자들에게 대응하는 방식은 그들에 대한 감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Garland, 1990). 갈런드는 뒤르케임에 대한 비판에서 범죄행위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일련의 모순되고 양가적인 감정(예: 분노, 분개, 동정, 연민)을 수반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처벌이 그 자체로 영속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범법 행위에 대한 우리의 지배적 대응이 처벌인 한, 분노는 범죄자에 대한 지배적 감정이 될 것이며 그 분노가 처벌을 낳을 것이다. 덜 징벌적이거나 덜 강압적인 프로그램들은 적대적 감정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에 회복적 정의의 대응은 다른 선순환을 낳을 수 있다.

회복적 정의가 단순한 사회의 구성원보다 (세속화된 집합의식이 우세한) 현대의 복잡한 사회의 구성원에게 더 많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뒤르케임이 예견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명백한 모순이 발생한다. 회복적 정의 실천은 많은 단순한 사회에서 널리 퍼져 있었다. 집합의식과 강한 종교적 감정의 관계에 대한 뒤르케임의 입장, 그리고 단순한 사회에서의 가혹한 처벌에 대한 선호를 고려할 때, 이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뒤르케임이 단순한 사회의 집합의식보다 복잡한 사회의 집합의식이 일반적으로 더 약하다고 보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Milovanovic, 1994). 단순한 사회에서 생활 환경의 더 큰 획일성과 덜 광범위한 분업은 가치와 규범에 대한 더 큰 합의로 해석된다. 회복적 정의의 근본적 가정은 가치와 규범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개인간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그러한 합의는 복잡한 사회보다 단순한 사회에서 더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회복적 정의 실천은 예전 사회에서 매우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뒤르케임의 관점에서는 회복적 정의의 철학에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도전적인 것이 거의 없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뒤르케임은 법 그리고 범법에 대한 대응 모두를 가치와 규범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 수준이 반영되는 것으로 보았다. 회복적 정의는 기존의 합의라는 기반 위에 더 큰 합의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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