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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히스테리성 아이들 (Hysterical Children)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특수교육

히스테리성 아이들 (Hysterical Children)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5. 3. 00:10

히스테리성 아이들 (Hysterical Children)


간질을 겪는 아이들에게서는 거친 피부와 다부진 체격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발작(seizures) 증세를 보일 때 역시 그들은 스스로 당당히 그러한 장애에 맞서려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은 그 반대의 경향을 보입니다. 전형적인 히스테리성 아이는 연약하고, 다소 겁이 많고, 부끄럼이 많고, 민감하며, 쉽게 지치며, 어려움에 봉착하면 쉽게 물러서며 피하려 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히스테리(hysteria)"라는 단어의 의미와 연관된 두 가지 선입견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과거에는 “히스테리성(hysterical)"이라는 말이 거의 일종의 모욕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 주의를 끌며 소동을 벌이고, 또 거기에 의존한다는 뜻이 내포되었습니다.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객관적인 질병의 한 형태로서 말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방금 위에 언급한 경우와 매우 유사한 상태가 그 병으로 인해 발생할 수는 있습니다. 또 하나의 선입견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전적으로 성인들의 병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특정한 형태의 히스테리 증상들이 크게 고려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히스테리성 아이들의 영혼이 “아프고(sore)”, "상처입은(wounded)"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고차원적인 개념으로 이것으로 거의 모든 증상들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만약 손이 베었다면 그 손으로 무언가를 집으려 할 때 우선 움츠러들 것입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영혼의 상처를 받은 아이는 자기 앞에 놓인 모든 요구에서 물러섭니다. 왜냐면 그 일을 붙잡고 해나가는 것이 그들의 영혼에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상처입은 영혼”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간의 발달을 이해할 때는 식물이나 동물과는 대조적으로 생물학적 실체 그 이상으로의 이해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아래에서부터 위로 성장할 뿐 아니라 위에서 아래쪽으로도 성장을 합니다. 인간의 영혼-정신적 존재는 자라나는 육체성(physicality) 안으로 내려오며, 그 육체적 특성에 침투하여 형태를 이루면서 서서히 신체를 만들어 나갑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영혼-정신적인 개별성은 신체조직 안에서 그 여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육화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전에 간질을 다룰 때 육화란 영혼-정신의 육체성으로의 침투 뿐만 아니라 신체와 주위의 물질-생명적인 힘들과의 관계까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역자 주: 예를 들어 주위의 중력, 물-공기-열-역동적 힘, 빛, 주변명암 등]. 간질병 아이의 경우 자신을 주위환경에 결합시키는 육화의 이 두 번째 단계가 완전히 진행되지 않은 반면, 히스테리성 아이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멀리 나아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자기 주위의 힘들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결국 자신을 잃은 것입니다. 이는 마치 자신들의 피부가 충분히 그들을 감싸주지 못하고 또한 적절한 정도로 외부로부터 단절시켜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피부에 “상처가 나서” 몸 경계로서의 피부가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얇은 피부”는 단지 영혼의 상태를 나타내는 하나의 이미지로 이야기하였지만 신체상으로 이 아이들은 실제 약하고 부드러우며 고운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땀이 잘 납니다. 심지어 이렇게 신체적 현상에서도 그 피부의 투명성이 잘 드러납니다.

그들의 영혼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 아이들은 주변과의 특별한 내적 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아주 미세한 감정들까지도 감지합니다. 이는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또한 오직 익숙하고 친밀한 환경만을 고집하는 경향으로 이끌릴 수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거나 울음을 멈추지 않는 경우(이러한 것들이 아이에게 급습(attacks, 발병)할 때), 그들은 명확히 "자기 바깥에(beside themselves)"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변 세계에게 자신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급습(병적 행동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교육적 지침이 없을 경우 이러한 행동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 이러한 민감한 아이들은 조그마한 질책이나 사소한 일에 충격을 받거나 마음을 다칩니다. 심지어 감각들, 특히나 후각은 지나치게 예민합니다. 예를 들어 불쾌한 냄새는 참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이 자신의 주위를 탐지하는 “더듬이(feeler)"는, 여섯 살의 히스테리성 꼬마 여자아이의 크레용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림 14 참조) 이 그림에서 몸의 신체적 특징은 단지 여기저기 명암으로 처리를 하고 반면 곤충 더듬이 같은 길고 가느다란 팔들이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을 8살 간질병 아이가 계속 반복해서 그려내는 그림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그림 15 참조) 이 아이는 자기가 임의적으로 그려내는 이 그림이 무엇을 나타내는 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림에서 단절, 강한 외곽선, 방사, 태양 같은 형태들을 볼 수 있으며, 이는 마치 두개골 또는 집에 갇혀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8살 2학년 아이의 병력으로, 히스테리성 아이의 많은 특징들을 볼 수 있습니다.

겸자 분만(forceps birth). 출생 후 경련. 너무 약해서 모두 그 여자아기가 죽지는 않을까 걱정함. 유아병동에서 2달 지냄. 엄마가슴에서 짠 모유 3달 먹음. 16달에 걷기와 말하기 시작. 병원에서 홍역, 이하선염, 백일해, 수두 치름. 식욕 없음. 잘 잠.
관찰결과: 극도로 가여운 아이, 마르고 비참함. 몸무게 22 kg, 키 124 cm, 창백한 피부, 둥근 윤곽의 눈. 겁 많고 잘 놀라며 우울하고 민감한 성격. 내부 장기 이상 없음. 움푹 들어간 등허리. 평평한 발. 마르고 성냥개비 같은 손발, 차갑고 푸른 빛. 겁 많고 부루퉁한 얼굴표정. 종종 괴로운 웃음. 길고 날리는 머리.
신발과 발 마찰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발에 반창고 붙임. 심리적으로 억제되어있고 잘 놀라며, 다른 아이들로부터 압박감을 받음.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을 때도 고분고분함. 왜나면 자기가 그들과 대적해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 그러나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때때로 거칠고 거리낌 없는 (억제되지 않은) 행동을 보임. 고함도 지르고 벌컥 화를 내며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행동들을 보임.
처음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뒤에는 잘 해냄.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때의 경우. 그녀 엄마는 아이가 항상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이면 ‘난 할 수 없어(I can’t do it)’라고 물러서는 것을 관찰함. 아이는 피곤한 척 아픈 척하며 하지 않으려 함. 소심함 때문에 비록 아이의 보다 성숙하고 고상해 보이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애기(baby)”라고 불림.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함.

이 보고서는 일련의 특징적인 증상들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 중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갓난아이가 출생 후 너무 심각하게 아파서 생존까지 의심되는 경우에는 나면서부터 많은 다양한 병의 원인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험과 함께 이 아이들은 즉시 자신들 안에 삶으로부터 물러서려는 동기(leitmotif)를 심게 됩니다. 그러한 아이들은 처음부터 지상의 삶으로 나아가는 권리를 거부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아이들의 이러한 히스테리성을 죽음의 과정과 비교하였습니다. 실제 아이들의 연약한 몸과 창백하고 뾰족한 얼굴 등의 외모는 우리에게 죽음을 떠 올리게 끔 합니다. 많은 히스테리성 아이들이 보이는 경향 중 하나인 (몸의) 차갑고 끈적이는 습기는 죽을 때 흘리는 땀(death sweat)을 연상시킵니다. 아주 어린 아이 같은 행동과 나이가 더 어린 아이들과 놀기 좋아하는 경향은 자신의 본래 나이로부터 뒷걸음치려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상대방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입니다. 이런 증상이 강화되면 목소리는 완전히 자기 안으로 숨어들어 결국 히스테리성 무언증(mutism)이 됩니다. 괴로운 웃음(pained laugh)에서도 상처받은 영혼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아이는 실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재능이 있음에도 “난 할 수 없어!”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고 (모든 이러한 아이들이 같은 말을 합니다) 이 때 어떤 명확한 진단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 사용했던 “상처 입은 영혼”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소극적 성향 (또는 거절증, Negativism)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가 외부 세상의 요구에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가 응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는 더욱 더 자유롭게 자기 자신 속으로만 빠져드는 경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 아이가 이제 혼자 집에 있게 되었을 때 화를 분출하거나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행동(letting herself go)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의 이러한 자신을 외부환경에 쏟아내어 버리는 경향은 신체적 현상에서도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이 여자아이의 경우 길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간직하고 싶어 합니다. “흘러 나감(flowing out)"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거의 항상 빠지지 않는 두 가지의 증상이 여기에서는 빠져있습니다 : 야뇨(bed-wetting)와 발한(perspiring)

야뇨는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하루를 보내면서 상처 입은 영혼과 그 고통의 경험들은 이제 편안하고 따뜻한 침대에서 아이는 마침내 자신을 자유롭게 내 보냅니다. 이러한 흘려 보냄은(flowing out) 종종 저녁에 아이들이 잠자리로 보내어 질 때 아이들 자신도 모르게 준비되어 지는 것입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의 정신적인 지체는 야뇨에서도 잘 보이는데, 야뇨는 생리학적으로 이른 유아기의 행동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 날 원치 않았던 또는 혼란스러운 경험을 통해 이에 더 많은 야뇨를 통해 반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선생님이 오신 것도 그 한 예일 것입니다. 이는 그 아이들이 의식적으로 “복수”하기를 원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아이들이 이전 그러한 경험을 통해 움츠려있던 것을 더 강하게 흘려보냄으로서 반응한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분명히 구분되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야뇨증 아이들의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전 장에서 이미 언급된 인두편도 비대(adenoidal hypertrophy)의 경우로 장애가 가운데 영역, 즉, 호흡기 계통에 있습니다.
다른 형태로는 감각이 다소 무딘 아이의 경우로, 자신의 신진대사 안으로 푹 빠져있는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아이들의 내보냄(flow)은 너무 과도해서 엄마들은 종종 “떠내려간다(float away)"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특히 가엽고 ‘죄지은 듯한’ 모습들이 눈에 띄며, 깊고 둥근 윤곽의 눈과 흐릿한 피부색깔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좀 드문 경우이나, 조용하고 침착한 아이의 경우인데, 대게 소년같은 모습의 소녀들로 야뇨량은 적으며 가끔 일어납니다. 첫 번째 유형은 이미 다루어졌고 (책 37페이지), 아래는 두 번째 유형의 특징입니다.

이 여아는 8살, 2학년이다. 임신, 출생, 유아기 모두 정상. 11개월에 걷고 1살 때 말함. 아이일 때 수두, 홍역과 백일해를 겪음.
어린 아이 때의 일반적인 야뇨가 끝나지 않고 계속 야뇨증으로 이어짐. 따라서 침대는 항상 젖어 있음. 야뇨는 일주일에 1~3회 정도이며 양이 아주 많음. 식욕, 잠은 매우 좋은 상태. 거의 너무 좋음.
관찰결과: 키 128 cm, 몸무게 27 kg, 다소 포동포동함. 평평한 얼굴에 햄스터 볼을 가진 조그마한 점액질소녀. 노르스름한 얼굴빛에 은색이 도는 금발. 눈 밑에 깊은 그늘짐. 손발에 쉽게 땀이 남. 움푹한 등허리. 납작하고 넓은 발.
집에서는 놀이 친구들 중 거의 주도적임. 이는 매우 놀라운 일로 반대로 학교조회시간이나 수업 중에는 대게 물러서거나 공부도 거의 꿈꾸듯이 하기 때문.

이 아이가 놀이친구들에게 발휘하는 영향력을 볼 때, 우리는 대게 성인들에게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개인이나 그룹단체들을 조정하는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능력이 주위 세계와의 내적관계에 토대함을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비록 다소 통통한 체격이 히스테리성 아이들에서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가냘픈 모습은 아니지만 부풀고 비정형적인 성인 히스테리의 체격 경향을 보입니다. 아래에는 세 번째 유형으로, 14살 여학생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정상분만. 엄마로부터 아주 짧게 수유 받음. 정상적인 유아기. 15개월에 걷기와 말하기.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항상 피곤함을 느낌. 창백하고 많은 땀을 흘림. 결핵이 의심되었으나 X-레이 촬영 후 음성판정. 식욕이 아주 좋으며 예외적으로 깊이 잠을 잠.
관찰결과: 키 163 cm, 몸무게 48 kg, 연약하고 곱상한 14세 소녀. 길게 늘어뜨린 금발. 아직 사춘기에 접어들지 않았음. 깨끗한 피부에 쉽게 땀을 흘림. 내부 장기 건강. 평발.
비록 내면적으로는 매우 예민하고 주변 환경에 반응은 보이지만 표정은 다소 수줍은 듯 눈길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에 무관심함. 이러한 예민함으로 다른 사람들로 부터의 냄새를 참지 못함. 누군가 그녀에게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고 하면 창밖으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함. 야뇨는 종종 발생하지만 양은 많지 않음. 잠잘 때 침대시트를 귀까지 덮음. 동생과 같은 침실을 사용하지만 침실용 탁자와 스페인풍 숄로 침대주위를 둘러싸 자신만의 공간을 만듦.

야뇨증세 아이들이 깊은 수면을 취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침대시트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 전체가 덮는 것 또한 정말 특징적이며 다른 아이들에게도 많이 보입니다. 이는 너무 얇은 피부를 보완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이러한 필요성은 다른 증상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코트나 다른 옷을 입을 때 옷으로 단단히 자신을 덮어 싸는 것을 좋아하며, 상기 보고서의 경우처럼 침대가 놓인 자리 주위를 다시 둘러싸 더 조그마한 자신만의 방을 만듭니다. 그들은 자신들 영혼의 영역 또한 무언가 안에 둘러싸여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간질 아이들의 거친 피부와 다부진 체격을 이야기했고, 또 그 안에 갇혀버린 이 아이들의 영혼-정신적 존재의 상태를 이야기 했습니다. 간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에게는 우리는 정반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소 약한 신체성과 주위 환경으로 “흘러 나가려는” 영혼-정신적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은 자기 자신들 내면자아 안에 보호된 체 남아있어야 할 자신들의 영혼이 너무나 많이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아이들은 모든 행동, 그가 하는 모든 것에 자신의 영혼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아이의 영혼은 그가 하는 모든 것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의 외부세계와의 경계는 너무나 투명해 졌습니다. 그들은 대게(어느 정도는, 적어도) 바깥세상 속으로 뻗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진대사계에게나 적합한 상황에 놓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이러한 상황은 오직 인간의 초감각적인 부분이 육체를 벗어나는 시기인 죽음에서만 발생합니다. 여기서 또 다시 히스테리와 죽음의 관계를 잠깐 언급하였습니다.

성인 히스테리의 경우 더 멀리 이러한 경계를 벗어나는 데, 이는 의식과 잠재의식의 경계로 이 둘 모두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잠재의식은 깨어있는 의식으로 행하여질 행동들에 대한 주도권을 넘겨잡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많은 예들이 심리학 저술들에 나와 있지만 이는 우리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예를 통해 죽음과 히스테리와의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Kretschmer가 지적하기를,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패닉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히스테리가 아닌 사람도 충분히 히스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진이나 극장에 불이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소위 히스테리성 (병적흥분, 이성상실) 반응을 보입니다. 몸은 마비되고 "정신없이(headless)" 행동하며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까지 위태롭게 합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종종 축구경기 중 주심이 비우호적인 결정을 내릴 때 난동이 발생하곤 하는데 몇몇 경우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현대의 집단적 경험 속에 잠재한 경향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스테리는 부적절하게 경계를 넘어섰다라고 특징 질 수 있습니다 ― 아이의 경우 경계를 뚫고 주변 환경으로, 어른의 경우 잠재의식의 경계로까지 넘어 섰습니다. 양쪽 모두의 경우, 가능한 일상 의식의 경계를 넘어 바깥 또는 안쪽 주변세계로 들어와 의식의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러한 부적절하게 경계를 넘어 의식상태의 변화를 꾀하는 충동이 오늘날 인류에게는 강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새로운 의식을 경험 가능케 해주는 흥분제(메스칼린), 환각제(LSD)와 같은 마약들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마약의 사용이 일반적이고 널리 퍼진다면 우리 인류는 집단 히스테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자명한 동경들이 어떻게 적절한 방식으로 부응되는지, 어떻게 명확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또 다른 의식 수준으로 접어들 수 있는 지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정신과학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다시 아이들 히스테리로 돌아와서 지금까지의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방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아이들이 가진 흥미를 이용해 아이들의 내면적 참여로 이끌어 내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영혼 또한 충분히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또한 그런 후 우리는 그들을 내면적으로 강건하게 만들고 끓임 없이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아이들은 서서히 자신의 내면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들은 그들 주위 및 주위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들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며 건강하게 독립적일 수 있습니다. 충분한 인내력과 함께 아이들 영혼의 상처는 치유가 됩니다. 이를 통해 아이는 더욱 강건한 기질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들 중 피해야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Asperger는 다음을 환기시켰습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과 함께 우리는 절대 “그들과 함께 같이 놀아서는(play along with them)” 안됩니다. 그들을 위한 걱정에서 연민으로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부모 특히나 어머니가 가장 하기 쉬운 실수입니다. 아이가 자기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마치 자기가 할 수 없는 냥 벗어나려는 시도가 또한 교육자의 내면적인 “굴복(giving in)"으로 이어지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위의 두 가지 실수는 히스테리 성향을 더욱 강화할 따름입니다.
그의 치유교육 강좌에서, 루돌프 슈타이너는 히스테리성 아이를 돕는 구체적인 교수법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수업시간 중 템포(속도)의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읽기나 쓰기, 그리기를 하면서 바쁠 때 어느 한 순간 선생님은 아이에게 좀 더 빨리하라는 요청을 합니다. 아이는 보통 때 받는 다른 요청들과 마찬가지로 우선 놀라며 움칫 그러한 요청으로부터 물러서나려 합니다. 하지만 자신 바로 앞에 선생님이 서 계셔서 아이는 자신을 스스로 이겨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그러한 놀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계속 수업에 임해야 합니다. 이러한 극복을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가던 아이의 기질이 내적으로 강화되고 굳건해 집니다. 만약 이러한 방법론적으로 미리 잘 준비된 지시사항을 통한 “예기치 않은 변화”들이 조직적으로 반복해서 잘 실행된다면 아이들의 히스테리 증상들은 서서히 호전을 보일 것입니다.
전형적 히스테리성 아이들이 말하는 “난 할 수 없어(I can't do it)"에는 무의식적으로 고정되어 버린 생각의 틀이 내재하는데,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 했습니다: ”나 이거 하고 싶어; 하지만 난 정말 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난 반드시 해야만 해; 그리고 해도 그건 제대로 되지 않을 거야“. 선생님이 옆에서 자기를 보호하며 서 계시고 자기와 내면적으로 함께 작업해 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아이는 선생님과의 동반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달래며(soothing his soul)" 이러한 일련의 고정된 생각들을 서서히 깨뜨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게, 선생님이 진정 아이가 하려는 모든 것에 대해 함께 같이한다면 아이들은 이러한 복합적인 생각들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당신은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은 당신이 가진 붓을 아이와 함께 움직여 갑니다. 여기 저기 매 순간을 아이와 함께 합니다. 당신은 아이가 그림을 그려나갈 때 선생님이 부드럽게 자신을 이끌어 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하며, 이렇게 당신은 아이와 하나가 됩니다. 당신은 아이 미래의 행복한 삶을 가슴에 품은 아이의 가장 친절한 친구입니다.

히스테리성 아이들에 대한 강의를 마치면서 루돌프 슈타이너는 또한 아래를 덧붙였습니다.
장애 아이들을 보살피는 교육자는 결코 지루할 틈이 없을 것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들 각각이 하나의 새로운 문제로, 하나의 새로운 미스터리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각각의 개별적 경우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할지가 아이 현재의 모습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맞혀 일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교육자로서 정신과학적 의미의 자기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병에 대한 현상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할 때 우리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기교육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병 현상에 대한 우리의 헌신적인 탐구가 곧 이 일의 사명입니다. 이를 통해 정확한 사실들을 전달받게 되며 살아있는 관심을 통해 생동감 및 교육자로서의 의지를 얻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살아있는 관심과 열정은, 자신에게 다가온 이해하기 힘든 아이들을 교육하는 커다란 임무에, 매일 더욱 새롭게, 자신을 거기에 적합하게 만들어 줍니다.


[출처 : Walter Holtzapfel(전 괴테아눔 Medical Section의 Leader)의 책"Children's Destinies" http://cafe.daum.net/Wittenwaldorf/fTb/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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