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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과학수업과 사고력 계발 - 복합적 사고 : 질병의 세균설 (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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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업과 사고력 계발 - 복합적 사고 : 질병의 세균설 (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4. 7. 11:57

복합적 사고 : 질병의 세균설

 

 

생각하는 존재로서 우리는 문제를 단순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고 과정이 논리적이고 명확하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반드시 현상들(phenomena)에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연속되는 일련의 생각들이 지나치게 정확하고 일관될 때, 우리는 밝히려는 현상들을 다채롭게 바라보는 통찰력을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생각의 근육(thought muscles)"을 단련시킨 9학년과 10학년 학생들에게서 이런 지나친 단순화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11학년과 12학년 때 이런 경향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주어진 현상이나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학생들은 세상이 매우 복잡한 곳이며,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도식적인 개념이나 더 나쁘게는 현실에 대한 인상비평에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저는 루돌프 슈타이너11학년의 생물학 커리큘럼에 대해서, 우리가 오늘날 1차적 인과관계라 부르는 것을 넘어서 상호 의존성과 상호 인과관계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과의 만남, 1922621)

 

저는 주로 11학년의 생물수업에서 가르치는 질병의 세균설을 들어 복합적 사고를 설명하곤 합니다. 이 이론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의견을 내도록 만들 뿐 아니라 과학이 실제로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묘사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도 저는 이 주제에 대한 일반적 설명은 피하고, 대신에 학생들의 흥미를 끌만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콜레라는 아주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은 심한 설사와 구토에 시달리고 많은 양의 체내 수분을 단기간(몇 시간에서 며칠)에 잃어 탈수증세를 일으키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기도 합니다. 19세기에는 콜라레의 전염이 심각했습니다. 1854년에 독일의 뮌헨과 그 주변 지역에서도 콜레라가 유행하였는데, 당시 의사이자 뮌헨대학의 교수였던 막스 폰 페텐코퍼(Max von Pettenkofer)에게 콜레라에 대해 연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는 발병지역을 정확한 지도로 그리는 것을 연구의 시작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도시의 어떤 지역에서는 참혹한 피해가 발생했던 데 비해, 도시의 다른 지역에서는 화를 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변지역 근처의 낮은 땅에 위치하거나 운하, , 작은 시내가 흐르는 지역과 그 주변에서는 콜레라가 매우 심각하였고, 물이 갈라져 흐르는 경계지역이나 언덕 위에서는 콜레라 발병률이 더 낮았습니다. 또한 그는 배수가 잘 안 되어 물이 침투하지 않고 지면에서 흘러가 사라져버리는 지역보다 토양이 물을 잘 흡수하여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지역에서 콜레라가 더 심각하게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페텐코퍼는 콜레라가 발생한 지역이 주로 청결하지 않은 빈민촌이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 지역은 옥외변소와 하수 웅덩이에서 풍겨오는 악취로 가득했습니다. "더러워 죽겠네!"라고 학생들이 말합니. 그들은 북미와 유럽의 도시들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중앙하수처리시스템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당시의 하수 웅덩이들은 밀폐되지 않은 채 유지되어 하수가 땅속으로 스며들었고, 우물도 오물들로 오염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를 본 페텐코퍼는 배설물과 토양, 물의 상호작용이 콜레라의 주된 발병요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콜레라 환자 옆에 있던 사람도 바로 콜레라에 전염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족 중 일부가 콜레라에 걸렸지만 다른 일부는 걸리지 않은 경우가 많고, 환자와 정기적으로 신체적 접촉을 했지만 콜레라에 걸리지 않은 의사와 간병인의 경우도 매우 많이 보았습니다. 확실히 사람마다 질병에 걸리기 쉬운 성향이 있기도 하고, 잘 안 걸리는 성향도 있는 것입니다. 페텐코퍼는 물과 가까운 정도, 환경의 청결도, 개인의 건강상태가 콜레라를 유발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는 이런 환경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고, 공공 의료와 위생의 아버지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특히 그의 노력으로 뮌헨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중앙하수처리시스템을 도입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느 곳이든 환경이 청결해지면 콜레라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독일인 의사이자 과학자인 로버트 코흐(Robert Koch) 역시 콜레라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코흐1880년대 초반에 이집트와 인도에서 머무르며 콜레라 발병지역을 조사하였습니다. 그는 콜레라로 사망한 사람들을 부검하던 중 모든 사망 환자의 장에서 쉼표 모양의 박테리아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박테리아는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장 기능의 장애가 콜레라 환자에게 나타나는 심각한 설사의 원인이 되므로, 이 쉼표 모양의 박테리아가 콜레라를 일으킨다고 할 수 있을까요? 코흐의 발견이 질병의 세균설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모든 학생이 병균(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이 글의 초반에 언급했던 것을 기억해보세요) 대부분의 학생은 그렇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코흐가 부검 중 박테리아를 발견했다는 것이 그 박테리아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학생은 사람들이 아팠기 때문에 박테리아가 체내에서 번성할 수 있었다며, 아마도 박테리아가 질병의 영향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제대로 아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로버트 코흐도 확실히 알지는 못했습다.

 

코흐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양심적인 과학자였습니다. 그는 과장된 주장을 만들어내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판단에 소신을 품게 해줄 사실들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염된 조직을 가져와 박테리아를 채취하여 연구실에서 배양했습니다. (이것은 세균학 역사애서 중대한 발전이었으며, 박테리아를 키우기 위한 대부분의 기술은 코흐와 그의 비서가 발견하고 완성했습니다.) 코흐는 쥐, 토끼, 기니피그 등과 같은 동물들에게 박테리아를 주입했습니다. 동물들은 대개 사람의 질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죽었습니다. 그는 죽은 동물의 창자에서 박테리아를 다시 채취하여 배양한 다음 다른 동물에게 주입했고, 역시 그 동물들도 죽었습니다. 그는 채취, 배양, 주입의 과정을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코흐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 쉼표 모양의 박테리아가 분명히 콜레라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1883년의 일입니다.

 

코흐는 인도에서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이 배변을 보는 바로 그 물을 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병든 사람의 설사를 통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확산되는 박테리아가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반면에 페텐코퍼는 박테리아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콜레라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수년간의 경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확신을가졌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늘 그가 비합리적 공포라고 불렀던 박테리아에 대한 두려움을 사람들 사이에서 없애기 위해 박테리아 배양액을 마실 참이었습니다. 그가 박테리아 배양액을 그대로 마신다면, 그는 약 십억 마리의 박테리아를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셈이었습니다. 배양액을 마시기 전에 그는 위산을 중성화시켜 박테리아를 죽이는 역할을 하는 중탄산 소다 용액을 마셨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빈틈없는 실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페텐코퍼는 콜레라 박테리아의 배양액을 마셨습니다. 다음날 그는 말짱하게 일어났고, 자신이 죽을 것이라 예상했던 기자들을 자신의 집에 불러 자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3일 후, 그는 극심한 설사에 시달렸지만 그것은 곧 가라앉았고 결국엔 완전히 나았습니다. (얼마 후 그의 조수 중 한 명이 이 실험을 똑같이 반복했을 때, 열이 난 것을 제외하고는 페텐코퍼와 같은 증상과 회복을 보였습니다. 그 후 다른 과학자들이 스스로에게 이 실험을 해보았을 때는 가끔씩 증상이 나타났지만 곧 회복되거나,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는 아예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설명하고 나면 교실에서는 활발한 토론이 펼쳐집니다. “페텐코퍼가 너무 무모했던 건 아닐까?” “그래도 결국엔 살았잖아!” “그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토론이 조금 잠잠해지면 우리는 상황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합니다. 페텐코퍼는 무엇을 증명했나요? 그는 콜레라 박테리아가 콜레라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박테리아가 유일한 원인이라면 그는 이미 죽었을 테니까 말이죠. 그가 밝혀낸 것은 박테리아가 콜레라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까요? 아니지요. 다만 그의 실험은 개인의 특성이 병의 발병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그의 생각을 증명해보인 것입니다. 코흐페텐코퍼 둘 다 어떤 부분에서는 맞고 어떤 부분에서는 틀렸습니다. 둘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전염성 질병을 바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즉, 전염병은 박테리아(바이러스)에 의해 옮겨지지만, 사람이 전염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는 개인의 특성(그 전염병에 대한 민감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병균과 개인의 성향, 이 두 가지가 환경을 통해 상호작용하여 전달될 때만 전염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저는 생물학에서 원인(cause)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얼마나 많은 주의가 필요한지를 좀 더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른 예들을 더 들 수 있는데, 그것들 중 어떤 것은 원인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는 과학 기사들로부터 발췌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학생들은 이제 더 비판적이고 주의 깊은 청자가 되어, 우리가 평소에 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부분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면밀한 관찰은 언제나 생물학적 현상이 여러 가지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생물학과 의학에서 원인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는 근본적인 제안을 합니다. ‘원인이라고 부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표현의 명확성을 떨어뜨립니다. 대신에 우리는 '조건(condition)'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박테리아는 콜레라가 발생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지만 그 한 가지로는 불충분하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상태가 안 좋은 것도 하나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필요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이것을 이해하면 그들은 복합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학생들은 세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엄밀한 개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복합적 사고는 단순한 대답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하기 위해 언제나 이론과 설명의 경계를 찾으려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합적 사고는 매우 중요한데, 이것이 문제를 조명하는 데 유리한 점들을 계속적으로 탐색할 때 융통성 있고 이해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발도르프학교의 11학년과 12학년의 교과과정 중에는 이러한 복합적 사고를 길러내기 적합한 과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 과목에서만 복합적 사고를 훈련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11학년 화학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원자 모델의 발달과정을 가르쳐주고 그들의 마음속에 당구공 그림을 극복하게 해주는 원자론의 역사수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엄청나게 뻗어나가게 할 수 있는 무한대나 이원성(양극) 같은 개념들을 만나게 되는 사영 기하학(Projective geometry) 단원도 괜찮습니다. 호손 밸리(Hawthorne valley) 발도르프학교에서 저는 11학년 학생들에게 생태학을 가르쳤는데, 생태학은 어디에서나 복잡하고 변화하는 관계들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업에서 복합적 사고가 필수적인 과목이었습니다. (그러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생태학적 문제들은 복합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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