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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대한민국과 싱크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 3. 28. 11:02

대한민국과 싱크홀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년 3월 25일 오전 11시 22분, 싱크홀 사고로 추락했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심장이 멎은 채로 발견되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지 18시간만이다. 그는 생계를 위해 부업으로 배달 일을 하던 30대 가장이었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다고 하는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사고 현장 바로 옆에는 지하철 9호선 공사장이 있다. 공사로 인한 지반침하가 직접적 원인으로 보인다. 공사 관계자는 이미 한 달 전에 붕괴를 우려하는 민원을 서울시에 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안정성이 확보된 상태로 설계하였다며 문제가 없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거대하게 뚫린 싱크홀을 보며 공포감이 엄습했다. 마치 지금의 대한민국이 저런 상황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대통령의 불법계엄이 실패로 돌아가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지 세 달이 지났다. 우리는 헌법재판소 주심 재판관의 말대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신속하게 인용판결이 내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이번 주에는 탄핵이 되겠지, 금요일에는 탄핵이 되겠지' 하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도로 아래 땅이 모두 꺼져버린 것처럼 사법질서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도로 위 운전자들은 언제 땅이 꺼져내릴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곧 싱크홀이 발생한다는 사실뿐이다.
 
대체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너무나 당연한 법리 판단을 왜 2월 말, 3월 초가 아닌 지금까지 지연시키는가. 왜 '일부' 헌법재판관들은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인가. 왜 어떤 사람들은 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키는가. 그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기득권 세력이거나 기득권 세력이 되고 싶은 이들이다. 어느 사회든 기득권 세력은 존재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표방한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교묘하게 형태를 감추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감출 생각도 없고 감출 수도 없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가면을 집어던지고 추악한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팬티마저 벗어던졌다고 하던데 맞는 말이다. 그들을 광분케 만든 것은 지배 질서의 변화이다. 나는 세계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의식은 깨어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사람들과 사회 구조가 깨어나는 인간 의식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시대정신과 걸맞지 않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다.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존엄하다. 민주주의 체제란 그렇게 존엄한 개인들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정치 체제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그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결코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분명히 특수계급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22년 현재 검사와 판사는 피의자로 입건된 사례가 1만 621건이었지만 정식재판에 회부된 사례는 0건이었다. 2013년부터 2023년 8월까지 검사와 판사가 입건된 사건 4만 6174건 중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24건으로 0.05%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국민이 입건돼 기소될 확률이 30%대인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리고 얼마 전 고위공직자 2047명의 1인당 평균재산이 20억 6000만원이고 1년새 1.6억이 증가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국무총리는 작년에 비해 3억 8925만원 증가한 87억 39만원, 서울시장은 14억 2954만원 증가한 74억원, 검찰총장은 37억원 증가한 121억 59만원이다. 
 
우월하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사에서 뿌리 깊은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고, 정치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능력이 좀 있다고 해서 남들보다 우월한 사회적 위치를 점유하고, 그것을 강화하며, 자식에게까지 세습하기 위해 제도를 바꾼다면 반드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때 그들에게 필요한 게 간교한 지식인들이고 언론인들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유포하여 대중을 세뇌시키는 게 이들의 일이다. 그렇게 마름이라도 해먹으려는 인간들이 "출세하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부터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그런데 모두 다 그렇게 노력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는 정상인 걸까. 능력이 없으면 배제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빈곤의 나락에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것일까. 아니, 과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 것일까. 
 
공동체 전체를 보는 눈은 없고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된 어리석은 자들이 공동체의 상식적 규범을 붕괴시킨다. 이미 파헤쳐 쌓아놓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매우 치열하고 성실하다. 악은 비루하고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집요하다.  지금 우리는 싸우는 중이다. 기득권 세력이 축조한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세상을 우리는 바꿔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이제 탄핵을 인용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국가의 존폐를 다루는 사안은 선출되지 않은 법관들에게 맞길 게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불법계엄을 옹호하고 내란을 비호한 세력들은 끝끝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선의만으로 이룰 수 없다. '극우마저 품어야 한다'는 일부 지식인들은 독약마저 삼킬 것인가. 대한민국은 이제 6공화국의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를 벗어버리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위한 7공화국 체제를 상상해야 한다.
 
우리는 구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만큼 우여곡절과 좌충우돌이 있겠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다가올 것이다. 이기주의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경제와 정치, 문화가 각자의 논리대로 번영할 수 있는 사회, 출세 따위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참된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좀 더 인내하고 연대해야 할 것이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 각자가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은, 합리적 사고를 통해 올바른 규범의 토대를 탄탄하게 쌓아 올리는 일이다. 그래야 미치지 않고 광복된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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