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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빗나가는 인간존재 - Diana Uphues-Janning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빗나가는 인간존재 - Diana Uphues-Janning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6. 6. 22:48

이 글은 인지의학의 WHO 표준화에 대한 Diana Uphues-Janning의 비판입니다. 슈타이너사상연구소는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지의학을 보완 및 대체 의학의 하나로서 인정하고 그 교육 표준을 만든 것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이에 대한 인지학계 일부의 우려스런 목소리 역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와 세계경제포럼이 여전히 물질주의적 관점이 강하고 포스트휴머니즘 및 유발 하라리 같은 사상가의 하이테크-인간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저자의 관점이 개별적 인간에 치우침으로써 사회적 측면을 놓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스크나 백신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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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가는 인간존재(Verfehltes Menschsein)

인지의학은 WHO의 표준화 지시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토대를 배반한다

 

2023. 5. 10

Diana Uphues-Janning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옮김

 

 

kcube - kaan baytur/Shutterstock.com

 

전 세계적인 의학적 치료에 대한 통일된 표준 — 전 세계 모든 지역에 대한 신뢰성, 품질 보증 및 공정성처럼 들린다. 그러나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중앙 통제 기관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과연 문명의 진보일까? 게다가 이미 코로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세계보건기구(WHO)는 더욱 그렇다. WHO는 이제 인지의학 실무자를 위한 통일된 교육 표준을 발표했다. 그러나 종종 "비의적(esoterisch)"이라고 비난받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정신 지향적 인간관이 다소 기술주의적인 보건 기구와 어울릴 수 있는 걸까? 인간은 누구나 내면의 정신적 성향에 따라 개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해 정확하게 특징지어지지 않을까? 어쨌든 인지학계 고위 인사들은 WHO의 이니셔티브에 즉시 그리고 기꺼이 굴복했다. 그들은 분명히 세계보건기구의 표준화 노력에 합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의료 시설 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높였다고 여긴다. 이것이 결국 환자들에게 정말로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

 

적어도 "코로나" 이후 인간의 건강 문제는 인지과학(Erkenntniswissenschaft)의 초점이 되었다. 우리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건강 문제가 중앙 집중화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건강"을 중앙 집중화하고 통합할 수 있을까?

 

최근 괴테아눔의 의료 섹션에서 인지의학의 "이정표"에 대해 언급한 보도 자료가 있었다. https://www.damid.de/presse/pressmitteilungen/1290-internationalermeilenstein-%0Afuer-anthroposophische-medizin.html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 인지의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수요를 얻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것이 개별적인 인간의 건강 상황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적 기준은 인간에 대한 개별적인 관점을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지학과 인지학적 의학 분야의 관점에서 볼 때 건강은 개별적인 한 인간에 관한 것이 아닐까? 그것은 애초에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그의 "자유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본성의 가장 순수한 표현으로서 자유로운 정신에 도달하지 않고는 인간이라는 개념(Begriff)을 끝까지 생각할 수 없다. (...) 인간이 단순한 자연 존재라면, 이상, 즉 당장은 비효율적이지만 실현이 요구되는 관념(Idee)을 찾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 될 것이다. 외부 세계의 사물에서 관념은 지각에 의해 결정된다. 관념과 지각 사이의 연결을 인식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다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도덕적 인간(자유 정신)으로서 그의 참된 개념은 지각적 이미지인 '인간'과 객관적으로 미리 결합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인식을 통해 사후에 확립될 뿐이다. 인간은 자신의 개념을 인간에 대한 지각과 능동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여기서 개념과 지각은 인간 자신이 그것들을 일치시킬 때만 일치한다. 그런데 그는 자유 정신의 개념, 즉 자신의 개념을 발견했을 때만 이것을 할 수 있다. 객관적인 세계에서 우리 유기체 조직은 지각과 개념 사이에 경계선을 그었다. 인식은 이 선을 극복한다. 이 경계선은 주관적 본성에도 존재하며, 인간은 자신의 개념을 자신의 모습에서 실현함으로써 발달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한다."(1).

 

인간은 자신의 정신적 본성을 안팎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WHO의 의도가 표준에 따라 인간의 건강을 표준화, 중앙 집중화 및 "치료"하려는 것이라면, 미래에도 인간이 자신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계속해서 가능함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WHO는 지난 3년 동안 "세계적 질병"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명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런 다음 개인이 규칙에 복종함으로써 중앙의 규칙으로 얼마나 빨리 사라지고 말았는가? 사람들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마스크는 곧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영혼-정신적 인간의 개념이 제거되고 물질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신체만이 남아 "치료"된다면 자유로운 정신은 자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의 발달에 함께하는 것이 바로 영혼-정신적 인간이다. WHO는 이 영혼-정신적인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바이러스 및 기타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며 팬데믹으로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의견을 포함하여) 물질적 관점만 적용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만든 기준으로 축소하고 표준화한다. 따라서 인지의학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의료 체계에 통합되는 것이 실제 이정표가 될지 의문이 든다.

 

세계경제포럼(WEF)을 보면 트랜스휴머니즘적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인간을 하이테크-인간으로 변화시킨다는 아이디어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우리 몸은 더 이상 인공과 자연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첨단기술이 적용될 것이다. WEF와 WHO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인간을 알아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죽음을 생명에 적대적인 것으로 분류하여 인간의 적으로 간주하고 "인간"이라는 구성에서 질병과 죽음 자체를 제거한다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유발 하라리의 생각이다.

 

괴테아눔의 의학부서 책임자 중 한 명인 기르케 박사가 WHO의 트랜스휴머니즘 규정을 수용해야 한다면 그것을 만족스럽게 생각할까? 하이테크-인간이 더 이상 영혼-정신적 인간으로 채워질 수 없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WEF의 홍보 영상을 보고 이해했다면, 그런 기계 공장에는 실제적이고 자유분방한 인간이 들어갈 자리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인지학을 위한 공간도 없다.

 

인지학은 인간의 정신을 우주의 정신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앎의 길이다. 그러면 어떤 존재가 여전히 우주의 정신적 존재로 인도될 수 있을까? 물질적 인간 외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인지학은 또 무엇을 치료하고자 하는가?

 

비관론?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입맛이 당기게 만들어졌다. 새로운 인간을 하이테크-인간으로 키우는 것이다. 생합성 단백질이 혈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mRNA "백신" 같은 것으로 미리 준비해서 말이다. - 키워드: "혈액은 매우 특별한 주스이다".

 

“혈액은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혈액이 환경에서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것, 즉 혈액을 지속적으로 재생시켜 새 생명을 공급하는 산소를 흡수하는 과정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혈액이 외부 세계로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부 세계에서 내부 세계로, 다시 내부 세계에서 외부 세계로 되돌아가는 길을 추적했습니다. 이제 이중적인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혈액의 근원이 인간이 독립된 존재로서 외부 세계를 만나는 곳, 외부 세계가 된 감각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형태와 이미지를 만들고, 창조적이되고, 자아, 자아 의지가 살아날 수있는 곳에 혈액의 기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는 스스로 '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발달 원리는 혈액에 있습니다. '나'는 한 존재가 외부 세계에 대해 생성하는 이미지를 스스로 형성할 수있는 곳에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외부 세계를 자기 안으로 흡수하고 다시 자기 안에서 생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인간에게 뇌만 있다면, 그는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자기 안에서 생성하고 자기 안에서 경험할 수 있을 뿐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외부 세계는 거울에 비치는 그림으로서 내 안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하지만 이 외부 세계의 반복을 새로운 형태로 구축할 수 있다면 이 형태는 더 이상 외부 세계가 아니닙니다. 그것이 곧 '나'입니다."(2).

 

인위적으로 제조된 예비 부품을 인간을 위해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 역시 트랜스휴머니즘 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의심스럽다. 누가 또는 무엇이 인공 눈을 통해 볼 수 있을까? 당신 자신의 지각은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영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렇게 '나'를 지닌 삼원적 인간을 우회하여 통제 가능한 새로운 인간이 창조되고, 삶의 계획에서 죽음을 삭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인지학자들은 적어도 그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것이 정신적 존재인 우리에게 최종적 결과로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 역사와 관련하여, 질병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주제가 인지과학(Erkenntniswissenschaft)의 영역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인지학적(anthroposophischem) 갈채 아래 지상에 새로 태어나는 길을 스스로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비약적 도약이 일어날 것이다. 순전히 정신적이고 영혼적인 인간으로서의 해방된 형태의 삶으로의 전환으로서 발달을 돕는 질병과 죽음의 정화 능력 없이는 인간이 되는 미래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지학이 우리가 달성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적 계획의 어떤 것도 이미 "완료"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미래가 하이테크-인간의 미래밖에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인간 본성을 부정한다. 기계 인간으로 변모하고 지상의 죽음에서 해방됨으로써 건강 문제에 대한 답이 나온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어떤 호의도 베풀지 않는 것이다.

 

지상에서 낙원을 구체화하고 구현하려는 욕망, 죽음 이후 "무無"에 대한 두려움을 널리 퍼뜨리고 질병의 원인으로 미생물을 찾고 마케팅하려는 욕망은 궁극적으로 개별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거부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열린 대화는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바람직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나는 이 공개 서한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지식의 그림에 들어가 트랜스휴머니즘 사상에 맞서 인간 자체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세계를 향해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을 초대한다.

 


출처 및 참고:

(1) 루돌프 슈타이너: 자유의 철학. Rudolf Steiner Verlag, Basel, 문고판, 2016년 11판, 140페이지

(2) 루돌프 슈타이너: "피는 매우 특별한 주스입니다." 공개 강연, 베를린, 1906년

 

* 1987년에 태어난 Diana Uphues-Janning은 미혼모이자 인지학자이다. 그녀는 이미 인지학 관련 잡지에 글을 발표했으며 Gunnar Kaiser의 에세이 대회에 성공적으로 참가했다. 시와 사색을 담은 글을 쓰는 것 외에 그녀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 https://www.manova.news/artikel/verfehltes-mensch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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