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슈타이너가 바라본 니체 본문
벤 체리 선생님의 글 '진정한 팬데믹은 두려움이다'에 언급되는 철학자 니체에 대해 슈타이너가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관한 글입니다. 슈타이너가 니체의 철학을 계승했다는 주장도 나오던데, 슈타이너는 자서전을 통해 <자유의 철학>을 쓸 때 니체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슈타이너의 자서전 <내 인생의 발자취>의 일부(279-295쪽)를 발췌해 올리며 중요한 부분에는 밑줄을 쳤습니다. 인지학과 발도르프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서는 꼭 슈타이너의 자서전을 구입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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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가 바라본 니체
나는 니체가 머물렀던 바로 그 시절에 정신적 체험의 영역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으로 니체의 저술을 접한 것은 1889년이었다. 그때까지 그의 글은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었다. ≪자유의 철학≫에 표현된 내 사고의 내용에 니체의 사상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저술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생겨난 그의 문체에 매혹되었다. 그의 영혼이 유전과 교육 때문에 당대의 정신생활로부터 산출된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니체는 ‘이런 정신생활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또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세계가 있어야 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나를 괴롭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린 것으로 보였다. 이런 감정에 이끌려 그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정신에 불을 지피는 비평가가 되었고, 바로 자신의 비평으로 인해 병들어 가는 그런 비평가가 되었다. 그는 병을 앓을 수밖에 없었고, 건강이라면, 특히 자신의 건강이라면 오로지 꿈에서나 바랄 수 있는 비평가였다.
니체는 우선 거기에 관한 자신의 꿈을 자기 삶의 내용으로 만들어줄 가능성들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영혼 속에서 꿈을 실현하려는 듯 리하르트 바그너, 쇼펜하우어, 현대의 ‘실증주의’와 함께 꿈을 꾸어보려 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그저 꿈을 꾸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정신의 고유한 힘을 모두 모아 ‘어딘가에’ 분명 있을 현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이런 현실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동경만 발견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동경이 현실이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꿈을 꾸었지만, 그의 영혼이 지닌 강력한 힘은 꿈으로부터 인간의 내적인 현실을 창조했다. 이러한 현실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이념이 지닌 무거움이 없이, 정신적으로는 기쁘지만 ‘시대정신’으로 인해 불쾌해진 영혼의 분위기를 지닌 채 자유롭게 떠다녔다.
내가 느낀 니체는 그러했다. 중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부유하는 그의 사상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는 이 자유로운 부유로 말미암은 니체의 수많은 사고가 그와는 완전히 다른 길에 있는 내 안에서 형성된 사고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1895년에 《시대에 맞선 투사 니체》라는 책을 내면서 머리말에 아래와 같이 쓸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까닭이 있었다.
내가 1886년에 펴낸 《괴테 세계관의 인식론》이라는 소책자에는 이미 니체의 몇몇 저술에서 나타난 것과 동일한 신념이 표현되어 있다.
니체에게서 특히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니체의 독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독자를 ‘추종자’로 만들려고 하는 일에 맞닥뜨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그의 정신의 빛을 느낄 수 있어 완전한 기쁨을 지각했고, 이런 지각 속에서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만약에 해켈이나 스펜서 같은 이들이 전제하듯 저자의 말에 동의해야 한다고 믿었다면, 그 사람들은 니체의 표현들이 비웃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한 책에서 나는 니체가 쇼펜하우어와 자신의 관계를 표현한 바로 그 말로 니체와 나의 관계도 이렇게 표명할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니체의 독자들은 그의 책을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책 전체를 읽을 것이고 그가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게 되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그를 즉각 믿게 되었다. 그의 글은 나를 대신해서 건방지고 어리석으나마 분명하게 나를 표현하려고 쓴 것 같았다.
내가 니체에 관한 책의 집필을 시작하기 직전인 어느 날, 니체의 누이동생인 엘리자베트 푀르스터 니체가 괴테·실러문서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당시에 그녀는 니체의 문서실 설립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디딘 참이었고, 그래서 괴테·실러문서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 했다. 곧이어 니체 저서의 편집인인 프리츠 쾨겔Fritz Koegel이 바이마르에 등장했고, 나는 그와도 친분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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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푀르스터 니체 여사의 집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바로 첫 방문 때에 나를 프리드리히 니체의 방으로 안내해 준 일에 대해 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 방 침대에는 니체가 정신착란증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의 놀랄 만치 아름다운 이마는 예술가와 사상가다웠다. 시간은 이른 오후였다. 여전히 영혼이 담겨 있는 듯한 그의 눈빛은 광채를 잃은 채로 주변의 형상을 받아들이기만 할 뿐, 그 형상을 영혼으로 이끄는 통로는 더 이상 없어 보였다. 니체는 곁에 누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신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는 누구라도 그 얼굴이 오전 내내 자기 안에서 생각을 쌓은 뒤 이제 잠시 쉬려 하는 영혼의 표현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나의 영혼을 사로잡은 내적인 충격이 이 천재에 대한 이해로 바뀌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천재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지만, 나에게 초점을 맞추지는 못했다. 시선의 그런 수동성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서도 눈에서 영혼의 힘이 작용하도록 해주는 자신의 시선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다. 그렇게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시선을 보고 있자니, 눈길을 마주하지 않아도 나 자신의 시선이 영혼의 힘을 움직이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 영혼 앞에 니체가 있었다. 니체의 영혼은 정신의 빛 안에서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정신착란이 일어나기 전에 그의 영혼은 그토록 열망했던 정신세계에 자유롭게 몰입해 보았지만, 그 세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아직 신체에 결박되어 있었으며, 그 신체는 영혼이 그 세계를 동경하는 동안에만 정신세계에 대하여 알고 있을 터였다. 그의 신체 안에 있는 동안 영혼은 신체의 방해로 영혼의 충만한 빛 안에서 자신을 펼치지 못하고, 오로지 외부로부터 신체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나는 글을 통해서만 니체를 읽었다. 그런데 이제 머나먼 정신의 영역들에서 가져온 이상적인 관념들을 자신의 신체 안으로 가져간 니체를 직접 보았다. 그 관념들은 신체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본래의 밝기는 잃었지만,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니체의 영혼은 앞서 지내온 지상의 삶들로부터 화려한 황금빛을 가지고 왔지만, 이번 삶에서는 그 빛을 온전히 밝힐 수는 없었다. 니체의 글에 감탄했던 내가 이제 그 감탄을 넘어 밝게 빛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당시에 내가 본 것은 생각 속에서 더듬더듬 되짚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짚은 것이 《시대에 맞선 투사 니체》라는 책의 내용을 이룬다. 하지만 그렇듯 더듬거림에 지나지 않은 책에 숨겨진 참된 사실은 바로 그 책이 니체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쓰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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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니체가 읽은 책들을 검토하면서 받은 인상은 나에게 진한 감동을 넘어 충격을 안겨주었다. 니체와 그 동시대인들의 정신이 서로 반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뒤링은 완전히 냉철하게 정향되고 수학적으로 처리된 도식에서 얻은 것이 아니면 모두 거부하는 극단적인 실증주의자로서,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를 불합리한 사고로 보고 그 불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그 사상을 구축한다. 반면에 니체는 뒤링의 사상을 우주의 수수께끼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으로 삼아 자기 영혼의 심연에서 나온 하나의 직관처럼 받아들인다.
이렇듯 니체는 자신을 몰아친 당대의 수많은 사고와 감정의 내용과는 정반대편에 있었다. 니체는 이러한 공격을 받으며 몹시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과 형언할 수 없는 영혼의 아픔을 통해 자기 영혼의 내용을 창조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이루어낸 활동의 비극이었다.
그가 마지막 저작을 위해 “권력 의지” 또는 “모든 가치의 전도”와 같은 사상적 개요를 메모할 때 이 비극은 정점에 달했다. 니체는 자신이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것을 영혼 깊은 곳에서 순수하게 정신적인 방식으로 길어 올리는 데 소질이 있었다. 영혼이 실제로 체험한 정신적 사건으로부터 세계상을 만들어내는 일, 이것이 그가 가려는 길에 놓인 과제였다. 그러나 그가 속한 자연과학 시대의 실증주의적 세계상이 그에게 흘러들었다. 그런 세계상 안에는 온전히 물질적이며 정신이 빠진 세계가 있을 뿐이었다. 그 세계상 안에서 정신의 방식으로 사고된 결과물은 니체에게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낡은 사고방식의 잔재였다.
진리를 향한 끝없는 욕망으로 니체는 그 모든 낡은 사고방식의 잔재를 척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실증주의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사고에 이르렀다. 물질세계의 배후에 있는 정신세계는 그에게 거짓말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영혼으로부터만 창조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정신세계의 내용을 관념으로 자기 앞에 볼 때만 창조의 의미에 걸맞은 진정한 창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정신세계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세계의 내용이 그의 마음을 너무나 강하게 사로잡아서, 그는 그 세계의 내용이 정신의 길 위에 있기라도 한 듯 그것을 창조하려 했다. 서정적으로, 그리고 디오니소스적인 영혼의 날개를 달고, 그의 영혼은 《차라투스트라》에서 날아오른다. 이 작품에서 정신적인 것은 경탄할 만하게 짜여 있지만, 그 정신적인 것은 정신의 경이로움 속에서도 물질적인 현실의 내용을 꿈꾼다. 정신은 자신을 펼쳐 내는 가운데 산산이 흩어진다. 정신은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꿈에서 보는 물질적인 것의 잔영만을 자신의 가상적 실체라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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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나를 ‘니체의 추종자’로 간주했다. 나와 반대되는 정신적 지향에도 주저 없이 감탄할 수 있는 내 성향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나는 니체 안에서 정신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매혹되었다. 니체는 사상의 내용들을 통해서는 어느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못했는데, 바로 그 사상의 내용으로 인해 나는 니체와 가깝다고 믿었다. 그는 정신으로 향하는 길들을 함께 경험하는 가운데서만 사람과 시대에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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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폭넓게 관여하면서 나는 니체라는 인물을 통찰하게 되었다. 니체는 19세기 후반의 자연과학 시대를 비극 속에서 실제로 체험하는 가운데 그 시대와의 접촉으로 산산이 부서질 그런 운명이었다. 니체는 이 시대 안에서 진실을 구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본질적인 것은 자연과학의 결과들 안에서가 아니라 그 결과들을 거친 뒤 정신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나의 통찰은 니체를 체험함으로써 더욱 굳어졌다.
이렇듯 자연과학의 문제점이 바로 니체의 저작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내 영혼 안으로 들어왔다. 괴테와 니체가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괴테의 왕성한 현실감각은 자연의 본질과 그 과정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연에서 더 나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형태에 관한 순수한 통찰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영혼이 그 형태들에 집중하는 동안, 괴테는 곳곳에서 정신에 이르렀다. 물질 속에서 지배하는 정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 자체로 살아서 지배하는 정신을 통찰하는 데까지 이르기를 원치는 않았다. 괴테는 ‘정신에 부합하는’ 자연 인식을 이루어나갔다. 그가 순수하게 정신을 인식하는 데까지 가지 않은 것은 현실을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니체는 신화적 형식 속에서 정신을 통찰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그가 체험한 정신의 형상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사적 흐름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사이의 공동작업 또는 둘 사이의 투쟁으로 보았다. 그러나 니체는 정신의 그런 형상들을 신화적으로 상상하는 것에서 멈추었고, 실재하는 정신적 존재를 통찰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정신적 신화를 바탕으로 자연으로 다가갔다. 니체의 영혼 안에서 아폴론은 자연과학의 틀에 맞춰 물질적인 것을 상상했을 것이고 디오니소스는 자연의 힘들처럼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아폴론의 아름다움은 빛을 잃고, 디오니소스의 우주적 감정은 자연의 법칙성에 의해 마비되었다.
괴테는 자연의 현실 안에서 정신을 구했고, 니체는 자신이 살았던 자연의 꿈 속에서 정신의 신화를 잃었다.
나는 이렇듯 상반되는 두 입장 사이에 있었다. 내가 《시대에 맞선 투사 니체》에서 풀어냈던 영혼의 체험들은 당분간 이어지지 못했다. 그와는 달리 나의 바이마르 시절 말엽에는 괴테가 다시 주된 고찰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괴테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세계관이 발달해 온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괴테의 세계관 또한 이런 발달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런 시도는 1897년에 출간된 《괴테의 세계관》이란 책에서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나는 괴테가 어떻게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자연에 대한 순수한 인식을 통해 빛나는 정신을 알아볼 수 있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괴테가 어떻게 그 정신을 대하는지는 전혀 다루지 않았다. 대신에 괴테의 세계관 가운데 ‘정신에 부합하는’ 자연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부분의 특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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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니체는 자신을 지상의 한 존재로 체험하는 인간에게서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그 또 다른 존재가 바로 ‘초인’으로, 이 초인은 신체를 가진 지상의 존재로 사는 동안 자신의 삶 전체를 두고 단편들만을 꾸릴 수 있게 된다. 자연주의적 진화 사상 탓에 니체는 이 ‘초인’을 감각적·물질적인 것 안에 있는 정신적 지배자로 보지 못하고, 한낱 자연에 따른 진화의 산물로만 여겼다. 동물로부터 인간이 진화했듯이, 인간으로부터 ‘초인’이 진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연관으로 인해 니체는 ‘자연 인간’ 안에 있는 ‘정신 인간’을 조망하지 못하고 고차적인 자연 인간이라는 관념에 현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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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에게 분명했던 사실은 니체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그의 특정 사상에서 자연관의 포로였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의 회귀 사상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철저히 배격했다. 나는 또한 페터 가스트Peter Gast가 니체 저작을 펴내면서 “우주적인 분자 조합의 고갈 가능성, 즉 반복에 관한 학설을 순수하게 기계론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쓴 것에 동의한다. 니체는 자연관에 기초해서 고매한 사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확신이 바로 그가 자신의 시대로부터 고통을 받게 된 원인이었다.
이렇듯 1896년에 나는 니체의 영혼을 바라보면서, 19세기 말의 자연관에 시달리며 정신을 조망하던 인간의 고통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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