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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8. 21. 03:39

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4)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오늘날의 정치 상황


"1914년 7월 말과 8월 1일에 베를린의 권위 있는 곳(독일 정계)에서 일어난 과정을 조사해서 사실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다면, 역사적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독일 제국의 비극적 운명으로서 생겨난 사실들의 충실한 거울 형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 과정들에 대해 국내외에서 지금까지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것들을 아는 사람은, 당시 독일 정치가 얼마나 사상누각 같은 상태에 있었는지, 독일의 정치 활동이 빙점에 도달함으로써 과연 전쟁을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그 전쟁을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모든 결정이 어떤 식으로 군사기관의 판단으로 양도되었어야만 했는지를 알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 <사회적 유기체들의 국제 관계>)


현재 일본이 한국에 취하고 있는 조치들은 정치 영역에서 풀어야 할 사안들을 경제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일본기업의 배상금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린 뒤로 엉뚱하게 안보문제를 들어서 경제보복을 했으니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외 학계나 언론계에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정치는 현재 정상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자민당 세력이 꿈꾸는 것은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 회귀하는 것이다. 패전 이후 미국의 지배를 받으며 분단 대신 강요된 것은 평화헌법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독일처럼 분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피해국인 한국이 분단되었고,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그들에게는 경제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1946년 11월 공포된 일본국헌법의 다른 이름이 평화헌법이다. 그들의 헌법 제9조 1항과 2항은 다음과 같다.


1항)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2항) 1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과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


1954년 일본 정부는 실질적 정규군인 자위대를 창설했지만, 평화헌법에 따라 오로지 방어만 한다는 ‘전수방위’와 ‘평화주의’ 원칙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패망 이후에도 해체되지 않았던 일본의 기득권 세력은 오랫동안 이 조항들을 개정하고 싶어 했다. 그들이 신봉하는 국가체제는 여전히 '절대자'인 천황이 다스리는 신의 나라이며, 그들이 추구하는 미래는 '영광의 메이지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민당의 핵심세력인 일본회의는 정치단체라기보다 종교단체에 가깝다. 극우단체인 그들은 정교분리를 비판하고 제정일치를 주장하며 국민주권 사상을 부정한다. 정신-문화 영역이 정치-국가 영역을 지배하려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15년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했고, 남경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삭제했으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영토보존회를 만들었다. 심지어는 헌법 24조의 남녀평등 조항을 개정해 여성투표권 폐지도 구상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도발에 대한 한국 우익의 반응은 놀랍기만 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을 잃어본 적 없는 그들(또는 그 기득권에 기생해 살아가고자 하는 마름들)은 친일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일본에 의해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으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것은 일본이나 한국의 극우가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로, 다만 일본 극우에게 선민주의에 가까운 민족주의가 있다면 한국에는 그마저도 없다는 차이가 있다.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극우의 핵심 가치가 한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들은 태극기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민족적 주체성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오로지 힘의 논리를 따른다.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자연스럽게 흔들고, 생뚱맞게 이스라엘기와 유엔기도 들고 나온다. 최근에는 친일이 애국이라며 일장기도 등장했다. 일본 극우에게 천황이 있다면 한국의 극우에게는 이승만과 박정희, 반공주의, 보수적 기독교사상이 있을 뿐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극우는 철저히 기회주의자들일 뿐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대단히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촛불시위처럼 특정 세력의 지도에 따른 것이 아니고, 관의 참여도 불허하는(서울 중구청의 촌극) 민 그 자체의 운동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시민세력은 도덕적 정당성 위에서 주체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독립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 뿌리 깊은 친일잔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이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 발언들에 녹아 있다. '노 재팬'의 구호가 '노 아베'로 바뀌어가는 것도 긍정적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일본의 극우 정치세력이지, 일본인 전체가 아니다. 이 운동은 민족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백 년 전 조선의 독립운동 역시 민족자결의 의지에서 출발했지만 추구했던 가치는 이웃나라 간의 평화로운 공존이었다. 일본 민족을 증오하여 없애려 한 게 아니라 일본의 대중이 자각하여 올바른 행동으로 나아가도록 돕고자 한 것이었다. 3.1운동의 정신은 민주화운동과 촛불시위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이나 한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했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영향 아래 놓여 있다. 한 나라의 건강한 시민사회 형성이나 정의와 자치 문제 등에 관심이 없던 미국은 전범(일본)과 친일파(한국) 들을 통치에 재활용했다. 극우 정치세력이 계속해서 정권을 잡도록 허용한 것이다. 명분은 반공산주의였지만 실익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박근혜 정부를 끝으로 한국은 이 오래된 정신오염 상태를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상당수 한국인들은 각성했고, 진실을 찾고자 애썼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국가시스템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살아 있는 권력을 탄핵하고 정권 교체를 다시 이루어낸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의 정치 상황은 여전히 암담할 뿐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뒤로 일본은 오히려 더욱 우경화되었다.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정권이 다시 넘어갔고, 언론 통제가 심각해졌다. 대중 역시 진실을 직시하기보다 외면하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 결과 때문일 것이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후쿠시마의 오염지역을 회복하고 부흥을 꾀한다는 게 자민당 정부의 목표지만 현실은 절망적이다.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억지가 나오고 궤변으로 일관하며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현재 변질된 정신-문화 영역이 정치 영역을 지배하고 있고, 정치가 경제 영역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탈출구는 전쟁일지도 모른다. 퇴행적 의식 상태로 현실을 바라보는 일본 극우의 시각에서 현재의 경기침체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미국처럼 전쟁을 벌이고 그로 인해 경제부흥을 획책하고자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야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올바른 사고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므로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힘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극우주의와 합리성의 붕괴


백 년 전에도 극우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1차세계대전을 겪었음에도 배운 게 없는 극단주의자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사고에 사로잡혔다. 이들에게 인간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민족 또는 인종, 종교, 성별, 출신지역, 성적 지향 등에 따라 우열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사회란 약육강식의 정글이며 위계에 따른 강력한 질서가 필요한 혼돈 상태이다. 강하고 우월한 집단이 약하고 열등한 집단을 착취하거나 말살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근거 없는 우월감에 도취된 이들에게 합리적 사고를 기대할 수는 없다. 사실상 대화도 불가능하다. 억지와 궤변, 거짓말을 계속해서 늘어놓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은 우월하기 때문에 우월하다. 우월함의 증거는 주관적이지만 그것을 절대적이라고 믿기에 계속해서 폐쇄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자기 편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우호적이지만(극단적 호감) 비판적인 이들에게는 맹렬한 적개심을 드러낸다(극단적 반감). 유튜브나 SNS 같이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믿음을 확대 재생산한다. 이 믿음을 위해 신화를 창조하고 종교를 만들거나 기존 종교를 이용한다. 이들에게는 과학도 우월감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이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기 위한 탐구 작업이 아니다.


낡은 관념을 강화하기 위해 무책임하게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며, 유사과학이 유포된다. 정교한 분석이나 비판은 적을 돕는 행위로 간주된다. 진실이 드러나는 게 두렵기 때문에 극우집단은 어떻게든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시민사회를 폭력적으로 억압한다. 너무나 쉽게 현실이 종교적 상징들로 치환된다. 그렇게 합리성이 사라진 자리에 궤변과 폭력의 토양이 형성된다. 합리적 사고 대신에 넘치는 것은 감정이고,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이것은 일종의 중독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 헤어나오지도 못한다. 이들을 사로잡는 건 사이비 목사 또는 극우 정치인의 선동이다. 태극기를 들고 나라를 지키겠다며 광장에 모인 이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세상은 악에 휩싸였고 당장 정권을 바꾸지 못하면 종말이 올 것 같다. 발언도 감정도 사고하는 것도 극단적이기 이를 데 없다. 연단에 선 이들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이미 합리적 논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들은 피해자이고 핍박받고 있으며, 세상은 온통 잘못 돌아가고 있다. 합리적 사고가 무너진 자리에는 두려움과 적개심, 혐오의 감정 그리고 생존의 욕구와 공격성이 맹렬해진다. 자기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잃고 일종의 집단자아에 자기를 내어준 결과이다.


이명박이 서울을 하나님에게 봉헌하겠다고 했던 것이나 박근혜가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돕는다는 식으로 했던 발언은 낯선 것이 아니다. 백인우월주의자가 유색인종을 악마로 본다든지, 나치단원들이 유대인들을 제거해야 할 열등민족으로 보는 것은 그들의 교리체계를 반영한다. 나는 옳고 너(희)는 틀리다.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 '나'들이 우리를 형성하고, '우리'의 우월함을 강화하기 위해 희생양으로서 '타자들', 죽여도 상관없는 호모 사케르(아감벤, <Homo Sacer>)를 필요로 한다. 일본이나 한국의 극우세력들이 공통적으로 혐한에 빠져드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숭배했듯 일본은 천황, 한국은 박정희 같은 인물을 신적 존재로 추앙한다. 이들의 퇴행적 의식의 뿌리에는 이기주의와 기득권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가문 또는 종족, 학벌, 민족, 국가 등 다양한 차원의 집단이기주의가 개인 자아의 성장을 막고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전체를 유기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이기주의가 도그마화된 집단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이라고 믿는 것은 자기 집단의 이익이며, 진리라고 믿는 것은 종교화된 지도자의 궤변이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자기 집단의 항구적 기득권 유지이다. 자아를 잃어버려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자들이 모여 사회적 암 조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이러한 소아병적 폐쇄주의에 사로잡힐 수 있다. 개인 역시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의식은 퇴행할 수밖에 없다. 절이나 교회, 운동단체 같이 정신성을 추구하는 집단일수록 더 심각한 병적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감각혼 상태에서 순수하게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나쁜 집단이 될지언정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갈등이 적다. 그러나 지성혼이 강해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정신적 가치까지 추구하기 때문에 시시비비에 대한 다툼이 잦고 파벌이 심하게 나뉘기 쉽다. 전자의 사람들이 단순히 좋고 싫음, 이익 불이익에 강하게 끌린다면 후자의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옳고 그름은 사실 좋고 싫음에 대한 합리화에 가깝다. 감각혼에 봉사하는 지성혼의 모습이다. 이러한 태도가 강한 아집을 만들고 나아가 법집, 즉 교리적 도그마에 사로잡히면 분열을 낳는다. 이것을 하나의 신념으로 여기기까지 한다면 합리적 논의는 무산되고 폭력적 갈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폭력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이들의 상투적 패턴이다. 발도르프 교육기관들 역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인지학을 공부한다는 것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고를 새롭게 해야 한다. 낡은 방식의 사고, 예를 들어 국가주의나 반공주의, 민족주의, 군사주의식 사고방식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모여 "박근혜를 석방하고 문재인을 구속하라"라고 외치는 이들의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아니다. 이들은 박정희숭배자 또는 국가주의자(군국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박정희와 박근혜는 하나이며 절대적 존재들이다. 절대적이기 때문에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이자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내야 할 숭고한 대상이다. 박정희/박근혜는 이들에게 국가 그 자체이다. 여기에서 노무현이나 문재인은 완전히 대극적 존재, 순수한 악의 화신들이며 공산주의자, 빨갱이가 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경제도발은 이들의 순진한 세계관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베의 도발은 문재인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 모든 게 문재인의 잘못이다. 그래서 반일을 하면 안 되고 친일을 해야 한다는 궤변이 도출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 역시 딱 이 수준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들에게는 절대자가 천황(일왕)일 뿐이다.


아이들을 창조적이고 건강한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이 되도록 키우는 것이야말로 발도르프교육의 가장 큰 목표이다. 영유아 기관이나 초등기관에서 아이들의 발달단계를 존중하며 판타지와 예술적 작업을 풍부하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청소년 시기의 교육에서는 역사와 정치, 경제, 철학 등의 인간과학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고 토론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사회 경험과 과학적 탐구 속에서 자아정체성을 형성해 나간다. 이때 자아가 지나치게 팽창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여러 활동과 함께 반드시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토론할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일종의 평생교육처럼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작업이다. 발도르프교육을 실천하는 교육자라면 인지학을 중심으로 슈타이너와 괴테의 인식론에 대해,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의 세계관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 아이들에게 철학수업을 제공한다고 해서 아이들끼리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게만 하는 것은 사유의 폭을 좁힐 위험이 있다. 아이들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씨름했던 사유 주제에 대해 알아야 하고 독서를 통해 그들의 사유방식을 정확히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철저하게 그 철학자의 입장에서 사고해 보고 그의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특수성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뒤에 자기 나름으로 소화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교사가 요점 정리식으로 철학자들의 사상을 쉽게 도식화해 설명한다거나 교사가 이해한 내용만을 단정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어른들이 인지학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슈타이너의 저작들이 어렵다고 해서 쉽게만 풀이하는 강의를 쫓아다닐 수는 없다. 스스로 원전을 찾아 읽고 문제의식을 가진 뒤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 강연을 듣는 게 좋은 형태일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괴테 세계관의 인식론적 기초>는 슈타이너의 인식론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뿐 아니라 인지학을 좀 더 합리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 모두에게 건강한 자극이 될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자유의 철학>, <철학 우주론 종교> 그리고 귄터 델브뤼거의 <인식의 상처와 치유>를 권하고 싶다.


사회가 퇴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적 실천 역시 중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하고, 한일 발도르프학교의 상급학생들이 위안부나 강제징용과 관련한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커다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경제 영역은 정치나 문화 영역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작동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종착지는 경제적으로 이런 원칙에 대한 자각과 정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 영역에서도 언론과 교육 같은 문화 영역에 영향을 끼치려는 행태를 멈춰야 하며,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은 늘 깨어서 저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발도르프교육이 추구하는 사회적 비전에 대해 알아야 한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환경오염 문제도 심각하지만 극우집단들의 정신오염 행위도 그에 못지 않게 심각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고 도덕성의 원천을 자기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적 행위가 될 것이다.


"현대 정신 생활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발도르프학교는 진정한 문화 행위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선 변화해야만 합니다. 전반적인 사회 운동은 결국 정신적인 것으로 귀속되며, 학교 문제는 사실 현대의 거대하고 급박한 정신 문제의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 <일반인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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