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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발도르프 유치원: 발도르프 유아교육 운동의 시작 - 수잔 하워드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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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발도르프 유치원: 발도르프 유아교육 운동의 시작 - 수잔 하워드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 2. 11. 12:01

최초의 발도르프 유치원: 발도르프 유아교육 운동의 시작

 

수잔 하워드(Susan Howard)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옮김

 

 

최초의 "공식" 발도르프 유치원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반 뒤인 1926년 슈투트가르트의 첫 번째 발도르프 학교에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실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의 시도가 있었다. 나는 발도르프 유아교육 운동의 초창기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다양한 기사, 미공개 원고, 대화 메모 등을 살펴보았다.

 

1919년 첫 번째 발도르프 학교가 개교하기도 전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생애 첫 7년의 중요성과 이러한 형성기가 끝난 뒤에야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받는 것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교사들은 이미 특정 연령에 이른 아이들을 교육하게 될 것이며, 이미 인생의 첫 단계에서 부모의 교육, 혹은 잘못된 교육을 경험하고 난 뒤의 아이들을 떠맡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양육의 첫 시기에도 특별한 교육적 필요가 있음을 부모들이 이해할 정도로 인류가 발전했을 때에만 온전히 성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연구 또는 경험의 기초>의 여는 강연)

 

엘리자베스 그루넬리우스와 슈투트가르트 유치원 아이들, 1934년

 

개교 5년 전인 1914년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독일 알자스 지방 출신의 19세 소녀 엘리자베스 그루넬리우스(Elizabeth Grunelius)를 만났는데, 그녀는 본에서 주립 유아교사 교육을 막 마친 상태였다. 엘리자베스는 슈타이너의 <신지학>을 읽고 스위스 도르나흐에 있는 괴테아눔 건축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슈타이너의 지휘 아래 새 건물을 위한 부조 목각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그룹에 합류했다. 엘리자베스는 도르나흐에 18개월 동안 머물며 목각 작업에 참여했고, 루돌프 슈타이너의 강의를 들은 뒤 베를린의 페스탈로치-프뢰벨 세미나에서 유아교육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새롭게 발전하고 있던 발도르프 학교에 마음이 끌렸다.

 

1919년 첫 발도르프학교가 문을 열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교사들에게 유치원을 위한 공간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재정이 열악해져 교직원들은 가능한 모든 공간을 초등학교 수업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1920년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교직원들에게 유치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말은 사실입니다. 아이들을 오래 보낼수록 더욱 좋습니다. 그러면 아직 학교에 올 나이가 아닌 아이들도 입학시킬 수 있습니다. ... 유아교육의 첫 7년 동안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올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을 좀 더 어린 나이에 데려와야 합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그 중요성은 훨씬 덜해집니다."

 

초등학교 교실을 방문한 뒤에 그는 "우리에겐 유치원이 필요해! 유치원이 필요하다고!"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슈타이너는 교사들에게 유치원을 위한 교실을 비워달라고 요청했지만, 교사들은 다시 한번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후 엘리자베스 그루넬리우스의 말에 따르면, 교사들은 유치원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슈타이너는 도르나흐의 엘리자베스를 떠올리며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어떻게 일할 것인지에 대한 60페이지 분량의 제안서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노력했지만 어린아이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Elizabeth von Grunelius (1895-1989)

 

"나는 먼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오늘날 아무도 아이의 모방 능력을 의식적으로 다루지 않던 시절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교 교사는 수업을 하지만, 유치원 교사는 자신의 삶과 존재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엘리자베스 그루넬리우스의 미공개 글, “루돌프 슈타이너, 유치원을 필요로 하다에서 발췌)

 

그러던 중 1920년 봄, 새로운 정부 규정에 따라 학기 시작일이 부활절에서 9월로 바뀌었다. , 부활절에 1학년이 시작되었을 아이들은 이제 9월까지 선생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1920년 성 금요일(역주: 부활절 전의 금요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을 기억하기 위한 날)에 루돌프 슈타이너는 엘리자베스 그루넬리우스에게 부활절부터 9월까지 유치원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중에 이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이제 막 (주립) 교육을 마쳤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저는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생각에 잠긴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었다. 서 있는 동안 그도 마치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는 것이 의아했다. 나는 생각했다. '글쎄, 루돌프 슈타이너가 거기 있어서 도움을 준다면, 내가 못해낼 이유는 없지!' 그리고 나는 "당신이 제 뒤에 서 주신다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일주일 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코 이상적인 시작은 아니었다!

 

그녀는 날마다 오후 3시간 동안 예비 1학년 학생 20명과 만났다. 오전에는 8학년을 위해 사용하는 교실은 벽을 따라 고정된 긴 의자와 움직일 수 없는 무거운 책상이 놓여 있었고, 바닥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다행히 봄과 여름이어서 그녀는 아이들과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지낼 수 있었다. 장난감이나 놀이 도구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명상이 유치원 생활의 기초가 되어야 하며 모방을 통해 일해야 한다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언급만 있었다. 이는 그녀가 유아교육 훈련에서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완전히 급진적인 두 가지 생각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날마다 문을 세게 쾅 닫는 어린 소녀를 떠올렸다. 그 아이에게 몇 번이나 예쁘게 잘 닫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셋째 날,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린 소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엘리자베스는 문을 "예쁘게 잘" 닫았고, 그 후 어린 소녀도 매번 예쁘게 잘 닫았다. 당시 엘리자베스에게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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