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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공립학교 교사들을 위한 발도르프교육 강좌 5 - 벤자민 체리 본문

인지학/2013 AWTC 강연록

공립학교 교사들을 위한 발도르프교육 강좌 5 - 벤자민 체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5. 27. 20:36

벤자민 체리 교사 강연 5차시

 

 

어제 뭘 할지 결정하자고 하면서 좀 열어두자 했었죠. 일부는 결정하긴 했어요.

 

어떤 그림이 푸른 숲 것이어서 돌려줘야 합니다.

 

수채화 도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돌려줬고요. 오늘은 그림은 그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두 개 중에 하나나 둘 다 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색연필이나 파스텔로 칠판 그림을 그리거나 아니면 수업을 글쓰기로 이끄는 것을 대해서 경험해보는 것을 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 뭘 할지 미리 결정은 하지말구요. 진행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결정해보죠

 

우선 개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하셨던 것 중에서 질문 있으신가요?

 

 

 

-아이들에게 식물을 가르칠 때 식물그림을 그리는데 입의 변화라든가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지면서 뾰족해지잖아요. 저런 식으로 그린다면 뿌리라든지 잎의 변화는 자세하게 관찰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칠판 그림이 좀 더 다양하게 그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를테면 관찰할 수 있게 좀 더 자세하게 말입니다 그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식물의 각 단계의 그림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린 이 그림은 식물이 살고 있는 전체 환경을 보여주려 그리는 데 집중한 그림입니다.

 

관찰하게 하고 싶으면 예를 들어 이 부분만 두드러지게 그리는 방법도 가능하지요.

 

3단계 4단계가 있는데 단계별로 얼마든지 자세하게 그릴 수 있겠죠. 이건 콩씨고 이건 감자그림입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아이들 가르칠 때 줄기 뿌리 잎 가르칠 때 특히 입 같은 경우는 두루뭉술하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뾰족합니다. 저런 판타지를 섞지 않고 자세하게 묘사했는데 그게 괜찮을까? 생각했습니다.

 

(통역자 질문 :이런 그림도 아니고 저런 그림도 아닌 어떤 그림을 말하는 건가요?_)

 

-네 좀 자세하게 스케치가 된 그림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식물학을 가르치는데 5,4,6학년 같은 경우 방법이 다 다들 수 있습니다. 4학년 같은 경우 의지존재 좀 더 넓게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상상력의 여지가 있는 그림을 받아들이기가 더 좋고요. 5학년 정도 되면 심장이 발달하고 좀 더 자세한 그림을 보기를 원하기도 하고 필요하기도 합니다. 6학년 경우는 사고까지 발달이 진행되기 때문에 아이들 상태를 보고 교사가 진행하시면 됩니다.

 

 

 

동물의 관한 그림, 세부묘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선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이 선은 무슨 동물이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포유류라고 그린 그림입니다. 큰 제스츄어를 보고 말해보세요.

 

비버 사자 호랑이 코끼리?

 

제가 생각한 건 말이었습니다. 말은 등이 소처럼 편편하지 않아요. 타는 사람이 앉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선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편편한 등을 가진. 뒷다리가 직각으로 툭 내려오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예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식의 차이를 알고 있습니다. 동물의 큰 재스추어를 가지고서요.

 

(뾰족한 선을 그린 후 )이 뾰족한 선이 새의 주동이가 아니고 포유류의 주둥이라면 이것은 무엇일까요? ?

 

쥐는 목이 없어요. 목이 없어 목과 몸통이 붙어 있어요. 머리가 몸이고 몸이 머리라고 할 수 있어요. 밑에다 바로 동그라미 그리면 쥐가 됩니다. 두더지도 쥐과이니까 마찬가지구요.

 

이런 주둥이에다 눈을 그렸어요. 귀를 그렸어요. 작지만. 보이시나요? 이 동물은 뭘까요?

 

사슴?

 

이 부분을 좀 더 강조하면 뭐가 될까요? 돼지요?

 

디데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칠판그림은 대충 뭉게서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이런 부분에서 얼마든지 자세한 묘사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선하나만 덧붙여도 다른 동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여기 그려져 있는데 조금 강조했습니다. 이건 뭘까요?

 

그러니까 이미 뭔가를 그려놓고 했다가 아니라 이건 배경입니다. 이 배경 속에서 뭔가가 나오는 겁니다. 여기 덧붙이면 새가 될 수도 있고요. 땅의 느낌을 주면 땅의 동물이 되구요.

 

이미 그려진 배경 속에서 동물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연결시켜야하는 두 단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잊어버리면 안 되는 함께 데리고 다녀야하는 두 단어는 살아있는 상상력. 또 하나는 세부묘사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뭔가를 가르칠 때나 그릴 때 지나치게 세부묘사에만 집중하면 경직되고 경화되어버립니다.

 

지나치게 상상 쪽으로 기울 게 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 두 개의 밸런스를 잡는 균형이 학년마다 달라져야 합니다. 1학년 경우는 상상력으로 가득차 있어야 하고 아이가 나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세부를 보고 싶어 합니다.

 

특히 아이가 내가 세상과 분리되었다는 지점을 넘어선 경우의 아이들은 디테일을 원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에게도 이매지네이션은 끝이라고 하지 마세요.

 

6학년 아이들에게 광물학 수업을 한다면 거기 상상력이 왜 필요할까? 생각하지 마세요. 많은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실재로 필요합니다.

 

만약 칠판그림에서 광물학의 디테일을 더 살리고 싶으면 이 돌의 수정결정 같은 것. 진짜 돌에 있는 것. 석영. 맞습니다. 아니면 이 돌에는 이 돌에는 이런 줄무늬나 겹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을 덧붙여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정확한 세부묘사는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세부묘사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어마어마한 창조력이 이런 퇴적암을 가능하게 했을까? 이 사실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우주의 힘들이 어떻게 이것을 만들어냈을까를 아이들에게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나가서 돌 만져보고 만나는. 별로 대단해보이지 않고 쉬운 그런 활동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끈적한 여러 가지 진흙들을 그냥 쌓아보는 활동도 해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압력이 더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 찰흙덩어리가 돌이 되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도 이런 활동을 한다면 여러분이 바로 지구의 힘이 되는 거지요. 여러분이 지구가 되어서 그것을 아이들에게 그 힘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고 퇴적을 할 수도 있고 이 진흙을 밀면 퇴적되는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실재 산에 가면 이 돌의 결들이 가로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도 있습니다. 그럼 이걸 보면서 이걸 퇴적암이란다. 끝이 아니라 이 어마어마한 것을 만들어낸 지구의 엄청난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거지요.

 

특히 식물의 경우는 식물 한 가지가 아니라 식물이 품고 있는 그 주변 전체의 땅과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는 상상의 힘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식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눈에 보이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을 눈에 보이게 해주는 겁니다. 빛이 오고 있어요. 아주 위대한 세상으로부터 …….

 

그런데 우리가 빛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사물을 보는 것이지 빛 그 자체를 보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빛이 있고 땅이 있는 환경 속에서 식물이 생겨납니다. 빛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볼 수 있게 해주는 힘입니다.

 

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세상 맥락 속에서 돌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의 돌 표면만 갖고 보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건 그냥 토막입니다 .이 돌이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전체 맥락을 보게끔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손톱 깎았어요. 떨어졌어요. 이걸 들여다봅니다. 이게 의미 있는 건 우리 몸에 붙어있을 때입니다. 이것이 전체 몸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모르는 채 손톱 조각만 보면 이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에게 붙어있을 때입니다.

 

떨어진 손톱 조각을 갖고 무슨 화학물질이 있지? 경도가 어떤가? 얼마나 오래 거기 있었지? 분자 구조는 뭐지?

 

물론 이 떨어진 손톱 조각을 갖고 책 한권을 쓸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손톱 조각을 손가락에 붙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붙어있는 인간의 몸을 보지 않는다면 인간이 생성된 우주 전체를 보지 않고 손톱 조각만 본다면 이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제 제가 슈타이너의 말을 빌어서 말씀드렸지요. 경이로움이 정말 중요한 다구요. 그 경이로움이 바로 지금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경이로움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고는 정확하고 올바를 수 있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 한 가지 더 하겠습니다. 맥락입니다. 전체 속에서의 맥락이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컨텍스트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갖고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행되고 있는 엄청난 환경 파괴. 그 모든 것들이 컨텍스트를 보지 못하는 사고의 결과가 아닐까? 부분만 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전체 맥락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생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예술적인 교육방법은 아이의 신체적인 변화. 아이의 발달단계와 맞물려서 맥락 속에서 진행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교과과정을 짜는 것도 맥락과 무관하지 않은데요. 아이가 가장 가깝게 여기는 대상이요. 동물 식물 광물 중에서 아이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것은 동물입니다. 좀 더 떨어진 것이 식물 가장 멀다고 느껴지는 광물 순으로 교과 과정으로 배치하는 것도 아이가 동물을 가장 가깝게 느낍니다. 그 다음으로 먼 식물 그다음 광물 순으로 배워나가는 것은 아이가 나와 내가 존재하는 세상과의 연결을 이해하게 하는 예술적인 방법입니다.

 

이런 예술적인 교과과정에서는 모든 교육 활동에서 맥락이 중요합니다. 맥락 속에서 진행이 됩니다. 하늘 공기 빛 우주 별 땅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 식물은 그냥 추상의 덩어리이자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어제 제가 바위에 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석회암.

 

이 석회암이라고 하는 것도 원래 살아있는 존재였어요. 살아있는 석회질의 산호같이 생긴 것들이 껍질이 갈아지고 뭉쳐져서 석회암이 되는 것입니다.

 

석탄.

 

석탄이라는 것도 한번 생각해보면 놀라운 것입니다. 그건 원래 식물이었어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숲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지구 속에 석유 석탄 석회암이 얼마나 많은 지 아시지요? 석유는 박테리아. 미생물의 작용으로 동물의 사체가 변환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이것이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필요했을까? 살아있는 생물이 얼마나 변환된 것일까?

 

이암 역시 퇴적암의 한 종류입니다. 이암 속에서 우리는 화석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암 (세일) 자체를 보면 세일의 덩어리가 생긴 걸 보면 그 형태가 거의 식물, 또는 동물의 움직임을 그 생긴 형태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엽리? 이파리라는 뜻.

 

이파리화된 돌. 엽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식물의 잎처럼 변화된 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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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세요. 이 석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만한 생명력이 필요했을까? 석탄이 응축되고 응축되어 생겼는데 이만큼 이예요. 지금 세상에서는 가능하지가 않아요. 그런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어마어마한 양의 석탄이 묻혀있다고 해요. 사업성 때문에 채굴은 안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지구 전체가 숲으로 덥혀있고 어마어마한 시간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만들 수 있는 석탄의 양은 너무 적은데 지금 땅에 묻힌 석탄은 도저히 그 시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겁니다. 그 석탄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러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사실을 관찰하고 거기 상상력을 덧붙이면, 이 두 가지를 맞물리면

 

아주 옛날 지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고대 지구의 생성을 어떻게 배우나요? 지금과 비슷한 모양인데 화산활동이 복잡하고 지금보다 좀 더 뜨거웠다든지. 이렇게 배우잖아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는 생명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지구가 더 뜨거웠고 액체 상태였다는 말로 생명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어제 아마도 새로운 깨달음을 가졌을 것 같은데요. 우리 몸속의 뼈는 말하자면 돌입니다. 그것이 출발점은 아니었어요. 속에서부터 생겼으니 거기서 인간이 덧붙여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퇴화, 생명의 마지막 단계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도 마찬가지로 인간 신체를 볼 때도 뼈가 있고 근육이 있고, 그런 식으로 보지 말고 광물의 생성과정과 비슷한 맥락에서 생명의 마지막 경화된 잔존물이구나 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주 속에서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궁의 따듯한 환경 태아가 있고 태아를 보호하는 뭔가가 생긴 게 아니라 이 안에 이미 따뜻한 움직임이 있어요. 거기서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달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맨 처음 만들어지는 건 흰자 단백질입니다. 어미 닭의 뱃속에서 달걀 껍질이 딱딱해져 나오기 전에 이미 살아있는 생명의 단계가 다 진행되고 나서 뱃속에서 빠져나오기 직전에 딱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시면 알겠지만 광물이 도대체 정말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우린 다른 맥락 다른 관점에서 광물을 보아야합니다. 지구의 광물이 무엇인지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모든 돌은 다 생명에서 나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생각이 우리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입니다. 모든 돌이 생명에서 나왔다니 딱딱한. 딛고 설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없는데 어떻게 생명에서 나왔지?

 

식물이라는 물질체가 없는데 동물이라는 것이 동물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생명이 어떻게 생겼지? 뭐가 그것을 지탱했을까요? 아무 것도 없었는데요.

 

물도 역시 어떤 종류의 물질입니다. 물이 있은 다음에 생명이 있었을까? 생명이 있어서 물이 나왔을까?

 

발도르프 교사들이 공부하기 정말 어려운 책인데요. 과학자가 쓴 책입니다.

 

과학자가 다른 과학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책입니다. 어려운 책입니다.

 

이 과학자가 하는 이야기는 슈타이너가 한 이야기 공부한 사람이지만 과학자여서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것만 이야기했습니다.

 

맹목적으로 믿거나 헛소리야 하지 않고 자기의 사고를 갖고 명료한 질문을 갖고 이 책을 썼습니다.

 

화강암은 말하자면 부모돌입니다. 어떤 지구의 부분도 깊이 파 들어가면 화강암이 있어요. 제일먼저 가장 오래된. 그리고 화강암으로 된 아름다운 산이 우리 앞에 있죠.

 

얼 만큼이 화강암인지 모르지만 일부는 분명히 화강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강암을 잘 보면 3가지 본성, 3중구 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영, 장석, 운모. 3가지 화강암을 이루는 구성성분이 어떤 비율로 섞여있느냐의 따라서 화강암의 종류가 다릅니다.

 

좀 전에 말한 책의 저자, 과학자는 화강암을 이루는 3가지 구성요소의 기원을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근원에서 살아있는 생명의 과정 활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까마득한 환경 속에서 엄청난 생명활동이 있는 돌들이 만들어진 그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명활동의 환경에 대한 상을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지금 상태를 이걸 갖고 그걸 상상할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태초에 지구는 계란 흰자 상태입니다. 알이 되기 전에 엄마 뱃속에 알부민 상태의 단백질과 액체 상태였습니다. 지금의 지구는 경화되고 단단했지만 옛날의 지구는 훨씬 크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살아있는 흐름이었습니다. 손톱 이, 뼈처럼 살아있는 것들이 죽어서 쌓이고 쌓이면서 지금의 지구가 되었지요.

 

물론 우리는 상상력을 더 뒤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지구가 이런 상태보다 더 이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선생님은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선과악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정말로 명확한 생각으로 잘 들여다봤을 때는 어떻게 선악이 존재하게 되었을까?

 

존재가 없었다면 정신적인 존재가 그 전에 없었다면 선이나 악이 존재할 수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수밖에 없다고 크리스토퍼가 말했었죠.

 

선악의 문제도 자꾸 파고들어 생각해보면 이것은 이 작용이 없다면 나올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질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지혜, 정신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자연 속에는 지혜가 있고 자연 속에는 조화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몸을 봐도 진짜 기막히게 잘 만들어져있어요. 자연도 보면 진짜 똑똑해요. 세상 속에 존재하는 세계 지성이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요.

 

내가 핸드폰 칩을 조각조각해서 보면 내가 핸드폰 만들 수 있나요? 핸드폰 속에는 엄청난 지성이 들어있어요. 근데 내가 이것을 다 뜯어보면 내가 뭘 아나요?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물은 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창조물도 사실은 지성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성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지성의 결과물은 볼 수 있지만 지성 자체는 볼 수가 없습니다.

 

자연을 보면 단지 물건을 만들었던 논리적인 지성과 지혜가 모두 들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뿐만 아니라 조화,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서로서로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에요. 지성을 가진 존재가 없었다면 여러분은 지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6학년 아이들과 이런 문제에 대해 토론해볼 수 있어요.

 

여러분이 이 문제에 대해서 답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아는 상태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디서 왔을까? 이 경이로움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면 어떨까?

 

그런 마음으로 내가 보는 세상에 대해 아이들에게 전달을 하면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질문이 저절로 생겨나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현대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인간은 현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 현실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의 과정들이 방해받고 엉망진창이 되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깊은 의지 속에서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실재적인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는 너무 작고 내 힘에 부치니 그냥 있어야 하나?

 

사고가 실재에 영향을 줍니다. 삶의 진실을 꿰뚫는 사고를 하면 그 사고 자체가 현실에 영향을 줍니다. 그런 것을 믿고 정말 생각을 해볼 것인가?

 

생각이 실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간단하게 얘기해보자면 세상을 물질적으로 보게 되면 세상은 물질적인 것으로 대하게 되고 그냥 물질적인 것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고의 결과로는 절대로 생명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고 속에서만 매몰되어 있으면 선의를 갖고 뭘 열심히 해도 우리는 계속해서 파괴의 길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사고를 살아있는 존재가 그 존재 자체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살아있는 사고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세계는 살아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껏 해온 지성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고가 다른 존재의 사고가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다른 살아있는 것의 사고가 내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서 내가 그 사고와 교류를 하게 되면 나는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양에서는 사고의 다른 흐름을 개척한 인물이 있습니다. 괴테입니다.

 

괴테가 말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매일 식물을 잘 관찰한다면 식물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을 매일매일 한다면 나의 사고는 보는 것이 되고 (본질을 뚫어볼 수 있고) 그 본 것은 내게 새로운 사고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슈타이너는 괴테의 자연과학적 관찰 방법을 더 발전시켰습니다.

 

지금 우리는 인간 진화의 교차점에 와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교차점입니다.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인간들이 개인의 열심히 다른 인가보다 더 높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단계로의 성장이 나를 위한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인류에게 다fms 단계로의 성장 진화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는 너무도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의 진정한 존재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이 아직 망하면 안 됩니다. 아직 더 발전해야한다는 인식 속에서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내고자 시작한 것이 바로 발도르프 교육입니다.

 

인간은 성장해야합니다. 교사로서 우리는 아이들을 정말로 잘 보고 그 아이들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보면서 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아래층 1층에 가시면 학교의 광물장이 있습니다. 바자회에서 기금 모우고 장구지 선생님이 기부해주시고 해서 생겨난 장입니다. 조개껍질류를 비롯해서 귀중하고 다양한 것들이 그 장 안에 있습니다. 그걸 볼 때 그것만 보지 마시고 이 돌 조개껍데기가 살아있는 것이었고 어디서 살았던 모습. 큰 그림을 그리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 껍데기의 흐름. 움직임 속에는 이 세상의 창조적인 힘의 흐름을 공명을 볼 수 있습니다. 조개껍질의 나선은 우주의 힘의 나선적인 움직임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수정을 보면 기하학적이고 뾰족하고 선명한 모양 화학적 구조적인 요소 볼 수 있지만 정신적인 차원에서 수정은 무엇일까 그 차원도 보기 바랍니다. 수정의 형태를 만든 원리는 무엇일까? 원리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사고 속에서 그 형태를 만든 사고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고를 통해 우리는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보는 것은 내 물질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거기 아주 귀한 돌들도 있습니다. 오팔은 동물의 잔해였습니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오팔로 된 화석이 있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힘들이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작은 게 여기 있는 것입니다.

 

십분 남았는데 뭔가를 써볼까요? 아님 이야기 나눌까요?

 

 

 

 

 

질문: 아이들에게 이 모든 과정을 정리하게 해야 하잖아요? 본 것과 생각한 것 자기만의 공책에 정리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 안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뭔가를 가르칠 때 그 때 교사가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내가 만약 교사로서 돌이 있고 그 돌만 보여주고 끝이면 아주 좁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구요. 교사가 이것이 엄청난 살아있는 존재의 일부였다고 할 때 그 자체로 아이들의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이지요.

 

세계의 창조 신화를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세계의 신화들에는 드넓은 차원이 담겨져있습니다.

 

북유럽에서는 우주 소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우주 소 젖으로부터 생명이 나오는 그림이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우유는 단백질이야.

 

우유의 기본 성분은 알부민 달걀도 알부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알부민에서 생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세상에 커다란 알이 있었고 거기서 반고(중국의 창세신화)가 나왔고. 라는 식으로 신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물이나 식물이나 광물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생명이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이런 것 저런 것들이 생겨났다. 반고신화. 그 속에 진실이 들어있습니다. 이럴 때는 지성으로 하는 언어가 아니라 상으로 나누는 언어입니다.

 

 

 

짧은 시간 밖에 이야기 못하고, 5학년에서는 이거 이거 가르친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발도르프 학교의 교과 과정 역시 죽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똑똑한 사람이 짜서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죽는 것입니다. 방법론들을 누가 어떻게 했다는 것을 보고 내가 발도르프 교육을 한다기 보다는 이 세계에 대한 놀라운 이해. 관찰, 사고, 이것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저절로 나오게 되고 그런 것을 통해서 발도르프 교육을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했던 과정을 전수받는 것은 죽은 과정을 모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조개껍질 수집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때는 이걸 해야 해. 광물학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정보를 모우는 것은 조개껍질 모우기와 같아요, 아름답지만 살아있지 않아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서 왔지?

 

물이 먼저인가? 생명이 먼저인가?

 

모든 생명 속에 질서가 있었던 것이고 이런 조화가 어디서 왔는가? 했으면 이 세상의 어떤 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창조주의 존재의 존재로 이해할 수 있나요?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나요?

 

선생님께서 질문한 것은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제가 세계 지성. 내지는 지성을 통해서 핸드폰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 세상을 만든 존재를 창조주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신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나요? 가드 엔 크리에이터.

 

세계 지성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다. 말하자면 신이라고 인격화된

 

 

 

 

 

여신입니다. 사랑의 여신. 사랑의 여신을 실체를 가진 인간으로 묘사를 했지요. 하지만

 

하느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어떤 남자. 그것은 형상화한 그림에 불가합니다.

 

이걸 정말로 잊어버리시면 안 됩니다. 씽킹이 SEEing이 된다. 그냥 보는 이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고를 통해서 보이지 않은 것을 봅니다. 중력의 법칙? 보이지 않죠. 하지만 우리는 사고를 통해서 봅니다. 법칙이 가능하게 했던 지성은 어디서 왔을까요? 생각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법칙을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도전하지 않으면 물질만 본다면 지금 인류는 내가 이것을 선택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지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악당이어서 지구를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사고를 하고 그런 사고가 지구를 죽입니다.

 

 

 

슈타이너가 그립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기를 모든 앎은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반드시 경이로움에서 시작해야한다. 모든 영혼 속에서 진실에 닿고자 노력하는 모든 영혼 속에서 그 영혼속에서 어떤 순간이 존재해야만 안다. 우주를 바라보는 그 경이로움 속에 서 있는 그 느낌.....

 

내 눈앞에 우주가 펼쳐져 있어요. 우주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순간이 단 한번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사고는 단지 옳은 것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본질로서 진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분해해서 살펴보고 구조를 살펴볼 때 그것들은 파편에 불가합니다. 실재는 그 부분을 통해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아주 예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고가 정말 명철한 사람이지만 한 번도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이 없다면 그 명확한 사고 속에서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고의 회전. 생각 굴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진정한 앎은 영혼적인 정수.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보모로서 교사로서 우리가 꼭 가져야하는 것은 아이를 바라보는 경이로움. 세상. 인류에 대한 경이로움. 그 속에 엄청난 가능성들이 그 경이로움 속에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실수할 수 있어요. 다음에는 다르게 하면 됩니다.

 

 

 

어떤 창조적인 생각이든지 떠오른 것을 써보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글쓰기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했잖아요 광물학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시쓰기로 시작해볼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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