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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교육학과 치료분야로서의 움직임 예술 (1)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체육교육+놀이

교육학과 치료분야로서의 움직임 예술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4. 8. 13:19

교육학과 치료분야로서의 움직임 예술

 

질비아 바르트(Sylvia Bardt)

심운섭 편역, 김훈태 감수

 

 

언어와 음악이 눈에 보이게 한다.

움직임을 통해 건강해진다.

사회성을 키운다.

Nr. 187



오이리트미란 무엇인가?

 




움직임 교육

 

  움직임에 관한 이야기는 오늘날 건강과 관계된 곳 어디에서든 추천되고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사람들은 역설적인 상황에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동차, 기차 또는 비행기를 타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먼 거리에 “운반된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이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움직임조차 최소한으로 줄어든 상태다. 그리고 이러한 부족한 움직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양한 스포츠나 예술적 움직임 형태가 제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과 달리 20세기 초에는 일상 속에 자연스러운 움직임 활동이 아직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부족한 움직임이 건강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루돌프 슈타이너는 그 당시, 즉 1911년에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존재로서 온전한 인간을 주장하며 움직임에 도움을 주는 새로운 움직임 형태를 제시하였다.

  이 움직임 형태는 춤, 스포츠, 체조에서 연습되는 움직임 교육의 형태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들어 있다.

  더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모든 움직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내포되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생명력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기의 연습을 가능케 하고, 그래서 그 활동 중에 있도록 하는 원천이 된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유기적 움직임을 위해 생명력이 사용된다. 생명력은 하나의 큰 유기체처럼 포괄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마치 두 번째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는) 몸처럼 보인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몸을 형성력체(생명체) 또는 에테르체라고 이름을 붙였다. 에테르체의 창조적이고 조형적이며 보존적인 힘은 물질체가 물질화되는 것으로부터, 또는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지켜 준다. 모든 예술가, 모든 교육가는 건강과 성장을 제공하는 이 힘의 움직임을 실제적으로, 그리고 현장경험으로 알고 있다. 

  오이리트미는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담고 있는) 힘을 의식적으로 다루는 것에서 다른 움직임 교육과 구분 지을 수 있다.



오이-리트미(Eu-rythmie) : 아름다운 리듬

 

  오이리트미는 창조적 움직임의 예술이다. 움직임을 통해 인간의 형태를 만드는 에테르적 힘을 눈에 보이도록 만든다.

  움직임을 위한 이 힘의 원형적인 예로 들숨과 날숨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무의식적으로 “체조”적 움직임을 하는 것은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도록 확장하고, 공기를 다시 밖으로 내보내도록 수축하는) 폐와 흉곽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이 들숨과 날숨의 호흡과정은 팔의 동작을 통해 모방할 수 있다. 또한 몸 전체로 굴곡과 신장, 이완과 수축, 펼치고 풀어내는 동작을 하면서 눈에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공간에서 안과 밖으로 흐르는 나선적 움직임 형태를 통해 공간적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호흡은 (외부에서 다가와 더 깊거나 더 빠른, 더 정체되거나 더 이완되는 모습으로) 몸 전체에 영향을 주고 전체 몸의 느낌, 인간의 내면까지에도 변화를 준다. 예술도 이와 같은 것을 행한다. 예를 들어, 언어, 음악, 리듬은 우리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 주고, 우리의 내면 깊이까지 영향을 준다. 그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행복감, 슬픔, 피곤함의 느낌은 우리의 청각에 의존하여 생길 수 있다. 예컨대 일상에서도 마트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사람들의 소비심리에 영향력을 크게 준다.

  인간에게서 음악의 박자에 상응하는 것을 찾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맥박에서 찾을 수 있다. 맥박은 호흡보다 더 무의식적이며 삶에 일정한 리듬을 부여한다. 

  음악에서 박자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강조된, 또는 강조되지 않은 박자리듬을 여러 그룹으로 모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온전하게 듣는다면) 왈츠의 4분의 3박자와 행진곡의 4분의 4박자를 다르게 다룰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을 심장리듬의 박동수에 정확하게 맞추거나 증가시킨다면 움직임의 힘이 (테크노 음악처럼) 엄청나게 상승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와 달리 리듬과 박자의 요소를 우리가 의식적으로 움직임 안으로 넣는다면, 우리는 인간의 호흡과 맥박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 내부의 생명력이 자극되고 강화될 것이다. 그래서 예술적 작업행위에서 건강한 움직임은 새로운 하나의 완결체를 이루게 된다.



눈에 보이는 언어

 

언어(Worte)

 

언어는 잘 익은 석류 열매다.

땅에 떨어져

자기 자신을 열어 놓는다.

 

모든 내적인 것이 밖으로 향하여

열매는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새로운 비밀을 담고 있는

자신의 씨앗을 보여 준다.

 

- 힐데 도민(Hilde Dodin)

 

 

  “모든 내적인 것이 밖으로 향하여 / 열매는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바로 이러한 것이 오이리트미에서도 일어난다. 오이리트미는 언어의 내적 본질을 눈에 보이게 한다. 

 

  오이리트미는 볼 수 있는 언어다

 

  인간의 언어는 언어기관의 변별적 협력작업을 통해 가능하다. 그래서 호흡, 혀, 입천장, 입술은 섬세한 방식으로 함께 움직여야 하고 언어가 가진 느낌과 의미를 조형해야 한다. 아래에 그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자음 “M(엠)”: 우리가 자음 “M”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만약 “음~”소리를 만족감의 표현으로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마치 맛있는 것을 음미하는 것처럼 우리 내면 깊이에서 시작해 몸 전체까지 그 맛이 도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때 입술은 부드러운 느낌을 가지고 함께 조형하면서, 우리는 신체와 영혼의 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M”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첫소리로 말하는 교감(Sympathie)의 소리다. “엄마”, “마마”는 어떻게 첫소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에테르적 움직임이 신체감각, 교감과 “엄마”를 연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오이리트미적으로 이것을 조형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물질체도 미끄럽고 부드럽게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만족감에서 “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팔과 손의 움직임은 발음할 때 입술이 표현하는 것처럼 만지듯 부드럽고 미끄러우며 음미하듯 움직이고, 흐르듯이 스스로 그 안에 순응하는 듯한 형태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움직임은 영혼화가 된 움직임일 것이다.  

  자음과 대조적인 특징을 지닌 모음의 예를 살펴보자. 모음은 그 자체로 소리를 낼 수 있는 특징이 있고, 그래서 모음은 스스로 울리는 듯이 표현된다. 모음은 그 자체로는 혼자 소리를 내지 못하는 (언어를 조음하고 입술, 혀, 입천장의 움직임이 많이 요구되는) 자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모음은 언어기관의 도움이 별로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호흡과 함께 자유롭게 밖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모음으로 우리는 느낌을 표현한다. 이것을 우리는 감탄사에서 가장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 “오~”, “이~”. 이렇듯 느낌은 모음의 울림에 의해 결정된다. 

  모음 “I(이)” : 모음 “I”는 가장 밝은 모음으로서 빛나는, 바로 서는 듯한 느낌을 가진 소리다. 우리는 “I”를 독일어 단어 “Licht(빛)”, “Ich(나)”, “Himmel(하늘)”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Mitte(중심)”이라는 단어에서 “I”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글자 속에서도 “I”는 선적으로 직선의 형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오이리트미에서 “I”는 직선적으로 펼치는, 바로 세우는 밝은 움직임의 특성을 가진 동작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음 “O(오)” : 우리는 “O”를 발음할 때의 입모양, 그리고 입김, 글자의 모양과 소리 울림에서 둥글게 모으고, 내적 공간을 만드는 모습에서 “O”를 경험한다. 모음 “O”의 느낌은 감탄, 기쁨, 놀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따뜻함과 교감을 표현한다. 모음 “O”가 들어간 아름다운 단어를 우리는 많이 찾을 수 있다. “Obhut(보호)”를 예로 들어보자. 이 단어를 말할 때 마치 보이지 않는 팔이 어떤 것 위를 둘러싸거나 감싸 주는 것처럼 울리는 느낌을 받지 않는가? 

  오이리트미는 이것을 눈에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오이리트미에서는 팔을 둥글게 만들어 모든 방향으로 감싸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각각의 단어를 어떻게 말할지에 따라 움직임의 크기와 긴장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Tod(죽음)”를 표현할 때는 엄중하거나 차가운 동작을 아래로, “Sonne(해)”는 밝은 동작으로 위로, “Loch(구멍)”와 “Knopf(단추)”는 작게, “Rose(꽃)”는 손으로, “hole(모셔오다)”는 안으로 데려오는 동작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림 1 : 모음 “O”를 발음할 때 공기의 형태를 담배연기로 눈에 보이게 표현한 그림

 

  자음과 모음은 말을 할 때 항상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게 된다. 마치 별자리에서 항성과 행성이 항상 새로운 그림과 위상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바빌론, 이집트, 그리스 같은 고대 문명에서는 하늘에 펼쳐지는 그림을 읽을 수 있었고, 인간에게 하늘의 표시는 큰 의미를 가졌었다. 움직이는 별들의 모습은 고대의 춤과 특히 축제를 위한 모범적 상이었다. 그렇게 별자리를 통해 읽은 것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에게 움직임이 생겨나게 했다. 

  언어와 음악은 이러한 춤과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춤의 몇 가지 요소들을 오이리트미에서도 다시 찾을 수 있다. 오이리트미는 우주적 모범과 영향에 연결되어 있다. 물론 관습, 제식행위, 그리고 전통문화적 요소에 각인되어 있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이리트미는 오늘날의, 그리고 미래의 예술 이해에서 출발한다. 오이리트미는 현대적, 개별적, 의식적인 인간을 전제로 한다.

  시와 음악작품을 그 내용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맞는 형태(동선), 색, 분위기를 취하여 드라마적으로, 서사적으로, 유머스럽게 오이리트미로 조형하게 된다. 여기서 단지 몇 가지 예로 소개된 오이리트미의 기본요소들은 예술작품에 따라 다양하게 연습되고 그 특징에 맞게 개입되어진다. 

  오이리트미는 여기서 시작 지점에 아직 서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풍부하고 세밀하며 움직임적인 조형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유연함과 의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음악의 모든 요소에 적용된다. 높은 차원의 음악성과 움직임성을 소화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온전히 개별적 형태의 새로운 창조가 생겨날 수 있어야 하고, 들은 것을 단순히 모방하듯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이리트미 안에는 계속적으로 성장 발전되어져야 하는 힘이 놓여 있다. 

 

그림 2 : 천상에서 배운다는 것은  바라본다를 뜻하며  지상에서 배운다는 것은  다시 기억한다를 뜻한다.



공간에서의 움직임

 

  활기 넘치는 인간은 자기 행위 안에 생기를 가지고 있고, 자기 빛의 강함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생명력은 단지 자신의 고유한 생명과정 안에서만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세상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에테르적인 법칙성에 따르는 움직임은 또한 인간의 형상을 넘어서 공간에까지 살아 있게 된다. 

  오이리트미에서 공간은 공간이 가진 질적 요소로, 3차원성(Dreidimensionalitaet)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은 단지 보호된 공간, 오이리트미실이라는, 그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높이와 깊이, 너비, 앞과 뒤의 다양성과 관계되어 있는 공간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추상적인 선으로 된 (해부학적 자세에서 공간면을 표현하는) 관념적인 좌표계 같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생명영역과 같은 것이다. 우선은 인간 그 자체에서, 인간의 모습에서 관찰되고 경험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예술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관중을 향하는 동선과 뒤로 물러나는 동선을 표현하는 것은 얼마나 다른가. 뒤로 향하는 동선을 따라 움직일 때, 앞에서 몸을 돌려 뒤로 걷는 것보다 몸을 돌리지 않고 관중을 향하면서 뒤로 걷는 것을 통해 그 인상은 더 강조될 수 있다. 이때 이 동선을 표현하고자 하는 자신의 고유한 움직임 감각은 다를 것이고, 걷는 방법에서도 그것이 표현될 것이다.

  이를 통해 뒤로 걷는 움직임을 할 때 뒤쪽 공간은 보이지 않는 공간이고 그 사람은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그곳을 더듬어 만지듯 걸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뒤로 걷는 동선을 하는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것을 표현하도록 창조한다. 뒤로 반호나 반원을 그리는 동선에서 다시 앞으로 반호나 반원을 그리는 형태의 동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세상과 연결할 수 있다.  



공간형태(Raumform)

 

  대부분 공간적으로 표현되는 형태(동선)는 에테르적인 움직임으로부터 생겨난다. 여기서 공간형태의 의미를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으로부터의 자극이 약해져 가는 바로 오늘날에 생명력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자연에서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 주의를 갖는 일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한 번의 눈길로 수백 개의 표시와 상징을 읽는다. 그리고 이러한 표시와 상징은 도처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예를 들어 교통표지판, 안내표, 지시도 등등이 있겠다.

  여기서 주의는 이러한 자극에 개별적으로 작업하고, 그에 따른 개념형성은  (예를 들어 교통표지판에서처럼) 직접적이고 반쯤 의식적으로 따른다. 간단한 그림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그림을, 판타지를 만드는 노력을 하지 못하도록 영향을 준다. 공간에 표현되는 형태는 (그것의 내부적인 특징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고, 형태적 역동성에서부터 관찰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가 듣거나 움직임을 관찰할 때, 읽기를 할 때에도 연속적인 과정을 뒤따라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오성은 경청에서, 관찰에서, 함께 따라가는 것에서 발달한다. 이것은 내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조형예술에서도) 영혼적·정신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 요구된다. 정말 특별한 주의는 예술적인 힘에서 기인한 움직임을 받아들일 때 깨어나게 된다. 오이리트미의 공간형태(동선)에서도 이러한 깊은 의미가 적용된다. 

  이리하여 형태가 움직임으로 바뀌었을 때, 굳어진 형태가 풀리고 흐름을 가져오게 되었을 때, 형태와 움직임이 딱 들어맞게 짜여지는 것도 강화된다. 

  이를 위해 많은 의미있고 조화로운 상징 표시들이 제안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괴테는 파우스트가 소우주의 상징을 바라보게 하고 그 상징을 보면서 언어로 말하게 하였다. 

  이 시를 통해 상징은 흐름을 가져오게 되었고, 내적이고 조화로운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이 구조를 이해하였다면 간단한 방식으로 공간적인 움직임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텍스트를 통해 자극되고 지지되었다면 솔로나 그룹 오이리트미 작업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그림 3 : 괴테 <파우스트> 비극 제1부 밤

 

하나하나가 어울려서 어떻게 전체를 이루고

모든 것이 서로서로 작용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하늘의 힘들이 오르내리며

황금의 두레박을 스스로 건네주고 있구나!

축복의 향기 가득 풍기며 흔들거리면서

하늘로부터 대지를 뚫고 내려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삼라만상 속에서 울려 퍼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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