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의 생활지도 매뉴얼 (5) -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회복적 접근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생활지도

발도르프학교의 생활지도 매뉴얼 (5) -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회복적 접근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8. 24. 12:24

4. 갈등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회복적 접근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우리 인간의 영혼은 감각혼과 지성혼, 의식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각혼은 우리 영혼의 가장 기초적이고 넓은 차원입니다. 우리의 감각체험은 몸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각혼은 몸에 의해 규정되고, 한정됩니다. 감각, 호감과 반감, 충동, 본능, 욕망 등이 감각혼의 영역입니다. 자아가 이 상태에 머물 때 우리는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며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좋고 싫음이 중요한 판단 근거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입니다. 감각혼 차원에서 인간은 동물과 유사합니다.

 

지성혼은 사고를 도구로 삼는 영혼입니다. 지성혼이 있기에 우리는 느낌에 대한 사고내용을 형성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외부 세계를 파악합니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 자기중심적인 삶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성혼에 의해 자기중심적인 우리가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성혼의 상태에서는 이기적인 성향을 합리적 사고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벌컥 화를 내고 때려치우기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져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지성혼의 힘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윤리적 선을 추구합니다.

 

감각혼 단계의 과제가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것이라면, 지성혼 단계는 합리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기계적 합리성이 아니라 심층 합리성을 추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전체로서 하나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성혼은 여전히 감각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식혼은 간단히 말해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합리성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성숙한 상태이고 영적 단계의 초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었음에도 미묘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합니다. 특히 경제적 이익이나 권력관계와 관련하여 자기중심성은 맹렬한 욕망이 되어 한 사람의 인격과 관계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의식혼은 이러한 모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 나아가 정신과 연결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감각혼과 지성혼으로부터 의식혼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우리는 늘 시련을 겪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모두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인식틀을 갖는 것은 비유 그대로 죽고 거듭나는 일입니다. 이때 중요한 판단 기준은 좋고 싫음도 아니고 옳고 그름도 아닙니다. 진실인가, 거짓인가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왜곡하여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흐름과 달리 억지를 부리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할 수 없습니다. 진실한 삶이란 자기객관화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 정의롭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일을 경험했을 때 감각혼에서 응보 감정이 나옵니다. 응보 감정은 무척 힘이 셉니다. 반감에서 시작된 응보 감정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지성혼은 상황을 한 방향으로 판단하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응보를 위한 의지를 냅니다. 감정에 사로잡힌 의지는 맹목에 가까울 정도로 결과를 추동합니다. 그 결과는 대체로 파괴적인데, 응보 감정은 처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감각혼 상태에서의 상식입니다.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이 지성혼입니다. 문제는 갈등 상황에 빠진 사람들은 갈등이 고조될수록 더욱 더 감각혼 상태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고래로 인간 사회에서 처벌은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잘못이 한 개인을 상대로 한 것이든 공동체 일부 또는 전체를 상대로 한 것이든 그것은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보통 피해자가 가해자를 보복하거나 공동체 안의 지도자에 의해 응징을 당하는 것이 대중의 응보적 법 감정을 해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일이 처리되지 않으면 대중은 불안감, 억울함, 분노심을 느낄 것이고, 사회는 위기에 빠질 것입니다. 다만 소규모 공동체에서 그러한 처벌이 일상화되면 반목과 공포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과와 보상에 초점을 맞춘 도덕규범이 강하게 지배했던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와 연극, 드라마, 영화에 이러한 응보가 단골 소재로 쓰인다는 건 그만큼 대중적 현상임을 보여줍니다. 짐짓 점잖은 태도를 보인다 하더라도 인륜을 어긴 범죄에 대해 잔인한 복수를 원하는 것은 인류의 뿌리 깊은 욕망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당한 응보가 이루어지지 않는 부조리한 현실을, 통쾌한 복수극을 통해 해소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야기와 달리 현실에서는 복수가 복수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응보 감정에 사로잡혀 벌인 폭력은 악당과 영웅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를 괴물로 만듭니다. 폭력의 악순환은 공동체의 존립을 근본에서부터 흔들 수밖에 없습니다. 소규모 공동체에서 국가 단위의 거대한 공동체로 발전하면서 사법체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벌권을 국가가 갖도록 했습니다.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 사적 보복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응보 감정을 해소하는 처벌은 국가권력에 위임되었고, 범죄가 벌어지면 피해자를 대신해 국가가 피해자가 되어 가해자를 처벌합니다. 그렇다면 응보 감정은 정당한 것일까요? 우리의 정의 관념은 응보주의와 연결되어,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믿음을 오랫동안 공유해왔습니다. 인류의 지성혼은 오랫동안 처벌의 근거를 찾기 위해 애썼고 응보주의나 예방주의 같은 이론을 만들어 왔습니다. 감각혼에 봉사하는 지성혼의 모습입니다.

 

의식혼 차원에서 본다면, 응보 감정은 불의에 대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인간의 반응일 뿐 그것이 진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관적 감정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아주 한정적입니다. 범죄란 가해자만의 잘못이 아니며 처벌이란 궁극적인 문제해결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범죄의 원인은 개인적인 측면부터 사회적인 측면까지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만 처벌하는 것은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엄벌에 처한다고 해서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으며 재범률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흉악범만을 따로 모아둔다고 해서 사회가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한 접근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성혼을 통해 아무리 처벌의 근거를 정교하게 찾는다 해도 그 본질이 응보 감정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진실한 방향은 찾기 어렵습니다.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응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처벌을 하는 것이라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진실한 가치는 관계성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는 법입니다. 의식혼의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핵심 가치입니다

 

회복적 정의는 관계성에 주목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관계에 의해 존립 가능하며, 관계가 단절될 때 병듭니다. 이제는 지성혼이 감각혼에 봉사하는 시대가 아니라 의식혼의 시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늘 전체를 바라보고 자기중심성을 극복할 때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통해 합리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러한 진실성에서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진실한 이상과 진실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며, 시대의 커다란 고통에 대한 공감 속에서 우리의 과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책임 의식이 요구됩니다.

 

회복적 정의는 의식혼 단계의 접근법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더 진실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습니다. 진실은 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분리와 배척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잘못에 대해 직면하고 자발적 책임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갈등 사안을 모두 사법기관에 가져가는 것보다 공동체가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 내면의 의식혼은 조금씩 성장하여 빛을 발할 것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