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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학교의 생활지도 매뉴얼 (4) - 정의란 병든 상태를 치유해 회복하는 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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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학교의 생활지도 매뉴얼 (4) - 정의란 병든 상태를 치유해 회복하는 것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8. 24. 12:02

3. 정의란 병든 상태를 치유해 회복하는 것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폭력은 궁극적으로 한 사람의 자아를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고유하고 존엄한 자아를 가진 정신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저마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통제력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폭력이란 한 사람의 자기통제력을 약화시키는 행위입니다. 원하지 않았는데 자기 삶에 개입해 들어와 피해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아가 점점 약해져 자립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아동학대가 무서운 것은 왜곡된 자아상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자아의 심각한 약화로 평생 의존적 존재로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한 사람의 자아를 건강하게 키우는 일입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시도하고 좌절도 맛보며 자신의 힘을 키워갑니다. 관계에서도 기쁨을 얻을 때가 있지만 괴로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좌절이나 괴로움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아가 단단하게 성장하기 위해 좌절이나 괴로움은 반드시 필요한 경험입니다. 일부러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도 살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좌절과 괴로움을 직면하면서 자아는 성장합니다. 일부 교사나 부모 중에는 아이들이 좌절과 괴로움을 겪지 않도록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이의 삶에 대한 침해이자 아이의 자아를 약화시키는 행위입니다.
 
정의는 ‘내가 옳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정의의 본질적 의미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입니다. 이것을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병든 사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회는 구성원들 간에 차별이 만연하고 불평등이 구조화된 사회입니다. 기득권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약자들을 착취합니다. 게다가 약자들끼리 싸우도록 서로를 혐오하는 문화를 만들어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선을 돌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약자들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지만 그들은 무법지대에서 폭리를 취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상이 그렇습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부조리를 정확히 꿰뚫어보아야 합니다. 개인들의 범죄나 폭력, 갈등, 질병 등은 대부분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옵니다.
 
20세기 후반 이후로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와 사법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주시 없이 개인의 노력만을 강요하는 사회입니다. 공동체는 해체되었고 개인들은 파편화되어 자기 이익 창출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생산 활동 없이 부를 얻고자 하며, 매사에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웁니다. 손해를 보는 것은 극도로 두려워하지만 책임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합니다. 공동체 붕괴로 인해 도덕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흐름을 ‘자기중심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주의는 우리의 시야를 좁게 하므로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를 세우면서 우리 앞에 진정으로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과제가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병들어 있음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과제는 서로를 간호하고 치유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문제행동에 대해 응보감정을 내려놓고 연민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발도르프 교육의 중요한 태도입니다. 극단적인 어떤 행동에 대해 반감을 갖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치유를 위한 지혜와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기존의 응보적 정의에 대한 반성으로 등장한 회복적 정의는 발도르프 교육과 같은 결을 가진 정신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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