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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사회유기체의 삼지적 구조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사회유기체의 삼지적 구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12. 10. 04:38

사회유기체의 삼지적 구조

 

고야스

슈타이너는 아주 다면적인 사람입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혼란한 사회 상황 속에서 독특한 사회론을 주창하고 담배 공장 안에 학교를 세우는 등의 활동만 본다면, 당시 그를 좌익 혁명가로 보던 경향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좌익 사상가들이 오히려 그를 보수적인 신비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결국 좌익으로부터는 우익으로, 우익으로부터는 좌익으로 비친 셈입니다.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타이너의 사회론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게마스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1919년은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웠던 해입니다. 때마침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터라 그 종결 문제를 둘러싸고 독일 전역에서 사회 운동이 일어났지요. 일부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종결시키려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 슈타이너는 어떤 위치에 서 있었을까요. 단순한 신비주의 사상가였다면 사회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고 깊은 산속에 숨어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시대가 던져 준 주제와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당시 사회 사상가들 대부분은 적잖이 사회주의 색채를 띠었습니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독자적인 관점에서 나름대로 사회 문제를 파악했습니다. 그가 교육 문제를 해석한 것과 같이 사회 문제 또한 독자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고야스

그 점에 대해 아게마스 씨가 상세히 설명해 주시죠.


아게마스

이를테면 사회 문제를 바라볼 때도 표면적인 사회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 내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회 문제 배후에 있는 정신적인 근거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 것입니다. 사회 문제 또한 인간의 의식 문제로 해석하려는 시점에서 사물을 본 것이죠.

1차 세계 대전의 파국이라는 당면한 사실에 대해서 왜 전쟁이 일어났고 왜 그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통찰은 정신과학적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해석하려는 방식에서 비롯되었지요.

당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사회 구조와 생산 체제를 바꾸면 자연히 좋아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반면 슈타이너는 그보다 더 본질적 인 문제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문제의 밑바탕에는, 사회도 하나의 유기체이며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기에 맞도록 현실적인 해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가 모범적인 사회 개혁 프로그램이 있어서 그에 따르기만 하면 이상적인 사회가 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선 주어진 사회적 현실을 인정하고 그 본질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슈타이너는 1906~7년 베를린의 노동자 양성 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하며 많은 체험을 합니다. 사회 문제를 통찰하기 위해서는 사회 유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복잡한 요소들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예를 들면, 경제적인 이해 관계나 식민지 정책이 발화점이 되어 전쟁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문화 활동 자체는 본래 자유로워야 하는데 국가가 통제하다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노동력 자체는 원래 상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품화되어 버리는 등의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에서도 분명히 통찰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이 있고 그 사회 유기체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슈타이너는 정의합니다.

먼저 인간 내부의 문화 영역 또는 정신 활동 영역입니다. 학교 교육을 포함한 문화 활동 전체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각각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할 영역이지 경제나 국가, 정치 영역에 의해 규제되어서는 안 되는 영역입니다. 정신 활동만큼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사실상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국가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교육을 강요받으며, 산업 사회 또는 경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꾼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습니다. 국가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는 등 제약도 많습니다.

두 번째는 법의 영역으로, 정치 영역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통용되며, 정치적이고 법적인 관계로서 이 영역을 지배하는 것은 평등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과 정치의 영역은 이런 부분에만 국한되어야 하며, 그 이상 발전해서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입니다.

다음으로 사회 유기체를 구성하는 세 번째 중요한 영역은 경제 영역입니다. 경제 영역은 어디까지나 상품 생산과 유통, 소비에만 국한되어야 하며, 거기에는 분업 사상을 기초로 한 박애의 원리가 지배합니다. 순수하게 경제 문제로서 해결되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처럼 정신 생활 영역, ·정치 생활 영역, 경제 생활 영역, 이 세 가지는 각각 독립된 영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로 혼동되어 어떤 영역이 다른 영역을 속박하거나 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견해입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의 종결에 관해서 그러한 문제 의식을 독일 국민과 독일 문화 세계에 고함이라는 호소문을 통해 밝혔지요. 그 글은 곧 독일 문화인들의 지지를 얻었고 헤르만 헤세나 파울 나토르프를 포함한 독일의 문화인 아흔아홉 명으로부터 서명까지 받습니다. 슈타이너는, 사회 유기체 각각의 영역이 자립된 영역으로 작용하고 또한 영역 사이에 서로 조화를 이룰 때에만 비로소 사회가 유기체로서 건전하게 기능을 다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한 이념을 기반으로 사회 유기체의 삼지적 구조 운동이라는 운동이 독일 남부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그 이전에 슈타이너는 정신 과학자로서 강연을 많이 해 왔지만, 그것을 계기로 사회론을 주창하는 논객으로서 더욱 열정적인 강연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러 노동 조합에 불려 다니며 강연을 하는 가운데 마침내 사회 유기체의 삼지적 구조를 실현하기 위한 동맹을 만들고 정열적인 활동을 전개합니다.

그의 사회 유기체의 삼지적 구조 사상은 자유·평등·박애라는 표어로 요약됩니다. 이미 오래전 프랑스 혁명의 기치였습니다만, 프랑스 혁명 시대의 자유·평등·박애는 결국 프랑스 공화국 내부의 이념일 뿐이었습니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자유란, 정치적 통제와 경제적 통제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자유로운 정신 생활입니다. 정치 생활의 평등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개개인이 평등한 관계를 뜻하며, 경제 생활에서의 박애란,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물질이 공급되는 사회 속 박애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생산 수단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사유화가 되었다고 해서 노동자를 착취해서는 안 됩니다. 또 사회주의 국가에서처럼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고 해서 생산 수단을 국유화해서도 안 됩니다. 생산 수단 자체는 단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하며, 돈도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박애의 정신으로써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잉여 가치 또한 마땅히 필요한 요소이며, 잉여 가치가 없으면 문화 활동도 불가능하다고 슈타이너는 생각했습니다.

잉여 가치라고 하면 사회주의 이론에서는 마치 악의 근원처럼 비난합니다만, 잉여 가치가 없으면 학교 설립 자체도 불가능할 겁니다. 결국 제도 운용을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모두 사람에 달려 있다는 거죠. 사회 체제 그 자체에 이기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시대의 자유·평등·박애가 아닌, 현대 20세기에 들어서 자유·평등·박애의 의미를 재정립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자유로운 정신 생활 영역, 또 자유로워야만 하는 문화 활동 영역. 그것은 정치 영역에서도 경제 영역에서도 독립하여 인간의 본성을 순수하게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야 합니다. 이 삼지적 구조 사상 속에서 슈타이너 학교가 태어난 것입니다. 당시 발도르프 아스토리아 담배 회사 대표였던 에밀 몰트가 자사 노동자의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슈타이너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유로운 정신 활동의 원점인 발도르프 학교가 발도르프 교육 운동' 이라는 형태로 19199월 마침내 문을 열었습니다.

사회 운동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도르프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복잡한 사회 상황의 소용돌이 속 에서 슈타이너 학교는 세워졌습니다.



[출처 : 고야스 미치코·아게마스 유우지, 김수정 옮김, 슈타이너 학교의 예술로서의 교육, 밝은누리, 2003 : 179-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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