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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6. 22. 06:33

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인지학과 현대적 학문

발도르프교육 교사코스에 강연을 하러 오시는 외국 교수님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현대적 학문을 전공한 뒤에 다시 발도르프사범대를 다녔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발도르프학교 출신도 있고 일반학교 출신도 있다. 발도르프학교를 12학년까지 다니신 분들도 각자 희망하는 학과에 진학하여 현대적 학문을 공부하셨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육현장에서 일했고, 교수를 하면서도 담임교사나 과목교사를 하며 아이를 만나는 분들도 계신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자기 현장이 없으면 관념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사람이 학교운영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 "결국은 모든 정신생활이 자라나오는 교육제도와 수업제도는 교육하고 수업하는 사람들의 관리 영역에 속해야만 한다. ... 현재 행해지는 수업과 교육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간에 지시를 내릴 수 없다."(루돌프 슈타이너, 최혜경 옮김, <사회 문제의 핵심>, 밝은누리, 14쪽)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날 통용되는 학문의 세계를 이해하고 함께 호흡해야 한다. 현대적 학문과 인지학의 공통점뿐 아니라 그것들과 인지학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 세상이 물질로만 이루어졌다고 전제하는 것과, 물질뿐 아니라 정신세계의 존재까지 인정하고 전제하는 것의 차이이기도 하다. '전제'의 차원, 다시 말해 세계관의 차원에서는 논쟁이 불가능하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은 그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논쟁을 해도 끝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전제를 갖고 살아가는 실천적 삶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을 뿐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정신세계의 존재를 확신했지만 신비주의로 빠지지 않고 현대적 학문을 두루 공부했다. 그리고 현대 자연과학의 성과를 모두 인정했으며, 스스로 과학적 훈련을 쌓았다. 그는 장미십자회의 정신적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여겼으나 신비주의자들의 허황된 논리를 거부하고 과학의 언어를 내면화했다. 왜냐하면 현대인의 언어가 과학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동시대인들과 같이 호흡을 하는 입장에서 과거의 언어를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엄밀하게 학문을 탐구했고, 동시대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사상을 검증했는지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 온전한 이해를 받지 못했지만 그는 현대적 학문의 한계를 집요하게 따져 물었고, 끊임없이 현대적 언어로 정신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인지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모두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불필요한 일이다. 다만 인지학 역시 하나의 학문이기 때문에 인지학을 공부하는 사람 역시 철학과 과학의 발달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지학이 단지 그들만의 언어로 ‘알 수 없는 논리’를 펼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슈타이너는 근본적으로 인지학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의 삶 속으로 인지학이 스며들어 가야 한다. 이것은 비과학이나 유사과학이 아니라 정통과학의 확장과 보완의 형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지학에만 매몰되어서도 안 되고, 세상에 통용되는 절차와 형식을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되,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서 인정받는 작업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발도르프교육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교사코스도 밟지 않고 발도르프 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다거나 인지학 의학을 펼치고자 하는 사람이 의사면허증이 없거나 인지학적 의사코스를 밟지 않았다면 누가 그들을 신뢰하겠는가. 일반적인 교사나 부모, 의사, 간호사, 농부 등의 직업인이 인지학 책을 읽고 강연을 들어가며 현실에 적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인지학 공부의 과정

발도르프교육을 통해 인지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은 내용이 너무 난해하다는 것이다. 몇 년을 공부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분을 많이 만나곤 한다. 나 역시 발도르프학교에서 일하며 1,2년간은 개념이 와닿지 않아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수업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지적으로는 발도르프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알겠으나 그것이 몸으로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내 것이 되지 않았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새로운 것을 적용하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발도르프교육이나 인지학 그 자체가 본래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진정한 문제는 배우는 이의 기존 인식틀이며, 이 틀을 부수고 새로운 인식구조를 세우는 일이 어려움의 본질이라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의 개념 체계를 타파하고 새롭게 사유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게다가 우리가 어린 시절 받아온 교육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아니었던가. 슈타이너는 전혀 다른, 그러나 올바른 사유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지학적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기존의 사고방식을 내려놓는 작업을 치열하게 할 일이다. 인지학을 쉽게 배우는 일은 없다. 만약 인지학을 아주 쉽게 가르쳐 준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사기이거나 기존의 인식틀을 강화하는 방식일 것이다. 물론 배우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틀과 기존의 틀을 계속해서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지학 공부의 난관은 정신, 영혼, 신체라는 3구성체보다 자아, 아스트랄체, 에테르체, 물질체의 4구성체를 내면화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 기본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4구성체의 틀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공부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막히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발도르프교육 또는 인지학을 처음 공부하는 분들이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책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유아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선생님들의 경우 <자유의 철학>이나 <인간과 지구의 발달 - 아카샤 기록의 해석> 같은 책을 일찍이 공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만나는 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지적인 추구보다 판타지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동화 이야기나 놀이와 노래, 하위감각에 관한 공부가 더 필요해 보인다.

슈타이너의 원전을 공부할 때 농업을 하시는 분이라면 <자연과 사람을 되살리는 길>과 함께 <신지학>을 반복해서 학습할 필요가 있다. (<생명역동농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책자도 요긴할 것이다.) 발도르프교육으로 접근하는 분이시라면, 개인적으로 <정신과학에서 바라본 아동교육>이 가장 기초적인 교재일 뿐 아니라 곁에 두고 자주 봐야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발도르프 아동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왔는데, 분량도 길지 않고 내용도 그렇게 난해하지 않다. 무엇보다 4구성체의 기본 개념과 7년 주기 발달에 대한 이야기가 간결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무척 유익한 책이다. 그 뒤에 <발도르프 교육예술>을, 그리고 <신지학>을 충분히 공부한 뒤에 <일반인간학>으로 넘어가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반인간학>은 발도르프교육뿐 아니라 인지학을 공부하는 모든 분에게 핵심적인 책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이 책을 공부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의 개교를 앞두고 교사진들을 상대로(그들은 이미 인지학자였으므로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었다.) 한 강연이기 때문이다. 내적 수련을 하고자 한다면 <부차수련>과 <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을 꾸준히 읽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사고의 실용적 형성>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루돌프 슈타이너 자서전>은 분량이 꽤 되지만 인지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 탐독해야 할 책이다.

<철학, 우주론, 종교>나 <인간과 인류의 정신적 인도>, 앞서 말한 <자유의 철학>과 <인간과 지구의 발달 - 아카샤 기록의 해석> 등의 책은 가급적 구입을 해둘 필요는 있지만 급하게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물론 중요한 내용들이고 틈나는 대로 읽어 보되, 마치 기차를 타고 가면서 풍경을 보듯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채로 편안하게 읽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공부가 어느 정도 된 사람과 함께 강독모임을 갖는 것, 그리고 외국교수들의 강연이 있을 때 찾아가서 듣고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래의 글들은 예전에 인지학 서적 소개를 정리해둔 것이다.


https://steinerinstitute.tistory.com/entry/%EB%B0%9C%EB%8F%84%EB%A5%B4%ED%94%84-%EA%B5%90%EC%9C%A1%EC%9D%84-%EA%B3%B5%EB%B6%80%ED%95%98%EA%B8%B0-%EC%8B%9C%EC%9E%91%ED%95%9C-%EB%B6%84%EB%93%A4%EC%9D%84-%EC%9C%84%ED%95%9C-%EC%B1%85-%EC%86%8C%EA%B0%9C?category=546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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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steinerinstitute.tistory.com/entry/발도르프-교육을-공부하기-시작한-분들을-위한-책-소개-4?category=546348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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